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 어떻게 망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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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2-09-04 09:29|본문
고조선 , 어떻게 망했는가?
두 번의 천도
고조선은 건국한 지 1048년 이 지난 지난 22대 색불루 단군에 이르러 백악산 아사달(현재의 길림성 장춘)로 천도하게 된다. 원래 단군의 자리는 아들에게 세습되거나 오가 중에서 가장 덕망이 높은 사람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색불루 단군은 정치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단군의 자리에 오른뒤, 도읍지를 자신의 근거지인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그리고 그동안 병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번한과 마한에 병권의 일부를 나누어줌으로써 삼한 체제의 동요가 서서히 일기 시작하였다.
이후 860년 동안 삼한제도로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며 번영을 누리던 고조선은 43대 물리 단군의 재위 말기인 BCE 426년에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사냥꾼 두목 우화충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우화충의 무리들은 백악산 아사달의 도성을 급습, 점거하였고 물리 단군은 피난길에 붕어하고 말았다. 이는 마치 후한 말기의 황건적의 난이나 당나라때 안록산의 난처럼 고조선을 망운으로 몰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구물 단군이 장당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백성들을 규합하고 때 마침 도성에 밀어닥친 홍수에 힘입어 반역의 무리를 손쉽게 소탕한다. 그후 구물 장군은 모든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44대 단군으로 즉위한뒤 국정을 쇄신하기 위해 국호를 조선에서 대부여로 개칭하고 백악산에서 당당경(요령성 개원)으로 천도하였다. 그런데 고조선의 이 마지막 천도에 대해서 삼국유사 [고조선기]는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했기 때문’이라고 엉뚱하게 기록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중국에서 왜곡 날조한 가공의 역사를 꿰맞추기 위해 고조선사의 허리를 자르고 기자조선을 끼워넣은 것이다. 이는 당시의 학자 , 승려,관리들이 얼마나 모화사대 사상에 물들어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삼조선 체제로의 개편과 고조선의 몰락
구물 단군이 반란을 진압하고 등극하였으나 혼란의 와중에서 이미 진한의 중앙정부 권력은 크게 약화되고 번한가ㅗ 마한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이에 삼한관경의 체제는 무너지고 대신 두 분조의 독립된 병권이 인정되는 진조선,번조선,막조선의 삼조선 체제로 개편되었다. 중앙정부인 진조선의 권한이 축소되고 ‘ 좌우의 두 조선’이 형식적으로 진조선을 받드는 형국이 되자 장군들의 반역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고조선은 점점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BCE 238년 47세 고열가 단군에 이르러 마침내 고조선은 2096년의 장구한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어싿.
한편 고조선의 멸망을 바로 앞둔 BCE 239년 해모수가 북부여를 일으켜 고조선의 국통을 계승하였으며 그후 BCE 194년에는 번조선 준왕이 거짓으로 항복하고 들어온 한족 위만에게 나라를 찬탈당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필자는 지금의 혼빠진 역사학계를 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사가들은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고조선이 한족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더욱이 진조선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환란 속에서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 시대가 마감된 것은 찬적 위만이 번조선을 점거하기 44년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처해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겟는가!!
요컨대 단군조선은 지금의 강단사학이 주장하는것처럼 중국 한족의 위세에 눌려 망한 것이 아니다. 병권을 셋으로 나누어 삼조선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경영하게 됨에 따라 국력의 구심점이 없어져서 내란에 스스로 멸망한 것이다.
고조선은 원래 신교의 제사장인 단군왕검이 삼신일체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던 신정국가였다. 따라서 삼한제도의 쇠퇴는 곧 종교의식의 약화에 따른 신교문화의 붕괴과정으로 보아야 하며 그 첫 번째 과정이 바로 삼한(진한,번한,마한)에서 삼조선(진조선,번조선,막조선)으로 개편된 것이다.
요컨대 고조선은 47대 단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실존국가라는 것. 삼한 관경제로 국경만 셋으로 나누어 대단군이 병권을 장악하고 전체를 다스렸다는 것. 그리고 수도를 송화강의 아사달-> 백악관 아사달-> 장당경으로 세 번 옮기면서 고조선 말기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었다는 것 이것이신교문화의 정통사서가 전하는 고조선의 참모습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알려면 무엇보다 47대 단군들에 대한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해야한다.
개벽실제상황 2부 대한의문 218p~222p
한편 고조선의 멸망을 바로 앞둔 BCE 239년 해모수가 북부여를 일으켜 고조선의 국통을 계승하였으며 그후 BCE 194년에는 번조선 준왕이 거짓으로 항복하고 들어온 한족 위만에게 나라를 찬탈당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필자는 지금의 혼빠진 역사학계를 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사가들은 마치 준왕이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고조선이 한족에게 멸망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무엇인가?
준왕은 고조선의 서쪽 날개였던 번조선의 부단군이었을 뿐이다. 더욱이 진조선의 마지막 제왕인 고열가 단군이 장수들의 거듭된 환란 속에서 퇴위하여 고조선 본조 시대가 마감된 것은 찬적 위만이 번조선을 점거하기 44년전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히 고열가 단군 시절 중국은 춘추전국시대, 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처해있었다. 사실이 그러할진대 당시 한족이 고조선을 위협한다거나 고조선을 찬탈할 여력이 어디 있었겟는가!!
요컨대 단군조선은 지금의 강단사학이 주장하는것처럼 중국 한족의 위세에 눌려 망한 것이 아니다. 병권을 셋으로 나누어 삼조선이 독자적으로 나라를 경영하게 됨에 따라 국력의 구심점이 없어져서 내란에 스스로 멸망한 것이다.
고조선은 원래 신교의 제사장인 단군왕검이 삼신일체의 원리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던 신정국가였다. 따라서 삼한제도의 쇠퇴는 곧 종교의식의 약화에 따른 신교문화의 붕괴과정으로 보아야 하며 그 첫 번째 과정이 바로 삼한(진한,번한,마한)에서 삼조선(진조선,번조선,막조선)으로 개편된 것이다.
요컨대 고조선은 47대 단군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실존국가라는 것. 삼한 관경제로 국경만 셋으로 나누어 대단군이 병권을 장악하고 전체를 다스렸다는 것. 그리고 수도를 송화강의 아사달-> 백악관 아사달-> 장당경으로 세 번 옮기면서 고조선 말기에 나라 이름을 대부여로 바꾸었다는 것 이것이신교문화의 정통사서가 전하는 고조선의 참모습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알려면 무엇보다 47대 단군들에 대한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해야한다.
개벽실제상황 2부 대한의문 218p~22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