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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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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호| 작성일 :13-03-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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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도전역에 참가하러 떠나가는 40군 포병영 조선인전사들.
 
 

산해관 넘어 전국해방전장으로.4
 
 

해남도서 대나무배로 미국현대화군함 격퇴 
정주서 조선인으로 무어진 독립 15사 편성
 
 

조선인포병영 

1949년 12월, 광동성과 광서성이 해방되자 대륙은 기본적으로 해방되였다. 광동성과 광서성의 국민당잔여부대는 꼬리빳빳이 해남도로 도망쳐갔다. 장개석은 설악을 해남도방위총사령으로 임명하고 해남도에 19개 보병사, 핸군 제3함대 50여척의 군함, 공군 4개 대대에 30여대의 비행기까지 배치해 “해, 륙, 공 립체방어체계”를 형성, 총병력은 10만명이였다. 국민당군은 매일같이 비행기와 군함으로 연해도시를 포격하였으며 해남도에 있는 경애종대에 대하여 토벌을 감행하면서 해남도는 “깨뜨릴수 없는 성새”라고 떠들어댔다.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사령부는 제40군과 제43군에 해남도공격을 명령했다. 
40군에는 소문난 조선인포병영이 있었는데 이번에 명령을 받고 사단직속포병영으로 재편성되였다. 그들은 몇문의 포를 가지고 료심전역, 평진전역으로부터 조국의 서남 계림과 남녕에 이르기까지 수십차의 전투를 거쳤다. 차츰 전투에서 로획한 “5.7식야포”, “3.8식야포”, “14련식야포” 등 현대화무기로 자신을 장비하면서 300여명의 병력을 가진 영으로 장성하였다. 영장은 김영만이고 교도원은 장범이였다. 이번에 포병영이 맡은 주요한 임무는 목선을 타고 적의 비행기와 군함을 대적하면서 보병을 안전하게 도해(渡海)할수 있도록 호위하는 “항행호위영”역할을 하는것이였다. 

부대는 인차 수상훈련에 달라붙었다. 조선인전사들은 연변의 산골에서 살다보니 대부분이 바다를 처음 보았고 헤염칠줄도 몰랐다. 배에 오르기만 하면 배멀미를 하는 등 곤난이 막심했다. 설상가상으로 남방의 무더운 날씨 때문에 쩍하면 학질 아니면 리질에 걸렸다. 그러나 전사들은 하루도 훈련을 드틸수 없었다. 해뜨기전부터 밤 늦게까지 그네뛰기, 풍랑속에서 노젓기, 다리건너기, 헤염치기 등 훈련에 이악스럽게 달라붙었다. 하여 3개월간의 간고한 훈련을 거쳐 끝내 해상작전을 할수 있는 “해군전사”로 련마되였다. 

“항행호위영”전사들은 당지의 경험많은 배사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참대를 베여다가 배를 뭇고 돛을 달고 포를 설치하였다. 돛 네폭을 달고 자동차발동기를 설치한 대나무배는 전투원 34명이 탈수 있었는데 배에다는 또 산포, “5.7”, “3.8”식야포 각각 한문, 고사기관총 2정, 수압식중기관총 2정, 경기관총 3정을 배치했다. 포판은 이불솜을 물에 적셔 감싸놓아 진동되지 않도록 했다. 배에 물이 새여들지 못하게 돌을 가루내여 기름반죽을 해서 틈을 발랐으며 물뽐프는 참대나무로 만들었다. 해상실전련습까지 성공적으로 끝낸 조선인전사들은 자랑스럽게 “우리는 중국인민해방군의 제1대의 해군”이라고 말하였다. “항행호위영”의 전사들은 나무배로 현대화한 미국제 군함과 싸워 이길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해남도해방에서 한몫을 톡톡히 담당하겠다고 “혈서”를 써서 상급에 맹세하였다.

영용한 “항행호위영”

1950년 4월 16일, 출정을 앞두고 사령부에서는 서문시 앞바다에서 도해부대를 환송하는 대회를 가졌다. 주덕총사령, 제4야전군에서 보내온 축하신 및 뢰주반도인민들로부터 보내온 한폭의 붉은기가 “항행호위영”에 증송되였다. 기발에는 “풍랑을 헤가르며 승리적으로 전진하라!”는 글발이 새겨져있었다. 영장 김영만은 기발을 받아 제2련 련장 김두만에게 넘겨주었다.

군악대의 주악에 맞추어 자동차에 앉은 “항행호위영” 전사들은 군중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부두에 이르렀다. 500여척의 대나무배에 벌써 한 개 사의 병력이 올라있었고 그들이 탄 배의 좌우 량켠에는 우리 조선인 “항행호위병” 배 12척이 쭉 늘어서있었다. 

저녁 6시 30분, 출발을 알리는 신호총이 울리자 배는 종대군악대의 주악과 끊임없는 구호소리 속에서 서서히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 개 사의 병력을 호위하여 거침없이 순풍을 따라 앞으로 전진하는 “항행호위영” 조선인장병들의 마음은 더없이 설레이였다. 

약 15킬로메터를 항행했을 때였다. 문뜩 공중에 조명탄이 떠오르더니 해상은 대뜸 대낮처럼 환히 밝아졌다. 이어 앞으로는 적 군함이 함포사격하면서 다가왔고 하늘로는 적기가 으르렁거리면서 날아와 포탄을 투하하였다. 포탄의 폭풍에 아군의 배들은 마구 뒤흔들렸고 어떤 배에는 벌써 물이 새여들었다. 조선인포병영 전사들은 포를 장치한 대나무배를 총출동시켰다. 대나무배들은 영장 김영만의 명령에 따라 적함을 향해 접근해갔다. 아군의 배는 배후로 에돌아가서 적함에 불벼락을 안기였다. 이 돌연적인 습격에 당황해난 적함은 배머리를 돌리더니 정신없이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적 군함이 도망친 뒤 아군의 배는 어둠을 헤치며 순풍을 따라 거침없이 해남도방향으로 내달렸다. 한 전사가 어둠속에서 해남도가 보인다고 소리높이 웨치자 모두가 흥분에 겨워 야단법석이였다. 이때 하늘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뒤덮이면서 바람이 일었다. 배가 파도에 밀리워 갈지자로 달아나는통에 앞으로 저어나가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50여세 되는 경험 많은 배사공은 조금도 두려움없이 힘껏 노를 저어 나갔다. 

해남도 해안을 지키던 적함이 아군을 발견하고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이에 “항행호위영” 12척 배에 건 모든 포가 일제히 맞불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군의 포사격에 적의 방어시설이 하나 하나 무너졌다. 

배가 해안에 거의 닿게 되자 보병들은 배에서 첨벙첨벙 뛰여내리더니 헤염쳐 륙지에 올랐다. 500여척의 배에 앉은 보병이 승리적으로 해안에 상륙하여 파죽지세로 적을 무찌르며 돌진해나갔다. 

“항행호위영”은 승리적으로 임무를 수행한후 대륙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임무를 접수하라는 상급의 명령을 받고 배머리를 돌렸다. 약 15마일가량 왔을 때 날의 희붐히 밝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벽빛 속에 내다보니 동쪽 앞바다에 적의 군함이 검은 연기를 뿜으면서 “항행호위영”쪽으로 접근해오는 것이 보였다. 아군을 발견한 4척의 군함은 량켠으로 갈라져서 포위해오고 있었다. 사태는 아주 위험했다. 

“전투준비!” 

김영만영장은 과단성있게 전투명령을 내렸다. 

“1, 2련은 각기 량컨으로 갈라져 적함을 공격할 것!” 

명령이 떨어지자 김두만련장은 2련의 배 여섯척을 왼쪽으로 몰고나갔다. 

“동지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최후의 희생을 각오합시다!” 

김두만련장은 소리높이 웨치면서 전사들을 지휘하여 적함을 향해 돌진해나갓다. 
적함과 아군배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있었다. 1000메터, 500메터, 400메터... 

“쏘앗!” 

사격명령이 내리자 제2련 3패 7반 반장인 조창수가 맨 앞에서 다가오는 적함을 겨냥해 전방포를 갈겼다. 명중이였다. 적함에서는 불기둥과 함께 삼단같은 연기가 치솟아올랐다. 다른 배에서도 동시에 포를 쏘았다. 불의의 습격에 겁을 먹은 적함은 배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함에 명중탄을 안긴 조찬수와 부사수 김동무가 적탄에 맞아 장렬히 희생되였다. 

다른 곳에서 싸우던 제1련에서도 적함과 맞다들어 용감히 싸웠다. 놈들은 우리의 포화에 질겁한 나머지 뿔뿔이 도망쳤다. “항행호위영”은 승전고를 울리면서 대륙으로 돌아왔다. 그때로부터 해방군에서와 인민들속에서 대나무배로 미국제 현대화군함을 격퇴시켰다는 미담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50년 5월, 해남도가 해방된후 40군 군부에서는 해항시에서 공신표창대회를 열고 사직속포병영 제2련 3패 7반 반장이며 세1포수인 조찬수를 군의 전투영웅으로 추인하고 그가 생전에 탔던 배를 “조찬수호”로 명명하였다. 그리고 조찬수의 시체를 서문시 남산에 모시고 “전투영웅 조찬수지묘”라고 새겨진 묘비를 세웠다.

독립 15사의 탄생

1950년 1월말, 중공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각 군과 특종병부대에 소속되여있는 조선인 장병들에게 즉시 하남성 정주시에 집결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특수한 전투과업을 수행하는 일부 부대 조선인 장병들을 제외한 제4야전군내의 전체 조선인장병들은 3월초순까지 륙속 정주시에 집결하였다. 그들은 항일투쟁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 8.15해방직후부터 해방전쟁의 성스러운 싸움터에서 세련된 강철의 전사들이였다. 

3월중순의 어느날, 중앙군위의 명령에 의한 독립 15사의 편성의식이 거행되였다. 독립 15사, 이는 사장으로부터 보통전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선인으로 무어진 조선인부대였다. 전 사에는 4개 보병퇀, 1개 포병퇀, 공병영, 통신영, 반땅크영, 경위중대, 야전병원이 있었고 사급기관으로는 정치부, 참모부, 공급부가 있었다. 사장에 전우, 참모장에 지병학, 정치부 주임에 양근, 공급부 주임에 김윤식, 작전과장에 최봉준, 간부과장에 리용근, 대렬과장에 윤제학이 임명되였다. 퇀급이상 간부도 제4야전군 사령부와 정치부에서 임명하였는데 그들로는 제1퇀에 최학훈, 계중수, 리모출, 제2퇀에 리원성, 리성진, 김철, 제3퇀에 황동화, 김하석, 장중, 제4퇀에 장교덕, 황병태, 송덕만이였다. 포병퇀은 사참모장 지병학이 퇀장을 겸하고 최희택, 손흥산 등이 퇀의 지휘원으로 임명되였다. 

편성의식대회는 정주시 광장에서 거행되였는데 110폭의 축기가 봄바람을 타고 나붓기였다. 이 축기들은 지방의 토비숙청으로부터 3하강남, 길림외각지대에서의 운동전, 장춘포위전, 료심전역, 평진전역, 장강도하전투와 중남, 서남지구 여러 전투와 전역에서 조선인 장병들이 수여받은것들이였다. 

대회에서 제4야전군 정치부 주임 등자희가 야전군사령부와 정치부를 대표하여 연설하였다. 그는 조선인 장병들이 전국해방전장에서 이룩한 공훈을 높이 평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인 장병들은 3년 반의 해방전쟁가운데서 간고분투하고 영용히 싸운 모범이였고 옹정애민의 모범이였으며 3대규률 8항주의를 준수한 모범이였습니다. 조선민족의 아들딸들인 그대들은 조선민족의 자랑이며 또한 우리 중화민족의 자랑입니다...” 

이것은 천만 지당한 말이였다. 독립 15사의 장병들가운데는 대공이상을 세운 사람만 해도 2000여명이 되었고 그중 영웅칭호를 수여받은 사람만도 100여명이였으며 85%이상이 중국공산당 당원이였으니말이다. 

지휘원들의 연설이 있은후 성대한 사열식이 있었다. 구호를 웨치며 정보로 사열대앞을 지나가는 1만8000여명의 강철의 행진대오, 지축을 울리는 씩씩하고 호매로운 발걸음소리! 장병들 얼굴마다에는 승리의 희열이 비끼여있었다. 장백산기슭에서, 송화강반에서 자위에 떨쳐나섰을 때 일본패잔병들이 버리고간 보잘 것 없는 무기로 장비되였고 복장마저 통일되지 못했던 대오가 지금은 국민당군에게서 빼앗은 땅크, 대포와 보총, 경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중국인민해방군의 통일복장을 떨쳐입은 정규화한 부대로 자라났다. 두 손에 총을 받쳐들고 보무당당히 사열대 앞을 지나가는 민족의 건아들과 사열대우에서 손을 젓는 지휘원들의 얼굴에는 드높은 긍지의 빛이 력력히 흐르고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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