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만에 살아돌아온 '윤동주'…"일시적 유행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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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03-07 14:58|본문
올해들어 가장 두드러진 문화현상으로 떠오른 시인 '윤동주'(1917~1945). 책과 영화, 창작 가무극 등으로 변주되는 윤동주라는 인물과 그의 시를 향한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는 윤동주 70주기였고 내년은 탄생 100년이다. 최근 윤동주 시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옛모습 그대로 출간돼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저예산 영화인 이준익 감독의 '동주'는 '위인'이 아닌 '인간' 윤동주에 초점을 맞추어, 지난달 개봉 이후 약 20일이 지난 현재 관객 90만을 기록하며 순항중이다.
윤동주의 숭실중학교 재학 시절. 뒷줄 제일 오른쪽이 윤동주이고 그 옆이 고 문익환 목사다.(윤동주기념사업회 사이트 자료사진 캡처)
하지만 우리는 윤동주를 잘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마케팅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까. 이에 대해 출판계와 문학계는 윤동주에 대한 '소비'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필연이며 이 현상이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보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윤동주 시인을 소비해온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민족시인' '저항시인' 윤동주였다. 하지만 그간 비평계 일각에서 이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있어왔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일제하 지식인들이 모두 친일을 한 것은 아니며 이런 저항의 시인도 있었다'는 식의 문학적 알리바이로서 쓰인 면을 비판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저항시인' '민족지사' 관점에서 벗어나 영화 '동주'를 비롯해 많은 문화적 접근이 부끄러움과 반성에서 참된 저항으로 나아가는 윤동주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윤동주 시인의 시는 딱 20대가 갖고 있는 정서를 건드린다"며 "'이즘'(ism) 즉 무거운 사상에서 자유로우면서 영원한 시심을 노래하는 점이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이 있어 그는 계속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흐의 경우처럼 '어떻게 살았느냐'도 어떤 예술인의 선호의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윤동주의 극적인 생애 역시 젊은이들을 끌어당긴다"고도 했다.
2013년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한 이정록 시인은 "젊은이들은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수도 없이 느끼는데 이를 대신 노래해줄 이가 그동안 한국시사에 없었다"며 '윤동주 열풍'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1980년대 민족민중시, 1990년대 포스트모던한 시, 미래파 시, 교과서에 실린 시 등은 오늘날 젊은이들의 부끄러움과 저항의 정서를 잘 전달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부담없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윤동주에게 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시인 역시 "윤동주는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젊은층에게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반면 "20대들이 자기 내면을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식민지시대까지 올라가야 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이어 "문학출판계에서는 그간 윤동주 시인에 대해서는 상품으로 파는데 집중했지 그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거나 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지는 못해왔다. 출판이 학계에서나 다른 문화계에서 이룬 진전을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역할을 해왔느냐 하는 데는 회의적"이라고 출판의 역할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명했다.
그는 "박제해서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면만 보려고 했던 윤동주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해 생명력 있는 문인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과제"라면서 "지금의 대중적 관심은 다른 차원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윤동주의 시 세계에 대해서도 명성에 걸맞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유성호 교수는 "윤동주의 시 세계는 사망하기 2~3년전 24세 5개월 무렵에 완성됐다. 22세부터 24세까지 그의 생애의 약 3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데서 보듯 파시즘과 군국주의로 인해 짓눌린 인생들에 대한 연민과 행동하는 지식인에 대한 열망과 열등의식 등을 다 융합시켜 탁월한 시세계를 완성했다"고 평가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개인적으로) 윤동주 시인의 삶은 개개인의 삶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구나하는 것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젊은이들은 '당위'가 아닌 자신과의 '삶의 연관성'이 있어야 사회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윤동주의 삶은 식민지 치하에서 개개인이 순수한 삶을 살고자 해도 국가나 사회가 그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젊은이들이 윤동주 시인의 전체 삶을 보면서 그 시대적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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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교수·인문학부 김규종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아마 윤동주일 것이다. 소월(素月) 김정식이나 미당 서정주를 애호하는 독자들도 적잖을 테지만. 소월의 정한(情恨)과 미당의 친일(親日)은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 나는 육사(陸史) 이원록 시인을 제일 사랑한다. 이육사-윤동주 시인은 간악한 일제강점기를 의연하게 견뎌낸다. 그들로 한국 문학사는 암흑기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일본인들이 동주가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에 윤동주 시비(詩碑)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내년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인데, 일본인들은 그날을 시비로 기리고자 하는 게다. 한국인도 애송하는 `서시`를 함께 읽고 동주를 사모하고 기리는 일본인들이라니! 각박한 염량세태(炎凉世態)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시인과 역사를 일본인들이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인들의 문학사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대략 800만 정도의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단시(短詩) `하이쿠(俳句)`를 즐긴다는 통계가 있다. 명치시대를 살다간 하이쿠의 명인 다쿠보쿠는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짧은 만화영화 `언어의 정원`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 시가집인 `만엽집`이다. 이밖에도 선승(禪僧)들의 선시나 중국에서 전래된 각종 한시(漢詩)를 애호하거나 창작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작년에 중국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소주(蘇州)를 찾아갔다가 `한산사(寒山寺)`에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50대 이상으로 이뤄진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었다. 단 한 편의 시로 중국 문학사에 등재된 장계의 7언 고시 `풍교야박`은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윤동주의 시도 일본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고 전한다.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는 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는 정황(情況)까지 서술하면서 시인의 사인(死因)을 밝히는 것이 일본인들의 소명(召命)이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일본과 일본인은 더러 생뚱맞게 어긋나곤 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맹방(盟邦) 미국과 미국인의 형상이 어긋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동주와 장계 두 시인의 예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실감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어떤 국어 교과서에도 일본과 중국의 시인이나 작품은 소개돼 있지 않았다. 뜬금없이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나 `별` 혹은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같은 서양문학을 배운 기억이 새롭다. 지근거리(至近距離)의 중국과 일본문학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하고 구미의 문학을 가르친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반도는 근본적으로 한문-유교-도교-불교 문화권에 속한다. 남북한과 중국-대만 그리고 일본은 동일한 문화권에서 상호 교류하면서 장구(長久)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런 역사적인 전통과 문화권 공유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커다란 자산이자 전통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때마침 이준익 감독의 `동주`가 상영되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합의”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욕보인 정부는 역사적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 시점에 동주 시비를 건립하려는 일본인들의 노력이라니!
죽는 날까지 맑음과 곧음과 보편적 사랑을 설파했던 동주와 반일투쟁에 평생을 헌신했던 백마 타고 온 육사. 우리에게 영원한 정신적 자양과 성찰의 근거를 만든 두 시인을 초봄에 사유한다. 반면에 연변의 용정에 자리한 윤동주 박물관과 서툰 중국어로 번역된 낯선 시편(詩篇)들이 널브러져 있는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항일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소개되는 윤동주! 이 나라 문화 책임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새삼스럽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은 아마 윤동주일 것이다. 소월(素月) 김정식이나 미당 서정주를 애호하는 독자들도 적잖을 테지만. 소월의 정한(情恨)과 미당의 친일(親日)은 나름의 한계를 가진다. 나는 육사(陸史) 이원록 시인을 제일 사랑한다. 이육사-윤동주 시인은 간악한 일제강점기를 의연하게 견뎌낸다. 그들로 한국 문학사는 암흑기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일본인들이 동주가 옥사한 후쿠오카 형무소 자리에 윤동주 시비(詩碑)를 세우려 하는 것이다. 내년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인데, 일본인들은 그날을 시비로 기리고자 하는 게다. 한국인도 애송하는 `서시`를 함께 읽고 동주를 사모하고 기리는 일본인들이라니! 각박한 염량세태(炎凉世態)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시인과 역사를 일본인들이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인들의 문학사랑은 남다른 구석이 있다. 대략 800만 정도의 일본인들이 전통적인 단시(短詩) `하이쿠(俳句)`를 즐긴다는 통계가 있다. 명치시대를 살다간 하이쿠의 명인 다쿠보쿠는 오늘날까지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짧은 만화영화 `언어의 정원`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 시가집인 `만엽집`이다. 이밖에도 선승(禪僧)들의 선시나 중국에서 전래된 각종 한시(漢詩)를 애호하거나 창작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작년에 중국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소주(蘇州)를 찾아갔다가 `한산사(寒山寺)`에 몰려든 일본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50대 이상으로 이뤄진 일본인 관광객들이 한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당나라 시인 장계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이었다. 단 한 편의 시로 중국 문학사에 등재된 장계의 7언 고시 `풍교야박`은 일본의 국어 교과서에 실렸다고 한다.
15년 전까지만 해도 윤동주의 시도 일본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다고 전한다. 고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는 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두는 정황(情況)까지 서술하면서 시인의 사인(死因)을 밝히는 것이 일본인들의 소명(召命)이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일본과 일본인은 더러 생뚱맞게 어긋나곤 한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맹방(盟邦) 미국과 미국인의 형상이 어긋나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동주와 장계 두 시인의 예에서 나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실감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어떤 국어 교과서에도 일본과 중국의 시인이나 작품은 소개돼 있지 않았다. 뜬금없이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나 `별` 혹은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같은 서양문학을 배운 기억이 새롭다. 지근거리(至近距離)의 중국과 일본문학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하고 구미의 문학을 가르친 저의(底意)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반도는 근본적으로 한문-유교-도교-불교 문화권에 속한다. 남북한과 중국-대만 그리고 일본은 동일한 문화권에서 상호 교류하면서 장구(長久)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런 역사적인 전통과 문화권 공유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의 커다란 자산이자 전통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과거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때마침 이준익 감독의 `동주`가 상영되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도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합의”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욕보인 정부는 역사적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그런 시점에 동주 시비를 건립하려는 일본인들의 노력이라니!
죽는 날까지 맑음과 곧음과 보편적 사랑을 설파했던 동주와 반일투쟁에 평생을 헌신했던 백마 타고 온 육사. 우리에게 영원한 정신적 자양과 성찰의 근거를 만든 두 시인을 초봄에 사유한다. 반면에 연변의 용정에 자리한 윤동주 박물관과 서툰 중국어로 번역된 낯선 시편(詩篇)들이 널브러져 있는 풍경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항일시인 윤동주가 아니라,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소개되는 윤동주! 이 나라 문화 책임자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