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의 역사와 유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10-08 09:10|본문
씨름의 역사와 유래
우리 나라 전통적인 남자 운동경기의 하나로 한문으로는 각희, 각력, 각저라고 부른다. 넓은 마당에서 허리와 다리에 띠나 삽바를 두른 두 장정이 마주 꿇어 앉아 각기 한 손으로는 다리의 띠를 잡은 다음 심판관의 호령에 의해 동시에 일어나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림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만주 퉁구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대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고려사에 의해 충혜왕은 씨름을 즐겨 동왕 5년 2월과 7월에 이를 관람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이후 경향 각지에서 남자들의 놀이로 단오, 백중날, 한가위, 농한기 등에 행해졌으며 특히 단오절에는 여자들의 그네뛰기와 함께 연중행사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씨름은 남성을위한 체육경기적 민중오락이며 가장 서민적인 남성놀이이다.
또한 우승자에게 황소를 상으로 주는 것이 관례였다.
*삼국시대*
고구려 5부족장들의 고추가시합종목 중 각저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초기에 씨름이 무예의 하나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 주실벽에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당시 씨름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우리 나라 문헌에 씨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고려사”이다. 1330년에 왕이 매일 궁중에서 소동과 씨름을 하였고 1343년에 왕이 용사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친히 구경하고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궐내에서까지 씨름이 행해질 정도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온 씨름은 점차 대중화되었다. “세종실록”권 31에는 1426년 3월 25일과 4월 2일에 사신이 역사들에게 씨름을 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430년 윤 12월 임자조에는 중상총과 양복산이 씨름을 하다가 복산이 죽은 사건이 벌어졌는데 형을 한 등급 감하고 장례비를 감당하도록 명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듬해 3월 병무조에는 임금이 경회루에서 역사 안사의 등에게 씨름을 하게 한 뒤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다고 한다.
“명종실록”에는 1560년 5월조에는 단오에 별감 박천환이 씨름과 관련해 유생들을 때리고 욕한 사건으로 인해 사헌부에서 씨름을 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종실록”1664년 정월에 광주 저자도의 어느 집 종이 같은 동네에 사는 세현과 씨름을 하였는데 진 것을 분하게 여겨 상대를 찔러 죽인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동국세시기”의 단오 대목에도 단오날의 행사로서 씨름이 매우 성행하여 서울을 비롯하여 각 고을마다 크게 벌인다고 했다.
또한 예술작품에도 씨름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정희의 문집 “완당선생전집” 권10에 씨름을 읊은 시가 전한다. 그리고 김홍도의 풍속화첩 가운데 “씨름도”는 당시 씨름판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근대*
1899년 4월 학부가 주최한 한성의 관 사립학교 대운동회에서 학생들의 경기종목으로 씨름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12년 10월에 유각권구락부가 주관한 씨름대회가 단성사에서 열렸다. 1915년에는 광무대에서 주관한 씨름대회가 정월 초사흗날부터 4주일 동안 열렸다. 한편 일본에서 근대화된 체육교육을 받고 귀국한 강낙원, 서상천, 한진희, 강진구 등은 씨름의 근대화를 도모함과 아울러 조선씨름협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으로 여운형을 추대했다. 1927년 9월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1936년 협회 창립 10주년 제1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가 조선일보사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현대*
1946년 3월 조선씨름협회가 조선체육회 산하 경기단체로서 15번재로 정식 가맹했다. 1947년 대한씨름협회로 개칭하고 협회규약 및 경기심판규정을 만들어 운영을 강화했다. 1947년 제2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씨름이 시범종목으로 1948년 제29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82년 4월에 민속씨름위원회가 발족하여 경기를 프로화 하였으나 1983년 9월 대한씨름협회에 통합되었다.
1986년 초 다시 민속씨름위원회가 분리발족되면서 프로와 아마추어로 양분화되었다. 프로씨름은 1990년 9월 사단법인 한국민속씨름협회로 출범하여 1995년 사단법인 한국씨름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0년 현재 대한씨름협회가 주최하고 있는 주요 대회는 전국씨름선수권대회,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 회장기 전국장사씨름대회, 전국시 도대항 장사씨름대회, 서울특별시장기 전국장사씨름대회 등이 있으며 대통령배 전국씨름왕선발대회가 1989년부터, 교보생명배 전국 어린이장사 씨름대회가 1996년부터 충북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가 2000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2011년 현재 국제적인 씨름 축제인"한민족동포씨름대회 및 월드씨름챔피언십”이 22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 나라 전통적인 남자 운동경기의 하나로 한문으로는 각희, 각력, 각저라고 부른다. 넓은 마당에서 허리와 다리에 띠나 삽바를 두른 두 장정이 마주 꿇어 앉아 각기 한 손으로는 다리의 띠를 잡은 다음 심판관의 호령에 의해 동시에 일어나 먼저 상대방을 넘어뜨림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경기이다.
만주 퉁구에 벽화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구려대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또 고려사에 의해 충혜왕은 씨름을 즐겨 동왕 5년 2월과 7월에 이를 관람한 기록이 나타나 있다. 이후 경향 각지에서 남자들의 놀이로 단오, 백중날, 한가위, 농한기 등에 행해졌으며 특히 단오절에는 여자들의 그네뛰기와 함께 연중행사로 성대히 거행되었다. 씨름은 남성을위한 체육경기적 민중오락이며 가장 서민적인 남성놀이이다.
또한 우승자에게 황소를 상으로 주는 것이 관례였다.
*삼국시대*
고구려 5부족장들의 고추가시합종목 중 각저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초기에 씨름이 무예의 하나로 채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4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 주실벽에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당시 씨름이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우리 나라 문헌에 씨름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고려사”이다. 1330년에 왕이 매일 궁중에서 소동과 씨름을 하였고 1343년에 왕이 용사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친히 구경하고 상을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는 궐내에서까지 씨름이 행해질 정도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로 넘어온 씨름은 점차 대중화되었다. “세종실록”권 31에는 1426년 3월 25일과 4월 2일에 사신이 역사들에게 씨름을 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430년 윤 12월 임자조에는 중상총과 양복산이 씨름을 하다가 복산이 죽은 사건이 벌어졌는데 형을 한 등급 감하고 장례비를 감당하도록 명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듬해 3월 병무조에는 임금이 경회루에서 역사 안사의 등에게 씨름을 하게 한 뒤 차등을 두어 상을 주었다고 한다.
“명종실록”에는 1560년 5월조에는 단오에 별감 박천환이 씨름과 관련해 유생들을 때리고 욕한 사건으로 인해 사헌부에서 씨름을 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종실록”1664년 정월에 광주 저자도의 어느 집 종이 같은 동네에 사는 세현과 씨름을 하였는데 진 것을 분하게 여겨 상대를 찔러 죽인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동국세시기”의 단오 대목에도 단오날의 행사로서 씨름이 매우 성행하여 서울을 비롯하여 각 고을마다 크게 벌인다고 했다.
또한 예술작품에도 씨름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김정희의 문집 “완당선생전집” 권10에 씨름을 읊은 시가 전한다. 그리고 김홍도의 풍속화첩 가운데 “씨름도”는 당시 씨름판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다.
*근대*
1899년 4월 학부가 주최한 한성의 관 사립학교 대운동회에서 학생들의 경기종목으로 씨름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12년 10월에 유각권구락부가 주관한 씨름대회가 단성사에서 열렸다. 1915년에는 광무대에서 주관한 씨름대회가 정월 초사흗날부터 4주일 동안 열렸다. 한편 일본에서 근대화된 체육교육을 받고 귀국한 강낙원, 서상천, 한진희, 강진구 등은 씨름의 근대화를 도모함과 아울러 조선씨름협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으로 여운형을 추대했다. 1927년 9월 서울 휘문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1936년 협회 창립 10주년 제1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가 조선일보사 강당에서 개최되었다.
*현대*
1946년 3월 조선씨름협회가 조선체육회 산하 경기단체로서 15번재로 정식 가맹했다. 1947년 대한씨름협회로 개칭하고 협회규약 및 경기심판규정을 만들어 운영을 강화했다. 1947년 제28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씨름이 시범종목으로 1948년 제29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82년 4월에 민속씨름위원회가 발족하여 경기를 프로화 하였으나 1983년 9월 대한씨름협회에 통합되었다.
1986년 초 다시 민속씨름위원회가 분리발족되면서 프로와 아마추어로 양분화되었다. 프로씨름은 1990년 9월 사단법인 한국민속씨름협회로 출범하여 1995년 사단법인 한국씨름연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00년 현재 대한씨름협회가 주최하고 있는 주요 대회는 전국씨름선수권대회,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 회장기 전국장사씨름대회, 전국시 도대항 장사씨름대회, 서울특별시장기 전국장사씨름대회 등이 있으며 대통령배 전국씨름왕선발대회가 1989년부터, 교보생명배 전국 어린이장사 씨름대회가 1996년부터 충북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가 2000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2011년 현재 국제적인 씨름 축제인"한민족동포씨름대회 및 월드씨름챔피언십”이 22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