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간 속의 남북…'같은 민족 다른말' 큰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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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9-17 08:49|본문
다른 시간 속의 남북…'같은 민족 다른말' 큰 불편
“제가 (남한에) 와서 1년 동안은 너무 어지러워서 한국어로 전화를 못 받았어요.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너무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니까 땀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회사에서 주문서를 받는데 한동안 전화를 못 받았어요. 제가 전화를 받으면 못 알아듣거든요.” 한 북한이탈주민의 고백이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도 현기증을 느낄 정도라는 고백에서 남북한의 언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같은 말을 쓰는 하나의 민족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분단 70년의 세월은 이만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분단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 생활을 누리고, 언어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다.
◆왜 달라졌을까
1945년 분단과 함께 남북한의 언어 생활·정책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남한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광복 후 국가 공인 맞춤법으로 사용했다. 이런 틀은 계속 유지돼 수정, 보완을 거치면서 1989년 ‘한글맞춤법’을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1954년 ‘조선어철자법’을 정했다.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을 만들었고, 같은 해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문화어’를 제정했다.
언어정책은 양쪽이 만들고 지향한 사회 체제를 반영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남·북한 언어의 괴리는 커져갔다.
겨레말큰사전 초고. 우리나라 국어학자와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속 국어학자로 구성된 남북 공동편찬위가 힘을 합쳐 뜻풀이와 용례 등을 작성하기 때문에 남과 북의 서로 다른 말 쓰임새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한 북한 소설가 리화, 중국 조선족 작가 리근전 등의 작품이 북측 용례로 소개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북이 공동 편찬 중인 겨레말큰사전의 남측 초고. ‘오징어’라는 단어를 남북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설명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은 언어를 혁명의 수단, 민족의 상징으로 강조했다. “언어가 혁명과 건설의 도구로서 복무하기에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조선의 혁명에 맞는 언어생활”이었다. 문화어에 특유의 이념과 제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많은 이유다. ‘수령’, ‘혁명가정’, ‘공훈리발사’, ‘인민배우’ 등을 들 수 있다. 또 언어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문화어의 제정과 함께 추진된 ‘말다듬기 사업’에서 우리말의 사용을 강조한 것에서 두드러지는 면모다. 북한은 정치용어를 제외하고는 한자어는 한글 고유어로 대체했고, 고유어가 없을 때는 풀이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남한의 언어는 자유롭게 오가는 과정에서 다듬어지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광복 이후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빠르게 증가한 외래어가 대표적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과 만났을 때 의사소통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로 꼽는 것이 ‘지나친 외래어’의 사용일 정도다.
남북한의 학자들이 지난해 7월 중국 선양에서 겨레말큰사전 발간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분단 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북한의 언어 차이는 여러 면에서 커지고 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제공
◆무엇이 달라졌을까
남북한 언어의 차이는 표현의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가령 남한 사람들이 가벼운 인사 정도로 하는 “밥 한 번 먹자”를 북한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식사 연락을 기다린다.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완곡한 거절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 사람들은 사과나 감사, 칭찬의 표현에 인색하다. 명령조의 화법을 많이 쓰는 것도 특징이다. 건국대 전영선 교수는 최근 열린 ‘겨레말 통합을 위한 국제학술회의’ 발표문에서 “북한 체제가 최고 지도자의 언어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당의 명령은 절대성과 무조건성을 갖는다”며 “반론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언어 역시 명령형 중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법의 차이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명령조이고 직설적인 북한의 언어를 두고 남한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 무례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에두른 표현이 발달한 남한의 언어에 대해서 북한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하다, 거짓말쟁이다라고 인식한다.
단어의 차이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의 용어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다. 북한은 ‘조미료’를 ‘맛내기’, ‘원피스’는 ‘달린 옷’이라고 표현한다. ‘색맹’을 ‘색 못 보기’, ‘가로수’를 ‘거리 나무’, ‘브래지어’를 ‘가슴 띠’라고 부른다. 한자, 영어 등의 외래어를 우리말로 풀어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표기 방식의 차이도 적지 않다. ‘올바르게-옳바르게’, ‘역사-력사’, ‘우리나라-우리 나라’ 등을 예로 들 수 있고, 사이시옷의 용법이 차이가 특히 커서 ‘나뭇잎-나무잎’, ‘냇가-내가’, ‘장맛비-장마비’ 등으로 각각 표기한다.
“제가 (남한에) 와서 1년 동안은 너무 어지러워서 한국어로 전화를 못 받았어요.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너무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니까 땀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회사에서 주문서를 받는데 한동안 전화를 못 받았어요. 제가 전화를 받으면 못 알아듣거든요.” 한 북한이탈주민의 고백이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에서도 현기증을 느낄 정도라는 고백에서 남북한의 언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같은 말을 쓰는 하나의 민족임을 자부하고 있지만, 분단 70년의 세월은 이만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분단 이후 각자의 방식으로 언어 생활을 누리고, 언어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다.
◆왜 달라졌을까
1945년 분단과 함께 남북한의 언어 생활·정책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남한은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광복 후 국가 공인 맞춤법으로 사용했다. 이런 틀은 계속 유지돼 수정, 보완을 거치면서 1989년 ‘한글맞춤법’을 만들어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1954년 ‘조선어철자법’을 정했다.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을 만들었고, 같은 해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문화어’를 제정했다.
언어정책은 양쪽이 만들고 지향한 사회 체제를 반영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남·북한 언어의 괴리는 커져갔다.
겨레말큰사전 초고. 우리나라 국어학자와 북한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속 국어학자로 구성된 남북 공동편찬위가 힘을 합쳐 뜻풀이와 용례 등을 작성하기 때문에 남과 북의 서로 다른 말 쓰임새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19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한 북한 소설가 리화, 중국 조선족 작가 리근전 등의 작품이 북측 용례로 소개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남북이 공동 편찬 중인 겨레말큰사전의 남측 초고. ‘오징어’라는 단어를 남북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설명돼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은 언어를 혁명의 수단, 민족의 상징으로 강조했다. “언어가 혁명과 건설의 도구로서 복무하기에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조선의 혁명에 맞는 언어생활”이었다. 문화어에 특유의 이념과 제도를 가리키는 단어가 많은 이유다. ‘수령’, ‘혁명가정’, ‘공훈리발사’, ‘인민배우’ 등을 들 수 있다. 또 언어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간주했다. 문화어의 제정과 함께 추진된 ‘말다듬기 사업’에서 우리말의 사용을 강조한 것에서 두드러지는 면모다. 북한은 정치용어를 제외하고는 한자어는 한글 고유어로 대체했고, 고유어가 없을 때는 풀이말을 사용하도록 했다.
남한의 언어는 자유롭게 오가는 과정에서 다듬어지거나 새로 만들어졌다. 광복 이후 여러 나라와 교류하며 빠르게 증가한 외래어가 대표적이다.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과 만났을 때 의사소통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로 꼽는 것이 ‘지나친 외래어’의 사용일 정도다.
남북한의 학자들이 지난해 7월 중국 선양에서 겨레말큰사전 발간을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분단 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남·북한의 언어 차이는 여러 면에서 커지고 있다.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제공
◆무엇이 달라졌을까
남북한 언어의 차이는 표현의 방식에서 두드러진다. 가령 남한 사람들이 가벼운 인사 정도로 하는 “밥 한 번 먹자”를 북한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식사 연락을 기다린다. “나중에 연락할게”라는 완곡한 거절을 알아듣지 못하고 전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 사람들은 사과나 감사, 칭찬의 표현에 인색하다. 명령조의 화법을 많이 쓰는 것도 특징이다. 건국대 전영선 교수는 최근 열린 ‘겨레말 통합을 위한 국제학술회의’ 발표문에서 “북한 체제가 최고 지도자의 언어에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당의 명령은 절대성과 무조건성을 갖는다”며 “반론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언어 역시 명령형 중심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법의 차이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명령조이고 직설적인 북한의 언어를 두고 남한 사람들은 예의가 없다, 무례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에두른 표현이 발달한 남한의 언어에 대해서 북한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하다, 거짓말쟁이다라고 인식한다.
단어의 차이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일부의 용어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다. 북한은 ‘조미료’를 ‘맛내기’, ‘원피스’는 ‘달린 옷’이라고 표현한다. ‘색맹’을 ‘색 못 보기’, ‘가로수’를 ‘거리 나무’, ‘브래지어’를 ‘가슴 띠’라고 부른다. 한자, 영어 등의 외래어를 우리말로 풀어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표기 방식의 차이도 적지 않다. ‘올바르게-옳바르게’, ‘역사-력사’, ‘우리나라-우리 나라’ 등을 예로 들 수 있고, 사이시옷의 용법이 차이가 특히 커서 ‘나뭇잎-나무잎’, ‘냇가-내가’, ‘장맛비-장마비’ 등으로 각각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