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특집다큐', 잊혀진 조선 산포수 무장 투쟁기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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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01 17:30본문
삼일절을 맞아 호랑이 대신 일제를 향해 총을 겨눴던 조선 산포수들의 항쟁기가 브라운관에서 펼쳐진다.
1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KBS1 '삼일절 특집다큐 발굴추적, 조선 정예부대 타이거 헌터'에서는 호랑이 잡던 조선의 산포수들이 한일 강제병합 이후 초창기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이야기를 방송 최초로 다룬다.
구한말 고종은 "경군은 향군만 못하고, 향군은 백발백중하는 산포수만 못하다"라며 산포수에 출중한 기량을 칭찬했다. 산포수로 불리는 산척 혹은 산행 포수의 존재는 조선 태종 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던 전문부대인 '착호갑사'는 '착호군'으로 조직화됐다.
조선 말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산포수들은 조선의 정예부대가 돼 활약했다. 이후 의병항쟁에 투신한 포수들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독립군으로 치열한 무장 투장의 선봉에 섰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과 미국, 중국 3개국 취재를 통해 조선 정예부대인 산포수, 일명 '타이거 헌터'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신미양요 당시 산포수 부대, 일명 '타이거 헌터'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미군의 기록과 조선에서 노획한 무기를 통해 목숨을 걸고 외세에 저항한 산포수 부대의 장렬한 전투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미양요 연구 전문가인 토마스 듀버네이 교수는 당시 조선군이 사용한 화승총과 탄환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미군조차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고 평가한 신미양요의 최고의 전사는 바로 산포수였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격퇴한 병인양요에서도 산포수를 주축으로 한 조선군은 근대식 병기로 장비한 프랑스군을 공격을 막아내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국내에 산포수 항쟁사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 또한 산포수 항쟁사의 연구자도 전무하다. 때문에 독립운동사에서 산포수들에 대한 내용은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제작진은 산포수에 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학교는 물론 중국의 관련 학자, 국회도서관, 제천의병전시관, 육군박물관 등에서 국내외에서 백방으로 기록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산포수 부대의 존재와 그들의 역할에 관한 단초를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중국 지린성 왕칭현 일대에서 홍범도 장군과 산포수 독립군의 흔적을 어렵게 찾아내 의병항쟁에 이어 항일 무장항쟁의 역사를 추적했다.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 탄압과 함께 한반도에 있는 호랑이 말살정책을 함께 진행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프티 주르날'은 일제가 조선인에게서 총기를 빼앗은 결과, 호랑이와 늑대로 인한 인명피해가 늘고 있다고 폭로했다.
'총포화약류단속법'을 통해 총을 빼앗긴 조선의 포수들은 산짐승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맹수들보다도 아래 위치에 놓인 것이다. 결국 조선총독부는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를 사냥하는 '해수구제작전'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1915년부터 1942년까지 잡은 호랑이는 백여 마리에 이른다. 심지어 일본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대규모로 호랑이를 사냥하는 정호군을 꾸려 한반도 전역에서 사냥에 나섰다. 산포수는 물론이고 호랑이조차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한반도에서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과거가 공개된다.
1919년 3ㆍ1운동을 전후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평화적인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반도 북쪽에서는 산포수 독립군이 일제와 무장 항쟁을 펼치고 있었다. 산포수 출신인 홍범도 장군은 함경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 끝에 승전을 기록했다.
이후 산포수가 독립군으로 조직화하면서 봉오동 전투에 이어 청산리 대첩에 이르기까지 항일 무장 항쟁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3.1운동을 기폭제로 평화적인 항일 운동에서 치열한 항일 투쟁으로 변화한 역사 속에 산포수 독립군이 존재했음을 조명한다.
하지만 산포수들의 항일 투쟁은 역사에서 철저하게 잊혀졌다. 산포수 출신인 '날으는 장군'인 홍범도 곁에는 '천 리를 뛰는' 차도선 의병장이 있었다. 제작진은 오랜 수소문 끝에 구한말 의병항쟁의 주역인 산포수 의병장, 차도선의 후손을 만났다.
산포수 의병장 차도선 의병장의 소원은 오직 "만주에 묻힌 산포수 독립군의 존재를 기억해주길. 그리고 그들의 유해가 발굴되어 조국에 묻히는 것"이었다. 97주년 삼일절을 맞아 이제부터라도 항일 무장 투쟁의 주축이었던 산포수 독립군의 역사를 발굴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슈팀 ent1@segye.com
1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KBS1 '삼일절 특집다큐 발굴추적, 조선 정예부대 타이거 헌터'에서는 호랑이 잡던 조선의 산포수들이 한일 강제병합 이후 초창기 항일 무장투쟁을 주도했던 이야기를 방송 최초로 다룬다.
구한말 고종은 "경군은 향군만 못하고, 향군은 백발백중하는 산포수만 못하다"라며 산포수에 출중한 기량을 칭찬했다. 산포수로 불리는 산척 혹은 산행 포수의 존재는 조선 태종 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호랑이를 전문적으로 사냥하던 전문부대인 '착호갑사'는 '착호군'으로 조직화됐다.
조선 말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비롯한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자 산포수들은 조선의 정예부대가 돼 활약했다. 이후 의병항쟁에 투신한 포수들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자 독립군으로 치열한 무장 투장의 선봉에 섰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과 미국, 중국 3개국 취재를 통해 조선 정예부대인 산포수, 일명 '타이거 헌터'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신미양요 당시 산포수 부대, 일명 '타이거 헌터'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었다.
미군의 기록과 조선에서 노획한 무기를 통해 목숨을 걸고 외세에 저항한 산포수 부대의 장렬한 전투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미양요 연구 전문가인 토마스 듀버네이 교수는 당시 조선군이 사용한 화승총과 탄환을 취재진에게 공개했다.
미군조차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고 평가한 신미양요의 최고의 전사는 바로 산포수였다. 또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서구 열강의 침략을 격퇴한 병인양요에서도 산포수를 주축으로 한 조선군은 근대식 병기로 장비한 프랑스군을 공격을 막아내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국내에 산포수 항쟁사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글을 배우지 못했기에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다. 또한 산포수 항쟁사의 연구자도 전무하다. 때문에 독립운동사에서 산포수들에 대한 내용은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제작진은 산포수에 관한 기록을 찾기 위해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학교는 물론 중국의 관련 학자, 국회도서관, 제천의병전시관, 육군박물관 등에서 국내외에서 백방으로 기록을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산포수 부대의 존재와 그들의 역할에 관한 단초를 찾아낼 수 있었다.
또한 중국 지린성 왕칭현 일대에서 홍범도 장군과 산포수 독립군의 흔적을 어렵게 찾아내 의병항쟁에 이어 항일 무장항쟁의 역사를 추적했다.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독립운동 탄압과 함께 한반도에 있는 호랑이 말살정책을 함께 진행했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 프티 주르날'은 일제가 조선인에게서 총기를 빼앗은 결과, 호랑이와 늑대로 인한 인명피해가 늘고 있다고 폭로했다.
'총포화약류단속법'을 통해 총을 빼앗긴 조선의 포수들은 산짐승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은 맹수들보다도 아래 위치에 놓인 것이다. 결국 조선총독부는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를 사냥하는 '해수구제작전'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1915년부터 1942년까지 잡은 호랑이는 백여 마리에 이른다. 심지어 일본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대규모로 호랑이를 사냥하는 정호군을 꾸려 한반도 전역에서 사냥에 나섰다. 산포수는 물론이고 호랑이조차 일제의 강력한 탄압으로 한반도에서 명맥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과거가 공개된다.
1919년 3ㆍ1운동을 전후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평화적인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같은 시기, 한반도 북쪽에서는 산포수 독립군이 일제와 무장 항쟁을 펼치고 있었다. 산포수 출신인 홍범도 장군은 함경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맞서 치열한 전투 끝에 승전을 기록했다.
이후 산포수가 독립군으로 조직화하면서 봉오동 전투에 이어 청산리 대첩에 이르기까지 항일 무장 항쟁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3.1운동을 기폭제로 평화적인 항일 운동에서 치열한 항일 투쟁으로 변화한 역사 속에 산포수 독립군이 존재했음을 조명한다.
하지만 산포수들의 항일 투쟁은 역사에서 철저하게 잊혀졌다. 산포수 출신인 '날으는 장군'인 홍범도 곁에는 '천 리를 뛰는' 차도선 의병장이 있었다. 제작진은 오랜 수소문 끝에 구한말 의병항쟁의 주역인 산포수 의병장, 차도선의 후손을 만났다.
산포수 의병장 차도선 의병장의 소원은 오직 "만주에 묻힌 산포수 독립군의 존재를 기억해주길. 그리고 그들의 유해가 발굴되어 조국에 묻히는 것"이었다. 97주년 삼일절을 맞아 이제부터라도 항일 무장 투쟁의 주축이었던 산포수 독립군의 역사를 발굴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슈팀 ent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