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만을 위해 달린 억척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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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08-05 15:33|본문
(흑룡강신문=하얼빈) 지난해 1월 10일, 심양시 남풍대극장에서 개최된 료녕성한마음(同舟)애심기금회 설립식에서 조선족기업가 박성태는 기타 7명 기업가와 함께 인당 100만원을 기금회에 쾌척했다.
박성태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료녕은덕공정기계설치유한회사는 설립된 10여년간 줄곧 사회 공익사업에 앞장서오면서 지금까지 600여만원의 성금을 후원해왔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사업이 순탄했던것만은 아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사이, 은덕회사는 고난기를 겪는다.
박성태총경리는 “당시 회사는 매일 오전 출근하면 점심밥을 먹을 돈을 구하러 나설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은덕회사는 강서성 경덕진코스코화(焦化)총공장의 1만립방메터짜리 소형 가스발생로 2대 주문을 계기로 회사의 업무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설비는 그후 은덕회사에 구매의향을 밝혀오는 국내 고객들의 참관대상으로 되였고 회사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는데 발판이 되였다.
은덕회사는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에 수백평방메터의 공장건물을 임대하여 생산을 시작했는데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 들어서면서 업무의 부단한 확대로 인해 무순경제개발구에 두차례에 걸쳐 4만여평방메터에 달하는 부지를 구매하여 4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공장건물과 사무실건물을 지어 본격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한다.
회사의 주요제품은 저질분탄을 연소해 생성된 가스를 도시가스, 공업가스, 합성가스로 사용할수 있는 가스발생로인데 시간당 생산능력이 각각 4만, 2만, 1만 립방메터에 달하는 대, 중, 소형으로 나뉘며 소형기계의 단가가 무려 1300만원, 대형기계는 3000만원의 높은 가격임에도 해당 업체에 불티나게 팔리고있다.
현재 은덕회사에서 생산하는 가스발생로 등 수십가지 제품은 동북3성을 벗어나 화북, 화중, 화남, 서북 등 전국 전역의 석유, 화공, 야금, 정유, 가스 등 분야의 수십개 업종 기업들에서 다투어 찾는 제품으로 그 인기를 자랑하고있다.
40여명 직원으로 수백평방메터의 건물로 창업한 은덕회사는 10여년의 발전을 거쳐 전국 각지의 수십개에 달하는 강철공장, 탄소공장, 비료공장, 화공기업들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10여년간 독보적인 존재로 되였다.
박성태총경리에 따르면 현재 해당 업종은 화란, 독일 등 외국 유명브랜드와 국내 해당 업체의 8개 브랜드가 치렬한 전쟁을 재현하고있는데 은덕회사는 10여년간 축적된 기술과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아직 비교적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고있다.
현재 200여명의 각종 전문 기술일군에 4만여평방메터의 부지와 4만여평방메터의 공장건물에 고정자산 6000여만원, 년매출 1억여원, 1천만원의 세금을 납부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은덕회사는 선후하여 “료녕성우수신용기업”, “전국소비자만족기업”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박성태는 2001년에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의 창립멤버(성원)로 상무부회장을 맡아 무순지역의 조선족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오다가 2009년에 제3기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박성태회장은 현재 협회의 성원기업은 50여개로서 주로 제조, 무역, 음식업이 위주이며 회사규모가 큰편은 아니지만 내공만은 탄탄하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회장을 맡은후 박성태는 협회의 기업가들로부터 인당 수만원, 수십만원씩 모금하여 3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협회 음식점을 개업하였다. 70-80만원에 달하는 음식점의 년리윤중 절반은 투자자들에게 갚고 남은 절반은 협회의 명의로 각 조선족 사회단체의 활동에 지원한다.
박성태는 2012년 8월에 형 박성관이 발족한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 설립식에서 20만원의 성금을 기부했을뿐만아니라 무순지역의 조선족기업인들을 적극 동원하여 김영남, 리영준, 김일선, 김월창 등 20여명의 기업가들이 동참해 9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 성적으로 가장 앞장에 섰다.
지난해 1월 10일,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는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로 탈바꿈하면서 애심기금 1400만원을 모금하며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이는 애심기금회가 장기적으로 존속될수 있음을 표명한다. 즉 노벨상 운영모식으로 기금원금은 은행에 장기예금하고 그 리자로 전 성 조선족 독거로인, 빈곤가정, 빈곤학생을 상대로 애심활동을 펼칠수 있게 된것이다.
일찍 무순시공상련 부주석으로 추대된 박성태는 2003년에 무순시인대 대표로, 2008년에 료녕성인대 대표로 추대되였다.
박성태가 무순시인대 대표, 료녕성인대 대표로 추대된후 인대에 제출한 건의들은 50여건에 달했는데 경제, 민생 문제외 본 민족에 관한 건의만 해도 조선족간부를 증가시킬데 관한 건의, 조선족교육경비를 증가할데 관한 건의, 조선족학생들의 평균 공용경비기준을 높일데 관한 건의, 소수민족보장조례를 수정할데 관한 건의 등 10여건에 달했다.
힘듬앞에 고개를 숙인적 없는 박성태총경리의 꿈은 영글어간다.
박성태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료녕은덕공정기계설치유한회사는 설립된 10여년간 줄곧 사회 공익사업에 앞장서오면서 지금까지 600여만원의 성금을 후원해왔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사업이 순탄했던것만은 아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사이, 은덕회사는 고난기를 겪는다.
박성태총경리는 “당시 회사는 매일 오전 출근하면 점심밥을 먹을 돈을 구하러 나설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01년, 은덕회사는 강서성 경덕진코스코화(焦化)총공장의 1만립방메터짜리 소형 가스발생로 2대 주문을 계기로 회사의 업무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이 설비는 그후 은덕회사에 구매의향을 밝혀오는 국내 고객들의 참관대상으로 되였고 회사가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는데 발판이 되였다.
은덕회사는 지난 세기 90년대 중반에 수백평방메터의 공장건물을 임대하여 생산을 시작했는데 2000년대 중반과 후반에 들어서면서 업무의 부단한 확대로 인해 무순경제개발구에 두차례에 걸쳐 4만여평방메터에 달하는 부지를 구매하여 4만평방메터에 달하는 공장건물과 사무실건물을 지어 본격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한다.
회사의 주요제품은 저질분탄을 연소해 생성된 가스를 도시가스, 공업가스, 합성가스로 사용할수 있는 가스발생로인데 시간당 생산능력이 각각 4만, 2만, 1만 립방메터에 달하는 대, 중, 소형으로 나뉘며 소형기계의 단가가 무려 1300만원, 대형기계는 3000만원의 높은 가격임에도 해당 업체에 불티나게 팔리고있다.
현재 은덕회사에서 생산하는 가스발생로 등 수십가지 제품은 동북3성을 벗어나 화북, 화중, 화남, 서북 등 전국 전역의 석유, 화공, 야금, 정유, 가스 등 분야의 수십개 업종 기업들에서 다투어 찾는 제품으로 그 인기를 자랑하고있다.
40여명 직원으로 수백평방메터의 건물로 창업한 은덕회사는 10여년의 발전을 거쳐 전국 각지의 수십개에 달하는 강철공장, 탄소공장, 비료공장, 화공기업들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10여년간 독보적인 존재로 되였다.
박성태총경리에 따르면 현재 해당 업종은 화란, 독일 등 외국 유명브랜드와 국내 해당 업체의 8개 브랜드가 치렬한 전쟁을 재현하고있는데 은덕회사는 10여년간 축적된 기술과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아직 비교적 강한 경쟁력을 확보하고있다.
현재 200여명의 각종 전문 기술일군에 4만여평방메터의 부지와 4만여평방메터의 공장건물에 고정자산 6000여만원, 년매출 1억여원, 1천만원의 세금을 납부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은덕회사는 선후하여 “료녕성우수신용기업”, “전국소비자만족기업” 등 영예를 받아안았다.
박성태는 2001년에 무순시조선족기업가협회의 창립멤버(성원)로 상무부회장을 맡아 무순지역의 조선족활동을 꾸준히 진행해오다가 2009년에 제3기 회장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박성태회장은 현재 협회의 성원기업은 50여개로서 주로 제조, 무역, 음식업이 위주이며 회사규모가 큰편은 아니지만 내공만은 탄탄하다고 자부심을 드러낸다.
회장을 맡은후 박성태는 협회의 기업가들로부터 인당 수만원, 수십만원씩 모금하여 3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협회 음식점을 개업하였다. 70-80만원에 달하는 음식점의 년리윤중 절반은 투자자들에게 갚고 남은 절반은 협회의 명의로 각 조선족 사회단체의 활동에 지원한다.
박성태는 2012년 8월에 형 박성관이 발족한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 설립식에서 20만원의 성금을 기부했을뿐만아니라 무순지역의 조선족기업인들을 적극 동원하여 김영남, 리영준, 김일선, 김월창 등 20여명의 기업가들이 동참해 90여만원의 성금을 모아 전 성적으로 가장 앞장에 섰다.
지난해 1월 10일, 료녕성조선족애심기금회는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로 탈바꿈하면서 애심기금 1400만원을 모금하며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이는 애심기금회가 장기적으로 존속될수 있음을 표명한다. 즉 노벨상 운영모식으로 기금원금은 은행에 장기예금하고 그 리자로 전 성 조선족 독거로인, 빈곤가정, 빈곤학생을 상대로 애심활동을 펼칠수 있게 된것이다.
일찍 무순시공상련 부주석으로 추대된 박성태는 2003년에 무순시인대 대표로, 2008년에 료녕성인대 대표로 추대되였다.
박성태가 무순시인대 대표, 료녕성인대 대표로 추대된후 인대에 제출한 건의들은 50여건에 달했는데 경제, 민생 문제외 본 민족에 관한 건의만 해도 조선족간부를 증가시킬데 관한 건의, 조선족교육경비를 증가할데 관한 건의, 조선족학생들의 평균 공용경비기준을 높일데 관한 건의, 소수민족보장조례를 수정할데 관한 건의 등 10여건에 달했다.
힘듬앞에 고개를 숙인적 없는 박성태총경리의 꿈은 영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