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에 비친 조선족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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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1-13 10:01|본문
조선족 출신 대학원생, 관련 석사논문 써
한국 사회는 조선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조선족 하면 어떤 이는 불법체류 노동자를, 다른 이는 중국땅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온 한민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방동광(26) 씨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한국 언론의 조선족 담론 변화와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언론에 게재된 조선족 관련 기사 분석을 통해 해답을 구하려 시도했다.
중국 옌볜(延邊)대 신문학부를 졸업하고 지난 2008년 한국으로 유학 온 방씨는 1992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언론의 조선족 관련 보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대상 신문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다.
그는 분석 기간을 1992~1997년, 1998~2001년, 2002~2009년 등 세 부분으로 다시 나눴다. 1992년은 한.중수교의 해였고 1997년은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였으며, 2001년은 중국이 베이징올림픽 유치하는 등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면서 한국 역시 중국에 대한 관심이 급속하게 커진 시점이었다는 게 시기 구분의 이유다.
방씨는 이 시기 두 신문에 나타난 조선족 관련 기사 중 414개를 샘플로 추출해 8개 범주로 분류했다. 이는 '한중 양국 매개자로서의 조선족', '민족문화 계승자로서의 조선족', '노동력으로서의 조선족', '인재로서 인정받는 조선족', '한국사회 파괴자로서의 조선족', '한국사회 피해자로서의 조선족', '한국사회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서의 조선족', '남북 양국 허브로서의 조선족' 등이 그것이다.
첫 번째 시기인 1992~1997년에 한국 언론에 비친 조선족의 모습은 주로 '민족문화 계승자로서의 조선족'과 '남북한 양국 허브로서의 조선족' 등이었다. 이 시기 132개 기사 중 두 범주의 기사가 절반 이상(53.0%)이었다.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이 두 범주가 주류를 이룬 까닭을 방씨는 당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론에서 찾았다.
'한국적인 고유가치와 전통문화를 가지고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세계화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한민족공동체 담론이 언론이 한중 수교 이후 새롭게 교류하게 된 조선족을 다루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 언론이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을 통해 북한 관련 소식을 얻으려 하면서 '남북 양국 허브로서 조선족'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그간 조선족의 이미지는 변색된다. 한국정부는 1999년 재미교포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재외동포법을 제정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가난한 재외동포는 재외동포에서 법적 대상에 제외됐다. 이들이 한국에 정주하게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1998~2001년의 언론도 이와 발맞춰 조선족을 '배제'하려 했다. 한국으로 밀입국한 조선족이 각종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는 식의 '한국사회 질서 파괴자'로 그리면서 말이다. 이 범주 기사의 비중이 이전 시기의 7.6%에서 14.6%로 2배로 뛰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조선족에 대한 시각이 또 변화한다. 중국 국민으로서 조선족, 즉 한중 양국 관계에서 조선족의 역할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
2002~2009년에 '한중 양국 매개자로서의 조선족'을 다룬 기사가 23.1%로 가장 많았다. 이전 두 기사엔 조선족을 이 측면에서 다룬 기사 비중은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아울러 이 시기 한국사회에 다문화가 이슈화되면서 '인재로서 인정받는 조선족', '한국사회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서 조선족'이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언론이 조선족 로커 최건, 재중도포 장률 감독, 프로기사 박문요 등 성공한 조선족 인사에 관한 기사를 많이 생산해 냄으로써 기존 조선족 배제의 논리에서 벗어나 조선족을 한국사회에 포섭시킬 수 있는 집단으로 각인시켰다고 방씨는 평가했다.
방씨는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은 누구인가'는 한국의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화했다"며 "한국 언론은 한국의 정치적 목적, 경제적 수요, 국제관계 필요에 의해 조선족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경험하는 다양성과 차이 등을 조선족을 사례로 해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새로운 인식 틀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는 조선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조선족 하면 어떤 이는 불법체류 노동자를, 다른 이는 중국땅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온 한민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방동광(26) 씨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 '한국 언론의 조선족 담론 변화와 정체성의 정치학'에서 이 같은 물음에 대해 언론에 게재된 조선족 관련 기사 분석을 통해 해답을 구하려 시도했다.
중국 옌볜(延邊)대 신문학부를 졸업하고 지난 2008년 한국으로 유학 온 방씨는 1992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언론의 조선족 관련 보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대상 신문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다.
그는 분석 기간을 1992~1997년, 1998~2001년, 2002~2009년 등 세 부분으로 다시 나눴다. 1992년은 한.중수교의 해였고 1997년은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해였으며, 2001년은 중국이 베이징올림픽 유치하는 등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면서 한국 역시 중국에 대한 관심이 급속하게 커진 시점이었다는 게 시기 구분의 이유다.
방씨는 이 시기 두 신문에 나타난 조선족 관련 기사 중 414개를 샘플로 추출해 8개 범주로 분류했다. 이는 '한중 양국 매개자로서의 조선족', '민족문화 계승자로서의 조선족', '노동력으로서의 조선족', '인재로서 인정받는 조선족', '한국사회 파괴자로서의 조선족', '한국사회 피해자로서의 조선족', '한국사회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서의 조선족', '남북 양국 허브로서의 조선족' 등이 그것이다.
첫 번째 시기인 1992~1997년에 한국 언론에 비친 조선족의 모습은 주로 '민족문화 계승자로서의 조선족'과 '남북한 양국 허브로서의 조선족' 등이었다. 이 시기 132개 기사 중 두 범주의 기사가 절반 이상(53.0%)이었다.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이 두 범주가 주류를 이룬 까닭을 방씨는 당시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론에서 찾았다.
'한국적인 고유가치와 전통문화를 가지고 세계로 뻗어나가자'는 세계화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한민족공동체 담론이 언론이 한중 수교 이후 새롭게 교류하게 된 조선족을 다루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 언론이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을 통해 북한 관련 소식을 얻으려 하면서 '남북 양국 허브로서 조선족' 이미지가 만들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그간 조선족의 이미지는 변색된다. 한국정부는 1999년 재미교포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재외동포법을 제정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가난한 재외동포는 재외동포에서 법적 대상에 제외됐다. 이들이 한국에 정주하게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1998~2001년의 언론도 이와 발맞춰 조선족을 '배제'하려 했다. 한국으로 밀입국한 조선족이 각종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는 식의 '한국사회 질서 파괴자'로 그리면서 말이다. 이 범주 기사의 비중이 이전 시기의 7.6%에서 14.6%로 2배로 뛰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조선족에 대한 시각이 또 변화한다. 중국 국민으로서 조선족, 즉 한중 양국 관계에서 조선족의 역할에 대해 주목하게 된 것.
2002~2009년에 '한중 양국 매개자로서의 조선족'을 다룬 기사가 23.1%로 가장 많았다. 이전 두 기사엔 조선족을 이 측면에서 다룬 기사 비중은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아울러 이 시기 한국사회에 다문화가 이슈화되면서 '인재로서 인정받는 조선족', '한국사회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서 조선족'이 그려지기도 했다.
특히 언론이 조선족 로커 최건, 재중도포 장률 감독, 프로기사 박문요 등 성공한 조선족 인사에 관한 기사를 많이 생산해 냄으로써 기존 조선족 배제의 논리에서 벗어나 조선족을 한국사회에 포섭시킬 수 있는 집단으로 각인시켰다고 방씨는 평가했다.
방씨는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은 누구인가'는 한국의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따라 변화했다"며 "한국 언론은 한국의 정치적 목적, 경제적 수요, 국제관계 필요에 의해 조선족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경험하는 다양성과 차이 등을 조선족을 사례로 해 민족정체성을 둘러싼 새로운 인식 틀을 만들어 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