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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정체성 깃든 고려인들의 삶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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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10-08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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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정체성 깃든 고려인들의 삶 들여다보다

국립민속박물관, 러시아 연해주 현지조사 보고서 발간


국립민속박물관 조사팀이 아리랑 조사를 위해 앉아서 편하게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러시아 연해주의 80대 고려인 할머니들은 “어디 고향 노래를 앉아서 부르냐”고 호통을 쳤다. 완창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들. “고향이 생각나거나 명절, 우리 고향이 생각나면 아리랑을 부르오.” 최 나제즈다 알렉산드로브나(82) 할머니의 말이다. 

정 이리나 발렌티노브나(20)씨는 한국, 한국어를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좋았어요. 피가 당기는 건가?” 

최 할머니와 이리나씨는 연해주의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지만 그것에 대한 의미부여는 판연히 다르다. 아리랑만 불러도 눈물이 나는 세대와 한국을 좋아하지만 그 이유는 알지 못하겠다는 세대의 차이란 크다. 1860년대 연해주로의 이주가 시작되고 150여 년, 지금 연해주 고려인들이 직접 말하는 ‘한민족정체성’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지난해 러시아 연해주의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생활문화를 조사한 결과를 보고서 ‘고려인의 목소리’로 엮어냈다. 




러시아 연해주의 고려인 공동체에서 환갑 잔치는 큰 돈을 들여 치르는 중요한 행사다. 한국인들의 러시아 이주가 150여 년 전 시작되고 많이 약화되기는 했으나 환갑 잔치와 같은 모습에서 여전한 한민족정체성을 읽을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80, 90대의 최고 연장자들은 1937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한 어린 시절의 참담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김 알렉산드리아(92) 할머니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가는 강제이주열차를 탄 건 14살 때였다. 

“아무것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해서 그저 갔지. 짐처럼 실려 갔어. 내 탔던 칸에 영감 노친네가 있었는데 오줌 싸러 기차 밑으로 들어갔다가 못 나오고 차에 끼어서 죽었어.”

10살 때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간 강옥금(89) 할머니의 기억도 처참하다. “(객차 안에서) 조그만 아가 어떡하다가 죽었지. 두 살이었는데 병 걸려서 기차를 세웠을 때 빨라 나가서 파묻고 갔지.”

낯선 땅에서 소수민족의 설움을 지독하게 겪었던 이들은 자식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높은 교육열은 어쩌면 우리의 민족성일 수 있겠으나,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열정은 자식 세대들의 성공을 이끌었다. 

. 80, 90대의 고려인들에게 1930년대의 강제이주는 아픈 기억으로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성공한 사업가인 염 유리 라마노비치(52)씨는 강제이주 경험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어렵게 살았지만 그냥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었어요. 고려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저희 부모님은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돈을 벌었어요.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글을 읽어라’였어요.”

러시아 국립해양대 오가이 세르게이 알렉세이비치(62) 총장은 같은 이야기를 했다. 

“힘들었지만 자녀들 교육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공부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도와주셨어요.”

이 세대들도 원치 않는 이주를 해야 했던 경험이 있다. 1990년대 초 소연방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각국이 자민족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고려인들의 설 자리가 급격히 좁아진 것.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고려인들은 새로운 삶을 개척할 곳으로 정한 곳이 연해주였다. 허가이 아뉴타 아파나시예브나(61)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1991년 연해주로 이주한 이유를 설명했다. 

20대들에게 조부모, 부모 세대의 이주사는 낯설다. 고려인이라는 정체성도 상당히 옅어진 듯했다. 

“저는 우리 가족의 이주이야기는 몰라요. 할아버지가 고려인이었다는 것만 알지 할아버지를 못 봤어요.” 

그는 한국을 좋아하고 9개월 정도 한국에 있으면서 한국어를 더 배워 지금은 한국어 교사를 하고 있다. 이리나씨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180명이 한국어를 배우고 그중 고려인은 20명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한국은 ‘K-팝’의 나라이고 그저 ‘발전하고 깨끗한 나라’이지 고향, 혹은 고국이라는 관념은 실감이 안 나는 먼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제가 고려인이라서 한국의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그냥 고려인일 뿐 러시아 사람이에요.”

조사를 담당했던 강경표 연구사는 “젊은 세대일수록 한국인이라는 자부심보다는 내 부모, 조부모의 나라인 한국이 잘 사는 나라라 좋다 정도의 생각을 가질 뿐 본인들과 직접 연결시키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조국, 내지는 부모님의 고향으로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한국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있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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