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철호| 작성일 :13-03-01 05:59|

본문

대사하전적지기념비
 

 
대사하전투와 한총령전투

 
 
“워성타원” 전술로 적을 꾀여들인후 
악질적인 미야모또 “토벌대"를 섬멸


제3방면군의 설립

1939년 3월 11일, 류하부근의 밀영에서 한달나마 정치학습과 군사훈련을 한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와 소년철혈퇀, 2방면군 일부 및 제2군 제4사는 총사령원 양정우와 중공동남만특위서기이며 부총사령원 위증민의 인솔하에 화전현 북쪽에 있는 목기하림장을 들이친후 돈화, 화전, 안도, 무송 등 4개 현의 접경지대에 있는 중요한 교통요충지 따푸차이허로 진군해갔다. 

일제는 항일련군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하여 이곳에다 야전군무기창고를 세우고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저장하고있었다. 이 무기창고를 위만군 1개 영과 위만경찰 200여명이 지키고 있었다. 적들은 부락주위에는 토성물 쌓고 그밖에다 또 높은 나무울바자를 세웠다. 어찌나 경계가 삼엄한지 부락사람들도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다. 

따푸차이허에 항일련군과 련계를 맺고있는 장영춘이라고 하는 무장자위단원이 있었다. 아군은 장영춘을 통해 따푸차이허에 주둔하고 있는 주력부대가 외지로 “토벌”을 나가고 성안에는 지금 적들이 얼마 없다는것을 알아내냈다. 이에 양정우와 위증민은 따푸차이허를 들이칠 것을 결정했다. 

4월 7일 저녁 7시 30분, 제2군 4사는 산발을 타고 내려와 은밀히 서대문쪽에 접근하여 은페했다. 부대가 매복한지 얼마 안되여 서대문밖에 있던 위만군 몇이 말을 끌고 성안으로 들어오려고 성문밖에서 대문을 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대문을 열려던 적 보초가 어망결에 항일련군이 성문밖에 매복해있는 것을 발견하고 “공산군이 왔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뜻밖의 사태에 직면한 아군은 잠시라도 지체할수 없었다. 지휘부의 돌격명령과 함께 아군의 총탄이 서대문을 향해 비발치듯 날아갔다. 아군의 드센 공격에 배겨내지 못한 적들은 서대문을 버리고 시가로 물러났다. 서대문으로 돌입해 들어간 아군은 서쪽구역을 완전히 통제했다. 이때 경위려와 소년철혈퇀도 각각 동대문과 남대문을 들부시고 시가로 맹돌입해 들어갔다. 지방경찰대실, 경찰서, 일본군변영은 삽시에 아군의 손에 들어왔다. 전투에서 아군은 위만경찰부대 200여명과 일본경위 후지다 이찌후도와 만석척식출장소 주임 가이데 이이찌 등 일본인 20여명을 섬멸하였다. 

이어 진한장이 인솔하는 2군 5사와 5군 2사 5퇀은 련합하여 연길현을 거쳐 돈화 삼도구로 진군하다가 석두하자부근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맞다들어 격전을 벌려 일만군 32명을 격살하였다. 4월말, 부대는 안도현 청구자 “집단부락”을 들이쳐 적 6명을 격살하고 보총 30여자루와 탄알 1500여발을 로획했다. 6월 5일에는 항일련군 2군 4사 1퇀이 안도현 성북, 한총구를 습격, 일본교도관을 비롯한 위만군 2개 련 100여명을 전부 포로하고 경기관총, 보총, 권총 등을 로회했다. 그날 2군 5사는 오상현 랍림하삼림경찰대를 야습하여 100여명 로동자를 해방시키고 량식 등을 로획했다. 

제1로군 총사령부를 찾고있던 2방면군 한부대는 안도현 미혼진에서 5사 진한장부대와 만난후 한양구에 있는 위증민의 주둔지로 왔다. 이렇게 모인 부대가 바로 천보산전투를 벌렸던 것이다. 

7월말, 제2군 4사, 5사는 안도현 한양구에서 위증민의 사회하에 부대를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3방면군으로 개편했다. 지휘에 진한장, 부지휘에 후국충, 참모장에 박덕범이 임명되였다. 아래에 제13퇀, 제14퇀, 제15퇀을 두었다. 병력은 300여명이였다. 
3방면군이 설립된후 위증민과 진한장은 부대를 이끌고 안도, 돈화지구에서 련속하여 일만군을 격파했다. 그중에서도 제3방면군, 제2방면군 9퇀, 제5군 도정비부대 등 500여명 병력이 련합하여 대사하를 중심으로 하여 벌린 전투는 동만의 유격전쟁에서 전례없는 대작전이였으며 제3방면군의 전투기세를 떨친 싸움이였다. 

대사하에서의 격전 

대사하는 한요구동북쪽 안도현 소재지의 서북쪽의 위치해있는 규모가 큰 집단부락이였다. 부락은 토성으로 둘러쌓여있고 부락안에 있는 경찰서울안에는 높은 포대가 있었는데 적들은 거기에다 기관총을 걸어놓고 사방을 감시하고있었다. 부락에는 경찰 30여명과 무장자위단 수십명밖에 없었지만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안도(송강)와 명월구의 적들이 인차 도착할수 있어 서뿔리 공격하기엔 쉽잖은 곳이였다. 이에 아군은 “위성타원(圍城打援)전술”, 다시말하면 성을 포위하고 그 속에 든 적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오는 원군을 치는 전술을 쓰기로 했다. 즉 안도와 명월구의 적을 대사하에 끌어들여 소멸한다는것이였다. 

8월 23일, 위증민은 13퇀, 15퇀과 2방면군 9퇀의 일부 부대 300여명 병력을 인솔하여 사가점 큰길옆 서쪽 도랑홈에 약 2.5킬로메터의 폭을 두고 매복해있다가 명월구방면으로 오는 적의 증원병을 치기로 하고 진한장이 인솔하는 14퇀과 경위련 200여명을 대사하집단부락을 친 다음 대사하 남쪽에 매복하여 있다가 안도현성에서 오는 증원병을 습격하기로 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대사하를 공격할 임무를 맡은 부대는 대사하부락 토성밖에 매복해있었다. 아군의 계획에 의하면 0시에 보초가 교대하는 틈을 타 성안에 있는 지하일군 리홍산이 성문을 열고 나오면 공격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런데 날이 훤히 밝고있는데도 리홍산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리홍산은 뜻밖에도 전날밤에 양초구에 일이 있어 불리워갔던 것이다. 

아군은 하는수없이 날이 밝아 사람들이 물길러 나오는 기회에 공격하기로 했다. 성안에 우물이 없기에 날이 밝으면 적들은 보초를 철수하고 물 길러 주민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드디어 날이 환히 밝았다. 아군은 대문이 열리고 주민들이 물 길러 나오기를 도정신해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의 일이 또 벌어지고말았다. 
그번 전투에 직접 참가한적 있는 로항일전사 려영준씨는 항일투쟁회상기 《준엄한 시련속에서》에서 그때의 정경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난데없는 일본경찰 한놈이 대문밖으로 나왔다. 그는 우리가 채소밭에 매복해있는 것을 보고 픽 돌아서더니 부락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섯” 

토성에 붙어섰던 한 전사가 소리쳤다. 그때 나도 토성에 붙어서있었다. 뛰던 놈은 뒤를 흘끔 돌아보고는 또 경찰서쪽으로 곧추 달려가며 “공산당이 왔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성문북쪽에 숨었던 전사가 그놈을 당장에서 쏴죽였다. 이 바람에 마을안에선 호각소리가 “호르륵, 호르륵”하며 련이어 나더니 집안에 있던 놈들이 북달질하며 포대안에 들어가 총질하였다. 진한장은 전투명령을 내리고 각 련의 주공방향을 제시하였다. 토성밖에 매복해있던 전사들은 마을안으로 물밑듯 들어가는데 경찰서뜨락의 포대에서 기관총이 미친 듯이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탄알은 눈앞에 와 우박처럼 떨어져다. 우리는 담벽에 다가붙어 경찰서쪽으로 돌진해들어가다가 큰길을 건너지 못하고 사격선을 피하여 부근의 민가에 흩어져들어갔다. 이곳 집들은 기차굴처럼 길게 지은 줄집인데 아래웃집사이에는 간벽이 있었다. 적든 계속 총질하였다. 우리는 민가의 벽을 뚫고 나가 포대에 대고 사격하였다. 그런데 탄알은 포대벽을 뚫지 못하고 튕겨나왔다. 

적아의 교전은 치렬하였다. 적진을 노리고 있던 김수학패장이 한손에 수류탄을 쥐고 배밀이해 나갔다. 한 전사가 또 김패장의 뒤를 어어갔는데 그의 이름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포대높이는 5메터가량 되었다. 두 용사는 포대벽에 가붙어서 수류탄을 올리뿌렸다. 헌데 수류탄은 화구로 들어가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적들은 고함을 지르며 총질했다. 두 용사는 땅에 떨어진 수류탄을 쥐여 다시 올리뿌리려다가 그만 장렬히 희생되였다. 

적의 기관총수가 요란한 폭파소리에 놀라 대가리를 움츠리고 앉았다가 다시 쳐드는 순간 이여다. 1선에 매복해있던 동무들이 포대화구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누구의 탄알이 명중했는지 적의 기관총수가 맞아서 화력이 멎었다. 이 순간 우리는 경찰서의 토담을 넘어들어가 포대안에 수류탄을 밀어넣고 경찰서를 습격하였다. 뒤미처 대부대가 들어와 경찰과 자위단놈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대사하를 점령하였다... 

전반전투는 원 계획보다 훨씬 늦어졌다. 제3방면군 지휘 진한장은 부지휘 후국충에게 14퇀의 일부 병력을 이끌고 송강방면으로 달려가 적의 증원부대를 저격할 것을 명령했다. 저격부대는 전속력으로 소사하남쪽 산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군이 소사하 고개길에 거의 닿고있을 때 대사하로부터 급보를 받은 안도현성의 일본군은 9대의 자동차에 분승하여 아군이 매복하려던 고개를 넘어오고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적들은 유리한 지형에서 아군은 불리한 지형에서 싸우지 않으면 안되여였다. 

적탄이 비발치듯 날아왔으나 전사들은 노도와 같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면서 언덕진 고개우로 돌진해 나가다가 후국충부지휘와 14퇀 허자장, 정위 양형우(조선족)가 희생되였다. 지휘관을 잃은 전사들은 눈에 달이 올라 죽음을 겁내지 않고 일격에 돌진해들어갔다. 아군은 드디여 소사하언덕을 점령하였으며 왜놈지휘관놈들과 수많은 적병을 살상하였다. 


뱀을 굴에서 끌어내다

대사하를 치면 명월구에서 인차 오리라고 예견했던 적증원부대는 이날 낮에 오지 않아 류수촌 남구에 매복한 부대들은 하루종일 허탕을 치고말았다. 해가 진 다음 각 부대들은 류수촌집단부락을 중심으로 린근의 집단부락들을 분공하여 진공한후 하루밤을 류숙키로 하였다. 안길, 전동규부대들이 류수촌부락을 들이칠 때 적들의 저항은 드셌다. 50여명 경찰과 자위단은 맞불질 하면서 완강히 버티였으나 불과 5분도 채 안되여 아군은 적들을 무찌르고 부락을 점령했다. 

최현부대는 동량툰을 점령했다. 최현퇀장은 적의 경비전화를 리용하여 뱀을 굴에서 끌어내기로 했다. 하여 안도현소재지, 명월구 등 각처의 경찰서와 주재소들에 전화를 쳐 “우리 항일련군은 이미 대사하와 대장강, 동양툰을 점령하였다. 용기가 있으면 싸우러 오라!”고 위협조로 통고했다. 

자정이 되자 과연 증원병을 태운 적 트럭 6대가 동양툰에 들어섰다. 보초선에 있던 전사들이 적들을 발견하고 반격했다. 녀기관총사수 허성숙은 한 대원에게 빨리 지휘부에 가 알리라고 말하고 혼자서 기관총을 휘둘렀다. 이 전투에서 부대의 녀장군으로 불리우면서 사랑받던 허성숙은 불행하게도 적탄에 맞아 장렬히 희생되였다. 

적증원부대는 아군이 이미 종적을 감추고 없는지라 부랴부랴 송강쪽으로 내뺐다. 이튿날 아군은 또다시 전날에 포치하였던 매복지점에와 매복하였다. 송강에서 명월구로 가는 길은 이 길밖에 없기에 되돌아가는 적들은 반드시 이 길로 지날것이였다. 
점심때가 좀 지나서 일본군과 조선인 “특설부대”, 그리고 일본군가족 수명을 태운 대형 군용트럭 7대가 안도현성족으로부터 아군의 포치선으로 질주해왔다. 그중 한 대의 트럭에 앉은 적들은 대사하전투에서 요행 살아남은 적들이였다. 트럭은 아군 매복선남쪽 하단을 거쳐 2.5킬로메터쯤 질주하여 오다가 선두의 트럭이 정지하자 그 뒤로부터 따라오던 트럭이 전부 한곳에 집결되였다. 

아군의 기관총, 보총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어떤 놈은 자동차우에서 죽고 어떤 놈은 뛰여내리다 맞아죽었다. 불과 몇십분 사이에 적주력은 소멸되였으며 살아남은 적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남은 적도 도로서쪽 홈에 매복한 아군의 집중사격에 의하여 독안에 든 쥐신세가 되었다. 뒤이어 아군의 돌격신호가 울리였다. 

전투가 끝난 다음 너저분하게 널린 적군의 시체를 세여보니 100여구나 되었다. 미야모도는 운전실에서 나오지도 못한채 죽었다. 

이틀동안의 전투에서 제3방면군은 적 250여명을 살상포로하고 7정의 경기관총과 700여자루의 보총, 권총 및 여러문의 적탄통과 대량의 군수물품들을 로획하였다. 

한총령매복전

대사하전투후 제3방면군은 부대의 식량과 기타 군수품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총령에서 적들을 매복습격하기로 계획하였다. 보화기를 통하여 9월 25일에 일본군 마쯔시마부대가 돈화로부터 대포시하로 “추기토벌”을 나온다는 정보를 도청한후 제3방면군의 주력부와 제5군 제2사 정치부 주임인 도정비부대 도합 500여명은 9월 24일(음력 8월 12일) 한총령 남쪽비탈의 고해루에서 매복전을 펼치기로 작전, 제3방면군 지휘 진한장과 참모장 박득범의 령솔하에 목적지를 향해 강행군했다. 

이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리였는데 간혹 안개까지 끼여 동서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적들은 도로 량켠 200메터안의 초목들을 몽땅 베여버리고 번번한 개활지대를 만들어버렸는데 그 거리가 약 50킬로메터나 되었다. 뿐만아니라 한총령과 그 길가의 고지마다에는 높은 포대까지 쌓아놓고 주둔하면서 밤낮으로 아군의 행동을 경계하고있었다. 부대는 가을비와 안개를 리용하여 한총령의 요차즈에서 북으로 7.5킬로메터 떨어진 한총령남쪽기슭의 좁고도 긴산골짜기인 고해루부근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산세가 험준하고 수림이 꽉 우거져 매복전을 펼치기에 제격인곳이였다. 돈화에서 따푸차이허로 통하는 도로는 바로 이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뻗어있었다. 

진한장은 한 개 패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작은 산봉우리에서 전투를 지휘하였다. 25일 점심때쯤 드디여 놈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일본군소장 마쯔시마가 령솔하는 “토벌대”였다. 놈들은 12대의 트럭에 앉아오고있었다. 그속에는 50여면 위만경찰들을 실은 2대의 트럭도 있었다. 놈들의 자동차가 아군의 매복권내에 완전히 들어섰다. 

“땅!” 

사격명령을 알리는 신호총소리가 산곡간에 울려퍼졌다. 전사들은 놈들을 향해 몰사격을 퍼부었다. 전사들이 던진 수류탄은 호선을 그으면서 날아가 놈들의 머리우에서 련속 터졌다. 적자동차들은 하나하나 불길속에 휩싸이고말았다. 

그러나 놈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놈들은 력량을 조직하여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군은 화력을 몇 대의 자동차에만 집중한후 마쯔시마 소장을 쏴죽였다. 마쯔시마소장은 아직 자동차에서 내리지도 못한채 총알받이로 되고말았다. 놈들의 방어선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살아남은 놈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뒤에서 오던 놈들의 트럭도 머리를 돌려 오던길로 내뺐다. 돌격나팔소리가 울리자 아군은 혼란에 바진 적진으로 맹호마냥 돌진해들어갔다. 맹렬한 격전을 통해 아군은 적의 주력을 기본상 소멸해버렸다. 살아남은 적들은 꼬리빳빳이 도망쳤다. 

이번 전투에서 아군은 마쯔시마소장을 비롯한 일본군 100여명을 격사하고 자동차 1대를 불살라버렸으며 기관총 4점, 보총 100여자루, 탄알 70여상자를 로획했다.(계속)
0

글로벌한민족 목록

글로벌한민족 목록
[열람중]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4) 인기글 대사하전적지기념비 대사하전투와 한총령전투 “워성타원” 전술로 적을 꾀여들인후 악질적인 미야모또 “토벌대"를 섬멸 제3방면군의 설립 1939년 3월 11일, 류하부근의 밀영에서 한달나마 정치학습과 군사훈련을 한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와 소년철혈퇀, 2방면군…(2013-03-01 05:59:45)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3) 인기글 유서깊은 력사의 강 올기강 올기강전투와 천보산전투 제2방면군 두만강 넘나들며 일본군 짓부시고 연변인민 고향에 돌아온 자제병 열렬히 환영 올기강전투 1939년 4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은 장백현 북대정자회의후 조선의 무산지구로 진격, 대홍단전투 등을 벌리고 화룡현 광평…(2013-02-28 14:30:15)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2) 인기글 1939년 여름 화전밀영에서의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조선인장병들 고난의 행군  추위 기아 병마 일만군의 포위공격 이겨내면서 새로운 유격근거지개척 위해 고난의 행군 강행 일제의 “3성련합토벌” 1937년 7월부터 시작한 “3년숙정계획”에 근거하여 일제는 5만여명의 병력을 집중하여 3강지구에…(2013-02-28 14:23:01)
한국 KBS항일유적탐방팀 밀산 방문 인기글 —한흥동,십리와 등 한국 최초의 해외독립운동기지로 재확인  한국 독립운동 애국지사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과 후손들에게 정확한 력사와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2월 22일부터 23일까지 한국 KBS 김종환 감독, 김덕재 프로듀서, 연세대학 신주배 교수, 동양문화매체 김성천 대표 등 4명으로 구성된 한국 KBS 항일유적탐방팀이 한민족의 력사가 살아숨쉬고 있는 밀산시를 우호방문 했다.   행사는 맹고군 전임부시장에 대한 특별취재와 참여자들의…(2013-02-28 07:47:31)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 학문적으로 연구할 것” 인기글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 학문적으로 연구할 것” 2002년 KBS 2TV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한류’가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류는 케이팝(K-pop), 패션, 의료, 한식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일본, 중국, 동남아를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갈수록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기도 하다. 이 흐름을 타고 모든 한류 영역을 아우르는 연구자 모임 ‘세계한류학회’가 1월 28일 정식 출범했다. 창립총회와 국제학술…(2013-02-26 16:00:54)
조선족유학생,귀화자 방문취업 초청 요건 완화 인기글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국내 유학 중인 조선족 학생이 취업을 희망하는 부모를 한국으로 초청할 때 적용하는 방문취업 (H2) 초청 자격 요건이 일부 완화된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조선족 등 외국 국적 동포에 대한 업무처리 지침을 이처럼 개정, 25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이에 따라 조선족 등 동포 유학생이 부모나 배우자를 방문취업(H2) 목적으로 초청하려면 1학기 이상의 재학 요건만 채우면 된다. 종전에는 2학기 이상 등록하고 당해 학기에 B학점 이상…(2013-02-26 15:42:19)
조선족 영원한 《품팔이》로 남을것인가? 인기글 한국방문취업비자가 만료되면서 한국에서 귀국했던 조선족들이 요즘 들어 적잖게 재출국을 원하고있다. 귀국후 1년이 채 안되면 사유서를 제기하고 한국에서 90일간 체류할수 있는 단기비자를 받을수 있는데 모두들 그거라도 받아서 한국에 다시 가고싶어한다. 귀국 1년후에 정상적인 비자발급이 가능해지면 재출국하겠다는 사람은 더욱 많다. 중국에서는 할일이 없어 심심하고 매일매일 돈만 펑펑 쓰면서 밥축을 내는것이 아깝다는것이다. 중국의 높아진 물가와 그동안 떨어져 살았던 주위 여러가지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2013-02-26 15:39:53)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의 대표주자 김병호교수 인기글 국내 첫 민족리론 본과전업 창설, 국내 첫 민족리론정책전업 박사학위 수여점 획득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성공을 거두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수 없다. 조선족으로서 중국 민족리론 연구분야의 권위자로, 선두주자로 불리우고있는 중앙민족대학 맑스레닌주의학원, 중국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원 철학박사이며 박사연구생지도교사인 김병호(62세)교수, 그가 민족리론연구분야를 선택한데는 자신의 의지보다 상부의 배치에 따른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한시기 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2013-02-26 15:16:52)
조선,3월부터 외국인 3G 모바일 인터넷접속 허용 인기글 조선이 자국에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휴대폰 소지를 허용한데 이어 평양에 있는 외국인이 3G 네트워크를 통해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중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 유일의 국영 통신사인 고려통신공사는 3월 1일부터 평양에 있는 외국인이 휴대폰, 태블릿PC 등 모바일기기로 3G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 AP통신은 "조선이 외국인의 모바일 인터넷 사용을 허가한 것은 올해 통신 분야에서 휴대폰 소지 허용에 이어 두번째로 정책을 조정한 것이다"며…(2013-02-25 08:24:25)
조선측, 한미군사연습은 "용인할수 없는 군사도발" 인기글 한국과 미국이 19일부터 24일까지 동부 수역에서 합동 대 잠수함훈련을 진행한다고 밝히자 조선측은 미국과 한국이 최근에 조선을 상대로 한 밀집한 군사훈련은 용인할수 없는 군사도발이며 반도의 긴장정세를 가심화할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군사연습은 한국과 미국이 "조선에 대처하기 위한" 이달의 세번째 합동군사훈련이다. 훈련 내용에는 탄도미사일 탐측과 추적, 적측 잠수함 탐측과 어뢰공격 대처, 해상초계기의 정찰과 공격 등 여러 해상과 공중 훈련이 망라된다. 한국 합동참모본부…(2013-02-21 12:15:12)
외국국적동포 업무처리 지침 주요 개정내용 인기글 대한민국 국적 취득한 날부터 방문취업 목적으로 친척초청 허용   재외동포(F-4) 자격부여 기능사 종목 합리적 조정   형사미성년(만14세 미만) 동포 영주자격(F-5) 변경 시 해외범죄경력증명 제출 면제   1. 방문취업(H-2) 자격   ○ 국적취득자 친척 초청에 대한 기간경과 규정 폐지   (현 행) 국민, 영주자격자(F-5-7), 유학생, 국적취득자(국적 취득 후 2년 경과 시)는 방문취업 목적으로 친척초청이 가능하다.   (개 선)…(2013-02-20 14:08:55)
김정은 48명 조선장령을 중장,소장에 진급시켜 인기글 조중사 15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은원수는 13일 제0029호 명령을 하달하여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의 군계급을 진급시켰다. 김정은은 명령서에서 조선인민무장력량이 승리와 영광을 거듭하는 자랑스런 력사에는 인민군 지휘성원들이 김정일동지의 구상과 뜻을 받들어 자기를 잊고 분투한 노력이 깃들어있다고 지적하고나서 인민군 지휘성원들은 변함없는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전사와 학생으로서 당의 령도를 충심으로 옹호하고 주최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신성한 투쟁에서 응분의 역할을 …(2013-02-18 07:27:41)
한국 동포정책 새해 이렇게 달라진다 인기글 동포정책 관련 2013년 새해 무엇이 달라지나 ? 2013년 새해부터 한국내 외국인(귀화인, 재외동포 포함) 관련 한국내 제도적으로 달라지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이민국적청 신설= 오는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사상 첫여성대통령으로 취임을 하면서 새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재외동포들에게 제일 기쁜 소식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한국내 체류 외국인 업무를 총괄할 이민청을 설립한다는 것이다. 한국 법무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2013-02-04 08:36:49)
"평양 20~50세 시민 60% 휴대전화 보유"<홍콩誌> 인기글 "외국인, 국경 지역에서는 여전히 휴대전화 소지 못해" 평양에 사는 20~50세 시민 중 60%가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북한 사회가 휴대전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 최신호는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 실태를 전하며 일부에서는 아이폰과 노키아 제품 등 스마트폰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이 잡지는 최근 북한이 방문 외국인에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일종의 '타협'으로 어쩔 수 없는 '개…(2013-02-04 08:25:36)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1) 인기글 출전을 앞둔 항일련군 조선인전사들 《로령회의》와 《혜산사건》 타락분자 비겁분자들 적에게 투항하고 반일조직 항일련군 엄중한 파괴를 당해 “제1차로령회의”“로구교사변”후 항일련군 제1로군은 영용히 싸워 일제의 부단한 “토벌”을 분쇄했지만 항일유격근거지도 크게 파괴되였으며 항일련군도 큰 …(2013-02-04 06:23:20)
게시물 검색

공지사항 2025년 새해 건강복 많이 받으세요 !
延边聖山本草商贸有限公司(연변성산본초상무유한공사)微信 138-4339-0837 카톡전화번호 010-4816-0837
Copyright © 2006 吉ICP备2020005010号 住所 :延吉市北大新城 2号楼3010
企业法人注册号(법인사업자 등록번호):2224000000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