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에《진달래》피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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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6-08 09:30|본문
북경에 가면 20여년간이나 이웃집 한족로인 방옥분(94세)을 친어머니처럼 보살펴준 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조선족로인 태금숙(70세)이다.
연길태생인 태금숙은 지난 세기 70년대초에 남편을 따라 북경에 갔고 북경항천제2병원의 회계사업을 하게 되였다. 태금숙이 이웃집 방옥분로인을 보살피게 된것은 23년전 북경항천제2병원아빠트에 거주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71세인 방로인은 몸이 쇠약한데다가 풍습병으로 다리까지 잘 쓰지 못해 막대기를 짚고다니는 상황에서 페암인 령감을 보살펴야 했다. 워낙 남돕기를 즐기는 태금숙은 퇴근하면 꼭꼭 방로인네 집을 들려 생활에 필요한것들을 사다주면서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3년동안 령감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지극정성을 다했지만 끝내는 령감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방로인, 원래 편치않았던 그의 신체도 점점 야위여갔다. 게다가 점점 중해지는 풍습병에 심장병, 관심병, 위병까지 겹치다나니 방로인의 살림은 억망이였다.
방로인은 자식이 셋이나 있다지만 맏아들네는 집이 비좁은데다 맏며느리 또한 북경시내 공공뻐스운전사로 분망히 보내고 둘째딸은 유선암으로, 셋째딸은 심장병환자이다나니 로인을 모실 상황이 못되였다. 세 자식이 거주하고있는 집 또한 방로인의 댁과 멀리 떨어져있어 그들은 가끔 주말에야 엄마집으로 갈수 있었다.
방로인네 가정상황을 손금보듯 잘 알고있는 태금숙은 홀로서기신세가 된 방로인의 하루하루가 여간만 걱정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착한 심성을 키워온 태금숙은 아예 자기가 방로인을 전문 맡아 보살피기로 작심하였다. 매주일 적어도 세차례씩 방로인네 집에 가서 집청소와 빨래를 해주기로 했으며 시간나는대로 식품과 생활용품을 갖춰주고 혹시 자기가 일이 있어 가지 못할 경우 자식들을 시켜 로인을 보살피도록 했다.
살을 에이는듯이 추운 어느해 겨울날, 사회구역 난방설비의 고장으로 태금숙은 된 감기에 걸려 자리에서 옴짝달싹못했다. 하지만 그는 홀로 사는 방로인이 걱정되여 남편이 말리는것도 마다하고 황급히 방로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가 방로인도 된감기에 걸려 이불을 폭 쓴채로 침대에 누워 앓고있었다. 혹시 잘못 되지나 않았을가? 깜짝 놀란 태금숙은 방로인을 흔들어깨웠다. 간신히 눈을 뜨고 태금숙을 보는 순간 방로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태금숙은 인차 굳어진 방로인의 사지를 주물러주었다. 그리고는 물을 끓여 대접시킨후 병원에 모시고 가 점적주사를 맞혔다. 집에 돌아와서도 방로인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대접시키고 마사지도 해드렸다.
《자네가 없으면 난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오. 이 은혜를 어떻게 갚겠소? 자넨 내 친딸보다 낫소.》순간 방로인은 태금숙의 손을 덥썩 잡고 감격에 겨워 말하였다.
그날 저녁 태금숙은 로인의 병이 호전되기를 기다려 밤이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부터 태금숙은 고열로 련며칠 자리에 드러눕고말았다.
태금숙의 소행은 방로인의 가족을 감동시켰고 그로 인해 두집사이는 서로 집열쇠를 맡길 정도로 한가족처럼 지냈다.
북경시만명효도영예상 등 영예를 한아름 안은 태금숙
어느날, 10여년동안 태금숙의 보살핌을 받아오던 방로인은 태금숙네가 다른 구역인 해전구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듣자 김빠진 공처럼 맥을 잃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마치 어머니품을 잃은 어린이처럼… 《금숙이가 가면 난 어떡하오? 난 인젠 살멋도 없소…》 태금숙은《멀리 가지 않으니 이러지 마시고 힘내세요. 이사 가서도 이전처럼 계속 뵈러 올테니 걱정마세요.》라고 약속을 했다. 그말에 방로인의 안색은 조금은 밝아지긴 했지만 서운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후로부터 또 10년, 태금숙은 늘 자전거를 타고가서 방로인을 보살폈다…
남을 돕는것을 향수로 여겨
해전구로 이사를 간지 3년후인 2005년, 북경에서 살고있는 태금숙의 고향 지인인 하씨(당시 59세)가 림파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게 되였다. 하지만 하씨 신변에는 장기환자인 그의 령감밖에 없었다. 이를 알게 된 태금숙은 매일 지하철을 한시간, 또 뻐스까지 3번 갈아타면서 하씨네 집에 가 환자를 돌봐주었다. 대수술을 받고 누워 꼼짝 못하는 하씨의 건강회복을 위해 태금숙은 몸에 좋다는 별의별 음식을 다해 대접했으며 마사지도 해주고 목욕도 시켰다. 하지만 그는 한시도 방로인을 잊지 않았다. 날마다 하씨의 병시중을 하고난후이면 어김없이 부랴부랴 방로인댁으로 달려가군한 태금숙이였다.
태금숙은 과연 지칠대로 지쳤다. 이전에 상한적있는 허리가 또다시 쑤시는듯이 아파났다. 온몸이 식은땀천지다. 하지만 자기를 손꼽아 기다릴 암환자와 며칠전부터 감기의 영향으로 기침을 되붙이한 방로인을 떠올리면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을수 없었다. 그는 허리에 고약을 붙이고는 간신히 벽을 짚고 일어나 또 집문을 나섰다. 태금숙은 심한 아픔을 참으며 앉음뱅이걸음을 하면서 하씨와 방로인의 병시중을 들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더니 3년동안 지극정성 보살핀 보람으로 하씨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였으며 방로인도 안색이 하루하루 좋아졌다. 이때 이 시각 태금숙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태금숙의 사적은 북경시 해전구에서 꾸리는《해전신문》과《밭마을》(田村)잡지에 실렸다. 그는 북경시만명효도영예상과 북경시해전구10대공덕인물상을 수여받았다. 태금숙의 미담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가두의 사람들은 시종여일하게 로인을 공경하면서 조선민족의 미풍량속을 널리 전수한 태금숙을 보고 북경의《진달래》라고 친절히 불렀다.
힘들지 않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태금숙로인은 《남을 돕는 일을 일종 향수라고 생각하니 힘든줄 모르겠어요. 이렇게 사니 생활이 더 풍요로와요.》라고 대답하면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칸방 침대엔 허리가 꼬부장한 방옥분로인이 빨간 털실내의를 입고 행복감에 젖어 앉아있다. 그의 옆에는 귀밑머리가 희슥한 태금숙로인이 방로인을 정답게 바라보며 그의 백발이 된 머리를 빗겨주고있다.
《어머님은 오늘 참 이쁘시네요. 처녀같애요.》태금숙이 시무룩히 웃으며 롱조로 말하자 방로인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창가에서 비쳐드는 해빛으로 두 《모녀》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마치 활짝 피여난 진달래꽃처럼...
태금숙의 사적은 북경시 해전구에서 꾸리는《해전신문》과《밭마을》(田村)잡지에 실렸다
연길태생인 태금숙은 지난 세기 70년대초에 남편을 따라 북경에 갔고 북경항천제2병원의 회계사업을 하게 되였다. 태금숙이 이웃집 방옥분로인을 보살피게 된것은 23년전 북경항천제2병원아빠트에 거주했을 때부터였다.
당시 71세인 방로인은 몸이 쇠약한데다가 풍습병으로 다리까지 잘 쓰지 못해 막대기를 짚고다니는 상황에서 페암인 령감을 보살펴야 했다. 워낙 남돕기를 즐기는 태금숙은 퇴근하면 꼭꼭 방로인네 집을 들려 생활에 필요한것들을 사다주면서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3년동안 령감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지극정성을 다했지만 끝내는 령감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방로인, 원래 편치않았던 그의 신체도 점점 야위여갔다. 게다가 점점 중해지는 풍습병에 심장병, 관심병, 위병까지 겹치다나니 방로인의 살림은 억망이였다.
방로인은 자식이 셋이나 있다지만 맏아들네는 집이 비좁은데다 맏며느리 또한 북경시내 공공뻐스운전사로 분망히 보내고 둘째딸은 유선암으로, 셋째딸은 심장병환자이다나니 로인을 모실 상황이 못되였다. 세 자식이 거주하고있는 집 또한 방로인의 댁과 멀리 떨어져있어 그들은 가끔 주말에야 엄마집으로 갈수 있었다.
방로인네 가정상황을 손금보듯 잘 알고있는 태금숙은 홀로서기신세가 된 방로인의 하루하루가 여간만 걱정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착한 심성을 키워온 태금숙은 아예 자기가 방로인을 전문 맡아 보살피기로 작심하였다. 매주일 적어도 세차례씩 방로인네 집에 가서 집청소와 빨래를 해주기로 했으며 시간나는대로 식품과 생활용품을 갖춰주고 혹시 자기가 일이 있어 가지 못할 경우 자식들을 시켜 로인을 보살피도록 했다.
살을 에이는듯이 추운 어느해 겨울날, 사회구역 난방설비의 고장으로 태금숙은 된 감기에 걸려 자리에서 옴짝달싹못했다. 하지만 그는 홀로 사는 방로인이 걱정되여 남편이 말리는것도 마다하고 황급히 방로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니나다를가 방로인도 된감기에 걸려 이불을 폭 쓴채로 침대에 누워 앓고있었다. 혹시 잘못 되지나 않았을가? 깜짝 놀란 태금숙은 방로인을 흔들어깨웠다. 간신히 눈을 뜨고 태금숙을 보는 순간 방로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태금숙은 인차 굳어진 방로인의 사지를 주물러주었다. 그리고는 물을 끓여 대접시킨후 병원에 모시고 가 점적주사를 맞혔다. 집에 돌아와서도 방로인이 좋아하는 칼국수를 대접시키고 마사지도 해드렸다.
《자네가 없으면 난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오. 이 은혜를 어떻게 갚겠소? 자넨 내 친딸보다 낫소.》순간 방로인은 태금숙의 손을 덥썩 잡고 감격에 겨워 말하였다.
그날 저녁 태금숙은 로인의 병이 호전되기를 기다려 밤이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부터 태금숙은 고열로 련며칠 자리에 드러눕고말았다.
태금숙의 소행은 방로인의 가족을 감동시켰고 그로 인해 두집사이는 서로 집열쇠를 맡길 정도로 한가족처럼 지냈다.
북경시만명효도영예상 등 영예를 한아름 안은 태금숙
어느날, 10여년동안 태금숙의 보살핌을 받아오던 방로인은 태금숙네가 다른 구역인 해전구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듣자 김빠진 공처럼 맥을 잃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마치 어머니품을 잃은 어린이처럼… 《금숙이가 가면 난 어떡하오? 난 인젠 살멋도 없소…》 태금숙은《멀리 가지 않으니 이러지 마시고 힘내세요. 이사 가서도 이전처럼 계속 뵈러 올테니 걱정마세요.》라고 약속을 했다. 그말에 방로인의 안색은 조금은 밝아지긴 했지만 서운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후로부터 또 10년, 태금숙은 늘 자전거를 타고가서 방로인을 보살폈다…
남을 돕는것을 향수로 여겨
해전구로 이사를 간지 3년후인 2005년, 북경에서 살고있는 태금숙의 고향 지인인 하씨(당시 59세)가 림파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게 되였다. 하지만 하씨 신변에는 장기환자인 그의 령감밖에 없었다. 이를 알게 된 태금숙은 매일 지하철을 한시간, 또 뻐스까지 3번 갈아타면서 하씨네 집에 가 환자를 돌봐주었다. 대수술을 받고 누워 꼼짝 못하는 하씨의 건강회복을 위해 태금숙은 몸에 좋다는 별의별 음식을 다해 대접했으며 마사지도 해주고 목욕도 시켰다. 하지만 그는 한시도 방로인을 잊지 않았다. 날마다 하씨의 병시중을 하고난후이면 어김없이 부랴부랴 방로인댁으로 달려가군한 태금숙이였다.
태금숙은 과연 지칠대로 지쳤다. 이전에 상한적있는 허리가 또다시 쑤시는듯이 아파났다. 온몸이 식은땀천지다. 하지만 자기를 손꼽아 기다릴 암환자와 며칠전부터 감기의 영향으로 기침을 되붙이한 방로인을 떠올리면 그저 가만히 누워만 있을수 없었다. 그는 허리에 고약을 붙이고는 간신히 벽을 짚고 일어나 또 집문을 나섰다. 태금숙은 심한 아픔을 참으며 앉음뱅이걸음을 하면서 하씨와 방로인의 병시중을 들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더니 3년동안 지극정성 보살핀 보람으로 하씨는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였으며 방로인도 안색이 하루하루 좋아졌다. 이때 이 시각 태금숙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 행복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태금숙의 사적은 북경시 해전구에서 꾸리는《해전신문》과《밭마을》(田村)잡지에 실렸다. 그는 북경시만명효도영예상과 북경시해전구10대공덕인물상을 수여받았다. 태금숙의 미담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가두의 사람들은 시종여일하게 로인을 공경하면서 조선민족의 미풍량속을 널리 전수한 태금숙을 보고 북경의《진달래》라고 친절히 불렀다.
힘들지 않는가 하는 기자의 물음에 태금숙로인은 《남을 돕는 일을 일종 향수라고 생각하니 힘든줄 모르겠어요. 이렇게 사니 생활이 더 풍요로와요.》라고 대답하면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단칸방 침대엔 허리가 꼬부장한 방옥분로인이 빨간 털실내의를 입고 행복감에 젖어 앉아있다. 그의 옆에는 귀밑머리가 희슥한 태금숙로인이 방로인을 정답게 바라보며 그의 백발이 된 머리를 빗겨주고있다.
《어머님은 오늘 참 이쁘시네요. 처녀같애요.》태금숙이 시무룩히 웃으며 롱조로 말하자 방로인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창가에서 비쳐드는 해빛으로 두 《모녀》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마치 활짝 피여난 진달래꽃처럼...
태금숙의 사적은 북경시 해전구에서 꾸리는《해전신문》과《밭마을》(田村)잡지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