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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고구려 정신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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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09-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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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고구려 정신의 뿌리 

 오정윤 

  - 한국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백두산은 송화강, 압록강, 두만강의 원류가 되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의 정상이 늘 밝고 희다고 해서 태백산(太白山), 장백산(長白山), 백두산(白頭山), 불함산(不咸山)등으로 불리웠고, 고대 신선도가(神仙道家)를 수행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불로장생(不老長生)하는 불로초(不老草)가 생장하고, 아울러 불사(不死)를 이룬 신선(神仙)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으로도 추앙을 받았다.1)

 현재에도 백두산은 산정상에 담수호인 천지(天池)가 사계절 끊임없이 물을 흘려 보내고 있으며, 맹수의 왕인 호랑이가 생존하고, 자연산 산삼이 풍부하며 다양한 약초와 짐승이 살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백두산은 고대 이래로 광활한 만주벌판의 동쪽에 우뚝 솟아 주변의 산을 압도하고, 동북 평원의 젖줄인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원류가 되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신앙으로 발전해왔다.  

 백두산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고구려는 본래 부여(夫餘), 농안(農安) 지역의 북부여(北夫餘)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연변지역인 동부여(東夫餘)의 일부세력을 이끌고 남하한 고구몽에 의해서 환인(桓仁)의 졸본부여의 세력을 흡수하고 흘승골성(紇升骨城)에 건국의 기틀을 다졌다. 이어서 제2대 유리왕 년간(서기전 19-서기18년)에 백두산 자락인 집안(輯安)으로 천도하고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며 대륙의 패권자로 성장하였다. 그후 평양으로 천도한 427년부터 멸망하는 668년까지도 고구려는 백두산을 영유하면서 강력히 자주적인 역사활동을 전개하였다.

 고구려는 고조선, 부여로 이어지는 한민족 역사의 정통을 승계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방 기마문화를 창조하고 주도한 중심국가였다. 또한 700여년에 걸쳐 만주대륙과 한국의 북부지역에 나라를 세우고 중원의 한족(漢族), 북방 초원의 여러 기마, 수렵종족들과 끊임없는 투쟁을 거치면서 한민족의 생존권을 담보하고, 음주가무(飮酒歌舞)하며, 발효식품을 먹고, 온돌생활을 하는 한민족 문화의 정형(定型)을 만들었다. 아울러 백제, 신라, 가야문화의 모태였고, 현재 한민족의 백두산 신앙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끼쳤다.  이글은 이러한 고구려인들의 백두산 신앙을 살피기 위해 마련되었다.

고구려인들의 백두산 신앙을 살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론이 필요하다. 그것은 고구려인들이 백두산을 숭배하였다는 1차적인 사료가 없다는 이유도 있고, 방증할 수 있는 부분적인 사료를 통해 개연성을 실증적으로 인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한민족과 백두산의 인연은 삼국유사 고조선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이 기록에서 환웅천왕(桓雄天王)이 신시(神市)를 세운 태백산(太伯山)이 지금의 백두산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후대의 사람들은 그때의 태백산을 지금의 백두산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단군신앙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시기에 백두산은 민족의 발상지로서 널리 숭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 할 수 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왕력편에 보면 고구려의 건국시조인 동명왕이 ‘단군의 아들(壇君之子)’이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아들(子)이란 후손(後)의 뜻이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평양은 선인왕검의 땅(平壤者, 仙人王儉之宅也)’이라고 하였다. 이로볼 때 고구려에서는 자신들이 단군의 후손이라는 관념과 수도인 평양이 단군의 영토였다는 의식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2) 그렇다면 당연히 단군과 관련이 있는 백두산을 신성시 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어떤 학자는 이런 관념이 후대인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적어도 단군과 관련된 의식은 발해의 유민들에게서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고려사(高麗史) 태조 7년조에 보면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이 무리 수만을 이끌고 투항해 왔다. 성과 이름으로 왕계를 내리고 그를 종실의 족보에 붙이도록 하였으며 특별히 원보를 제수하였다. 백주를 지키게 하고 그들 종묘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으며, 신하와 작위, 군사, 전답을 내렸는데 각각 차이를 두었다(渤海國世子大光顯率重衆數萬來投. 賜姓名王繼, 附之宗籍, 特授元甫. 守白州, 以奉其祀, 賜僚佐爵軍士田宅, 有差)”고 하였다.3)


  백주는 현재의 황해도 배천(白川)으로 인근에 구월산이 있다. 구월산은 현재 단군관련 사적과 전설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다. 어떤 형태로든 이 지역에 둥지를 튼 이들 발해민들과 의 관련을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규원사화(揆園史話)에 보면 대광현등이 고려에 투항할 때 발해에서 비장한 역사책을 수없이 가져왔다고 전하는데 단군의 역사를 기술한 사서로 알려진 고려 후기의 진역유기(震域遺記)도 바로 발해인들이 가져온 조대기(朝代記)를 저본으로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발해인들은 상경용천부나 동경용원부 등 자신들이 살고있던 지역의 단군 지명이나 사화(史話)를 이곳 백주의 구월산 지역으로 교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발해인들의 단군인식이나 성산(聖山)관념은 당연히 그들이 계승하였던 고구려에서 연원함이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고 최근에 북한지역에서 성주읍도록(星州邑圖錄)이라는 각각 다른 두 장의 지도가 발견되었는데 시기는 대체적으로 고려 초기의 것이다. 이 지도에는 성주 지역의 옛날 지명이과 함께 단군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 부루(扶婁), 다물(多勿), 솔나(率那), 고불(古弗)이라는 땅이름도 있으며, 천황골, 부루골 등의 계곡도 보인다. 이것 역시 고려초기에 적어도 고구려나 발해의 후손들로터 단군이나 고조선의 지명과 사화(史話)가 성주지역에 전해져 읍도록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4)
고려 중기에 이르면 이미 백두산 숭배관념은 주요한 정치이념의 하나로 등장할 만큼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다.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서경으로 옮기면 천하 36국이 고려에 조공을 받치고 고려는 강국이 된다는 도참설을 기반으로 서경천도를 주도한 묘청은 백두산을 호국(護國)의 영산(靈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때 백두산은 고려의 영토 밖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지만 고려의 민중들은 백두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묘청은 이런 민중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여 당시에 유행하였던 도참설과 호국산악신앙을 연결하여 자신의 입론을 강화해 나갔다.
단재 신채호의 ‘조선역사상 1천년래 제1대사건’에서 보면 김부식은 신라계승론자이며 개경파의 우두머리이고 사대파의 선봉이었고, 묘청은 고구려 계승론자였고 서경파의 우두머리이고 자주파의 선봉이었다.5)
 고려사 권27 묘청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묘청은 평양에서 봉기하기 직전인 1131년에 인종에게 평양의 임원역에 대화궁과 8성당(八聖堂)을 짓자고 건의한다. 8성당의 첫째가 바로 호국백두악선인(護國白頭嶽仙人)이다. 평양을 기반으로 하는 반개경파 세력들에게서 백두산은고려를 지켜주는 호국의 첫 번째 영산이었다.6) 이러한 관념도 역시 평양에 도읍을 두었던 고구려인들의 백두산 숭배관념에서 연원하였음이 자명하다.
 세 번째로 송(宋)나라 시기 도학가인 증조(曾慥)는 도추(道樞)에서 후한(後漢)시기의 위백양(魏伯陽)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의 성립에 관하여 이르기를 “운아자가 장백산에서 노닐 제 진인을 만났는데 그가 불사약의 이치와 음양의 비밀을 알려 주었다. 이에 18장의 책을 지어 위대한 도에 대해 물었다(雲牙子游于長白之山, 而遇眞人告以鉛汞之理龍虎之機焉. 遂著書十有八章, 言大道也)”고 기록하였다.7)
여기에서 우리는 장백산과 신선도교(神仙道敎)가 어떠한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때의 장백산이라는 관념이 증조가 살았던 송나라 시기에 보편적으로 도가에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위백양이 살았던 후한 시기의 인식인가 하는 점이다. 그런제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갈홍이 쓴 포박자(抱朴子)에 보면 위의 기록을 보충하는 흥미로운 기사가 있다. 권 18 지진편(地眞篇)에 보면 “옛날에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선생을 만나 뵙고 삼황내문을 받아 여러 신명들을 물리치고 부를 수 있었다(昔皇帝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劾召萬神)”고 하였다.8)
도광순은 풍산을 뫼로 보고 곧 태백산과 같다고 하였다. 이를 방증하는 사료로는 역대신선통감 권2에 “황제가 홀로 동북의 장백산 아래에서 도를 닦아 날이 오랜 뒤에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볼 때 풍산은 장백산이고 곧 백두산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남량(南梁)의 도사이면서 의사인 도홍경(陶弘景)의 증류본초(證類本草) 금설(金屑)조에는 ‘고구려인들이 금(金)을 잘 다루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금단기술이 중원지역의 금단도교의 연금술에 전파된 것으로 볼 수 있다.9)
이상의 두가지 기록으로 볼 때 적어도 고구려 시기에 이웃인 중국 한족의 신선도가들은 백두산을 신성한 곳으로 숭배하고 있었으며, 이런 관념은 당연히 고구려에서 그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아울러 고구려의 발달된 연금술도 배워갔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것은 고구려의 신선도가들이 숭배하던 백두산 관념이 중원지역의 신선도가들에게 그대로 이입되어 불사의 이치를 깨우친 선학들이 모두 백두산에서 수행을 하였다는 관념이나 전설로까지 발전되었으며, 고구려인들이 백두산을 수행처의 도량으로 삼았다는 방증이 되는 것이다.
네번째로 고구려인들이 단군이나 태백산의 신단수를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사료는 씨름무덤(角抵塚)과 장천1호분(長川一號墳)의 무덤벽화에서 볼 수 있다. 씨름무덤의 내실 오른쪽 벽화에는 큰 나무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 나무밑둥의 좌우에는 곰과 범을 형상한 그림 있는데 이것은 단군신화의 곰과 범을 연상시킨다.
또한 장천1호분의 인물풍속도 우측 상단에는 큰 과일나무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을 숭배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왼쪽 밑에는 큰 나무 밑에 둥그런 굴이 있고 그곳에 흑곰이 그려져 있다. 주목할 점은 다른 짐승은 모두 사냥하는 장면인데 유독 곰만 곰굴에서 안전하게 있다. 이것 역시 단순신화와 신단수의 반영일 것이다.10) 고구려인들은 이처럼 단군의 역사나 사화를 신화의 소재로 삼아 벽화에 그렸고 그 숭배의 모습을 후대에 남겼던 것이다. 따라서 신단수가 있었던 백두산에 대한 숭배의식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다섯번째로 고구려의 제국적 질서에서 갈라져 나와 10세기경 이후부터 만주대륙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여진족과 만주족의 역사에서 백두산 숭배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일찍이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金;1115-1234년)는 ‘장백산을 흥왕(興王)의 땅’으로 인식하고 작위와 함께 사당을 지어 숭배하였다.  처음(1172년)에는 백두산을 ‘흥국령흥왕(興國靈興王)’이라고 부르다가 그후(1193년)에는 ‘개천굉성제(開天宏聖帝)’라고 격상하여 제사를 올렸다.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들도 백두산을 ‘환웅이 하늘을 연 땅(開天之地)’으로 인식하고 숭배하였던 것이다.,
청나라(淸;1616-1911년)를 세운 만주족도 백두산을 숭배하였다. 만주족은 그들 자신의 시조가 백두산에서 기원하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백두산을 숭배하였던 여진족의 직접적인 후예이기 때문에 어느 시기보다 백두산을 숭배하였다. 청나라는 건국초기부터 장백산지신(長白山之神)이라는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렸으며, 강희제는 21년(1682년)에 직접 길림(吉林)에 와서 장백산신에게 망제(望祭)를 지냈다. 이처럼 청나라 시기에는 황제까지 백두산을 깊게 숭배하였다.

여진족과 만주족의 백두산 신앙은 고구려에서 더욱 깊어졌고, 발해시기에 그 관념이 체계화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후 백두산을 직접 영유하게 되는 금나라 시기나 청나라 시기에 국가적인 의례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의 백두산 신앙은 고주몽의 신화에서 더욱 굳건해진다. 광개토왕릉비문과 모두루 묘지에는 시조인 고주몽에 대해 ‘하늘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皇天之子, 河伯外孫)’이라고 하거나 ‘해와 달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이신 성스런 추모왕(日月之子, 河伯外孫, 聖王鄒牟王)’이라고 기록하였다.

 시조인 고주몽에 대해 유독히 하백의 외손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고구려의 출발이 여러 소국들과의 연맹체이며, 여러 종족들과의 연합정권이라는데서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고구려는 자신들이 영토내에서 가장 중요한 세 물줄기인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 유역의 송양국, 북옥저, 북부여를 아우르고 제국적 질서를 세웠다. 고주몽은 바로 이러한 제국적 질서의 상징적 존재였다.
그리고 이 세줄기의 강의 원류가 모두 백두산이라는 사실과 그 위에는 천지(天池)가 있기 때문에 물줄기를 다스리는 하백(河伯)의 거주지로 상징화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이 하백의 외손이라는 구호를 통해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강의 물을 먹고 사는 모든 종족들을 통합하는 명분으로 삼았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백두산과 천지는 고구려인들의 신앙과 관념으로 성장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왕도의 비밀]이라는 소설을 발표한 최인호는 고구려와 백두산의 천지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는 4-5세기 한국과 일본 구주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토기와 호우총의 청동반합에 나타나는 우물 정(井)자를 추적하여 그것이 광개토대왕의 문양(紋樣)이며 바로 백두산의 천지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아울러 하남의 이성산성을 발굴하였던 심광주 박사와 함께 고구려 집안의 돌무덤을 조사하고 그곳에 묻힌 사람들의 시신의 방향이 대부분 북동쪽으로 53도에 놓여 있다고 확인하였다.11) 공교롭게도 집안에서 북동 53도는 백두산 천지이다. 이로볼 때 고구려는 백두산과 천지를 자신들의 발원지로 인식하고, 자신들이 대지를 관장하는 하늘의 아들이고, 물을 다스리는 하백의 외손이라는 구호를 대내외에 선포하였을 것이다.
 이상의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추론해볼 때 고구려인들은 적어도 단군의 후예이며, 고조선의 계승국가라는 인식을 통해 백두산을 경외하였으며, 고유의 신선도가가 발흥하면서 불사의 신선술을 닦기 위해서 신성한 백두산에서 수행을 하였고, 이러한 신념과 경외감은 이웃 중국의 한족들에게도 전파되었다.
또한 자신들이 만주대륙을 적시는 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의 원류인 백두산 천지의 지배자이며 물줄기의 지배자인 하백의 외손이라는 구호를 통해 주변 민족들을 통합하였다. 여기에다 고구려인들은 백두산과 관련한 단군신화의 소재인 곰과 범, 그리고 신단수를 고분벽화에 그려놓고 자신들의 사후에 시조신(始祖神)에게 회귀하려는 관념을 반영시켰다.
 이와같은 고구려의 백두산 인식과 숭배는 한쪽으로는 발해,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으로는 여진, 만주족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서도 연변의 조선족과 남북한 한민족의 심성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단군숭배와 함께 민족통합의 상징이며, 구심체로서, 그리고 민족원류의 고향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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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10년 만에 체신일꾼대회 개최…김정은 서한 전달 인기글 노동신문, 체신·통신 분야 성과 강조북한이 체신·통신 분야에 관심을 돌리고 이 분야의 성과를 독려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북한 조선중앙TV는 16일 '전국 체신일꾼대회'가 이날 평양에서 열렸다며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체신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서한을 박봉주 내각총리가 전달했다고 전했다.전승훈 내각 부총리는 연설에서 "(체신부문 간부들은) 나라의 체신사업을 하루빨리 최첨단 수준으로 올려세우는 데서 사명과 …(2013-09-18 08:51:11)
조선족 아이들이 쓰고 한국 어린이들이 부른 동요 인기글 동북아평화연대 음반 '노래하는 꿈틀이들' 출시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어린이들이 가사를 쓰고 한국 어린이들이 부른 동요 음반이 나왔다.동북아평화연대는 2008년부터 중국 동포 어린이 독서캠프에 참가한 작곡가 박우진 씨가 아이들과 함께 만든 노래 12곡을 수록한 음반 '노래하는 꿈틀이들'을 이달 출시한다고 13일 밝혔다.1년여의 준비 끝에 나온 이번 음반에는 한국에서 일하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간아 시간아', 같은 반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을 표현한 '우…(2013-09-16 07:48:34)
평양에서 처음 한국 태극기 올라가고... 인기글 북한 평양에서 열린 공식행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14일 열린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주니어 85kg급에 출전한 김우식과 이영균이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두 선수는 다른 출전 선수가 없어 이 체급에서 자동으로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이들이 1, 2위에 오르면서 시상식에선 태극기 두 개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퍼졌으며, 북한 관중은 모두 기립해서 이를 지켜봤다.앞서 지난 12일 개막식…(2013-09-16 07:25:36)
조·한, 이산가족 생사확인 결과 회보서 교환 인기글 8월 말 한조 쌍방이 달성한 이산가족 상봉행사 재차 개최 관련 협의에 따라 한조 적십자회는 13일 오전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가족의 생사확인 결과가 담긴 회보서를 교환했습니다.한조 적십자회는 8월 29일에 이산가족 상봉행사 참가 후보자 명단을 각기 선출했는데, 이중에는 한국측 인원 250명, 조선측 인원 200명이 포함됩니다. 그들중 대부분은 80세이상의 노인이며 최고령자는 95세입니다.한조 적십자회가 13일 오전에 교환한 상봉 후보자 가족의 생사확인 결과 회보서에 따…(2013-09-16 07:15:46)
"웃어?, 울어?" 개콘 ‘황해’를 보는 즐거움과 불편함 인기글  얼마 전 우리학교 교수님 한분으로부터 중국의 세미나에서 ‘폭탄세례’를 받은 전후과정을 전하여들었다. 그 교수님은 연극, 영화연구전공자이다.중국측의 요청으로 ‘황해’영화의 주제를 부탁받고 평론발표를 하였다. 좀 민감한 주제여서 중국동포의 감정과 입장을 최선을 다하여 고려하였지만 제증동포의 쌓인 불만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다.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 ‘황해’가 한국영화사에서 처음으로 재중동포를 삶을 큰 비중을 갖게 다룬 부분은 긍정적이다고 평가한 부분이 ‘집중추궁’을 당하게…(2013-09-16 06:27:29)
황우석박사 연변과학기술대학교에서 특강 인기글 9월 11일 저녁, 한국 황우석박사가 연변과학기술대학(과기대) 상경관국제회의실에서 연변과학기술대학 임원진과 ceo총동문회 회원들에게 "생명공학의 현황과 미래"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황우석(黃禹錫, 1953년 1월 29일 ~ )은 한국의 수의사, 과학자이다.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여났다. 전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교수였으며, 현재 에이치 바이온 대표리사이다.황우석교수는 줄기세포연구분야의 세계적 선두주자이다.조글로미디어(2013-09-12 08:15:56)
개성공단 사태, 161일 만의 '완전 해결' 인기글 남북이 11일 새벽 끝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제2차 회의에서 개성공단 재가동 시점에 합의하면서 지난 4월 3일 북한의 일방적인 통행제한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는 161일 만에 완전 해결됐다.당시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등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우리 근로자의 입경(남→북)을 차단했고, 엿새 뒤인 9일부터 북측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으면서 개성공단은 가동을 완전히 멈췄다.공단에 남은 입주기업 관계자 등 우리 인원들은 식료품 반입이 끊긴 이후에도 3주 이상 버티다가 정부의 전원 귀환 결정에 따라 …(2013-09-12 06:37:56)
'조선 김정은 어린 딸 이름은 주애' 데니스 로드맨 인기글 연이은 방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전 미국프로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맨(51)이 김정은 북한 제1비서의 딸 이름을 공개했다고 9일 영국 매체 가디언 등 외신들이 전했다.지난 8일 로드맨은 김 제1비서를 "좋은 아빠"라고 평하면서 그의 딸 이름이 '주애'라고 가디언에 처음 밝힌 것.로드맨은 "김 제1비서와 나는 바닷가에서 그의 가족들과 휴식을 취했다"며 "우리는 함께 많이 먹고 마셨다"고 설명했다.이들은 "북한과 미국의 역사적인 친선 농구경기에 대한 계획"을 논한 것으로 알려졌다.로드맨은 "난 그…(2013-09-09 11:10:43)
조선, 평양에서 '태극기 게양·애국가 연주' 첫 허용 인기글 한국 통일부는 12일부터 조선 평양에서 열리는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클럽 역도선수권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6일 밝혔다.특히 조선(북한)은 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 내에서의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허용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번 대회 참석차 방북하는 선수단은 대한역도연맹 소속 7개 클럽팀 선수와 임원, 역도연맹 관계자 등 41명이다.이들은 10일 평양에 들어가 12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경기에 참가한 다음 18일 돌…(2013-09-09 07:39:38)
동북아 위험한 일 발생 일절 없을 것 김정은, 7월 중국 부… 인기글 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달 25일 방북한 중국의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에게 “앞으로 동북아시아에서 위험한 일은 일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본의 마이니치(每日)신문이 27일 석간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지도부에 가까운 관계자 및 베이징(北京)의 외교관계자의 말을 인용, “김 제1위원장의 발언은 사실상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실험이나 핵실험과 같은 도발 행위를 자제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도 김 제1위원장에 대해 “상당히 겸손한 자세…(2013-09-06 07:27:03)
조-한, 6일부터 서해 군 통신선 재가동 인기글 한국통일부의 소식에 따르면 한조 쌍방은 5일 진행된 개성공업지구 3통(통행, 통신,통관) 분과위원회 회의에서 6일부터 서해 군 통신선을 재가동하고 6일 오전 9시 시험통화를 진행키로 합의했습니다.한조 서해 군 통신선은 개성공업지구 출입경을 위한 채널로 활용돼 왔습니다.올해 3월27일 조선은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해 이를 일방적으로 차단했습니다.한국여론들은 한국정부가 서해 군 통신선 복구가 개성공업지구 재가동의 선결조건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이 군 통신선이 차단 5개월만…(2013-09-06 07: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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