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인생, 두려울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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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05-30 12:37|본문
"도전하는 인생, 두려울게 없다"
(흑룡강신문=하얼빈) "사람은 태여난 이유가 있다. 그냥 대충 먹고 살다가 가려고 태여난 건 아닐 게야 . 의미있는 삶을 쫓아가야 한다는거지." 이 말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며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8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 꿈을 이룬 사내가 있다. 그가 바로 한국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서 중국 쓰촨성요리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윤대천 대표이다.
흔히 외식업체 사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투실한 풍채에 넉살좋은 웃음 같은 것들이라고나 할까. 중화요리집 대천부의 성공으로 주목받고있는 윤대천 대표 역시 그러하였다.
대천부는 중국 쓰촨음식을 주메뉴로 한 푸짐하고 깔끔한 맛이 돋보이는 음식점이다. 쓰촨음식은 매운 음식이 특징인데 중국 동포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중국 동포들은 물론 이색적인 재미와 저렴한 가격을 추구하는 한국 손님들에게도 인기다. 장사를 한지 8년 만에 월 출이 한화 만원을 넘나들고 있을 정도로 성황이다.
대천부 음식점은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을 버리고 성실히 살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대천부음식점에는 10여 명의 종업원이 있다. 모두 중국 동포들이다. 윤대표는 직원들을 한 가족처럼 대한다. 종업원들의 생일을 적어놓고 생일날 단설기를 사주기도 하고 종업원이 결혼하거나 가정에 대소사가 있을 때 반드시 부조돈을 쥐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친형제처럼 대해주니 종업원들도 윤대표를 믿고 따른다.
윤대표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륜도 돈도 아닌 열정"이라며 "열정만 있으면 맨손으로도 시작할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금의 성공 역시 초기에 거처할 곳이 없어 일하는 식당에서 쪽잠을 자며 이룬 성과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설음을 당하면 쉽게 포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달라요. 예를 들어 한국에 처음에 와서 돈이 없이 양꼬치를 팔았을 때 한국 친구들이 '이런 자잘한 것들을 팔아서 언제 돈을 모으겠어'라고 빈정댔어요. 그말에 눈물을 삼키기도 하였어요.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며 기회를 엿보면 반드시 길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돈이 없으면 국수도 팔고 양꼬치도 파는 것이지죠. 그걸 판돈을 종자돈 삼아 더 큰 음식을 여는 것이죠. 그렇게 돈을 불려서 정왕동 번화거거리에 음식점을 내요. 이게 바로 제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중국 산간마을인 헤이룽장성 동녕현 오성촌에서 자란 윤대표는 큰 꿈을 안고 1988년에 중국 연해도시인 칭다오로 갔다. 여태껏 시골에서 자랐기에 번화한 도시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다행히 한국계 회사에 운전기사로 일자리를 구할수 있었다. 그는 성실한 성품을 인정받아 8년간 일을 했다. 1996년대 , 그당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나갔고 마침 회사의 추천을 받아 한국으로 갈수 있었다.
"1996년에 한국으로 와서 초기에는 여기저기 다니며 일을 하였어요. 그러다가 차츰 요식업에 눈을 돌렸습니다."
당시 연변에서 온 사람들이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개고기, 국수, 찰떡 등을 만들어 팔았다. 그도 자그마한 양꼬치 점을 시작하였다. 많은 돈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와줄 사람도 없어 그 혼자서 낮에는 고기를 썰고 꿰고 밤에는 양고기를 구워서 팔았다. 워낙 단가가 낮은 음식들이라 밤낮 쉼없이 일해도 수입은 미미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에 온 목적은 성공하기위한 것이었다. 옆도 보지 않고 그저 묵묵히 꾸준히 일만 했다. 그렇게 돈이 좀 모였고 2005년도에 많지 않은 자금을 투자해 정왕동 번화거리에 쓰촨음식을 주메뉴로 한 대천부라는 식당을 차릴 있었다.
"쓰촨음식을 배우기 위해 쓰촨성, 베이징, 상하이를 직접 다니면서 끈질기게 배웠습니다." 쓰촨음식은 매운 맛이 특징이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동포들이 즐겨먹는 음식인데도 당시에는 쓰촨음식점이 많지 않았다. 그는 이틈을 노렸다.
틈새 전략은 성공하였다. 한국땅에서 한국인도 만지기 어려운 성공이라는 금돼지를 만질 수 있었다. 운이 아닌 피눈물나는 노력과 고생으로 얻은 당당하고 값진 성공이었다. 한국에 아파트도 사서 중국에서 부모님들도 모셔왔다. 그도 가난하게 자랐기에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여러가지 사회적인 자선 활동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내일을 맞이하겠다며 오늘도 윤사장은 그사람 좋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김승희
(흑룡강신문=하얼빈) "사람은 태여난 이유가 있다. 그냥 대충 먹고 살다가 가려고 태여난 건 아닐 게야 . 의미있는 삶을 쫓아가야 한다는거지." 이 말을 주문처럼 입에 달고 다니며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8년 동안 음식점을 운영해 꿈을 이룬 사내가 있다. 그가 바로 한국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서 중국 쓰촨성요리로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윤대천 대표이다.
흔히 외식업체 사장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투실한 풍채에 넉살좋은 웃음 같은 것들이라고나 할까. 중화요리집 대천부의 성공으로 주목받고있는 윤대천 대표 역시 그러하였다.
대천부는 중국 쓰촨음식을 주메뉴로 한 푸짐하고 깔끔한 맛이 돋보이는 음식점이다. 쓰촨음식은 매운 음식이 특징인데 중국 동포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다. 중국 동포들은 물론 이색적인 재미와 저렴한 가격을 추구하는 한국 손님들에게도 인기다. 장사를 한지 8년 만에 월 출이 한화 만원을 넘나들고 있을 정도로 성황이다.
대천부 음식점은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을 버리고 성실히 살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대천부음식점에는 10여 명의 종업원이 있다. 모두 중국 동포들이다. 윤대표는 직원들을 한 가족처럼 대한다. 종업원들의 생일을 적어놓고 생일날 단설기를 사주기도 하고 종업원이 결혼하거나 가정에 대소사가 있을 때 반드시 부조돈을 쥐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친형제처럼 대해주니 종업원들도 윤대표를 믿고 따른다.
윤대표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연륜도 돈도 아닌 열정"이라며 "열정만 있으면 맨손으로도 시작할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지금의 성공 역시 초기에 거처할 곳이 없어 일하는 식당에서 쪽잠을 자며 이룬 성과라고 한다.
"사람들은 보통 설음을 당하면 쉽게 포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달라요. 예를 들어 한국에 처음에 와서 돈이 없이 양꼬치를 팔았을 때 한국 친구들이 '이런 자잘한 것들을 팔아서 언제 돈을 모으겠어'라고 빈정댔어요. 그말에 눈물을 삼키기도 하였어요.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며 기회를 엿보면 반드시 길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돈이 없으면 국수도 팔고 양꼬치도 파는 것이지죠. 그걸 판돈을 종자돈 삼아 더 큰 음식을 여는 것이죠. 그렇게 돈을 불려서 정왕동 번화거거리에 음식점을 내요. 이게 바로 제가 살아온 방식입니다."
중국 산간마을인 헤이룽장성 동녕현 오성촌에서 자란 윤대표는 큰 꿈을 안고 1988년에 중국 연해도시인 칭다오로 갔다. 여태껏 시골에서 자랐기에 번화한 도시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다행히 한국계 회사에 운전기사로 일자리를 구할수 있었다. 그는 성실한 성품을 인정받아 8년간 일을 했다. 1996년대 , 그당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나갔고 마침 회사의 추천을 받아 한국으로 갈수 있었다.
"1996년에 한국으로 와서 초기에는 여기저기 다니며 일을 하였어요. 그러다가 차츰 요식업에 눈을 돌렸습니다."
당시 연변에서 온 사람들이 중국 동포들을 대상으로 개고기, 국수, 찰떡 등을 만들어 팔았다. 그도 자그마한 양꼬치 점을 시작하였다. 많은 돈과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도와줄 사람도 없어 그 혼자서 낮에는 고기를 썰고 꿰고 밤에는 양고기를 구워서 팔았다. 워낙 단가가 낮은 음식들이라 밤낮 쉼없이 일해도 수입은 미미 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에 온 목적은 성공하기위한 것이었다. 옆도 보지 않고 그저 묵묵히 꾸준히 일만 했다. 그렇게 돈이 좀 모였고 2005년도에 많지 않은 자금을 투자해 정왕동 번화거리에 쓰촨음식을 주메뉴로 한 대천부라는 식당을 차릴 있었다.
"쓰촨음식을 배우기 위해 쓰촨성, 베이징, 상하이를 직접 다니면서 끈질기게 배웠습니다." 쓰촨음식은 매운 맛이 특징이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동포들이 즐겨먹는 음식인데도 당시에는 쓰촨음식점이 많지 않았다. 그는 이틈을 노렸다.
틈새 전략은 성공하였다. 한국땅에서 한국인도 만지기 어려운 성공이라는 금돼지를 만질 수 있었다. 운이 아닌 피눈물나는 노력과 고생으로 얻은 당당하고 값진 성공이었다. 한국에 아파트도 사서 중국에서 부모님들도 모셔왔다. 그도 가난하게 자랐기에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을 위해 여러가지 사회적인 자선 활동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겸손한 자세로 내일을 맞이하겠다며 오늘도 윤사장은 그사람 좋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김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