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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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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호| 작성일 :13-02-28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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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여름 화전밀영에서의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조선인장병들
 
 
고난의 행군

 
추위 기아 병마 일만군의 포위공격 이겨내면서 
새로운 유격근거지개척 위해 고난의 행군 강행 

 
일제의 “3성련합토벌”
 
1937년 7월부터 시작한 “3년숙정계획”에 근거하여 일제는 5만여명의 병력을 집중하여 3강지구에 대한 1년반 동안의 “대토벌”을 감행한후 “치안숙정”의 중점을 동남만지구에 돌리였다. 하여 일제는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의 1년반 동안의 “3성련합토벌”을 감행했다. 이번 “대토벌”의 주공목표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이며 주요한 토벌구역은 간도성과 통화성 전체, 길림성 동부인 반석, 화전, 돈화, 교하, 서란 등지와 목단강성의 녕안현이였다. 

이번 “대토벌”에 참가한 일만군경은 도합 6만명, 그중 일본군으로는 관동군독립수비대 제5, 제9, 제21, 제7, 제8, 제4 등 6개 대대(후에 제19, 제20대대를 증가)였다. 그외에 각 대대에 20개의 무선전분대와 헌병을 배비, 총 6400여명이였다. “토벌”에 참가한 위만군은 제2군관구보병 제2려, 기병 제2려, 제2교도대, 제8군관구 제1, 제2, 제3혼성려, 제8교도대, 제6군관구 1개 려, 제7군관구 1개려, 제1군관구 보병 제5퇀 및 통신부대와 자동차대 등 도합 2만 5000명이였다. “토벌”에 참가한 경찰대로는 통화성경찰대(10개 대대), 간도성경찰대(5개“토벌”대), 길림성경찰대(14개“토벌”대), 목단강성경찰대, 간도특설부대, 통화성의 9개 현, 간도성의 5개 현, 길림성의 반석, 화전, 돈화, 교하, 서란 등 현과 목단강성의 녕안현 경찰대, 통화, 간도, 길림 3성 및 소속 각 현의 경찰조직과 특별순찰반, 동변도지구의 각 위만삼림경찰대, 위만신경경찰학교 학병대, 위만영구해상 경찰대의 비행기 2대, 및 금주, 봉천, 빈강 등 성의 경찰증원대 도합 3만여명이였다. 

일제는 “3성련합대토벌”을 대체상 3개 단계로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1939년 10월부터 1940년 4월까지 제1단계인데 “토벌”의 중점을 통화성 각현과 길림성 화전현에 두고 제1로군 총사령부와 경위려 및 제1방면군을 소멸한다는것이였다. 1940년 4월부터 9월까지 제2단계인데 “토벌”의 중점을 간도성 안도, 화룡, 왕청, 목단강성의 녕안, 동녕, 길림성의 서란, 빈강성의 오상 등지에 두고 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부, 경위려, 제2방면군, 제3방면군을 소멸한다는것이였다. 1940년 9월부터 1941년 3월까지 제3단계인데 “토벌”의 중점을 간도성 특히는 목단강, 간도, 길림3성 변경지구와 왕청, 훈춘, 동녕, 앵목 4개 현에 두고 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부, 경위려, 제2방면군과 제3방면군을 소멸한다는것이였다. 

일제는 미친듯한 군사 “토벌”과 함께 “토벌”구역에서 반동적인 정책을 실시하여 항일련군에 대한 경제봉쇄를 단행, 항일부대에 량식한알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일제는 통화, 간도, 길림 3성에 예비도로 20여갈래를 새롭게 건설했고 100킬로메터의 전화선을 새롭게 가설했다. “토벌”기간에 일제는 도로와 철도 량켠에 농작물을 심지 못하게 했고 산비탈에 밭을 일구지 못하게 했다. 철도와 도로 량켠에 50메터내의 나무를 모조리 베여버리게 하고 철도와 도로연선에 경위대를 배치했다. 1939년 10월부터 1940년말까지 일제는 항일련군밀영 2085개를 훼멸해버렸다. 

일제는 군사 “토벌”과 함께 “사상토벌”, “문화토벌”도 감행했는데 “토벌”지구에 대량의 “선무”인원을 파견하여 “선무활동”을 하게 했다. 동시에 “토벌”지구에 반공삐리와 색정적인 사진, 음란한 서적과 간행물을 살포하여 항일련군의 사상을 부식시키고 정신을 유혹시키려 했다. 항일련군내부를 분화시킬 목적으로 일제는 항일련군 고급장령을 잡거나 죽이면 상금을 준다고 결정했다. 군급간부의 경우 1만원, 사급간부의 경우 5000원, 퇀장, 참모장의 경우 2000원, 기타 장령은 1000원으로 상금을 정했다. 일제의 발광적인 “토벌”은 항일련군에 참중한 타격을 주었다. 1939년 10월부터 1940년말까지 일만군에게 도살된 항일군민은 1170여명이 되었고 포로된 사람은 900여명이 되었다. 
 
일제의 “다니전술 ”
 
1938년 11월 25일, 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부는 몽강의 남패자에서 제2군 제6사와 회사한후 2군 6사를 정식으로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으로 개편하였다. 김일성이 지휘로 임명되고 려백기가 정위로 림수산이 참모장으로 필수문이 부관으로 림춘추가 의관으로 임명되였다. 직속경위련 련장에 오백룡, 제7퇀 퇀장에 오중흡, 정위에 주재일, 제8퇀 퇀장에 손장상, 정위에 박덕산, 제9퇀 퇀장에 마덕전, 제10퇀 퇀장에 서영이 임명되였다. 병력은 총 500여명이였다. 

“혜산사건”으로 하여 수많은 지하조직이 파과되였기에 1938년 장백지구의 반일혁명운동은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이에 제2방면군은 김일성의 지휘하에 장백산구에 새로운 항일유격구를 개척하기 위하여 몽강현 남패자를 떠나 장백현 북대정자로 진격하는 행군을 시작했다. 이번 행군은 적들의 추격과 함께 엄혹한 자연, 극심한 식량난, 무서운 병마가 한데 뒤엉킨 시련과 난관으로 일관된 고난의 행군이였다. 

그해따라 추석전에 첫 서리가 내렸고 추석후엔 인차 큰 눈이 퍼부어 초겨울부터 박달나무 얼어터지는 강추위가 들이닥쳤다. 부대는 출발하자부터 적들의 추격에 직면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병마와 식량난을 받게 되었다. 원래는 남패자에서 북대정자까지 도보로 대엿새면 가닿을수 있는 거리였지만 아군은 무려 110여일의 엄창난 품을 들여서야 행군을 완성할수 있었으니 그 간고성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말치 않아도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행군은 적들의 끊임없는 추격과 포위속에서 진행되였는데 적들은 통신수단으로 비행기까지 날리면서 싸움에 열을 올렸다. 적들은 처음부터 검질기게 달라붙어 상대를 못살게 구는 “다니전술”(진드기를 일어로 “다니”라고함)을 썼다. “다니전술”은 “토벌대”를 요소마다에 미리 배치해놓았다가 항일련군이 나타나면 치고 또 일단 발견한 항일련군에 대해서는 꼬리를 물고 끝까지 따라가며 소멸한다는 전술이였다. 그 전술은 항일련군으로 하여금 쉬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하게 하면서 줄창 쫓겨다니며 얻어맞다가 기진맥진해서 녹아가게 하는 악착한 전술이기도 했다. 

적들은 서로 교대하면서 아군을 공격했다. 이러한 함정속에 빠진 아군은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떨어질줄 모르는 적들 때문에 곤경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무턱대고 추격만 당하면서 허우적거린다는 것은 자멸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궁리해낸 것이 “갈지자전법”이였다. “갈지자전법”이란 행군로를 갈지자모양으로 잡아나가는것이였는데 굽인돌이마다에서 되돌아아 앉아 지키고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기관총으로 공격하는 전술이였다. “갈지자전법”은 눈이 몇갈씩 쌓인 산지에서 뒤따라오는 적들을 무찌르는데 가장 적합한 전법이였다. 

그해 겨울따라 눈이 어찌도 많이 내렸는지 앞사람이 눈을 다지며 길을 내야만 행군할수 있었다. 아무리 건강한 대원도 50~60메터만 걸으면 맥이 진해 주저앉군 했다. 어떤 곳은 눈이 너무 깊어 몸을 굴려 다져가며 길을 내야 했고 어떤 곳은 눈굴을 파고 지나가야 했다. 적들은 어차피 아군이 낸 갈지자길을 졸졸 따라오는수밖에 없었다. 

아군의 “갈지자전법” 

7퇀 퇀장 오중흡은 행군종대의 맨 뒤에서 갈지자모양으로 길이 꺾이는 대목마다 기관총을 휴대한 전투소조를 배치시켰다가 적들이 다가붙으면 사격하게 했다. 적들이 시체를 처리하는 사이에 매복타격조를 이동시켰다가는 적들이 다시 다가오면 또 답새기군 했다. 

적들은 아군이 낸 외통길을 따라오기 때문에 매번 얻어맞는 신세가 돼버렸다. 아군은 드디여 주동권을 쥐고 적을 타격할수 잇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군은 림강현 요구집단부락습격전, 마의하부근전투, 왕가점습격전을 비롯한 무수한 전투를 벌리면서 1939년 정초에 장백현 7도구에 이르렀다. 적들은 갈수록 더 많은 “토벌”대를 내몰아왔다. 적기가 아군의 행방을 찾느라고 자주 돌아치기 때문에 우등불초자 맘대로 피울수 없어 늘 추위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끊임없는 행군이 이어지다보니 걸으면서 잠잘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군의 행방을 탐지한 적기가 지상부대에 련락을 주어 “토벌대”를 행군종대에 벌떼처럼 달려들게 하였다. 앞에도 적이요 뒤에도 적이요 하늘에도 적이였다. 급박한 관두에 제2방면군 지휘 김일성은 앞에서 달려드는 적은 기관총소대가 무찌르고 뒤로 달려드는 적은 7퇀이 막고 나머지 대원들은 측명돌파로 포위속에서 빠져나가게 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위험한 고비는 요행 모면했지만 노상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였다. 이에 큰 병력의 집단행군이 여러모로 불편함을 간파한 부대는 분산행동으로 넘어갈 것을 결정했다. 부대는 세 개의 방향으로 분산하기로 했다. 지휘 김일성이 경위련과 기관총소대를 이끌고 청봉밀영을 거쳐 가재수방향으로 나가고 오중흡의 7퇀이 장백현 상강구일대로, 8퇀과 기타부대가 무송현 동강일대에로 나가기로 했다. 

부대가 분산되자 집중타격의 성화는 덜 받게 되었으나 식량난만은 어쩔수 없었다. 김일성은 부대를 이끌고 굶으면서 청봉방향으로 행군했다. 먹을것이 없어 전부대가 아사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청봉부근에서 난데없는 가을하지 않은채로 남아있는 조밭을 발견하게 되었다. 눈속에 파묻혀있는 조이삭을 보고 대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지형을 살펴보니 봄에 부대가 신태자밀영으로 가면서 씨붙임을 한 조밭이였다. 지난봄, 부대전사들이 여기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나타난 군인들을 보고 봄씨붙임을 하느라고 밭에서 일하던 농민들이 허둥지둥 어디론지 달아나버렸다. 아마 항일련군을 일본군“토벌”로 생각하고 도망친 것 같았다. 밭임자가 가을에 와서 곡식을 거두어가게 하자고 조를 심어주었다. 그런데 그 밭의 조가 가을을 하지 않은채로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대원들은 눈무지속에서 한이삭두이삭 힘들게 따낸 조이삭을 찧어 죽을 쒀먹었다. 
그러나 그 좁쌀마저 인차 거덜이 났다. 이제 식량을 구할수 있는 방도는 청봉밀영에 가서 감자를 한배낭씩 얻어가지고 가는 것뿐이였다. 그러나 적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감자밭에 이르러보니 감자는 이미 다 파가고 없었다. “토벌대”는 어느새 뒤에까지 따라와서 기관총을 마구 쏘아댔다. 부대는 골짜기를 버리고 벌판쪽으로 내려간후 날이 저문 틈을 타서 강행군으로 멀리 빠져나갔다. 

강행군 도중 삼림부대병영을 만나 돌격해들어가보니 놈들은 이미 다 도망쳐버리고 금방까지 음식을 먹던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대원들은 식탁우에 푸짐히 차례져있는 음식을 배낭에 챙겨넣은후 뒤쫓아오는 적들을 따돌리고 부후물등판으로 피해버렸으나 또다시 추격에 들고 말았다. 적들은 건빵 한 개 먹을 시간도 주지 않고 달라붙었다. 
 
대낮에 버젓이 들판 지나
 
지휘 김일성은 부대로 하여금 추격해오는 적을 뒤꼬리에 단채로 한바퀴 돌자면 하루걸음이 잘되는 부후물등판두리를 빙빙 돌게 하였다. 한 두어비퀴 돌았을 때 새로운 “토벌대”가 나타나 아군과 뒤따르던 본래의 짝패들 짬에 끼여들었다. 서로 련계가 없는 두 무리의 적이 겹쳐서 추격하는 괴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때를 타 부대원들은 흰천으로 몸을 감싸면서 감쪽같이 옆으로 빠진후 숲속에 숨어버렸다. 

맨 뒤에서 추격해오던 적들은 앞의 대오가 항일련군인줄 알고 사격을 가했다. 이에 적들은 저들끼지 숱한 주검을 내면서 생사결단하고 맞붙고말았다. 

이번엔 적들이 심산에만 주의를 돌리는 틈을 타서 아군은 적들의 눈길이 덜 쏠리는 야산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행군이 간고할수록 도주자가 생겨나는 것이 막심한 문제였다. 도주자들은 인차 적에게 투항한후 항일련군의 종적을 일러바쳐 다시 추격, 혹은 포위속에 빠져들게 했다. 

심산을 버리고 가재수를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은 헌헌한 벌판이였다. 그러나 적들은 포대에서 아군을 빤히 내려다보면서도 건드리지 못했다. 주력이 산에 가 있다보니 부락에는 력량이 얼마 없는데다가 아군의 기세가 하도 당당해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아군은 대낮에 벌판을 버젓이 지나 수림지대로 들어가 밥도 해먹고 휴식도 할수 있었다. 

수림지대를 벗어나 다시 행군하고있을 때 적들이 뒤에서 추격해온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후 척후병들이 앞에도 적이 있다고 알려왔다. 뒤에서 쫓아오는 것은 일본군이고 앞에서 마주오는 것은 만주국부대였다. 아군은 적은 병력으로 뒤를 견제하게 한후 아무멋도 모르고 마주오고있는 위만군부대를 무찌르면서 포위를 돌파하려고 작전을 짠후 전투에 달라붙었다. 경위련장 오백룡이 맨 앞장에 서서 부대를 이끌고 마주오는 적들을 향해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만주국부대는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자 굉장한 부대와 맞붙은 줄 알고 배낭이며 짐짝들을 다 내던지고 꼬리빳빳이 퇴각했다. 아군은 적들이 던진 배낭들에서 먹을 것을 걷어서 걸머지고 꿰진 신발까지 갈아신고 대통로있는데까지 맹추격했다. 

드디여 분산행군하던 각 부대가 3개월남아되는 간고한 행군을 거쳐 북대정자에서 회사하게 되었다. 북대정자는 온통 축제마당으로 되었다. 100여일동안이나 사지에서 고생하다가 만난대원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웃고 뒹굴면서 회포를 나누었다. 

1939년 4월, 김일성의 주최하에 장백현 북대정자에서 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 령도간부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는 반년래의 유격활동의 경험교훈을 총결하고 금후의 활동방향을 연구, 필요시 병력을 집중하여 적을 타격하기로 결정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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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영원한 《품팔이》로 남을것인가? 인기글 한국방문취업비자가 만료되면서 한국에서 귀국했던 조선족들이 요즘 들어 적잖게 재출국을 원하고있다. 귀국후 1년이 채 안되면 사유서를 제기하고 한국에서 90일간 체류할수 있는 단기비자를 받을수 있는데 모두들 그거라도 받아서 한국에 다시 가고싶어한다. 귀국 1년후에 정상적인 비자발급이 가능해지면 재출국하겠다는 사람은 더욱 많다. 중국에서는 할일이 없어 심심하고 매일매일 돈만 펑펑 쓰면서 밥축을 내는것이 아깝다는것이다. 중국의 높아진 물가와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주위 여러가지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2013-02-26 15:39:53)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의 대표주자 김병호교수 인기글 국내 첫 민족리론 본과전업 창설, 국내 첫 민족리론정책전업 박사학위 수여점 획득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성공을 거두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수 없다. 조선족으로서 중국 민족리론 연구분야의 권위자로, 선두주자로 불리우고있는 중앙민족대학 맑스레닌주의학원, 중국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원 철학박사이며 박사연구생지도교사인 김병호(62세)교수, 그가 민족리론연구분야를 선택한데는 자신의 의지보다 상부의 배치에 따른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한시기 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2013-02-26 15:16:52)
조선,3월부터 외국인 3G 모바일 인터넷접속 허용 인기글 조선이 자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휴대폰 소지를 허용한데 이어 평양에 있는 외국인이 3G 네트워크를 통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 유일의 국영 통신사인 고려통신공사는 3월 1일부터 평양에 있는 외국인이 휴대폰, 태블릿PC 등 모바일기기로 3G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 AP통신은 "조선이 외국인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을 허가한 것은 올해 통신 분야에서 휴대폰 소지 허용에 이어 두번째로 정책을 조정한 것이다"며…(2013-02-25 08:24:25)
조선측, 한미군사연습은 "용인할수 없는 군사도발" 인기글 한국과 미국이 19일부터 24일까지 동부 수역에서 합동 대 잠수함훈련을 진행한다고 밝히자 조선측은 미국과 한국이 최근에 조선을 상대로 한 밀집한 군사훈련은 용인할수 없는 군사도발이며 반도의 긴장정세를 가심화할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군사연습은 한국과 미국이 "조선에 대처하기 위한" 이달의 세번째 합동군사훈련이다. 훈련 내용에는 탄도미사일 탐측과 추적, 적측 잠수함 탐측과 어뢰공격 대처, 해상초계기의 정찰과 공격 등 여러 해상과 공중 훈련이 망라된다. 한국 합동참모본부…(2013-02-21 12:15:12)
외국국적동포 업무처리 지침 주요 개정내용 인기글 대한민국 국적 취득한 날부터 방문취업 목적으로 친척초청 허용   재외동포(F-4) 자격부여 기능사 종목 합리적 조정   형사미성년(만14세 미만) 동포 영주자격(F-5) 변경 시 해외범죄경력증명 제출 면제   1. 방문취업(H-2) 자격   ○ 국적취득자 친척 초청에 대한 기간경과 규정 폐지   (현 행) 국민, 영주자격자(F-5-7), 유학생, 국적취득자(국적 취득 후 2년 경과 시)는 방문취업 목적으로 친척초청이 가능하다.   (개 선)…(2013-02-20 14:08:55)
김정은 48명 조선장령을 중장,소장에 진급시켜 인기글 조중사 1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원수는 13일 제0029호 명령을 하달하여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의 군계급을 진급시켰다. 김정은은 명령서에서 조선인민무장력량이 승리와 영광을 거듭하는 자랑스런 력사에는 인민군 지휘성원들이 김정일동지의 구상과 뜻을 받들어 자기를 잊고 분투한 노력이 깃들어있다고 지적하고나서 인민군 지휘성원들은 변함없는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전사와 학생으로서 당의 령도를 충심으로 옹호하고 주최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신성한 투쟁에서 응분의 역할을 …(2013-02-18 07:27:41)
한국 동포정책 새해 이렇게 달라진다 인기글 동포정책 관련 2013년 새해 무엇이 달라지나 ? 2013년 새해부터 한국내 외국인(귀화인, 재외동포 포함) 관련 한국내 제도적으로 달라지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이민국적청 신설= 오는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사상 첫여성대통령으로 취임을 하면서 새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재외동포들에게 제일 기쁜 소식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내 체류 외국인 업무를 총괄할 이민청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한국 법무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2013-02-04 08:36:49)
"평양 20~50세 시민 60% 휴대전화 보유"<홍콩誌> 인기글 "외국인, 국경 지역에서는 여전히 휴대전화 소지 못해" 평양에 사는 20~50세 시민 중 60%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북한 사회가 휴대전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는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 실태를 전하며 일부에서는 아이폰과 노키아 제품 등 스마트폰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 잡지는 최근 북한이 방문 외국인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일종의 '타협'으로 어쩔 수 없는 '개…(2013-02-04 08:25:36)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1) 인기글 출전을 앞둔 항일련군 조선인전사들 《로령회의》와 《혜산사건》 타락분자 비겁분자들 적에게 투항하고 반일조직 항일련군 엄중한 파괴를 당해 “제1차로령회의”“로구교사변”후 항일련군 제1로군은 영용히 싸워 일제의 부단한 “토벌”을 분쇄했지만 항일유격근거지도 크게 파괴되였으며 항일련군도 큰 …(2013-02-04 06: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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