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뚱보 김씨아저씨의 서울때밀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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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8-04 09:15|본문
○ 김성호
이튿날 사장은 나에게 전날 일한 일당으로 5만원을 넘겨주며 자기 친구가 세차장을 하는데 곧 구정이라 손님이 많아 잠은 계속 사우나에서 자면서 며칠 도와줄수 없는가고 물었다. 서울로 돌아가 봤자 역시 할일없는건 마찬가지라 쾌히 응낙을 했다. 그런데 세차도 《학문》이 많아 배우기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녁에 사우나로 돌아오니 새로 온 연변때밀이도 사장한테 불합격 맞아 되돌아가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였다. 이튿날 그가 먼저 떠나가고 며칠이 지난 후 나도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 돌아온 나는 다시 대림마사지전문학원을 찾아갔다. 이 학원에서는 수강생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책임지고 여러번 알선해주었다. 지난번에는 그래도 고시원에서 잠자리를 해결하였지만 이번에는 학원의 지하실에서 머무를수밖에 없었다. 정원장은 50만원 담보금에 의정부일대에 일감이 생겼으니 가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돈도 없어서 결국 다른 수강생이 파견되여갔다.
나중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의 드림한증막으로 떠나게 되였다. 대형사우나인 드림한증막은 장사가 유난히 잘되였다. 뽀얀 증기속에서 한창 때밀이를 서두르고있던 오야지 전운호는 새로 《배치》되여 온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인사 한마디도 없이 타올을 던져주며 바로 때밀이를 시작하라고 명령한다. 나는 정신없이 손님들을 받기 시작하였다. 바빠서 프로나 아마추어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첫날 때밀이는 저녁 10시가 다 되여서야 끝났다. 나는 깜작 놀랐다. 땀벌창이 된 내가 혼자서 26명 손님의 때밀이를 한것이다. 전씨는 오늘 수고했다며 찬 음료수 한병을 사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마음씨 좋은 오야지를 만났다고 속으로 한창 기뻐하고있는데 웬걸 《일은 열심히 하는데 솜씨가 서툴구먼》 라고 하면서 월급을 처음에 결정한 180만원은 안되고 150만원밖에 줄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되돌아가라는 식이였다. 돌아가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곧바로 길가의 로숙자로 나앉아야 할 형편인데. 늦가을 서리를 맞은 가지처럼 축 처진 나는 헐값으로 된 《인신매매계약서》에 동의할수밖에 없었다.
나보다 어린 전운호는 한국인인데 때밀이하여 돈도 적잖게 버는것 같았다. 이전에 때밀이 오야지를 하려고 1억을 담보금으로 냈다가 사기당한적도 있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아니면 나한테 돈이 있다고 자랑을 해댄것인지는 알수 없다. 한증막에서 때밀이 오야지를 하는 외에 전씨는 또 주식도 놀고 있었다. 때밀이를 오래 해서인지 그의 팔뚝근육은 보기 좋게 울퉁불퉁 튀여나와있었다. 내가 갓 왔을 때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고 묻기에 나는 좀 어리게 보이려고 서른한살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자기가 한살 우라며 이후부터는 자기를 전형이라고 부르라고 하였다. 이렇게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린 전씨를 곰상스럽게 두손을 싹싹 비비며 《전형》이라고 부르게 되였다.
한증막의 장사는 여전히 잘되여 눈코뜰새없었다. 때밀이를 제일 많이 한 날은 손님이 90명도 넘었다. 정말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하루동안 죽을둥살둥 모르고 일하고나면 온몸은 만신창이 되여버린다. 힘들 때는 커피를 연거퍼 타마시군 했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하는 한국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하겠구나 하며 자기 나름대로 분석도 해보았다. 밤 11시 당장이라도 쓰러져버릴것만 같은 지친 몸을 겨우 가누며 퇴근해 그 자리로 너부러져 잘 때는 귀신이 내려와서 잡아가도 모를 정도다. 그래도 잠을 잘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나 행복했다. 힘들고 고달픈 나날은 이렇게 계속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