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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한국 경영계 거목 쓰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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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0-10-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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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영계 거목 쓰러지다 


 

리건희 삼성 회장 별세 

 

향년 78세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리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고인은 2014년 5월10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을 일으켜 자택근처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페소생술(CPR)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됐으며 다음 날인 11일 새벽,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스텐트(stent) 시술을 받았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뇌와 장기의 조직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저체온치료를 받고 진정치료를 계속하다 심페기능이 정상을 되찾으면서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입원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했다.  

 

 심장기능을 포함한 신체기능은 정상을 회복해 입원 6개월 무렵부터 안정적인 상태로 하루 15∼19시간 깨여있으면서 휠체어 운동을 포함한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6년 5개월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리병철 회장의 아들인 리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경영 승계 이후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리회장은 삼성 경영 이후 반도체와 스마트폰, 바이오 등 신사업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은 리회장이 자리를 물려받기 전에도 국내 최고 기업이였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일류에 들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리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품질 중시 경영'으로 대표되는 신경영,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궜다. 

  리회장이 경영을 맡은 27년의 기간 동안 삼성그룹의 매출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리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리부진 호텔신라 사장, 리서현 삼성복지재단 리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 리건희가 남긴 말들  

 

 25일 별세한 삼성그룹 리건희 회장은 삼성 직원들은 물론 한국사회를 향해 여러 말을 남겼다. 리회장이 남긴 말을 정리했다.  

 

 ◆"출근부 찍지 마라. 없애라. 집이든 어디에서든 생각만 있으면 된다. 6개월 밤을 새워서 일하다가 6개월 놀아도 좋다. 논다고 평가하면 안된다.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경영자는 또한 적어도 4, 5년후의 일에 대해서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1994년 6월 집무실에서)  

 

◆"우리 나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1995년 베이징 특파원 오찬에서) 

 

◆"휴대폰 품질에 신경을 쓰십시오. 고객이 두렵지 않습니까? 반드시 한명당 한대의 무선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1995년 애니콜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경영자는 알아야(知) 하고 행동해야(行) 하며 시킬(用)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訓) 수 있어야 하며 사람과 일을 평가할(評) 줄도 아는 종합예술가로서의 실력을 갖춰야 한다."(1995년 5월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미래 국제포럼에서) 

 

 

◆"200~300년 전에는 10만~20만명이 군주와 왕족을 먹여살렸지만 21세기는 한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살린다."(2002년 6월 ‘인재 전략 삼성 사장단 워크숍’에서) 

 

 리건희 삼성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2003년 10월 10일 오후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 전시관에서 황창규 메모리사업부 사장 맨(오른쪽)으로부터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차세대 메모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우리 나라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2007년 전경련 회장단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2010년 3월 24일 경영에 복귀하면서)  

 

 ◆"기회를 놓치고 나서 ‘우리가 이제부터는 잘해서 만회하겠습니다’는 소용없다. 아무리 잘해서 만회가 되더라도 그건 당연한 것이지. 만회가 아니라 기회 손실이다."(2010년 3월 24일 경영에 복귀하면서)  

 

“불량은 암입니다” 세계 초일류의 길 ‘리건희 신드롬’  

 

 리건희 회장은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자대로 보면 사업가보다는 과학자나 예술가에 어울리는 기질이였다.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보다 혼자 몰입하길 좋아했다. 세상은 그를 ‘은둔의 경영인’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한 시각과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에 대해선 의견이 없다. 기업인으로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진정한 세계 1위 기업을 실현해 냈다는 점이다. 

 

● 몰입의 경영인 

  어린 시절 리건희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사업가 리병철의 삼남으로 태여났다. 집안의 사업이 바쁘다는 리유로 젖을 떼자마자 경남 의령의 친가로 보내졌다. 할머니가 어머니인 줄 알고 자라다 3세가 돼서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곧이어 터진 전쟁과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마산, 대구, 부산으로 5번이나 학교를 옮겼다. 5학년이 되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으로 류학을 떠난다. 아홉살 많은 둘째 형(리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과 함께 하숙을 하면서 혼자 몰입하는 습관이 생겼다. 3년 동안 영화 1300여편을 봤다. 그는 주인공의 립장에서, 조연과 감독의 립장에서 영화를 여러번 반복해 보면서 경영에 필요한 ‘립체적 사고를 키웠다’고 술회한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류학 중엔 1년반 동안 차를 여섯번 바꿨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어 죄다 뜯어봐야 했다. 전자제품도 수없이 가져다 분해했다. 이런 습관은 경영자가 된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 1등 기업의 제품을 분해하고 삼성 제품과 비교하는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1990년대부터 매년 열었다. 이런 채찍질은 삼성을 세계 최고의 기업 반열에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 인내 뒤에 얻은 승리                                                              리회장은 오래 참았다. 리병철 창업주는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한 그가 1966년 미국 류학에서 돌아오자 “골치 아픈 건 니가 할 것 뭐 있노”라며 동양방송을 맡긴다. 하지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인한 시련을 겪고 전자사업에 진출하면서 리병철의 생각은 바뀌였다. 잠시 그룹 총수를 맡겼던 장남 맹희씨를 못 미더워했다. 둘째 창희씨는 삼성의 비리를 청와대에 밀고했다는 리유로 이미 눈 밖에 나 있었다. 

 

1976년 34세의 리회장이 후계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리건희시대’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1987년 리병철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고 회장에 추대된 뒤로도 곧바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회사 대신 승지원에 은둔하는 그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정서가 강했다. 온갖 루머가 흔들어댔다. 

 

1993년 비로소 칼을 뽑았다. 미국의 한 가전매장에서 구석에 처박힌 삼성전자제품을 발견한 것이 발단이였다. 미국, 일본으로 경영진을 불러 질타했다. 불량부품을 칼로 깎아 대충 조립하는 영상 등 회사의 민낯을 끄집어냈다. 리회장은 전자사업의 성공으로 국내 재계 1위에 올라서며 자만에 빠진 경영진을 야멸차게 몰아붙였다. 

 

그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경영진을 모아 놓고 연 회의, 이른바 프랑크푸르트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불량은 암입니다. 량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질 위주로 갑니다.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꿔야 살아남습니다.” 

 

이 말은 한국 사회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오전 7시에 출근하고 오후 4시에 퇴근하는 ‘7·4제’를 시행했고 수억원 어치의 제품을 모두 태워버리는 불량제품 화형식을 열었다. 언론은 삼성의 개혁을 련일 뉴스로 다뤘다. ‘리건희 신드롬’이 불었다. 

 

● 세계 초일류의 길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1993년), 플래시 메모리 세계 1위(2003년), TV 세계 1위(2006년), 스마트폰 세계 1위(2012년)…. 리회장이 삼성그룹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화려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야심차게 진출한 자동차사업에선 1년여 만에 4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냈다. 그 즈음 로태우정권 정치자금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1999년 페 림프암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건강도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견제와 감시도 심해졌다. 2008년엔 차명계좌와 수천억원대의 세금포탈혐의가 적발되면서 아들 리재용 부회장(당시 사장)과 함께 퇴진하는 수모를 겪었다.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삼성의 치밀한 정관계로비가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 

 

어려움을 겪었지만 2010년 경영에 복귀한 리회장은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인텔, 모토로라, 노키아, 애플 등 세계 최고의 기업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른 삼성을 “아직 멀었다”며 다그쳤다. 

 

눈에 띄게 약해진 몸 때문에 부축 없이 걷기 힘들었다. 지난해엔 7개월을 해외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자는 ‘마하경영’을 삼성에 주문했다.  

 

몰입하는 경영자, 인내로 쟁취하는 경영자 리건희 회장. 그는 평생을 추구했던 초일류의 목표를 여전히 숙제로 남긴 채 력사에 이름을 새겼다.

 

 "한 손 묶고 24시간 살아봐라, 이겨내라, 난 해봤다"  

 

 "건희는 말도 잘  안 하고 정말 떡두꺼비 같았는데 알고 보니 건희가 먼저 붙자고 한 싸움이었어. 

 

 

내가 량쪽 가방을 들고 심판을 봤지.  근데 막상 붙으니까 건희가 힘이 좋았어." (고 홍사덕 전 의원) 

 

리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일생 

 

리건희 회장과 동기인 서울사대부고 13회 졸업생들 누구나 기억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리회장이 고교 2학년때 학교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요즘으로 치면 ‘일진’과 맞짱을 뜬 사건이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도서관 뒤에서 벌어진 싸움은 무승부로 끝났다. 이 싸움의 심판을 봤다는 홍사덕(지난 6월 별세) 전 새누리당 의원은 생전 중앙일보에 이 일화를 털어놓으며 "리회장이 말수는 적었지만 승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 '싸움닭'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리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대부고 시절 싸움꾼과 붙어 눈썹 찢어지기도  

 

 리회장이 거친 레슬링에 빠져든 건 일본 류학 시절이다. 그는 일본에서 한국계 프로레슬러인 력도산을 직접 찾아갈 만큼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리회장은 1989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프로레슬링에 관심을 갖게 돼서 2년 가까이 레슬링을 했는데 련습 중에 부딪혀서 왼쪽 눈썹 부근이 찢어진 적이 있다. 이런 일은 레슬링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지만 어머니가 그걸 보시더니 깜짝 놀라 교장한테 찾아가 빼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다음 날 레슬링부에서 쫓겨났다”고 말했다.                             

리회장이 레슬링 선수로 활약한 경험은 경영철학에도 스며들었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어떤 승리에도 결코 우연이 없다는 사실”이라며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난 선수라도 노력 없이 승리할 수 없으며 모든 승리는 오랜 세월 선수ㆍ코치ㆍ감독이 삼위일체가 돼 묵묵히 흘린 땀방울의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리부회장은 서울사대부고 시절인 1959년 전국레슬링대회에 웰터급으로 출전해 입상하기도 했다

            
                          부친 이병철과  이건희      

                                                               

 리회장은 1942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하지만 당시 삼성상회 경영에 바쁜 호암 리병철 선대 회장의 고향인 경남 의령으로 보내져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 리회장이 호암을 만나는 건 1년에 한두 차례에 불과했다. 주변 이웃들은 리회장을 돌보던 할머니를 어머니로 오인할 정도였다. 리회장은 여섯살이 돼서야 온 가족이 서울 혜화동에 모여살게 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온 가족은 또다시 흩어졌다. 

 

리회장은 부산사범초등학교를 다니던 5학년 때 부친의 권유로 일본 류학길에 오른다. 하지만 식민지 출신의 어린 소년이 일본에서 또래들과 친분을 쌓기는 쉽지 않았다. 리회장은 유년시절 이처럼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학창시절 눈에 띄지 않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리회장은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수준의 지식과 론리를 쏟아내 또래를 당황스럽게 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리회장이 몰입과 고독과 사색 속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는 경영은 유년시절부터의 습관이였던 셈이다. 

 

 리건희 회장은 취임 5주년째인 1993년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2류 근성을 뿌리째 뽑아내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회장은 이를 위해 "자식과 마누라 빼고 모두 바꿔보자"고 일갈했고 삼성은 이후 량 위주에서 질을 앞세운 신경영에 나섰다.  

 

  #승부사 기질로 호암의 후계자 락점 받아    

 

1977년 8월 한국 재계는 호암의 삼성의 후계구상으로 술렁였다. 리병철 선대 회장은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리건희 당시 중앙일보·동양방송 리사를 후계자로 점찍었다. 삼성그룹의 승계가 공식 언급된 건 이때가 처음이다. 이 선대 회장은 당시 “삼성이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면 우에서부터 순서를 따져 장남이 맡으면 되겠지만 삼성그룹 정도의 규모가 되면 역시 경영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장남 (리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성격상 기업경영이 맞지 않기 때문에 기업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한다. 차남(리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은 중소기업 정도의 사고방식밖에 없기 때문에 삼성그룹을 맡길 수 없다. 그래서 아들 셋 가운데 막내(리건희 회장)를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호암은 자서전인「호암자전」에서 "장남은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 가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차남인 창희씨에 대해서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 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크기의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는 본인의 희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리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미디어계렬사를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류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는 그룹차원의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미디어계렬사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였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은둔의 경영자(The Hermit King)  

 

리회장이 취임한 지 10년째인 2003년 11월 24일 자 뉴스위크는 당시 리회장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은둔의 제왕이란 제목을 달았다. 공식석상에 잘 나타나지도 않고 공직을 탐하지도 않고 유력 정치인과 어울리지도 않으면서 공격적으로 삼성을 이끄는 리회장에게 붙인 제목이었다. 리회장은 당시 이 제목에 걸맞게 뉴스위크의 인터뷰요청도 거절했다. 실제로  몇날 몇주 동안 심지어는 몇개월 동안 자신의 집무실인 한남동 승지원에 칩거하며 몰입과 사색을 통해 어떤 문제나 화두에 대한 해답을 찾곤 했다.  

 

리회장이 승지원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는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그는 1993년 삼성의 2류 근성 척결을 외친 신경영 선언 다음 달 사장단을 오사카로 불렀다. "한손을 묶고 24시간 살아봐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극복해보라. 나는 해봤다. 이것이 습관이 되고 쾌감을 느끼고 승리감을 얻게 되면 그때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삼성의 사장단은 신경영 선언 직후 또다시 은둔에 들어간 리회장의 이 말을 듣고 삼성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한 리회장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리회장은 또 소니나 데논의 DVD 플레이어 수십개를 밤새워 분해하며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특정분야를 끊임없이 파고든 거로 유명하다. 그는 또 취미인 애견·승마·자동차 등에서도 전문가급 식견을 보였다. 리회장은 또 궁금한 게 있으면 전문가를 찾아 의문이 풀릴 때까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리부회장은 평소 사장단회의에서도 말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특정사안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 상대의 밑천이 드러날 때까지 묻고 또 물었다. 아침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오디오ㆍ자동차ㆍ애견 등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있었던 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감상도 리회장의 취미 중 하나였다. 리회장은 주인공이 아닌 조연 립장에서 때로는 감독ㆍ카메라맨의 시각에서 영화를 바라봤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집「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영화를 여러 각도에서 보면 작은 세계를 만나게 된다…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지면 립체적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틀’이 만들어진다…일할 때도 새로운 차원에 눈을 뜨게 된다”고 설명했다. 

  

#46세 회장 취임하며 내건 '초일류 기업'의 꿈 이뤄         

                                                                                          1987년 46세의 나이에 회장에 취임할 당시부터 '초일류기업'을 꿈꿨다. 그는 2014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이 꿈을 향해 질주했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업을 밀고 나가는 집념이나 추진력은 주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은 선대 회장의 추진력에 더해 정밀한 지식과 글로벌 시각을 갖췄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삼성이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첫발을 내디딘 반도체에 대한 투자결정과정이 대표적이다. 삼성 안에서 반도체 진출을 처음 꺼낸 게 리회장이다. 호암마저 위험이 크다며 결정을 미루자 리회장은 사비를 털어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특히 리회장은 전자·반도체 분야에서는 엔지니어 수준의 전문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87년 7월 당시 리병철 삼성 회장이 리건희 부회장과 함께 삼성종합기술원을 방문해 첨단 기술 개발현황 등을 둘러보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전세계 반도체 업계는 기술적 난관에 부닥쳤다. 4M D램의 엄청나게 늘어난 용량을 담을 수 있는 칩 설계 기술을 놓고 고민에 휩싸였다.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은 그때까지 칩을 아래로 파고들어가는 스택(stack) 방식을 고수했지만 리회장은 집적도가 높아질수록 우로 쌓는 게 유리할 것이라며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후 삼성은 트렌치방식을 기반으로 64M D램은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반도체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리회장은 이후 삼성을 반도체를 시작으로 휴대폰과 TV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려놨다.

 리회장은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는 리건희식 경영스타일을 앞세워 삼성은 **33년 전 꿈꿨던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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