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의 대표주자 김병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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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3-02-26 15:16|본문
국내 첫 민족리론 본과전업 창설, 국내 첫 민족리론정책전업 박사학위 수여점 획득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성공을 거두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수 없다. 조선족으로서 중국 민족리론 연구분야의 권위자로, 선두주자로 불리우고있는 중앙민족대학 맑스레닌주의학원, 중국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원 철학박사이며 박사연구생지도교사인 김병호(62세)교수, 그가 민족리론연구분야를 선택한데는 자신의 의지보다 상부의 배치에 따른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한시기 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 레닌의 민족리론에 관한 책자들을 읽으면서 갖게 된 작은 흥취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나가는 정열적인 성격은 그로 하여금 이 분야에 깊이 매료되게 하였으며 그리고 장장 38년에 이르는 민족리론에 관한 부단한 탐구는 김병호교수를 오늘의 자리에 세우기에 이른다.
지난 16일 북경행 취재에서 첫번째로 만난 김병호교수. 북경의 한 지인으로부터 련락번호를 받고 무작정 취재를 요청했는데 고맙게도 그날로 취재가 약속되였다. 취재는 김병호교수의 사무실에서 시작되였다.
거의 절반 벽면이 책궤로 둘러싸인 김병호교수의 사무실은 유명한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연구 전문가의 사무실이라 하기에는 어쩐지 비좁고 허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책상주변에 쌓여있는 론문집들이나 도서들을 보면서 38년간 민족리론 연구와 교수에 종사해온 한 학술인사의 폭넓은 연구와 화려한 학술인생 등 참모습을 충분히 감지할수 있어 더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민족리론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온 38년
흑룡강성 연수현 태생인 김병호교수는 1974년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뒤 학교에 남게 되면서 장장 40년간 민족대학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중 민족리론, 민족정책 연구에 종사한 경력만 38년에 달한다. 그렇다보니 정년퇴직한 분들을 제외하면 그는 가히 민족리론연구분야의 원로로 불리우기도 한다.
“학교때 정치, 당사, 과학적사회주의 등 리론을 폭넓게 배웠는데 이는 내가 민족리론연구를 벌려나가는 토대로 되였다. 석사과정은 민족학에서의 민족리론이였고 박사과정은 철학을 공부했다.”
김병호교수는 흑룡강성에서 조선족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레닌의 민족리론에 관한 책자를 읽게 되였는데 그러다보니 민족리론에 어느 정도 흥취를 갖게 되였고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뒤 상부에서 그에게 민족리론에 관한 강의를 맡겼을 때 초기 흥취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으로 강의에 나선게 어느덧 장장 38년 되기에 이른것이였다.
중앙민족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38년간 김병호교수는 두차례 북경시 우수교원칭호를 수여받았고 1993년에는 정부 특수수당금을 향수받는, 국가특출공헌전문가로 선정되였으며 2002년에는 보산철강교육기금 우수교사상을, 2003년에는 첫기 북경시 대학교 교학명사(名师)로 평의되였다. 또 이해 전국대학교 교학명사로 평의되면서 김병호교수는 전국 민족대학의 첫 국가급교학명사로 되였다. 2004년에는 수도 5.1로력상을 받았는가 하면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첫기 특출공헌전문가로 평의되였다.
김병호교수는 민족리론연구와 접촉하면서 국내 첫 민족리론본과전업 창설에 참여하였고 민족리론전업에 관련된 학과목을 내왔으며 그를 선두로 국내 첫번째 맑스주의민족리론 및 정책전업 석사, 박사 학위 수여점을 따냄으로써 전국적으로 첫 맑스주의 민족 리론 및 정책 전업 박사생지도교사로 되였다.
그가 가르친 《맑스주의민족리론기초》 학과목은 2003년 북경시 정품과목으로 선정되였고 2008년 그가 책임지고 위주로 강의한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학과목도 북경시 정품과목으로 선정되였으며 2010년에는 그가 이끈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교수팀이 북경시 우수교수팀으로 선정되였다. 현재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학과는 부, 위원회급 중점학과, “211프로젝트”와 “985프로젝트” 중점건설학과로 되여 중국내 가장 독창적이고 중국특색을 띤 사회과학학과로 자리잡았다.
김병호교수는 그동안 전국 민족대학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교재를 조직, 편찬하였으며 전국 중소학교 민족단결교육교재, 북경시 정품교재인 《중국공산당 민족강령정책통론》, “9.5”기간 국가급 중점교재인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11.5”기간 국가급 중점교재인 《민족리론기초》, 향항, 오문 공무원강습교재인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및 민족리론전업 본과생, 연구생 교재 20여부를 조직 편찬하였는데 적지 않은 교재가 성, 부급 상을 따냈다. 례하면 《민족리론통론》은 1995년 제3회 전국대학교 우수교과서(민족종류) 2등상을 획득했고 2002년 북경시 우수교재대상으로, 2007년 국가 “11.5”계획 중점교재대상으로 선정되였고 《중국공산당 민족강령정책통론》(주필)은 2004년 북경시 우수교재로, 《민족관계리론통론》은 2009년 북경지 정품교재 중점대상으로 선정되였다.
김병호교수가 국내외적으로 출판한 도서나 론문들에서 그의 남다른 활약을 보아낼수 있었다. 그동안 김병호교수는 국내에서 저서(공저 포함) 68부 출판하고 외국에서 저서 2부 출판했으며 국내에서 470여편, 외국에서 30여편 도합 500여편의 론문을 발표했는데 론문, 저서들중 국가 부급, 성급, 시급 상을 22번 획득한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1등상 7차, 2등상 8차, 3등상 7차 된다. 《민족리론통론》, 《중국공산당 민족강령정책통론》, 《민족관계 리론통론》, 《민족문제개론》, 《중국민족리론백년발전》 등은 그의 주요한 대표작으로서 지금도 중국 민족리론연구분야에서의 중요한 저서로 역할을 발휘하고있다.
1994년 5월에 민족대학출판사는 김병호교수의 《민족리론통론》을 출판했는데 그가 20년간의 교수와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자는 출판되자마자 학술계의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중국민족리론학과발전에서 하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민족리론학발전에서의 리정비”라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름난 경제학자이며 민족리론학자인 시정일교수는 “이러한 리론거작은 우리 나라 민족리론연구가운데서 보기 드문 도서”라고 평가했다.
김병호교수는 전국의 민족리론과 민족정책과 관련된 학술토론회의를 31차 조직하거나 참여했고 심포지엄, 강습반, 연구생심포지엄 14차 조직했으며 국제회의 4차 주재하면서 중국 민족리론 권위로서의 위상과 함께 우리 민족의 기상을 떨쳤다. 그동안 맡은 국가, 성부급 연구과제와 국외 연구과제가 35개 항목에 달하며 국제학술회의에 33차 참가하면서 중국의 민족정책을 대외에 널리 홍보해왔다고 한다.
또 다년간 민족리론연구에 종사해오다보니 국내적으로 이 분야에 적지 않은 제자들이 포진해있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청해성에서 민족리론에 관한 한차례 학술회의가 열렸는데 학술회의 참가자 절반정도가 김병호교수의 제자들이였다고 한다. 마침 그때 김병호교수의 생일과 겹쳐지다보니 그 기회에 제자들은 스승을 모시고 조촐하지만 뜻깊은 한차례 생일파티를 열었는가 하면 직접 그의 사진과 영예를 담은 자그마한 화첩을 만들어 스승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그가 석사, 박사 과정을 직접 가르친 제자 2명이 부교장으로 제발되였다고 한다.
“자식교육에 제대로 된 정력과 심혈 기울여야”
조선족으로서 김병호교수는 민족리론을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과 관계되는 리론연구를 활발히 펼쳐나갔으며 조선족의 이동, 교육, 인구 등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조선족인구이동이 심화되면서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나는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에 조선족거주지가 형성된다고 예견하였는데 실제 오늘날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에는 상당수의 조선족들이 집거해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90년대 제4차 인구보편조사때 김병호교수는 흑룡강성의 조선족마을들을 조사하면서 중국에서 처음으로 조선족인구에 관한 전문연구저서를 출간했는데 그 도서는 후일 일본이나 한국의 연구학자들이 참고하는 중요한 자료로 되였으며 일본 오사까경제법과대학에 의해 일본어로도 출판되였다고 한다. 그가 출판한 책자가운데는 조선족과 관련된 도서들도 적지 않았는데 독자 집필한 《중국 조선족인구간론》을 비롯하여 주필을 담당한 《중국의 민족문제와 조선족》, 《연수현 조선족 100년사》, 《중국조선족 인구문제연구》, 《중국조선족산재지역 민족교육문제》 등은 폭넓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조선족들이 직면한 다방면의 문제들을 다루기도 했다. 특히 《연수현조선족 100년사》는 한개 현급지방의 조선족력사를 우리 글로 기술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민족리론과 민족정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의 허다한 변화를 목격하고 료해하고 연구해온 김병호교수였기에 누구보다도 우리 민족의 아픔을 잘 알고있었고 그래서 안타까움도 적지 않았다.
김병호교수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조선족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 거주지를 형성하는것은 좋은데 대신 새로운 지역에 가면서 중앙의 민족정책을 제대로 향수받지 못하고있다”며 안타까와했다.
또 “우리 민족의 농경사회에서 도시화에로의 이행은 좋은 과정이지만 자기의 기본적인 바탕은 잃지 말아야 한다”며 특별히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을 잊지 말것과 자식들에 대한 교육에 제대로 된 정력과 심혈을 기울일것“을 부탁한다.
“지금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식을 한족학교로 보내고있고 외국으로 나가면서 자식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데 이로 하여 자녀들은 제대로 된 사랑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있다.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가 돈을 벌었는데 이는 마땅히 한국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신 이로 인해 우리 민족 한세대가 망쳐졌다. 자식들한테 부모의 제대로 된 사랑을 주기보다 돈으로 빈구석을 메워가다보니 결국 자식들로 하여금 그릇된 삶을 살게 하고 그들의 인생을 망치고있다.” 출국 등으로 자식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돈으로 대신하고있는 부모들이 참답게 숙고하고 숙지해야 할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김병호교수는 또 우리 민족의 이미지가 실추될가 심히 걱정하고있었다. “우리 민족이 어디 가서 돈벌이를 하든 장사를 하든 존엄과 신의를 지켜가자”며 특히 타지역에서 민족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불미스러운 사례가 가끔 발생하고있는데 그런 일로 전반 조선족의 이미지가 타격받는다며 절대적으로 조선족의 존엄과 신의만은 지켜나가자고 부탁한다.
중국내 다양한 민족이 집중된 중앙민족대학에서 38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보고 느낀 가운데서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조선족학생들의 활약이 점점 사라지고있다는것이였다.
“이왕 민족대학에서 조선족이 학교 총학생회 간부로 있는 등 활약을 보였었는데 현재는 거의 없다싶이 한 정도”란다. 그동안 김병호교수는 국내적으로 석사, 박사생과 박사후 130명, 연수교사 33명, 외국 석사, 박사생 20명, 외국적 고급연수생 13명을 양성했다. 이가운데 조선족은 4명 정도뿐이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2010년 7년간 담임해왔던 중앙민족대학 맑스레닌주의학원 원장, 중국민족리론 및 민족정책연구원 원장직을 내놓은 김병호교수지만 중앙민족대학 학술위원회 위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인문사회과학중점기지인 당대민족문제 및 중국특색민족리론연구기지 주임, 중앙민족대학 중국민족리론정책 및 법제연구기지 주임, 중국민족리론 및 정책연구쎈터 주임, 중국민족리론학회 부회장 겸 비서장 등 여전히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와 관련된 여러 직책들로 바삐 보내고있는 김병호교수다.
현재 “학기마다 9~12시간 정도 드문드문 강의할뿐이고 이제는 젊은 교수들한테 넘겨주어야 할 때”라며 강의보다 리론연구에 정진할 뜻임을 밝혔다. 전윤길기자
국내 첫 민족리론 본과전업 창설, 국내 첫 민족리론정책전업 박사학위 수여점 획득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성공을 거두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수 없다. 조선족으로서 중국 민족리론 연구분야의 권위자로, 선두주자로 불리우고있는 중앙민족대학 맑스레닌주의학원, 중국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원 철학박사이며 박사연구생지도교사인 김병호(62세)교수, 그가 민족리론연구분야를 선택한데는 자신의 의지보다 상부의 배치에 따른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한시기 조선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 레닌의 민족리론에 관한 책자들을 읽으면서 갖게 된 작은 흥취와 무엇이든지 열심히 해나가는 정열적인 성격은 그로 하여금 이 분야에 깊이 매료되게 하였으며 그리고 장장 38년에 이르는 민족리론에 관한 부단한 탐구는 김병호교수를 오늘의 자리에 세우기에 이른다.
지난 16일 북경행 취재에서 첫번째로 만난 김병호교수. 북경의 한 지인으로부터 련락번호를 받고 무작정 취재를 요청했는데 고맙게도 그날로 취재가 약속되였다. 취재는 김병호교수의 사무실에서 시작되였다.
거의 절반 벽면이 책궤로 둘러싸인 김병호교수의 사무실은 유명한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연구 전문가의 사무실이라 하기에는 어쩐지 비좁고 허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책상주변에 쌓여있는 론문집들이나 도서들을 보면서 38년간 민족리론 연구와 교수에 종사해온 한 학술인사의 폭넓은 연구와 화려한 학술인생 등 참모습을 충분히 감지할수 있어 더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민족리론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온 38년
흑룡강성 연수현 태생인 김병호교수는 1974년 중앙민족대학을 졸업한 뒤 학교에 남게 되면서 장장 40년간 민족대학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중 민족리론, 민족정책 연구에 종사한 경력만 38년에 달한다. 그렇다보니 정년퇴직한 분들을 제외하면 그는 가히 민족리론연구분야의 원로로 불리우기도 한다.
“학교때 정치, 당사, 과학적사회주의 등 리론을 폭넓게 배웠는데 이는 내가 민족리론연구를 벌려나가는 토대로 되였다. 석사과정은 민족학에서의 민족리론이였고 박사과정은 철학을 공부했다.”
김병호교수는 흑룡강성에서 조선족중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레닌의 민족리론에 관한 책자를 읽게 되였는데 그러다보니 민족리론에 어느 정도 흥취를 갖게 되였고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뒤 상부에서 그에게 민족리론에 관한 강의를 맡겼을 때 초기 흥취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으로 강의에 나선게 어느덧 장장 38년 되기에 이른것이였다.
중앙민족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38년간 김병호교수는 두차례 북경시 우수교원칭호를 수여받았고 1993년에는 정부 특수수당금을 향수받는, 국가특출공헌전문가로 선정되였으며 2002년에는 보산철강교육기금 우수교사상을, 2003년에는 첫기 북경시 대학교 교학명사(名师)로 평의되였다. 또 이해 전국대학교 교학명사로 평의되면서 김병호교수는 전국 민족대학의 첫 국가급교학명사로 되였다. 2004년에는 수도 5.1로력상을 받았는가 하면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첫기 특출공헌전문가로 평의되였다.
김병호교수는 민족리론연구와 접촉하면서 국내 첫 민족리론본과전업 창설에 참여하였고 민족리론전업에 관련된 학과목을 내왔으며 그를 선두로 국내 첫번째 맑스주의민족리론 및 정책전업 석사, 박사 학위 수여점을 따냄으로써 전국적으로 첫 맑스주의 민족 리론 및 정책 전업 박사생지도교사로 되였다.
그가 가르친 《맑스주의민족리론기초》 학과목은 2003년 북경시 정품과목으로 선정되였고 2008년 그가 책임지고 위주로 강의한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학과목도 북경시 정품과목으로 선정되였으며 2010년에는 그가 이끈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교수팀이 북경시 우수교수팀으로 선정되였다. 현재 중앙민족대학 민족리론학과는 부, 위원회급 중점학과, “211프로젝트”와 “985프로젝트” 중점건설학과로 되여 중국내 가장 독창적이고 중국특색을 띤 사회과학학과로 자리잡았다.
김병호교수는 그동안 전국 민족대학 민족리론 및 민족정책 교재를 조직, 편찬하였으며 전국 중소학교 민족단결교육교재, 북경시 정품교재인 《중국공산당 민족강령정책통론》, “9.5”기간 국가급 중점교재인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11.5”기간 국가급 중점교재인 《민족리론기초》, 향항, 오문 공무원강습교재인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및 민족리론전업 본과생, 연구생 교재 20여부를 조직 편찬하였는데 적지 않은 교재가 성, 부급 상을 따냈다. 례하면 《민족리론통론》은 1995년 제3회 전국대학교 우수교과서(민족종류) 2등상을 획득했고 2002년 북경시 우수교재대상으로, 2007년 국가 “11.5”계획 중점교재대상으로 선정되였고 《중국공산당 민족강령정책통론》(주필)은 2004년 북경시 우수교재로, 《민족관계리론통론》은 2009년 북경지 정품교재 중점대상으로 선정되였다.
김병호교수가 국내외적으로 출판한 도서나 론문들에서 그의 남다른 활약을 보아낼수 있었다. 그동안 김병호교수는 국내에서 저서(공저 포함) 68부 출판하고 외국에서 저서 2부 출판했으며 국내에서 470여편, 외국에서 30여편 도합 500여편의 론문을 발표했는데 론문, 저서들중 국가 부급, 성급, 시급 상을 22번 획득한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1등상 7차, 2등상 8차, 3등상 7차 된다. 《민족리론통론》, 《중국공산당 민족강령정책통론》, 《민족관계 리론통론》, 《민족문제개론》, 《중국민족리론백년발전》 등은 그의 주요한 대표작으로서 지금도 중국 민족리론연구분야에서의 중요한 저서로 역할을 발휘하고있다.
1994년 5월에 민족대학출판사는 김병호교수의 《민족리론통론》을 출판했는데 그가 20년간의 교수와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자는 출판되자마자 학술계의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으며 일각에서는 중국민족리론학과발전에서 하나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민족리론학발전에서의 리정비”라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의 이름난 경제학자이며 민족리론학자인 시정일교수는 “이러한 리론거작은 우리 나라 민족리론연구가운데서 보기 드문 도서”라고 평가했다.
김병호교수는 전국의 민족리론과 민족정책과 관련된 학술토론회의를 31차 조직하거나 참여했고 심포지엄, 강습반, 연구생심포지엄 14차 조직했으며 국제회의 4차 주재하면서 중국 민족리론 권위로서의 위상과 함께 우리 민족의 기상을 떨쳤다. 그동안 맡은 국가, 성부급 연구과제와 국외 연구과제가 35개 항목에 달하며 국제학술회의에 33차 참가하면서 중국의 민족정책을 대외에 널리 홍보해왔다고 한다.
또 다년간 민족리론연구에 종사해오다보니 국내적으로 이 분야에 적지 않은 제자들이 포진해있다고 한다. 지난 2003년 청해성에서 민족리론에 관한 한차례 학술회의가 열렸는데 학술회의 참가자 절반정도가 김병호교수의 제자들이였다고 한다. 마침 그때 김병호교수의 생일과 겹쳐지다보니 그 기회에 제자들은 스승을 모시고 조촐하지만 뜻깊은 한차례 생일파티를 열었는가 하면 직접 그의 사진과 영예를 담은 자그마한 화첩을 만들어 스승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그가 석사, 박사 과정을 직접 가르친 제자 2명이 부교장으로 제발되였다고 한다.
“자식교육에 제대로 된 정력과 심혈 기울여야”
조선족으로서 김병호교수는 민족리론을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과 관계되는 리론연구를 활발히 펼쳐나갔으며 조선족의 이동, 교육, 인구 등에 비상한 관심을 보여왔다.
“조선족인구이동이 심화되면서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나는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에 조선족거주지가 형성된다고 예견하였는데 실제 오늘날 발해만을 둘러싼 지역에는 상당수의 조선족들이 집거해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90년대 제4차 인구보편조사때 김병호교수는 흑룡강성의 조선족마을들을 조사하면서 중국에서 처음으로 조선족인구에 관한 전문연구저서를 출간했는데 그 도서는 후일 일본이나 한국의 연구학자들이 참고하는 중요한 자료로 되였으며 일본 오사까경제법과대학에 의해 일본어로도 출판되였다고 한다. 그가 출판한 책자가운데는 조선족과 관련된 도서들도 적지 않았는데 독자 집필한 《중국 조선족인구간론》을 비롯하여 주필을 담당한 《중국의 민족문제와 조선족》, 《연수현 조선족 100년사》, 《중국조선족 인구문제연구》, 《중국조선족산재지역 민족교육문제》 등은 폭넓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조선족들이 직면한 다방면의 문제들을 다루기도 했다. 특히 《연수현조선족 100년사》는 한개 현급지방의 조선족력사를 우리 글로 기술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민족리론과 민족정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의 허다한 변화를 목격하고 료해하고 연구해온 김병호교수였기에 누구보다도 우리 민족의 아픔을 잘 알고있었고 그래서 안타까움도 적지 않았다.
김병호교수는 “시대가 발전하면서 조선족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 거주지를 형성하는것은 좋은데 대신 새로운 지역에 가면서 중앙의 민족정책을 제대로 향수받지 못하고있다”며 안타까와했다.
또 “우리 민족의 농경사회에서 도시화에로의 이행은 좋은 과정이지만 자기의 기본적인 바탕은 잃지 말아야 한다”며 특별히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을 잊지 말것과 자식들에 대한 교육에 제대로 된 정력과 심혈을 기울일것“을 부탁한다.
“지금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식을 한족학교로 보내고있고 외국으로 나가면서 자식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데 이로 하여 자녀들은 제대로 된 사랑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있다. 우리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가 돈을 벌었는데 이는 마땅히 한국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대신 이로 인해 우리 민족 한세대가 망쳐졌다. 자식들한테 부모의 제대로 된 사랑을 주기보다 돈으로 빈구석을 메워가다보니 결국 자식들로 하여금 그릇된 삶을 살게 하고 그들의 인생을 망치고있다.” 출국 등으로 자식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돈으로 대신하고있는 부모들이 참답게 숙고하고 숙지해야 할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김병호교수는 또 우리 민족의 이미지가 실추될가 심히 걱정하고있었다. “우리 민족이 어디 가서 돈벌이를 하든 장사를 하든 존엄과 신의를 지켜가자”며 특히 타지역에서 민족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불미스러운 사례가 가끔 발생하고있는데 그런 일로 전반 조선족의 이미지가 타격받는다며 절대적으로 조선족의 존엄과 신의만은 지켜나가자고 부탁한다.
중국내 다양한 민족이 집중된 중앙민족대학에서 38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보고 느낀 가운데서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조선족학생들의 활약이 점점 사라지고있다는것이였다.
“이왕 민족대학에서 조선족이 학교 총학생회 간부로 있는 등 활약을 보였었는데 현재는 거의 없다싶이 한 정도”란다. 그동안 김병호교수는 국내적으로 석사, 박사생과 박사후 130명, 연수교사 33명, 외국 석사, 박사생 20명, 외국적 고급연수생 13명을 양성했다. 이가운데 조선족은 4명 정도뿐이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2010년 7년간 담임해왔던 중앙민족대학 맑스레닌주의학원 원장, 중국민족리론 및 민족정책연구원 원장직을 내놓은 김병호교수지만 중앙민족대학 학술위원회 위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인문사회과학중점기지인 당대민족문제 및 중국특색민족리론연구기지 주임, 중앙민족대학 중국민족리론정책 및 법제연구기지 주임, 중국민족리론 및 정책연구쎈터 주임, 중국민족리론학회 부회장 겸 비서장 등 여전히 민족리론과 민족정책 연구와 관련된 여러 직책들로 바삐 보내고있는 김병호교수다.
현재 “학기마다 9~12시간 정도 드문드문 강의할뿐이고 이제는 젊은 교수들한테 넘겨주어야 할 때”라며 강의보다 리론연구에 정진할 뜻임을 밝혔다. 전윤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