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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님 생각 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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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8-17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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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형님 생각 또 난다 
 8월 5일은 길림대학 제1병원 박운봉교수가 세상을 뜬지 한돐이 되는 날이다. 요즘은 왜선지? 그 형님 생각이 무척 난다.
항상 하얀 와이셔츠를 껴입는 름름한 신사풍모, 준엄한 얼굴표정, 툭툭 내쏘는 연변말투와 익살스러운 롱담은 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내가 제일 처음 박교수를 만났을 때는 1997년도 9월의 어느날 길림대학 제1병원에서였다. 그날 나는 나의 군소속병원 조선족 군의(军医) 의 소개로 소화내과에 가 박교수를 찾아 위병진찰을 받았던것이다.
비록 소개는 받았지만 진찰실문앞에 환자들이 너무 많아 체면때문에 앞으로 감히 다가서지 못하고 번호순서에 따라 대기할수 밖에 없었다.
《저뒤에 선 현역군인! 앞으로 와 진찰받으시오.》갑자기 박교수의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사위를 둘러보니 군복차림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나의 귀를 의심하며 부랴부랴 박교수의 진찰실로 뛰여갔다.
《먼저 위경검사를 받아보시오.》 박교수는 나의 얼굴을 피끗 한번 쳐다보고 처방지에 몇글자 써주고는 다음 환자에게 눈길을 돌리는것이였다.
몇시간후 나는 위경검사결과서를 가지고 다시 박교수를 찾았다.
《위출혈이구만! 소량의 출혈이여서 약치료면 될것이요.》 박교수의 진단에 놀란 나는 입원치료를 청구하였다.
그러자 박교수는 단마디로 나의 말을 중둥무이했다. 《필요 없소! 그런데 치료기간엔 술을 마시면 안되오!》
진찰실을 떠나면서 나는 다시 박교수를 되돌아보았다. 엄숙한 얼굴표정과 개살구처럼 텁텁한 말투, 이것이 박교수가 나에게 준 첫인상이였다.
2002년 봄, 나는 군부대에서 제대한지 2년만에 친구의 소개로 박교수에게 공식 술인사를 올렸다. 이날 박교수는 나를 결의형제중 막둥이로 맞아들였다.
그때에야 나는 박교수가 일찍 일본 도꾜대학 의학부 박사학위를 획득하고 미국 토마스 제프손대학 박사후 공부까지 하였으며 1994년에 교수로 파격진급되여 만성간병, 간경화, 위장도질병, 각종 소화질병을 전문 진단치료하는 의학계에 널리 알려진 저명한 의학전문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박교수는 나와 여덟살이상인 형이다. 비록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같은 화룡사람이고 지식청년생활, 군인복무경력에, 그리고 성격스타일까지 비슷하여 대화소통도 편했다. 또한 지식이 풍부해 존경스러웠다. 그때로부터 10여년간 나는 박형을 교수라 칭하지 않고 그냥 형으로 호칭했었다.
박형은 의술(医术)이 고명해 사회지명도가 높았을뿐만아니라 인품이 좋고 성격특징이 독특해 장춘조선족사회의 그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도 다 어울릴수 있었다. 이리하여 비록 나이때문에 이 동네에 가서는 둘째형으로, 저 동네에 가서는 셋째형으로 지냈었지만 그 어느 동네에 가나 기분을 잘 돋구고 례의와 원칙을 지키는 의견중심이 되였기에 실지 《맛형》노릇을 하다싶이 하였다.
그후 나는 박형을 비롯한 여러 형님들의 소개로 장춘조선족사회의 저명한 교수, 전문가, 기업가 등 사회 지명인사들을 만나게 되면서 스러져가던 민족감정을 되찾을수 있었다.
매번 《형제》모임 때면 술상을 차리기전에 먼저 한돌개는 박형의 건강문진을 받는것이 첫 순서다. 박형은 차근히 여러분들의 병황구술을 듣고 검사결과를 보고 건강주의점을 강조하고는 즉시 령수증 뒤면에 아니면 담배갑 종이쪼박에 처방을 써주군 했다. 박형은 의사여서인지 번마다 술을 마실 때마다 《술을 적당히 마시오.》라는 권고의 말 한마디는 빼놓지 않았다. 그래서 첫두순배는 아주 얌전하게 이어지다가 박형의 유머에 못이겨 기분이 고조를 이루면서 저마다 건강 《권고》를 새까맣게 잊은채 과량할 때도 많았다.
사실 박형도 술을 반가와하는 편이였다. 하지만 그 어느 장소에서나 례의를 지켰고 신분과 자태를 똑바로 했기에 전혀 실수가 없었다.
박형은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제4기 리사회때부터 상무리사였다. 2005년초에 나는 박형의 소개로 진흥총회에 공식 가입되여 5기부터 7기까지 9년간 박형과 함께 총회회장단에서 일해왔다.
진흥총회 제5기 리사회는 박운봉, 남호태 두분이 장춘화우그룹 부총재인 류천문을 회장으로 추천하여 새로운 리사회를 구성하면서부터 새 출발을 했다. 5기 리사회는 최수남, 김증손, 남정, 박운봉, 남호태, 리규광, 김희재, 곽운룡, 김룡규 등 26명의 로중년 성원들로 지도부를 이루었다.
박형은 5기 리사회로부터 7기리사회에 이르기까지 총회의 부리사장직을 맡았고 또 7기 리사회 감사회 주석을 겸하였으며 8기 리사회 고문위원회 부주임직을 맡았다. 그는 총회의 지도부 일원으로서 언제나 총회 단체명예를 중요시하였으며 총회의 중요한 회의에 적극 참가해 많은 조언과 제안을 드려 총회사업결책제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7기 리사회가 곧 만기되는 2012년말이였다. 총회리사회는 8기 리사회 리사장(회장) 립후보자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였다. 어느날 류천문리사장은 리사장 긴급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 전흥수비서장이 사전에 추천받은 몇몇 립후보자명단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갔다. 그중에 신봉철서기의 이름도 들어있었다. 이때 그 누군가 《저, 신서기가 담임하면 좋겠는데?》 하고 말을 꺼냈다.
《신서기면 잘할수 있지! 문제는 재직당위 서기여서 사회직무를 겸임할수 있을가?》, 《신서기 본인이 동의하겠는지?》 비록 이런 의문들이 오갔지만 18명 회의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신봉철서기를 점찍었다.
나 중요한것은 남들의 일방적인 선정보다 본인을 설득하여 동의를 받는것이 관건이였다.
이때 류천문리사장이 박형을 처다보면서 《신서기를 설득할수 있는분은 박형뿐이요!》그러자 박형은 《모두 동의한다면 내가 책임지고 신서기를 설득해보겠소.》하고나서 박형은 회의가 결속되는 그 즉시로 신봉철서기를 찾아 설득사업을 시작했다.
첫 면담에 쉽게 답이 안 나온 모양이다. 그후 박형은 수차례 신서기를 만나 설복과 《압력》을 가해 최종 설득임무를 원만히 완수했다.
비록 총회 몇기의 고문으로 총회상황을 잘 알고 민족간부로서의 깊은 감정과 그 사명감에 신봉철서기가 최종 동의와 결정을 내린것이였겠지만 그 과정에 박형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있었다.
의료하향은 총회 활동종목에서의 유명브랜드다. 5기 리사회때 박형과 남정교수가 개척하고 인솔한 총회 의료팀은 산재지역 조선족 향촌의 농민과 경로원 로인들을 대상으로 10여년간 무료진찰과 의약품지원봉사활동을 해왔다. 박형의 인솔하에 총회 의료팀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또 박형의 설득으로 길림대학 제1병원 의약품 지원금은 2013년의 2만원으로부터 5만원으로 늘어나게 되였다.
올해까지의 통계에 의하면 10년간 총회 의료팀이 하향한 차수는 22차에 달하며 지원약품의 총가치는 24만원에 달한다.
요즘 박형의 제자이고 후배들인 길림대학 제1병원 림승혁, 림광주, 성환길, 박금화, 주명희 등 교수들을 골간으로 한 의료지원봉사팀은 이미 길림대학 제2, 제3병원과 기타 병원의 의료일군까지 참여하여 그 대오가 몇십명으로 늘어났다. 그들은 박형이 남긴 민족정신, 의학도덕, 애심의 기발을 높이 들고 그의 뒤를 이어 산재지역 향촌으로, 경로원으로 륙속 내려가고있다.
2014년 1월 중순, 길림대학 조선족교직원 새해맞이야회에 참가한 나는 김증손교수로부터 박형이 골수이형성증후군병으로 확진되였다는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
청천병력이였다. 나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 이튿날 나는 아침부터 온종일 박형께 전화를 걸었다. 오후에야 전화를 받은 박형은 《요즘은 오전에 치료받고 오후에 집에서 휴식하는데 병문안은 필요 없구 며칠후에 만날수 있으니 그냥 소문만 내지 말았으면 하오.》
유수시 연화향에서 조선족 촌민들을 진찰하고있는 고 박운봉교수
조선족활동이라면 그토록 열정적이던 박형은 1월 17일에 있은 장춘시조선족새해맞이야회에 끝내 참가하지 못했다.
1월 19일 오후, 나는 안해와 함께 박형네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박형의 얼굴은 다소 피곤기가 있었지만 정신상태는 좋은편이였다. 《요즘 치료를 받고나니 진찰수치는 많이 좋아졌소》, 《 어제 동생들과 골수이식을 두고 상의도 해보았소. 모레쯤 올거요.》, 《골수 검사수치만 똑바르면 치료는 문제없소.》 하면서 병상황소개로부터 20년전 일본류학시 혈액전공을 했던 이야기들을 구수하게 엮어내려갔다. 그러나 말을 마치고 난후 그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있었다.
2월 음력설전후로 박형의 병환소문은 온 장춘판에 퍼졌고 가는곳마다 모임장소마다 박형의 이야기가 화제로 되였다.
검사결과 큰녀동생이 골수이식을 하기로 나섰고 박형은 천진, 북경, 한국 세곳 병원을 놓고 보름간 검토하다가 최종 한국성모병원을 선택하였다
헌데 한국성모병원 치료비는 만만치 않아 박형은 또 고민에 빠졌다. 그후 신봉철 등 여러분들의 지원으로 치료비용문제는 한국 출발전 일주일 앞둔 4월 8일 오후에 원만히 해결되였다.
한국 출발 예정일은 4월 16일이였다. 12일에 나는 신봉철회장과 함께 총회명의로 박형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다. 남영전과 김문관도 자리를 같이 했다. 박형은 눈물이 글썽해 말했다. 《신서기 고맙소! 여러분 고맙소! 내 꼭 그 은혜를 갚겠소.》, 《내 우리 정애(박형의 안해) 하고도 말했소! 내 돌아오지 못하면 대신 아들 결혼잔치때 사회의 부조돈을 절대 받지 말라고!》, 《문관형님! 한국 가기전에 내 쓰던 낚시공구세트를 형님께 드리고 가겠소.》 , 《장권아! 내 미안하다.》
나는 박형에게 포도주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형님! 입원치료전에 일련의 난제는 모두 잘 풀렸기에 귀찮은 얘기는 그만하시고 이제 6개월 치료기간에는 술을 못마시니 오늘은 기분 좋게 마시기오! 한국에서 완치하고 돌아오실 그때에 또 환영만찬을 멋지게 차릴게요.》 한자리에 앉은 여러분들도 박형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것을 기원하였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 나는 아침 일찍 안해와 함께 공항으로 갔다. 이때 박형과 형수님 그리고 동생들이 벌써 공항에 와있었다. 그뒤로 남영전, 리충일, 김길남, 최금순, 류천문부부 등도 박형을 바래러 공항에 나왔다. 출발시간이 넉넉하기에 나와 남영전, 리충일 셋이 박형을 밖으로 모시여 담배를 피우면서 잠간 얘기를 나눴다.
형님! 신서기가 오늘 학교에서 당위회의를 소집하기에 공항까지 바래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전달해달라고 했소.《아까전에 전화왔습데! 동생 돌아가서 신봉철에게 고맙다고 다시 한번 전해주오!》박형은 고맙다는 말을 연신 꺼냈다.
그날 박형의 옷차림은 제법 신사차림이였다. 앓는 환자 같지 않았다. 곱게 빗어넘긴 머리칼에 반짝반짝 빛나는 구두, 게다가 새하얀 와이셔츠에 붉은 넥타이까지 맨 양복차림…
이를 본 나의 안해는《 오라버님! 오늘 진짜 멋집니다! 돌아오실 때 내 꼭 큰 꽃바구니를 들고 마중나오겠습니다.》고 롱조로 말을 걸었다.
박형은《꽃바구니는 말구 그냥 꽃 한송이면 된다.》 면서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수속시간이 다가올무렵 나는 《형님! 이제부터 반년은 담배를 못 피우니 한대 더 피우고 들어가오!》 하고 박형께 담배불을 붙여드렸다. 박형은 주머니에서 남은 담배 반갑과 라이타를 나한테 주고는 여러분과 일일이 악수하고 검역입구로 몸을 옮겼다.
검역입구를 나가는 순간 박형은 불현듯 몸을 뒤돌려 배웅하러 나온 여러분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굽혀 경례를 올렸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르 흘러내렸다. 그 순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였다.
4월 26일, 박형은 《한국 성모병원이 조건이 괜찮다. 요즘은 골수공급자인 녀동생의 이식조건 재검사중이다.》고 위챗(微信)으로 소식을 전해왔다.
5월 12일, 박형은 《14일부터 골수이식수술을 하게 된다. 한달간은 무균병실에서 관찰치료를 받으니 련계 못한다.》고 두번째 편지를 보내왔다.
한달후 나는 몇번이나 문자를 보냈지만 답신이 없었다. 그러던 6월 24일 오후, 박형은 《온몸이 통증이 심해 밥 한알도 먹지 못한다.》고 세번째 편지를 보내왔다. 그후 종종 소식이 없어 답답한 끝에 면회하고 귀국한 길림신문사 전임 남영전사장을 통해 박형의 얼굴과 손등 피부상태가 탈상 (脱像)되여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여서 상황이 좀 심각하다는것을 알게 되여 인젠 기적이 나타나기만을 묵묵히 기도할수 밖에 없었다.
8월 6일은 진흥총회 대표단이 목단강으로 기업탐방을 떠나는 날이였다. 오후 4시쯤 목단강시 금약그룹 첫날 방문을 끝마치고 호텔로 이동하는 중 길림대학 제1병원 핵의학실 주임인 림승혁교수가 박형이 5일에 이미 한국에서 사망했으며 8일 오후 3시에 장춘에서 영결식을 갖기로 했다고 알렸다.
신봉철회장은 그 즉시로 나와 유창진비서장을 불러 긴급회의를 소집, 8일의 흑룡강신문사 방문일정을 취소하고 신봉철회장이 추도사를 집필하며 유창진비서장더러 총회 및 사회단체 영결식참여통지와 화환 등 조직준비를 할것을 포치하였다.
8월 8일 오후 3시경, 장춘시 장례식장 서청에서 거행된 고박운봉교수영결식에는 길림성인대 상무위원회 전임 부주임 남상복을 비롯한 지도자들과 길림대학 제1병원 임직원, 성과 시 관련부문의 조선족 현직간부, 진흥총회 등 장춘시조선족 여러 사회단체 회원과 사회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하였다.
영결식은 박형의 마지막 얼굴도 볼수 없이 골회함만 놓고 거행하였다. 다행히 박형의 생전록상화면이 방영되여 사람마다 마지막으로 그의 자애로운 얼굴을 다시 볼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와 웃는 모습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을것이다.》(音容笑貌永存心间)신봉철회장이 비통의 심정을 담아 드린 추도사는 전 장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박형을 떠나보낸후 나는 련며칠 일이 손에 전혀 잡혀지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나의 눈앞에는 박형과 함께 한 마지막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지나가는것 같다.
오장권(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상무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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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섭 “시대본보기발표홀”프로그램 록화 인기글 김춘섭 “시대본보기발표홀”프로그램 록화 20일, 왕청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주임 김춘섭은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시대본보기발표홀(时代楷模发布厅)”프로그램 록화하러 북경으로 향발했다.주당위 상무위원이며 조직부 부장인 곽령계와 해당 책임자들이 연길 조양천공항에 나와 김춘섭을 환송했다.곽령계는 주당위를 대표하여 김춘섭에게 축하의 뜻을 표하고나서 김춘섭은 당원지도간부의 본보기, 리퇴직간부의 본보기, 새세대관심사업의 본보기, 민족간부의 본보기이며 “세가지 엄격, 세가지 실속”…(2015-08-24 09:38:37)
“자손세대들한테 력사적인 유감을 남겨선 안돼” 인기글 “자손세대들한테 력사적인 유감을 남겨선 안돼” 최근 착공을 마친 연길서역, 얼마전까지 뒤자리를 차지했던 “연길서역” 조선말 간판이 새롭게 앞자리를 차지했다. 연길서역뿐만 아니라 훈춘역 조선말간판도 앞자리를 찾았다.13일 그 내막의 주인공인 김영택선생을 찾았다.2015년 7월 10일, “장안순서기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닌 김영택(73세)선생은 자치주 정무쎈터를 찾았다. 곧 개통되는 고속철도역 조한간판 위치가 틀린 사실을 반영하기 위해서였다.그는 고속철역가운데서 “조선족민속관”으로 불리우는 연…(2015-08-24 09:34:39)
양창영 의원 “재외동포 권익향상과 교육지원책 마련되야” 인기글 양창영 의원 “재외동포 권익향상과 교육지원책 마련되야” 국외거주 독립·국가·참전유공자, 지원예산 확보 필요재외동포 교육지원 예산, 현실상황 반영한 적정한 예산반영 돼야 미국의 전문직 비자쿼터 관련법 범정부적 차원에서 나서서 해결해야새누리당 양창영 국회의원(환경노동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은 19일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2014회계연도 결산’에 대한 종합정책질의에서 재외동포들의 권익향상과 교육지원 등에 대해 총리 및 관계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강구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이날…(2015-08-24 09:33:55)
변조선족기업가협회 라선국제상품전시회에 참가 인기글 변조선족기업가협회 라선국제상품전시회에 참가 8월 20일~23일 사흘간 조선 라선경제무역지대 라선전시관에서 개최된 2015라선국제상품전시회에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 소속 회원 1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라선시인민위원회 대외협조국의 초청하에 참가했다.라선국제상품전시회는 2011년부터 시작하여 해마다 개최되는 국제적인 경제행사로서 올해에는 중국,러시아,독일,이딸리아,카나다,미국 등 10개국 200여명의 외국인 경제인들과 조선각지에서 소집된 수백명 기업인들이 참가, 기계설비,전자제품,경공업품,가정용품,교통…(2015-08-24 09:33:04)
임지영, 엘지자베스 콩쿠르 최우수상, 유럽 TV들 방영 인기글 임지영, 엘지자베스 콩쿠르 최우수상, 유럽 TV들 방영 한불통신 2015년 8월 23일) 스무살의 임지영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영예의 최우수상 받았다. 유럽 중계되는 rtbf.be, Arte.tv 방송국에서 인터뷰와 최우수상 연주모습이 방영되었다. 임지영은 Johannes Brahms 곡을 연주했다.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 달 동안 시험이 이어진다. 5월 첫째 주에는 1차 시험, 둘째 주에는 2차 시험이 있었다. 셋째 주에는 12명의 파이널리스트들이 휴대전화도 없이 샤펠(성)에 들어가 결선…(2015-08-24 09:32:15)
[열람중]그 형님 생각 또 난다 인기글 그 형님 생각 또 난다 8월 5일은 길림대학 제1병원 박운봉교수가 세상을 뜬지 한돐이 되는 날이다. 요즘은 왜선지? 그 형님 생각이 무척 난다.항상 하얀 와이셔츠를 껴입는 름름한 신사풍모, 준엄한 얼굴표정, 툭툭 내쏘는 연변말투와 익살스러운 롱담은 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내가 제일 처음 박교수를 만났을 때는 1997년도 9월의 어느날 길림대학 제1병원에서였다. 그날 나는 나의 군소속병원 조선족 군의(军医) 의 소개로 소화내과에 가 박교수를 찾아 위병진찰을 받았던것이다.…(2015-08-17 08:52:14)
우린 언제야 당당하게 동포대접 받나? 인기글 우린 언제야 당당하게 동포대접 받나? -"8.15" 70주년 소감"이제 며칠이면 "8.15"기념 70주년이 된다. 2005년에 '8.15' 60주년을 맞아 중국내 조선족사회의 1,300여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한국 국회에 내고 기타 나라의 동포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외국인이 아닌 동포로 대접해달라는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한지도 10년이 된다. 검토해서 답장을 준다고 하고나서 10년이 넘도록 가타부타 말이 없으니 어인 영문인지 모르겠다." 전 료녕성민위 문교처 처장 박경옥로인이 일전에 고령으로 병환으…(2015-08-17 08:48:22)
"문무를 겸비한 참된 인간이 되겠다" 인기글 "문무를 겸비한 참된 인간이 되겠다" 지난해 5월 김동광 학생(뒷줄 오른쪽 첫 번째)이 논문 답변에 통과된 후 현재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여학생들과 함께 박승권 석사 지도교수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남겼다.다민족대학교에서 문무(文武)를 겸비한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뛰는 조선족 젊은이가 있다.주인공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자리한 중앙민족대학교 평생교육학원의 박승권(44) 원장이다.1992년 7월 중앙민족대학교 조선언어문학부를 졸업한데 이어 1995년 7월 민족학 석사학위를 따낸 박…(2015-08-17 08:47:43)
(항전승리70주년)"예술극장"에서 일어났던 80년전의 탈옥사… 인기글 (항전승리70주년)"예술극장"에서 일어났던 80년전의 탈옥사건 (연길 도심 남쪽에 위치한 연변예술극장, 80여년전 이곳에 연길감옥이 있었다.)2013년 5월, 연길 도심 남쪽에 위치한 연변예술극장(延邊藝術劇場) 주변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낡은 집 개조공사를 벌이던 현장에서 불현듯 녹이 뻘겋게 쓴 족쇄가 발견된 것이다. 주변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섬뜩한 물건은 대뜸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중공 연길시위 당사연구실 주연휘(周延煇) 연구원은 그때 가슴이 널장 뛰듯 쿵쿵 하던 느낌을…(2015-08-17 08:46:01)
중국 동북에서 뒤늦게야 밝혀진 반일독립운동가 윤낙세 인기글 중국 동북에서 뒤늦게야 밝혀진 반일독립운동가 윤낙세 독립운동가 윤낙세에 대한 고찰윤낙세(1877 ~ 1929)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1910년대와 20년대에 간도와 러시아를 무대로 반일투쟁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대 초에는 권업회, 기독교우회 등 단체를 통해 군자금 모집 및 반일선전활동을 하였고 10년대 말에는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신민단에서 연락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경신년대토벌’이후에는 러시아 수이푼(秋豊)일대에서 한족공산당 위생부장, 고려혁명군 외교부장에 선임되…(2015-08-17 08: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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