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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국적회복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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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11-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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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국적회복운동'이 진행된 지 10주기를 맞는 해이다. 우연히 옛 글을 정리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인간은 서로 오해하면서 사는 것 같다. 이 글을 보면서 그 동안 많은 오해를 받았던 ‘국적회복운동’의 진실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경석목사의 ‘국적회복운동’이 제기된 것은 2002년 9월의 일이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50주년경축행사에 초청된 서경석목사는 기분이 마냥 좋았다. 그런데 그 번 연변을 방문하고 돌아온 서경석목사가 국적회복문제를 들고 나왔다. 말하자면 지난날 자기와 역경을 함께 한 교인들을 그런 곳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한족들의 동화정책으로 조선족사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선족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줘야 한다.” 국적을 준다고 해야만 중국정부가 조선족을 감히 어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경석목사의 또 다른 이유는 비행기에서 한 조선족노인을 만났는데 상해임시정부에 세금을 낸 조선족들이 상해임시정부의 혈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으로부터 동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따끔한 일침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중국현지 방문 때 조선족간부들이 서경석목사의 주위에 울타리를 쳐놓아 현장조사를 원활히 이루지 못한 것 때문이었다. 앞서 ‘재외동포법’개정문제로 국회의원들과 함께 조사차 중국에 갔다가 그런 울타리에 막힌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운동가로써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 교회신문에 연길시 관광국장이 서경석목사한테 감사패를 전달하는 사진 한 장이 올랐다. 냉소하는 서경석목사의 모습이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때 같은 조선족으로써 조선족들이 너무나 융통성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싶다. 좀 더 인간적으로 서경석목사한테 접근하고 사정이 있으면 솔직히 양해를 구할 수도 있었다. 

한국에 간 조선족들의 원성을 들어주고 해결책으로 고심하는 한국의 시민운동가한테 속 다르고 겉 다르고 경계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서경석목사의 머릿속에서 ‘국적회복운동’이 그처럼 세차게 타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서경석목사는 ‘국적회복운동’은 비록 하루 이틀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 봐야 불쌍하고 돌아와 봐도 불쌍한 조선족”들의 실태를 보고 내린 비장한 결심이란다. 

그날 예배당에서 서경석목사는 “조선족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줘야 한다.”는 제목으로 열띤 연설을 하였다. 조선족들은 너무도 감동되어 눈물이 글썽한 채 “목사님- ”하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나의 가슴도 찡 저려났다. 물론 그들이 필요로 하고 소원하는 것은 한국국적보다는 한국국민으로부터 거지취급을 받지 않고 해외동포대접을 받으면서 일거리가 많고 보수가 웬만한 고국에서 돈을 벌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 길은 머나먼 길이다.” 서경석목사는 조선족들이 2001년 명동성당 앞에서 '무차별 조선족추방반대운동'과 조선족여성들이 시집올 때 반인륜적인 '자녀포기각서'를 쓰고 오는 것을 반대해 거꾸로 매달린 채 항의하고 단식할 때 한국사회에서의 지위가 오늘처럼 향상될 줄 알았느냐며 길은 멀지만 차근차근풀어나간다면 민주주의 한국에서는 안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년 교회는 “조선족이 원하면 한국국적을 줘야 한다.”는 아이템을 가지고 일하겠다고 선포했다.  

2003년 10월 초의 어느 날 교회 측으로부터 교회신문 편집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통지가 왔다. 당시 나는 교회신문을 한국에서 조선족의 대변지로 만들어 보려는 야망으로 글 쓰는 조선족들로 ‘신문좌담회모임’을 내오고 정보를 교류하고 신문에 기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회의는 광화문 서경석목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회의가 시작되자 서경석목사는 웃으면서 나한테 다가와 물었다.

“여선생, 조선족들이 한국국적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좋아하지요.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던 일이라 실감나지는 않아 하겠지만.”

나는 편집회의에서 서경석목사가 무슨 의도로 엉뚱한 말을 물어 오는 지도 모르고 개의치 않고 대답했다. 결국 나의 대답은 회의참석자들에게 ‘국적회복운동’의 가능성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그때야 나는 신문편집회의는 ‘국적회복운동’기간 신문의 개편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서경석목사는 흑판에 ‘국적회복운동’의 일정을 하나하나 밝히면서 좌중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었다. 결국 주 1회 교회신문 호외를 발행하기로 하고 상세한 내용과 지면을 토론 결정하였다. 회의는 마치 싸움전의 작전회의를 방불케 했다. 서경석목사는 나를 보면서 조선족들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겠다고 한다. 곁에서 듣고 있던 신문사 안사장이 한술 더 뜨고 나왔다. 날더러 내일부터 신문사로 출근하라고 것이다. 

‘국적회복운동’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하는 운동이지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것이 뻔했다. 특히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재한조선족노무자들을 걱정해 본적은 없지만 입에 거품을 물것임이 틀림없다. 이는 한국에 사는 조선족들과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의 이익의 충돌로 갈등이 예상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이번 운동과 무관한 사람이다. 이번 운동은 재입국이 불가한 한국체류 4년 이상 조선족들에게 주사위를 던지는 운동이었다. 나는 체류기간이 아직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재입국도 가능한데 구태여 총대를 메고 진두에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역대 최대의 조선족이 동원되는 운동을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한 발 물러서서 사건의 진전을 예의 주시하기로 입장을 굳혔다. 

그날 나는 다음날 신문사사무실에서 보자는 안사장에게 생각해 본다고 얼버무리고는 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3,

며칠 뒤 교회로부터 ‘재외동포문제간담회’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이번 운동과 무관하게 조선족관련행사나 사건사고가 있으면 특별한 이유가 아니고는 모두 참여한다. 그것은 내가 교회신문을 재한조선족의 대변지로 만들어보려는 욕망과 작가로써 한국에서 조선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목격한 기록자로 남고 싶은 욕심에서다.   

회의는 김해성목사의 ‘중국동포의 집’사무실에서 열렸다. 김해성목사는 제일 처음 조선족을 비롯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민 목사로써 조선족교회의 서경석목사와 나란히 조선족들의 구성(救星)으로 존경을 받는 분이다. 좀 뒤에 홍제동에 ‘조선족복지선교센터’를 세운 임광빈목사도 조선족들을 노무현전대통령과 만나게 하는 등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날 ‘중국동포의 집’회의실에서 진행한 ‘재외동포문제간담회’는 그들 3명 목사의 열띤 공방으로 이어졌다. 회의시간이 가까워오자 회의를 제의한 조선족교회 교직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이어 김해성목사가 나타나고 임광빈목사가 나타났다. 그때 김해성목사와 임광빈목사는 ‘재외동포법개정운동’으로 손발을 맞춰가고 있을 때였다.  

서경석목사는 워낙 일정이 빠듯한 분이어서 맨 나중에 나타났다. 발의자인 조선족교회가 ‘국적회복운동’시간표가 적힌 전단지를 좌중에 나눠주면서 동조를 요청했다. ‘재외동포법개정운동’을 시작한 김해성목사와 임광빈목사로써는 이 시점에서 한국정부와 국민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나아가서 중국정부의 촉각을 건드리는 ‘국적회복운동’을 지지할리 만무했다. 오히려 들어내 놓고 서경석목사의 ‘국적회복운동’을 비난하고 나섰다.  

결국 회의는 ‘국적회복운동’과 ‘재외동포법개정운동’을 놓고 서로 공방을 벌이는 회의로 되었다. 3명의 목사 뒤로는 각 교회의 교직자들이 자기 담당목사의 입장을 지지하는 식으로 3개 교회 2개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다.   

이때 김해성목사가 서경석목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런 운동을 하려 해요?"   

서경석목사는 잠간 긴장감을 보이면서 "노 집사들의 처지가 딱해서……." 라고 대답한다.   

솔직히 ‘국적회복운동’과 ‘재외동포법개정운동’은 모두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의 입지를 개선하는 운동이었다. ‘재외동포법개정운동’은 현존 ‘재외동포의 지위와 법률에 관한 법’을 중국동포에게도 적용함으로써 조선족의 출입국을 원활하게 하자는 운동이었다. 이는 미국 등 잘 사는 나라의 동포만 동포고 중국과 구소련 등 못 사는 나라의 동포는 동포가 아니냐고 반발하는 조선족의 심중을 대변하는 운동이었다.   

‘국적회복운동’의 실질도 조선족의 출입국을 원활히 하자는 목적이다. 물론 중국국적의 조선족을 놓고 국적법을 논하여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중국정부의 촉각을 건드리는  운동이지만 솔직히 누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조선족의 2중국적을 부인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조선족의 기반을 닦기 위해 사타구니에 감춘 꼬리를 내 보였다고 보면 잘 이해되겠다. 물론 그 꼬리를 웬만해서는 들어내지 않는 것이 좋고 아예 들어내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손 놓고 보고만 있는 판국인데 이럴 때 써먹지 않으면 또 언제 써먹겠는가.  

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번 계산을 해봐도 이건 대박이다. 당장 반수에 가까운 조선족들이 자진귀향 또는 강제퇴거로 고향에 돌아가면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손실은 천문학적 수자라고 볼 수 있다. 마침 한국의 시민운동가가 한국식으로 생각하고 한국정부를 상대로 그 꼬리를 빌어 재한조선족들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껐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잘된 일이라고 평가 받을 만 하다. 물론 한국인의 한계를 들어낸 운동인 것만은 사실이다.


     
▲ 삭발하는 서경석 목사 
 4,

며칠 뒤 교회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주일날 예배 뒤에 서울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이번 합법화조치에서 배제된 4년 이상 조선족, 즉 '국적회복운동'참여대상자들을 구제해 달라고 법무부에 호소하는 집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교회에 가보니 예배시간이 되자 온통 싸움에 관련된 찬송가만 골라 부르고 있었다. 예수님도 옛날에 싸움꾼이었는데 신자들이 싸운다고 지옥으로 보낼 일도 아니다. 인젠 운동에 익숙한 교회다보니 교인들도 묵묵히 잘 따라 준다. ‘국적회복운동’에 동원된 한국체류 4년 이상자들이 많이 몰려 예배당은 온통 낯 설은 조선족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기대에 찬 목소리로 격조높이 “아멘-”을 부르고 있었다. 지금 그들한테 굳이 예수가 누군지 알 필요가 없다. 과거 성탄절에 교회로 가면 산타 할아버지가 사탕을 나눠준다는 것이 그들이 아는 전부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조선족교회로 가면 서경석목사로부터 한국체류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이 아는 전부의 상식으로 통했다. 

당장 강제추방을 맞게 된 조선족들의 입장에서는 승패가 반반이라고 해도 한번 해볼 만한 게임이었다. 낯선 게임이지만 이건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시민운동가가 내놓은 게임이니 무조건 따르면 된다. 주사위를 던졌으니 이제 바야흐로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한국정부를 상대로 하는 도박이었다. 교회는 도박꾼이 이외로 많아지자 다급히 “꼭 된다는 보증은 없다. 두 손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해석하고 나섰다.  

지하철 양청구청 역에서 출구로 빠져나오니 출구 앞에 숱한 동포들이 몰려서서 교회 측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한국인들 같으면 호들갑을 부리며 진작 흩어졌으련만 시련만 남은 조선족‘3D’들에게는 그 비가 자욱한 안개 정도로 느껴졌을 뿐이다.   

교회의 이스타나 봉고차는 썩 뒤에야 전철역입구에 나타났다. 서울출입국사무소까지 1킬로 거리다. 봉고차 뒤로는 행색이 남루한 조선족들이 후줄근히 젖은 채 고개를 축 떨어뜨리고 수걱수걱 따라가고 있었다. 마치 옛날 시골에서 운구차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비를 맞으면서도 시체를 원망할 수 없어 체념하고 묵묵히 따라가는 모습을 방불케 했다.  

서울출입국사무소 앞에서 서경석목사의 열띤 목소리가 폭풍우를 몰아오는 천둥번개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늘 인마가 부족해서 제대로 진을 쳐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서경석목사는 간만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부진 체구에 힘 있게 내 두르는 팔뚝만 보아도 대뜸 서경석목사의 파워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저녁뉴스에서 방송3사가 동시에 과천법무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조선족들의 모습을 보도했다. 한국인의 ‘손에 든 뜨거운 감자(당시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칭하는 유행어)’가 또다시 열을 발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감히 동포를 ‘재외동포법’에서 제외시켰으니 인젠 “우리 똑 같아지자.”며 한 판 붙어볼 기세였다.결국 법무부로부터 불법체류자여서 ‘국적회복청구서’를 기각당하고 말았다.  

국적회복을 원하는 사람들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할아버지나라, 아버지나라에서 노동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결국 일제식민지시절에 지금의 한국인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중국에 가는 자들에게 “중국에 가면 돌아오지 못할 줄을 알아라.”하고 으름장을 놓은 경우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1948년 한국정부가 수립되기 전에 돌아온 자들에 한해서는 ‘고향에 돌아와 살 수 있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주지만 그 뒤에 돌아오려는 자는 딴나라인간취급을 받는다는 말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일제치하 일본인 밑에서 버텨 낼만했던 자들과 일본인과 사개를 맞추며 살만했던 자들은 한국국민이 된 반면에 일제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조국을 찾겠다고 떠난 자와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살길을 찾아 떠난 자들과 그 후손들의 귀향길만 막힌 경우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상해임시정부도 도쿄나 오사카에 있어야 그들의 윤리에 맞다.

‘국적회복운동’은 조선족발전사에 기재할만한 변고이다. 모든 사물은 인과적 관계가 있듯이 ‘국적회복청구서’가 허위로 쓰인 것이 아니다. 조선족은 조선의 후예로써 한반도인이다. 애초에 중국에서 조선족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때에도 중국과 한반도의 혁명에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 실제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과 조선을 넘나들면서 때론 조선인으로 때론 중국조선족으로 살았다. 이는 명백한 2중국적자임을 말해준다. 또 조선족은 비록 중국국적자이지만 종래로 한반도의 국적을 포기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음날은 불법체류합법화조치의 마지막 날인 10월 14일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안국동에 있는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재판소 앞 큰길은 벌써 경찰들로 봉쇄되고 국적회복운동에 동원된 조선족들이 재판소 앞에 쭈크리고 앉아 있었다. 어림잡아도 2천명은 잘 되었다. 

서경석목사는 공중을 향해 국적회복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었고 송공명처럼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정대화‘국적회복운동’담당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었는데 정대화변호사의 답변에는 많은 새로운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날 그 일로 서경석목사와 정대화변호사의 ‘국적회복운동’에 대해 다시 좋은 시각을 가졌다. 한국정부와 국민으로부터 동포로 인정받지 못한 조선족들에게 많은 새로운 이론적 근거를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두터운 서류더미를 안은 농성자 대표들이 서경석목사의 뒤를 따라 헌법재판소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뒤를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과연 ‘역사에 기재될 사변’으로 남기를 바랐다. 그렇게라도 한국정부로부터 조선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흥분된 농성자들은 서경석목사를 들어 반공중에 뿌리며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10월 혁명이 승리하자 레닌을 들어 반공중에 뿌리며 “우라! 우라!”를 외치는 구소련인민들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나는 예의상 서경석목사한테 문안인사라도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쫓아다녔지만 도저히 기회가 없었다. 나는 포기하고 인도를 따라 종로경찰서를 지나 경복궁 쪽으로 걸어갔다. 이때 길가로 택시한대가 스르르 미끄러져 와 섰다. 문이 열리더니 서경석목사가 얼굴을 내밀며 차를 타라고 손짓한다. 차에는 서경석목사와 편집회의 때 보았던 간사가 있었다. 내가 차에 오르니 택시는 곧바로 광화문 서경석목사의 사무실로 향했다. 

서경석목사는 이번 운동을 그렇게 이해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때 나는 교회사이트에 이번 운동은 ‘시간벌기'위한 목적이며 ‘국적회복운동’을 스톱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나는 중국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반대자들의 압력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5000명을 헤아리는 조선족들의 운명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결국 운동이 중국에 미칠 파장만 우려하다보니 실제 한국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한 정당한 ‘국적회복운동’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사무실에서 서경석목사는 단식 전 마지막끼니라면서 죽 먹으러 간다고 떠났다. 좀 있다 돌아온 서경석목사는 여의도고수부지로 떠나고 나는 남아서 새로 만드는 교회신문 사이트를 놓고 신문사 안사장과 간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썩 뒤에야 여의도에 도착했다. 

5000여명 농성자들은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고향별로 나누어 단식농성장으로 떠날 차비를 하고 있었다. 서경석목사는 줄곧 3~4시간 단상에서 하나하나 점검하고 포치했다. 도박꾼들이 의외로 너무 많았다. 더 있고 싶어서 더 벌고 싶어서 그 길을 선택했고 서경석목사는 동포들이 원하면 체류연장은 물론, 국적도 주어야 한다고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교회신문사이트를 놓고 유니컴 시스템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보니 서경석목사의 사무실에서 나올 때는 저녁 8시가 넘은 뒤였다. 그냥 숙소로 가려다가 길가의 새문안교회 단식농성장으로 찾아갔다. 새문안교회는 서경석목사가 젊은 시절부터 쭉 커 온 교회다. 또 새문안교회는 연변의 서성진 경로원에 달마다 성금을 보내준다고 들어서 늘 고맙게 생각하던 교회였다. 

농성자들은 교회 앞 마당에 몽골포 모양의 크고 하얀 천막을 치고 있었다. 문을 떼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조선족교회의 부속교회인 안산조선족교회에서 온 교직자가 문 옆에 앉아서 한참 농성자들의 사연을 컴퓨터로 입력하고 있었다. 상에는 때 이르게 물병과 소금이 난잡하게 널려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교직자의 눈길이 차가운 것을 처음부터 느꼈다. 

그런데 함께 간 친구가 농성장에 대고 캠코더를 돌리고 농성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보자 그 교직자는 당장 우리더러 퇴장하라는 것이다. 내가 이유를 밝히기 전에는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해서야 내가 ‘이상한 글’을 사이트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그 ‘이상한 글’이란 앞에서 언급한 ‘국적회복운동을 스톱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군으로 알았던 사람이 이미 쑤어놓은 죽을 버리라고 하니 상당히 신경 쓰이고 배신감을 느꼈을 만도 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밥 한 끼 먹듯 한 운동이 되겠지만 중국과 한국으로 얼기설기 얽힌 조선족농성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어떤 불이익이 돌아오고 어떤 우환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판국인데 그냥 자기 일이 아니라고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연변조선족들이 집거해 있는 명성교회를 찾아 떠났다. 명성교회는 꽤 큰 교회였다. 농성장은 지하극장에 있었는데 교회 측에서는 영화도 돌리고 목사가 나와서 환영사도 한다. 농성이 뭐고 단식이 뭔지 모르는 조선족들은 그냥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명성교회를 나오다가 대문 앞에서 조선족교회 강영남집사를 만났다. 너무도 진지하게 교회를 섬기고 있는 그의 모습에 늘 감동을 받곤 했었다. 단식을 시작한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부리부리하던 그의 눈이 정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냥 시래기 국에 밥 한 그릇 말아 먹었으면 좋겠소.” 

하 얕게 마른 강영남집사의 입술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아팠다.  

단식농성 6일째를 맞는 날 나는 강남교회 단식농성장을 찾아갔다. 텔레비전 한대 없는 널찍한 지하방에는 목단강지구에서 온 100여명 동포들이 초췌한 몰골로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내가 방 가운데 앉는 것을 보고 모두들 일어나 꾸역꾸역 모여 들었다.  

“여러 분들 중 며칠 굶고 한국국적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 있습니까?” 

모두들 머리를 흔들며 호기심어린 눈매로 나를 바라본다. 

“그럼 왜 여기 이러고 있습니까?” 

“더 있고 싶어서, 더 벌고 싶어서요.”  

이때라고 나는 지난 며칠 동안 고민하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한 번 제 생각을 들어보세요. 한국에서 우리는 사연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현재로써는 외국인이고 불법체류자일 뿐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후대를 위해서라도 이런 불합리한 관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해외동포로 인정받고 자유왕래, 동포사회 지원책, 한국노동시장에서의 특수도 누려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여러분이 단식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모두들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이 단식농성기간 중 내가 농성현장을 다니면서 얻어낸 답안이다. 그것이 외부에는 단순 시간벌기 목적으로 ‘국적회복운동’에 개입되어 비난 받고 있는 5000명 조선족들이 조선족공동체에 바친 공헌이다. (끝) 

                                                          맺는 말  
한보 물러서니 세상이 보인다는 말로 지금의 내 심정을 표현하고 싶다. 당시 김해성목사의 '재외동포법개정운동'을 해외동포의 평등권을 주장하는 운동이었다면 서경석목사의 ‘국적회복운동’은 당장 추방을 맞게 된 수 만명 조선족들에게 '시간벌기'를 해준 운동인 동시에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역사적으로 조선족을 다시 고찰하게 함으로써 조선족도 고향에 돌아와 살 수 있는 똑 같은 해외동포라는 기정사실을 재확인시켜주는 '재외동포법개정운동'의 맞춤형운동이었다.   

두 운동은 오늘의 조선족의 한국행을 원활하게 해주었으며 재한조선족들의 노동생활도 원만하게 해 주었다. 끝으로 한국에 체류중인 조선족들과 한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조선족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서경석목사와 김해성목사의 조선족공동체에 바친 공헌은 무슨 이유에서라도 흠집을 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어렵고 힘든 한국생활에서 ‘국적회복운동’과 '재외동포법개정운동','강제추방 반대운동'등 조선족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시위, 집회, 삭발, 단식에 참여한 모든 농성자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를 드린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활발한 한국행이 있을 수 없었다.                                              

 

                                                                       2003년10월24일 귀향길에서  '
                                                                   려호길  |  morae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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