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한류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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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2-10-30 14:24|본문
중국 외교부 산하 한 단체가 인솔해서 한국에 온 중국청년대표단을 필자가 일하는 곳에서 안내할 기회가 있었다. 150명의 중국 대학생들과 젊은 공무원들로 구성된 이 대표단은 새만금 사업을 아주 흥미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정부가 주도적으로 하는 국책사업이고, 각종 영상을 통해 10년 후 20년 후 비전을 제시하니 더 깊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중국 일반인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투자자들도 당장의 앞보다는 먼 미래를 보는데 익숙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상하이의 푸둥도 그렇고, 톈진의 빈하이도 그렇지만 그들에게 10년이란 시간은 하늘과 땅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방문단의 만찬은 군산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의 시설은 상당히 열악한 편이어서 나름 제대로 된 행사를 하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전통공연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공연은 여고생들이 주축으로 된 댄스팀이었다. 이들은 강남스타일 등 유행음악에 맞추어 발랄한 공연을 했다. 중국 학생들도 이미 익숙한 음조여서인지 다들 즐겁게 관람했다.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두 번째 전통음악 공연이었다. 판소리, 대금독주, 민요로 이어지는 공연을 중국 참가자들은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그들이 가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의 전통악기에 대한 관심과 그 음을 느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관심도를 보면서 필자는 중국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존재감이 있는 한류(韓流)를 다시금 생각해 봤다. 필자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던 98년 10월은 중국에 한류가 처음 발을 디딘 시기였다. ‘사랑이 뭐길레’가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중국에서 살기 시작한 99년부터는 한류가 본격적으로 중국 대중문화 속에 파고들었다. 톈진 청소년들의 놀이마당인 고문화거리 앞 공원에는 HOT 팬클럽의 플랜카드가 걸려서 신기했다. 드라마에서도 한류의 바람은 강해져 김희선 등은 중국의 국가급 배우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 무렵 필자는 한 계간지에 한류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한류, 그 흐름과 막힘’/ 창작과 비평 겨울호) 필자가 그 끝말에서 쓴 글은 “그렇다면 한류도 1980년대 중국을 풍미하다가 사라졌던 인도 문화와 같은 운명일까. 가장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인도가 정신문화 등 비물질적인 요소로 중국에 찾아든 반면, 한류는 중국인들 스스로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적인 요소와 더불어 각종 마케팅 기법이 함유된 문화 상품과 함께 접근한다는 점이다. 다만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고, 고집해야 할 우리만의 것도 없이 시류에 따라 부유하는 지금의 한류가 분명한 제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대하(大河)에 휩쓸려버릴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크다.”고 썼다.
이 글을 쓴 지 1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사실 중국 내에서 한류의 위상은 이미 정점을 지났다. 독특한 우리 것과 음식, 의료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잘 버무린 ‘대장금’이 가장 정점이었다. 물론 드라마에서의 한류는 중국 정부가 한국 드라마의 지나친 인기를 염려해 제어한 측면도 있었지만 한 때 중국을 풍미했던 인도 영화처럼 이제 더 이상 신선한 즐길거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요 역시 마찬가지다. 초반기 아이돌들을 대신할 스타들이 탄생하지 못했다. 또 중국 내에서 가요 한류의 퇴조는 공연문화 등 수익구조로 잘 전환되지 못한 마케팅의 부재와 불법저작권 문제가 창궐하는 중국적 특성이 가져온 불행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한류가 완전히 퇴조한 것은 아니다. 우선 한국 드라마의 장점을 본 중국 콘텐츠 제작자는 초반기에 한국식 극본을 요구했다. 하지만 비용의 문제로 중급 작가들이 중국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음에 분 바람은 중국으로 건너간 연기자였다. 초반기부터 중국으로 건너간 장나라를 비롯해 김희선 등 많은 배우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높은 개런티를 받은 경우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존재감을 갖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흐름도 서서히 퇴조하는 경향이 있다.
가요 쪽도 초반기 인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후발 아이돌 그룹 등도 팬층을 갖기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좀 늦기는 했지만 시나 등지에 전용 페이지가 만들어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중문화가 세계로 퍼지는 현상은 놀라운 것이다. 우선 각국의 다른 가사의 벽을 넘어야 한다. 또 전통의 음조를 넘어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온라인의 발달은 코드를 넘어선 대중문화 상품이 얼마나 빠르게 세계로 확산될 수 있는지도 증명한다.
중국에서도 이런 코드는 변함이 없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두 가지 이유를 필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우선 한국은 중국이 잊어가고 있는 동양문화의 정수 몇 가지가 있다. 가족 간의 정, 가정에서의 권위의식 등이다. 또 자신의 노력에 따라 더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드라마에 많다. ‘사랑이 뭐길래’나 ‘목욕탕집 남자들’, ‘소문난 칠공주’ 등은 가족 간의 화합을 잘 녹여낸 드라마로 재방송까지 중국 최고시청률을 경신한 드라마들이다. 반면에 다양한 관심거리를 잘 녹여낸 ‘대장금’은 수라간 궁녀에서 어의까지 오른 대장금의 신분상승도 적지 않은 호기심 거리다. 자신의 주소지조차 바꿀 수 없는 후코우 제도로 신분상승이 쉽지 않은 중국인들에게는 이런 코드가 상당히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중국보다 한발 빠르게 생활 여건이 대중문화에 녹아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소비 규모나 양은 한국을 초과한 지역이 많지만 대중문화에 녹아있는 소비 수준은 중국에 비해 한국이 아직도 높다. 이런 점들은 ‘미용 한류’로 연결되면서 한국 연예인에 대한 동경 등으로 이어졌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2000년에 필자가 쓴 내용은 지금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되 문화 우월주의로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중국에서 ‘강릉 단오제’를, 한국에서 ‘연변 아리랑’을 문제 삼은 갈등을 재현하지 않아야 한다. 단오는 중국에서 시작된 전통명절이 맞지만 강릉에서 그 명절을 현지화해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만들었다면 ‘강릉 단오제’는 한국의 문화유산이 된다. 마찬가지로 아리랑은 한국의 전통음조가 맞지만 중국 동포들의 지역적 애환을 담은 ‘연변 아리랑’은 현재 중국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한 나라가 독점한다고 해서 독점되는 것도 아니고, 특히 대중에게는 더욱 먹히지 않는다.
중국의 엘리트 청년들과 공무원이 판소리나 민요에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창자의 깊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느낌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국경을 의식하지 않고, 창작자들의 열정이 살아있는 콘텐츠라면 중국이든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식의 화법을 빌려서 말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문화에서 국가는 그저 선긋기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이번 방문단의 만찬은 군산의 한 호텔에서 있었다. 우리나라 지방 도시들의 시설은 상당히 열악한 편이어서 나름 제대로 된 행사를 하기에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전통공연이었던 것 같다.
첫 번째 공연은 여고생들이 주축으로 된 댄스팀이었다. 이들은 강남스타일 등 유행음악에 맞추어 발랄한 공연을 했다. 중국 학생들도 이미 익숙한 음조여서인지 다들 즐겁게 관람했다.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두 번째 전통음악 공연이었다. 판소리, 대금독주, 민요로 이어지는 공연을 중국 참가자들은 아주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그들이 가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의 전통악기에 대한 관심과 그 음을 느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관심도를 보면서 필자는 중국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존재감이 있는 한류(韓流)를 다시금 생각해 봤다. 필자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던 98년 10월은 중국에 한류가 처음 발을 디딘 시기였다. ‘사랑이 뭐길레’가 공전의 히트를 하면서 드라마를 통해 한국을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중국에서 살기 시작한 99년부터는 한류가 본격적으로 중국 대중문화 속에 파고들었다. 톈진 청소년들의 놀이마당인 고문화거리 앞 공원에는 HOT 팬클럽의 플랜카드가 걸려서 신기했다. 드라마에서도 한류의 바람은 강해져 김희선 등은 중국의 국가급 배우로 인식될 정도였다.
그 무렵 필자는 한 계간지에 한류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한류, 그 흐름과 막힘’/ 창작과 비평 겨울호) 필자가 그 끝말에서 쓴 글은 “그렇다면 한류도 1980년대 중국을 풍미하다가 사라졌던 인도 문화와 같은 운명일까. 가장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인도가 정신문화 등 비물질적인 요소로 중국에 찾아든 반면, 한류는 중국인들 스스로가 가장 중시하는 경제적인 요소와 더불어 각종 마케팅 기법이 함유된 문화 상품과 함께 접근한다는 점이다. 다만 정체성도 뚜렷하지 않고, 고집해야 할 우리만의 것도 없이 시류에 따라 부유하는 지금의 한류가 분명한 제 위치를 찾지 못한다면, 대하(大河)에 휩쓸려버릴 수 있는 가능성 역시 크다.”고 썼다.
이 글을 쓴 지 1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사실 중국 내에서 한류의 위상은 이미 정점을 지났다. 독특한 우리 것과 음식, 의료 등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잘 버무린 ‘대장금’이 가장 정점이었다. 물론 드라마에서의 한류는 중국 정부가 한국 드라마의 지나친 인기를 염려해 제어한 측면도 있었지만 한 때 중국을 풍미했던 인도 영화처럼 이제 더 이상 신선한 즐길거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요 역시 마찬가지다. 초반기 아이돌들을 대신할 스타들이 탄생하지 못했다. 또 중국 내에서 가요 한류의 퇴조는 공연문화 등 수익구조로 잘 전환되지 못한 마케팅의 부재와 불법저작권 문제가 창궐하는 중국적 특성이 가져온 불행한 결과였다.
그렇다고 중국에서 한류가 완전히 퇴조한 것은 아니다. 우선 한국 드라마의 장점을 본 중국 콘텐츠 제작자는 초반기에 한국식 극본을 요구했다. 하지만 비용의 문제로 중급 작가들이 중국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음에 분 바람은 중국으로 건너간 연기자였다. 초반기부터 중국으로 건너간 장나라를 비롯해 김희선 등 많은 배우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이들은 높은 개런티를 받은 경우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확실한 존재감을 갖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흐름도 서서히 퇴조하는 경향이 있다.
가요 쪽도 초반기 인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후발 아이돌 그룹 등도 팬층을 갖기 시작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좀 늦기는 했지만 시나 등지에 전용 페이지가 만들어져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중문화가 세계로 퍼지는 현상은 놀라운 것이다. 우선 각국의 다른 가사의 벽을 넘어야 한다. 또 전통의 음조를 넘어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온라인의 발달은 코드를 넘어선 대중문화 상품이 얼마나 빠르게 세계로 확산될 수 있는지도 증명한다.
중국에서도 이런 코드는 변함이 없다. 사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두 가지 이유를 필자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우선 한국은 중국이 잊어가고 있는 동양문화의 정수 몇 가지가 있다. 가족 간의 정, 가정에서의 권위의식 등이다. 또 자신의 노력에 따라 더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드라마에 많다. ‘사랑이 뭐길래’나 ‘목욕탕집 남자들’, ‘소문난 칠공주’ 등은 가족 간의 화합을 잘 녹여낸 드라마로 재방송까지 중국 최고시청률을 경신한 드라마들이다. 반면에 다양한 관심거리를 잘 녹여낸 ‘대장금’은 수라간 궁녀에서 어의까지 오른 대장금의 신분상승도 적지 않은 호기심 거리다. 자신의 주소지조차 바꿀 수 없는 후코우 제도로 신분상승이 쉽지 않은 중국인들에게는 이런 코드가 상당히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중국보다 한발 빠르게 생활 여건이 대중문화에 녹아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소비 규모나 양은 한국을 초과한 지역이 많지만 대중문화에 녹아있는 소비 수준은 중국에 비해 한국이 아직도 높다. 이런 점들은 ‘미용 한류’로 연결되면서 한국 연예인에 대한 동경 등으로 이어졌다.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2000년에 필자가 쓴 내용은 지금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우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되 문화 우월주의로 빠지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때 중국에서 ‘강릉 단오제’를, 한국에서 ‘연변 아리랑’을 문제 삼은 갈등을 재현하지 않아야 한다. 단오는 중국에서 시작된 전통명절이 맞지만 강릉에서 그 명절을 현지화해 독특한 문화유산으로 만들었다면 ‘강릉 단오제’는 한국의 문화유산이 된다. 마찬가지로 아리랑은 한국의 전통음조가 맞지만 중국 동포들의 지역적 애환을 담은 ‘연변 아리랑’은 현재 중국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는 한 나라가 독점한다고 해서 독점되는 것도 아니고, 특히 대중에게는 더욱 먹히지 않는다.
중국의 엘리트 청년들과 공무원이 판소리나 민요에 깊은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창자의 깊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느낌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국경을 의식하지 않고, 창작자들의 열정이 살아있는 콘텐츠라면 중국이든 어디든지 통할 수 있다.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식의 화법을 빌려서 말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문화에서 국가는 그저 선긋기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조창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