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사회 위기론에 대한 분석과 조선족 엘리트들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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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4-09-22 18:30|본문
부경대학교 예동근 교수
1.서론
중국조선족의 위기담론의 중요한 사실적 근거가 동북지역의 조선족인구가 급속히 감소함으로써 농촌공동화, 민족학교감소로 이어진 인구위기론, 교육위기론, 자치주위기론(정치지위)으로 이어지면서 20여 년간 조선족사회의 주류담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동북지역의 일부 대도시주변의 농촌들의 집중화사례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대안론으로 집중촌건설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20여 년간 농촌집중촌은 증가의 속도가 느리고, 농촌인구가 여전이 대도시와 한국 등 외지로 이동하면서 농촌집중촌은 지속적인 주목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 조선족위기론은 여전히 주류담론으로 매체와 연구자들에 의해 확산되었다.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 북경, 청도지역의 조선족 집중화현상이 조명을 받으면서 국내외 학자들이 도시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연구가 시작됨으로써 다시 대안론으로 부상되었다. 2000년대 초반 이진영의 중국 권역별 코리아타운에 대한 연구, 박광성의 청도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중국 전지역의 도시인구 집중화 현상, 북경 왕징코리아타운의 조선족 집중화현상의 연구는 초국가적 인구이동, 글로벌이동이란 큰 시대적 변화와 흐름속에서 조선족의 ‘연결망’의 고리들을 찾으려고 노력하였고, 조선족 공동체의 재건을 고민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 일본, 한국, 미국 등 많은 지역의 연구자들이 조선족의 초국가적 현상과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형성에 관심을 가졌는데, 서울의 대림, 가리봉을 중심으로 하는 가리봉동, 일본의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족밀집지역, 미국, 영국의 조선족밀집지역 등 폭넓게 전지구적차원의 이동에서 조선족커뮤니티의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족의 기업연구, 조선족의 해외이주 특징, 조선족 커뮤니티의 성격과 특징, 인구규모와 가족 등을 비릇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접근의 연구들이 점차 출현함으로써 조선족연구의 공간적 범위가 전지구적차원으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 이런 초국가적이동과 부동한 지역의 네트워크형성의 연구들이 1990년이후 더 정확히 말해서 2000년이후에 활발한 인구이동현상이 주목을 받으면서 이루어졌기에 시간적으로 대부분 2000년대 이후의 연구들이다.
조선족의 활발한 인구이동은 조선족연구, 재외한인연구, 다문화연구, 국제이민연구에 활력소를 넣었고, 이시기 한국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황금기를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다른 하나의 큰 요소는 중국동포유학생출신의 인문사회과학연구자들의 급성장과 활발한 학문교류가 큰 몫을 한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이민관련 연구가 유럽에 EU통합이후, 후기민족국가로서 ‘시민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이민자들의 거주권, 노동권, 이동권 중심의 인권이 그 중심에서 자리잡고, 이민자개인보다 집단적권익에 초점을 맞춘 ‘다문화주의’ 등장은 이민자집단의 초국가적 문화(종족)네트워크집단의 특징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의 연구도 90년대 동포에서 접근하여 외국인노동자연구로 분화되고, 나아가서 이민자집단이 다양화되면서 이민연구와 다문화연구로 다양하게 분화되고, 현재 한국사회의 전반이 다문화연구가 동포가 이민 전 분야를 아울러는 프레임을 형성하였다.
글로벌연구의 선두에 달리는 학자들이 ‘시공간의 응축’과 ‘전지구적 전환’이란 맥락에서 글로벌현상이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그 동학이 무엇인지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민, 다문화분야는 글로벌현상이 더 부각되는 학문영역이다. 그것이 바로 노동, 이민, 기술, 자본 등 분야를 적어도 송출국과 소용국가란 두 개 이상의 국가에서 다양한 복합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작동하는 현상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연구의 일부학자들은 이런 초국가적현상, 탈국가적 현상, 글로벌현상을 엄밀하게 구분하고 연구도 하지만, 이 세 개 분야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현실적 연구에서 명확하게 구분도 쉽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중국동포의 초국가적 이동과 네트워크와 중국동포의 글로벌이동과 글로벌 네트워크의 형성은 그래 쉽게 구분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연구대상을 바꾸어 ‘한국인’으로 바꾸어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일본, 한국, 등 단일민족중심의 민족국가와 달리 국가건립초기부터 이민국가로 형성된 미국, 글로벌리즘의 아메리칸화를 주도하는 큰 축으로서 미국의 이민현상은 예외주의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아시아의 이민이동에서 우리가 유럽 내,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내에서 이동과 비교할 때 선명한 다른 점은 이동에서 ‘친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통적 ‘향촌’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으로, 2000년대란 시점에서 극소수의 국가(일본, 한국, 대만, 싱가폴)외에 도시화율이 50%이하가 대부분이고, 공업이 전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이하가 대부분이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글로벌화가 이슈일 때, 아시아의 대부분 이민송출국은 농업경제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그 기반에 있는 사회적 성격에서 볼 때 여전히 전통적 ‘촌락사회’로 볼 수 있는 여지는 매우 높다.
그래서 본 연구는 아시아에서 고속경제 성장 30년 이상을 유지하였고 현재에서 여전히 7.4%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이주, 그 큰 이주의 흐름에서 인구이동과 전체 인구의 비례에서 볼 때 규모가 가장 큰 집단인 ‘조선족’(중국동포)의 글로벌이동과 네트워크의 형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이민역사로 볼 때, 이민들은 종족, 국가, 계급으로 공간의 분화가 매우 명확하게 구분될 때도 있지만, 제한된 이동으로 특정 공간에 집거 규모는 매우 컸다. 중국의 경우 역사적으로 “대집거, 소잡거”(大雜居, 小聚居)의 민족분포를 이루고 있다. 또한 이런 분포가 오랜 역사를 거쳐 형성되었음으로 민족심리의 안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공간집중화와 친족중심의 연결망형성
중국의 경우, 1980년대 개혁개방전까지 인구이동이 일어났지만, 전통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크지 않았다. 1989년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인구이동, 2000년대 들어와서 그 규모는 2억5천만이상으로 거대한 사회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전통적으로 인구가 적은 소수민족지역에 한족인구가 대규모로 이동함으로써 전통적 민족인구의 분포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대분산 소집중”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중국동포의 경우는 국경을 넘어 글로벌차원에서 “대분산 소집중”의 인구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인구이동과 이주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디아스포라”로 접근하면서 “디아스포라의 재발견”으로 이론적 정립과 구체적인 사례연구들도 많이 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조선족 이동의 국경을 넘는 특징에 주목하면서 초국가적(탈국가적 이동)으로 접근하면서 조선족이 제일 빠르게 ‘후기민족국가’의 큰 틀에서 포착하자는 노력도 있다. 또 한 부류의 학자들은 여전히 중국국내의 소수민족의 이동에서 이런 현상을 포착하고 다민족통합국가의 틀 내에서 이런 현상들을 연구하는 3개의 큰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과연 이 “대분산, 소집중”의 이동과 집거의 현상을 어떻게 포착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이 3개 부류의 연가집단들은 “대분산, 소집중”에 접근방식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동으로 암묵적으로 ‘전통집거지 해체’란 현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으며, 결국은 ‘조선족 위기론’의 기반이 되는 ‘집거지 해체’의 대안을 찾는데 ‘디아스포라’는 한국을 포함한 모국영향력의 전통문화기반의 집중을 강조하고 있으며, 초국가주의 접근자들은 ‘초국가적 연결망’ 혹은 ‘글로벌 네트워크’으로 대안을 찾으려고 접근하고 있다. 중국내 다민족통합론자들은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에 기반한 전통적 ‘자치주 중심론’으로 종족성집중화를 통해 조선족위기를 극복하려고 있다.
어쨌든, ‘대 분산’이란 큰 배경은 글로벌화, 중국내의 공업화와 도시화, 한국의 영향력이란 모국적 요인, 중국내 중국동포집거지역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비릇한 다양한 요인들이 결합되면서 ‘대분산’이란 큰 사회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에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소집중’에 대한 해석은 위의 3개 부류의 학자들을 포함하여 중국동포사회 내부의 해석은 서로 다르다.
위의 3개 부류의 해석들을 통합적으로 재해석하면, 결국 ‘소집거’의 거점들을 연결하자는데 반대하는 자는 없지만, 서로 ‘소집거 허브론’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통적 우세가 강한 연변지역은 ‘자치주 수부 중심론’을 내세우는가 하면, 베이징에 거주하는 자들은 ‘수도 중심론’을 내세우고 있다. 해외에 있는 동경, 서울, 뉴욕 등 도시들에서 각자 종족대표자들을 선출하여 종족사회 정치를 실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조금 더 유심히 ‘소집거’사회를 내다보면, 여전히 ‘도시안의 촌락’이란 향토냄새가 강하고 풍기고 있으며, 친족중심, 원 거주지 촌락사회를 바라 볼 수 있다. 결혼은 웨딩홀에서 하지만, 내빈을 보면 친지와 농촌거지의 촌민, 생일잔치, 환갑, 추석행사 등을 보면 ‘향토사회’의 특징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런 연구들은 중국의 청도, 서울의 구로구, 동경의 조선족, 뉴욕 조선족 등에 대한 연구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소집거’에서 나타난 ‘향토성’에 조선족엘리트들을 포함하여 구성원내부에서 매우 이중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하나는 종족통합의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은 하지만, 계몽의 대상으로 나아가서 낙후한 문화로 ‘소멸’하자는 자들도 적지 않다. 즉 특정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문화게토’로 보는자가 있는가 하면, 조선족의 정체성으로 보고 보존해야 하는 서로 대립된 태도가 부동한 시공간에서 이중적인 입장을 가진 개인들도 적지 않다.
3.시간집중화와 세대중심의 연결망형성
위에서 잠시 논의하였지만, 이런 ‘종족문화 게토화’현상에서 제일 큰 차이는 세대차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록 도시냐vs농촌이냐, 지식인이냐vs문맹이냐에 따른 차이도 많지만, 가장 큰 인구규모로 선명하게 보여주는 집단은 50,60세대와 80,90세대의 문화적 차이로 볼 수 있다. 이 세대적 차이에는 이미 지역, 계층, 지식, 문화기호 등 다양한 차이로 ‘구별짓기’가 선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존의 연구들을 정리하여 보면, 한국사회에서 50.60세들은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동을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여전히 인구규모로 볼 때 30%이상을 차지하는 주력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00년 후반에 한국의 고령화사회 대응과 고학력, 유학생 유치전략으로 F4비자정책을 포함한 다양한 흡인요들은 70,80이 주류로 유입되면서 점차 90세대들도 합류하면서 한국에 체류하는 조선족사회의 평균연령은 신속하게 감소되면서 ‘중장년구조’를 이루게 되었다.
이는 현재 동북지역의 인구이동이 심화되면서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지만, ‘老益老,若益若’이란 양극화된 “모래시계”구조로 변화되고 있다. 그럼 기타 중국 국내의 연해지역은 한국보다 더 젊고 혈기찬 청년중심의 ‘소사회’를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전반적으로 80.90세대들이 도시사회로 유입되고 도시문명을 접근함으로써, 더욱 빨리 글로벌문화에 노출되고 IT기술과 제품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연결망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중국동포의 80.90세대들은 한국드라마, 화장품, 폐션, 서울말을 빨리 익히면서 글로벌소비자, 한류소비자로서 한국의 젊은 세대의 소비자들과 공통분모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대도시에 거주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 도시에 맞는 도시문화를 흡수하면서 도시주류문화에 동화되는 현상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북경, 상해, 광주, 심천 지역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말의 상실과 중국언어를 모국어로, 현지문화를 흡수하면서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즉 50,60세대가 향토문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나아가서 70,80세대가지 부모님들의 영향과 과도기 세대로서 향토문화의 지속성을 유지하지만, 80,90세대들은 어떻게 ‘대분산, 소집중’의 연결망을 형성하며, 전반 조선족사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거대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는지? 그 자원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50,60세대들을 ‘향토문화’세대라면, 80,90세대들은 ‘도시문화’세대라고 볼 수 있다. 80,90세대들이 점차 조선족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만큼, 이들이 ‘문화게토’를 넘어서 포용적이면서 조선족의 전통문화와 정체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원, 이 세대들의 집단행위 특징 다양한 분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조선족사회의 재건’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4.초국가화와 종족중심의 연결망형성
1949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조선족은 북한의 영향권속에 ‘조선화’와 ‘중국화’란 속에서 조선족의 정체성을 찾았다. 그리고 197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조선족의 중국화가 주류로 자리매김하였고, 1990년대 현재까지 조선족의 한국화란 거대한 영향권으로 편입되면서 중-한 영향권에서 종족성을 고민하면서 ‘조선족’을 재정의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북한의 장기간 침체, 중국의 부상, 한국의 지체현상은 조선족의 큰 축이 점차 중국으로 넘어갈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언된다. 조선족은 크게 3차례의 대규모인구이동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 1930년대 -광복전 만주지역으로 대규모인구이동과 1945년 광복이후 한반도로 재귀, 그리고 1990년후반부터 지금까지 중국동포의 해외진출과 연해지역 진출이란 대규모 인구이동이다. 국경을 넘는 이동은 종족이란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이런 3차례 인구이동의 시간과 공간의 사이클을 볼 때 이번은 다시 중국으로 귀환, 그리고 2030년대에서 2040년대가 정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서 북한 동포의 중국이동이 매우 큰 축으로 판단되며, 조선족사회변동의 가장 중요한 종족요인과 지정학적 요인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2014년이란 현시점에서 ‘대분산 소집중’현상은 유지단계에서 처해 있으며, 이동의 동력이 점차 소실되고 있다. 현재 하나의 큰 변수의 중국의 부상과 동북지역의 경제부활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코리아타운속의 조선족 커뮤니티도 점차 완성된 윤곽을 보이고 있다. 즉 ‘소집중화’의 페턴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조선족의 위기론’의 대안은 여전히 막연하여 보인다.
5.결론
동북지역의 부활과 전통집거지의 경제성장은 정치엘리트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지만, 9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자치주’란 옛 명성을 얻기는 힘들다. 선진국가의 문물을 배워서 ‘문화공동체’의 부상의 꿈을 꾸고 있는 해외의 엘리트들의 초국가적 공동체건설의 노력과 결실로 잘 보이지 않고 있으며, 한반도의 통일에 막무한 기대를 걸고 모국의 힘을 얻고자 하는 노력도 최근의 정세에서 조선족재건의 대안은 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조선족 사회는 어디로 갈까? 또한 조선족사회는 어떻게 가야 바람직할까? 모르는 답을 찾아 헤매면서 잠시 고민한 것들을 몇 자 적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