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정책으로 ‘동화 아닌 조화’ 강조하는 정세균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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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07-12 01:26|본문
[서울=동북아신문]14년만에 야당출신 국회의장이 탄생하면서 재한 조선족동포사회는 물론 다문화 커뮤니티 안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의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과 리더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치 12년전(2003년12월29일)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울조선족교회를 예방했던 그날을 방불하듯, 사상 처음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유일하게 가시덤불속에 묻혀 있는 조선족동포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고 대통령의 인자하시고 평역근인(平易近人)한 자태로 온 장내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었던 그 날처럼 감개가 무량한 요즘의 나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뚜렷한 개성이나 화려한 카리스마로 주목을 받은 적은 없지만,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온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인생 도중, 비리에 연루되거나 사생활이나 정치활동 상의 구설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지만, 그에 못지않은 강단과 엄격함 또한 갖추고 있다는 평이 일순위로 손색이 없다.
전북 진안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공고에 진학했으나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전주신흥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학교 매점에서 알바로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하면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고려대 재학 당시엔 고대신문기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에 쌍룡그룹에 입사,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주재원으로 근무했고, 상무이사가 되어 수출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미국 페퍼다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아 실물과 이론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제안을 받고 총재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면서 연청(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의 전북 책임자가 되었고, 1996년 무진장으로 알려진 무주, 진안, 장수 지역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7년에 연청의 중앙회장으로서 30만 회원을 이끌면서 대선승리를 주도한 그는 이번 20대 국회까지 무려 여섯 번을 내리 당선하였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노사정 위원장을, 참여정부에서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책위 의장, 원내대표, 당의장, 당대표 등을 역임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 유능한 경제대통령 및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기도 했다.
청년실업에 관한 대안을 정책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여 왔으며, 실물경제에 밝다는 장점을 십분 이용하여 가계부채를 완화하고자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또한 귀화와 이주로 인해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과 귀환동포 150만명 시대에, 다문화 가정의 의사소통과 문화적 갈등, 경제적 빈곤과 자녀교육복지의 차별, 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당대표시절, 다문화가정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재한 조선족동포사회에도 관심이 높거니와 “항상 중국조선족은 56개 소수 민족 중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서 한국인 모두가 자긍심을 가지고 우선 소통과 융합을 이룩할 때가왔다”면서 중량감 높은 6선 경륜과 합리적 리더십의 정치인으로 “다문화정책과 재한조선족동포정책은 동화 아닌 조화”를 강조한다.
그는 다문화로 표현되는 소수자 사회가 기존 사회로 흡수되는 동화정책을 지양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다문화 사회를 추구해야한다고 말한다. 즉, 동포정책 또한 기존 한국사회로의 흡수나 동화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조화를 이루고 사회통합을 이뤄야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의 차이를 존중하는 다양성 속에 적극적인 통합노력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다문화 또는 동포정책이 나아가야할 정책의 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정 의장의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세균맨’이다. 선거유세 중에 초등학생에게 세균맨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세균맨 화이팅!’이라는 쪽지를 받았다고 한다. 선거유세차량을 공모해서 이름을 ‘소독차’로 사용해서 “좋은 세균, 정세균이 소독차를 타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해서 수많은 재한 조선족 동포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줬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그가 의장으로서, 소독차를 탄 좋은 세균으로서 탁한 정치현장에서 특유의 온화한 타협과 협치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넘쳐흐른다. (길림신문 유경길기자)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은 뚜렷한 개성이나 화려한 카리스마로 주목을 받은 적은 없지만,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온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인생 도중, 비리에 연루되거나 사생활이나 정치활동 상의 구설수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온화한 성품을 지녔지만, 그에 못지않은 강단과 엄격함 또한 갖추고 있다는 평이 일순위로 손색이 없다.
전북 진안군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공고에 진학했으나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전주신흥고등학교로 전학하였다. 학교 매점에서 알바로 돈을 벌어 학비를 마련하면서 공부를 해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고려대 재학 당시엔 고대신문기자,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고,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에 쌍룡그룹에 입사,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주재원으로 근무했고, 상무이사가 되어 수출업무를 맡았다. 그동안 미국 페퍼다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아 실물과 이론을 두루 갖추게 되었다.
1995년에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제안을 받고 총재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면서 연청(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의 전북 책임자가 되었고, 1996년 무진장으로 알려진 무주, 진안, 장수 지역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7년에 연청의 중앙회장으로서 30만 회원을 이끌면서 대선승리를 주도한 그는 이번 20대 국회까지 무려 여섯 번을 내리 당선하였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노사정 위원장을, 참여정부에서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책위 의장, 원내대표, 당의장, 당대표 등을 역임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에 유능한 경제대통령 및 가계부채 부담을 줄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로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패하기도 했다.
청년실업에 관한 대안을 정책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여 왔으며, 실물경제에 밝다는 장점을 십분 이용하여 가계부채를 완화하고자하는 정책을 끊임없이 개발하여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또한 귀화와 이주로 인해 국내에 정착한 외국인과 귀환동포 150만명 시대에, 다문화 가정의 의사소통과 문화적 갈등, 경제적 빈곤과 자녀교육복지의 차별, 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하여 당대표시절, 다문화가정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재한 조선족동포사회에도 관심이 높거니와 “항상 중국조선족은 56개 소수 민족 중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서 한국인 모두가 자긍심을 가지고 우선 소통과 융합을 이룩할 때가왔다”면서 중량감 높은 6선 경륜과 합리적 리더십의 정치인으로 “다문화정책과 재한조선족동포정책은 동화 아닌 조화”를 강조한다.
그는 다문화로 표현되는 소수자 사회가 기존 사회로 흡수되는 동화정책을 지양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다문화 사회를 추구해야한다고 말한다. 즉, 동포정책 또한 기존 한국사회로의 흡수나 동화가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조화를 이루고 사회통합을 이뤄야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의 차이를 존중하는 다양성 속에 적극적인 통합노력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다문화 또는 동포정책이 나아가야할 정책의 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정 의장의 별명은 이름에서 따온 ‘세균맨’이다. 선거유세 중에 초등학생에게 세균맨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세균맨 화이팅!’이라는 쪽지를 받았다고 한다. 선거유세차량을 공모해서 이름을 ‘소독차’로 사용해서 “좋은 세균, 정세균이 소독차를 타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라고 해서 수많은 재한 조선족 동포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줬다.
이번 20대 국회에서 그가 의장으로서, 소독차를 탄 좋은 세균으로서 탁한 정치현장에서 특유의 온화한 타협과 협치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넘쳐흐른다. (길림신문 유경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