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치우천황의 모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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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2-05-21 01:48|본문
蚩尤所处的时代,据《史记·五帝本纪》记载,正值“神农氏世衰”之时。
神农氏是中华民族历史上民明农耕生产工具耒、耜的一个氏族。《易·系辞》记:“神农氏作,[]木为耜,揉木为耒。耒耨之利,以教天下”。从此,在中华大地上,许多以狩猎和采集为主要谋生手段的族硌先后转向以农耕为主要生产方式。如《白虎通义》记:“古之人民皆食禽兽之肉。至于神农,人民众多,禽兽不足,于是神农因天之时,分地之利,制耒耜,教民农耕。神而化之,使民宜之,故谓之神农氏”。这是对狩猎肉食的族群转向农耕生产历史的追忆。又如《淮南子·修务训》记:“古者民茹草饮水,采草木之实,食螺蚌之肉,时多疾病毒伤之害。于是神农乃始教民播种五谷”。这又是对采储果实及螺蚌之肉为主食的族群转向农耕生产历史的记忆。
耒耜的发明是中国原始社会生产力的一次大飞跃,它奠定了中国原始农业的基础,导致了一个新的历史时代即“神农氏之世”的出现。神农氏功绩伟烈,被尊为“农皇”,又称“地皇”。《尚书大传·卷第四》说:“神农为农皇也。……神农以地纪,悉地力种谷疏,故托农皇于地”。指其功德之实质在发挥地力,亦称“地皇”。
在中华远古传说中,“皇”的意思有两层:一是有重大发明功大德美泽被天下者,“皇,君也,美也,大也”[1],如燧人氏发明个钻木燧取火而被尊为“燧皇”[2];伏羲氏作结绳而为网罟,用于捕兽捞鱼,并制定婚姻嫁娶之礼,使人类本身的繁衍进入健康有序的轨道,因而被尊为“羲皇”[3]。二是指不存在公共权力的早期原始社会,“道德元泊有似皇天,故称曰皇”[4],“烦一夫扰一妇以劳天下,不为皇也。不扰匹妇故为皇”[5]。其情景如《庄子·盗跖》所述:“神农之世,卧则居居,起则于于,民知其母,不知其父,与麋鹿共处,耕而食,织而衣,无有相害之心”。
“사기 오제본기”의 기록에 따르면 치우가 살고 있었던 시대는 바로 “신농씨가 세쇄”의 시기였다.
신농씨는 중화민족역사상 쟁기와 보습을 사용하던 농경생산용구의 한 씨족이었다. “의 계적”에 의하면 “신농씨는 [ ]목을 보습으로 하고, 유목을 쟁기로 하였고, 뇌누지리로 천하를 교육시켰다.” 이때부터 중화대지에서 많은 수렵과 채집으로 주요생계도모수단으로 하던 족락들이 선후하여 농경을 주요생산방식으로 하였다. 예를 들면”백호통의”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 사람들은 모두가 짐승의 고기를 먹었지만 신농씨는 백성이 많고 짐승이 부족해서 신농씨는 하늘과 땅의 유리한 시간을 이용하여 쟁기와 보습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 신(선)의 화신이고 백성들에게 맞았으므로 신농씨라고 불리었다.” 이것은 수렵을 해서 고기만 먹던 종족들이 농업생산에 들어선 역사적인 추억이다. 그리고 “회남자 수무훈”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 사람은 반디지치와 초목의 과실을 먹었다. 고기는 조개의 살을 먹었으므로 질병의 상해를 많이 받았다. 그리하여 신농씨는 백성들에게 오곡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 또한 과일을 채집하고 조개를 고기로 하여 먹던 사람들이 농경생산에 참여하는 역사적인 추억이다.
보습과 쟁기의 발명은 중국원시사회 생산력의 한 차례 큰 발전이었다. 그것은 중국원시사회 농업의 기초를 잘 다져놓았다. 이것은 또한 새로운 역사시대, 즉 “신농씨시대”를 초래하였다. 신농씨는 그 업적이 뛰어나서 “농황”, 혹은 “지황”으로 불린다. “상서대전 권제4”에서 이르기를 “신농씨는 농황이요. … …신농은 곡식과 야채에 익숙하여 농황으로 불린다.”고 말했다. 공덕의 실질이 토지의 생산력에 발휘해도 “지황”이라고 불린다.
중화상고전설중에서 “황”의 뜻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요한 발명을 하고 공덕이 높은 자이다.
“황은 군이요, 아름답고 크다.”.예를 들면 수인씨가나무에 구멍을 뚫어 불을 지핀 것으로 “수황”이라고 불리고 복희씨가 매듭을 지어 그물을 만들고 짐승을 잡고 고기를 잡았고, 혼인의 예를 세워 인류 자신의 번영을 건강하고 질서있는 궤도로 들어서게 함으로써 “희황”으로 존대받았다. 다른 하나는 공공권리가 존재하지 않는 조기 원시사회에서 “도덕이 황천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또 “남녀를 피곤하게 하는 자는 황이 아니요, 남녀를 시끄럽게 하지 않는 자가 황이다”고 하였다. 그 정경은 마치 “장자 도척”에서 이르는 것 처럼 “신농의 시대에는 臥則居居,起則於於(무슨 말인지 모름), 사람들은 자기 어머니만 알고 아버지는 모르고 사불상들과 같이 있고 농사를 짓고 옷을 지으며 그들을 해칠 마음은 없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09-04 08:45:38 在中한인소식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