안정된 직장도 포기…부푼 희망 안고 꿈을 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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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10-26 09:19|본문
안정된 직장도 포기…부푼 희망 안고 꿈을 쫓다
꿈과 희망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돋아나는듯싶다. 꿈을 위해 안정된 직장마저 포기한채 홀로 영화제작사 희성영화제작사를 설립한 주금파(52살)씨, 모든게 용기 하나로 시작됐다.
20일 그의 사무실에서 주금파씨를 만났다. 흑룡강성 목릉현소재지에서도 300리 떨어진 산골에서 태여난 주금파씨는 서른이 될 때까지 봄갈이와 가을걷이에 익숙한 농민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흑룡강신문》에 실린 박준희감독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앞으로 조선족의 영화, 드라마 시대를 열어가야 되는데 극본이 없다”는 구절을 읽고나서 주금파씨는 갑자기 극본을 쓰고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드라마작가를 꿈꾸면서 그간 여러편의 단편소설과 수필을 발표했던 경력도 보탬이 됐다. 극작가 황봉룡의 《황봉룡희곡선》을 읽으면서 장악한 연극지식을 바탕으로 장막극본과 8회분 드라마극본을 완성한 주금파씨는 연변TV방송국 드라마부 박준희감독을 만나기 위해 연변으로 향했다.
하지만 촬영때문에 외출중인 박준희감독은 만나지 못하고 다시 찾은 연변연극단에서 최인호감독을 만났다.주금파의 극본을 읽고난 최인호감독은 연극 표현수법이 예전에 사용하던것이라 지적해주면서 소설로 개편하는것이 좋을듯싶다고 조언했다.
요절된 극본을 지니고 연길에서 료리사로 있던 사촌동생을 찾아간 주금파씨는 생각밖에 소설가 우광훈을 만나게 되였고 그의 소개로 연변작가협회 민족문화원 1기 양성반에 참가하게 되였다.
동기들과 함께 세방살이를 하던 주금파씨는 어느날 주인집 단색텔레비죤을 통해 처음으로 연변TV방송국 “주말극장”프로를 시청하게 되였고 허두남작가의 소품 “사촌녀동생”을 보게 됐다. 생각이 떠오른 그는 장막극으로 써왔던 “빌려온 색시”를 소품대본으로 완성한 뒤 “주말극장”프로에 보냈다. 뜻밖에 1996년 양력설특집프로에 방송되였고 200원 되는 원고료도 받았다.
신심이 생긴 주금파씨는 소품대본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고 1996년 10월에는 “주말극장”프로의 소품편집으로 초빙되였다. 그렇게 연변TV와 인연을 맺은 주금파씨는 20년 동안 프로듀서, 극작가, 영화드라마연출 등 다양하게 신분을 바꿔가면서 소품 백여편, 드라마대본 십여편을 창작했고 TV영화 “부모”, 단편TV극 “자전거”, TV영화 “아라디련가” 등의 감독을 맡았으며 성과도 냈다. 그가 총연출을 맡은 2011년 연변TV음력설야회 “아리랑 새 전설”, 2013의 “해란강 새 전설”이 제2, 3회 전국음력설야회프로평의 종합 1등상을 수상했고 “부모”, “자전거”가 제5회 “금붕상” 금상에 길림성 제24회, 25회 “두루미”우수프로평의 금상을 각기 수상했으며 “부모”는 제7회 진달래문예상을, “자전거”는 제22회 한국 KBS서울프라이즈 TV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작사를 세운 주금파씨의 첫 작품은 디지털영화 “사랑은 천하대본”이다. 세쌍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3국 국경도시인 훈춘을 배경으로 고속철도, 맹령사과, 방천, 훈춘입쌀 등 요소들을 등장시켜 짙은 조선족 민족풍정과 민족정감을 펼쳐보이게 된다.한국의 림은경, 조찬형, 로씨야의 타니야 등 배우가 연변의 배우들과 함께 열연을 펼치는 영화는 지난 9월 11일부터 30일까지 촬영을 진행했고 현재 후기제작중이다.
“서른살이 되여 처음 고향마을을 떠나 연변에 오면서 푼푼히 십년이면 드라마작가의 꿈을 이룰수 있을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벌써 20년도 훌쩍 넘었어요. 남들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이토록 시간이 흐르고나니 조급한 마음이 생겼지요.”
주금파씨는 조선족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여 연변을 알리고 조선족을 알리는데 힘을 보탤 생각이다.
꿈과 희망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돋아나는듯싶다. 꿈을 위해 안정된 직장마저 포기한채 홀로 영화제작사 희성영화제작사를 설립한 주금파(52살)씨, 모든게 용기 하나로 시작됐다.
20일 그의 사무실에서 주금파씨를 만났다. 흑룡강성 목릉현소재지에서도 300리 떨어진 산골에서 태여난 주금파씨는 서른이 될 때까지 봄갈이와 가을걷이에 익숙한 농민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흑룡강신문》에 실린 박준희감독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앞으로 조선족의 영화, 드라마 시대를 열어가야 되는데 극본이 없다”는 구절을 읽고나서 주금파씨는 갑자기 극본을 쓰고싶은 충동이 생겨났다. 드라마작가를 꿈꾸면서 그간 여러편의 단편소설과 수필을 발표했던 경력도 보탬이 됐다. 극작가 황봉룡의 《황봉룡희곡선》을 읽으면서 장악한 연극지식을 바탕으로 장막극본과 8회분 드라마극본을 완성한 주금파씨는 연변TV방송국 드라마부 박준희감독을 만나기 위해 연변으로 향했다.
하지만 촬영때문에 외출중인 박준희감독은 만나지 못하고 다시 찾은 연변연극단에서 최인호감독을 만났다.주금파의 극본을 읽고난 최인호감독은 연극 표현수법이 예전에 사용하던것이라 지적해주면서 소설로 개편하는것이 좋을듯싶다고 조언했다.
요절된 극본을 지니고 연길에서 료리사로 있던 사촌동생을 찾아간 주금파씨는 생각밖에 소설가 우광훈을 만나게 되였고 그의 소개로 연변작가협회 민족문화원 1기 양성반에 참가하게 되였다.
동기들과 함께 세방살이를 하던 주금파씨는 어느날 주인집 단색텔레비죤을 통해 처음으로 연변TV방송국 “주말극장”프로를 시청하게 되였고 허두남작가의 소품 “사촌녀동생”을 보게 됐다. 생각이 떠오른 그는 장막극으로 써왔던 “빌려온 색시”를 소품대본으로 완성한 뒤 “주말극장”프로에 보냈다. 뜻밖에 1996년 양력설특집프로에 방송되였고 200원 되는 원고료도 받았다.
신심이 생긴 주금파씨는 소품대본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고 1996년 10월에는 “주말극장”프로의 소품편집으로 초빙되였다. 그렇게 연변TV와 인연을 맺은 주금파씨는 20년 동안 프로듀서, 극작가, 영화드라마연출 등 다양하게 신분을 바꿔가면서 소품 백여편, 드라마대본 십여편을 창작했고 TV영화 “부모”, 단편TV극 “자전거”, TV영화 “아라디련가” 등의 감독을 맡았으며 성과도 냈다. 그가 총연출을 맡은 2011년 연변TV음력설야회 “아리랑 새 전설”, 2013의 “해란강 새 전설”이 제2, 3회 전국음력설야회프로평의 종합 1등상을 수상했고 “부모”, “자전거”가 제5회 “금붕상” 금상에 길림성 제24회, 25회 “두루미”우수프로평의 금상을 각기 수상했으며 “부모”는 제7회 진달래문예상을, “자전거”는 제22회 한국 KBS서울프라이즈 TV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작사를 세운 주금파씨의 첫 작품은 디지털영화 “사랑은 천하대본”이다. 세쌍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3국 국경도시인 훈춘을 배경으로 고속철도, 맹령사과, 방천, 훈춘입쌀 등 요소들을 등장시켜 짙은 조선족 민족풍정과 민족정감을 펼쳐보이게 된다.한국의 림은경, 조찬형, 로씨야의 타니야 등 배우가 연변의 배우들과 함께 열연을 펼치는 영화는 지난 9월 11일부터 30일까지 촬영을 진행했고 현재 후기제작중이다.
“서른살이 되여 처음 고향마을을 떠나 연변에 오면서 푼푼히 십년이면 드라마작가의 꿈을 이룰수 있을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벌써 20년도 훌쩍 넘었어요. 남들보다 늦게 출발했는데 이토록 시간이 흐르고나니 조급한 마음이 생겼지요.”
주금파씨는 조선족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여 연변을 알리고 조선족을 알리는데 힘을 보탤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