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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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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12-1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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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좌제에 묶인 ‘동무’와 ‘인민’, 그리고 ‘노동자’
[2016-12-17, 16:10:41] 


우리말 이야기(41)


어린 시절, 제가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면 할머니는 “아이고, 우리 새끼 뭐하다 왔노?” 묻곤 했습니다. 저는 으레 “응, 친구들이랑 놀다 왔어.” 했는데, 그때마다 할머니는 어린것이 건방지게 ‘친구’가 뭐냐며 ‘동무’란 말을 쓰라 하셨습니다. ‘친구(親舊)’란 어른들이나 쓰는 말이고, 애들은 ‘동무’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어디를 가건 업고 다닐 만큼 막내손자를 귀애하셨던 할머니께 들은 유일한 지청구가 바로 그 말이었기에, 오십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할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어린것이 건방지게 무슨 친구냐? 동무지…….”

그러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동무’라는 말을 쓸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어깨동무’라는 어린이잡지 이름으로 한동안 쓰인 적이 있고, “동무 동무 내 동무, 어깨동무 씨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 하면서 제자리에 폴싹 주저앉곤 했던 동요가 어렴풋이 떠오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북한에서 ‘comrade’를 ‘동무’로 옮겨 쓰게 되자 이 흔하디 흔한 말이 금기어가 된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정겨웠던 ‘동무’는 반공영화 같은 데서 ‘비정하고 야비한’ 북한 사람들을 과장하거나 희화화하여 표현할 때나 쓸 수 있는 특별하고도 두려운 용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동무’와 비슷한 운명을 지닌 말이 또 있습니다. 바로 ‘인민(人民)’입니다. 이 말은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여러 나라의 관직과 제도를 기록한 ‘주례(周禮)’라는 책에 처음 그 모습을 선보입니다. 이 책의 지관 대사도(地官大司徒) 편에 “그 이익과 해로움을 알아 백성을 풍요롭게 한다(知其利害, 以阜人民)”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지요.

‘인민’을 써야 할 자리에 보통 ‘국민(國民)’이나 ‘시민(市民)’ 때로는 ‘민중(民衆)’ 등을 쓰는데, ‘국민’은 국가에 속한다는 측면이 강하고, ‘시민’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체로 ‘부르주아’라는 뜻, 그리고 ‘민중’은 개인보다는 집단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에 비하면 ‘인민’은 자연인을 뜻하는 가장 중립적이고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도 이 말을 금기로 여기는 것은 다들 알다시피 북쪽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우면서 ‘인민’이란 말을 선점해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남쪽에서는 인민이라는 말만 써도 사상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 더. 위 두 가지만큼은 아니지만, ‘노동자(勞動者)’란 말을 꺼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얼마 전 내년부터 새로 사용할 교과서를 미리 본 적이 있는데, 그 교과서에서는 ‘노동자’라고 해야 할 것을 모두 ‘근로자(勤勞者)’라고 쓰고 있더군요.

‘근로자’는 근면을 강조함으로써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존재로서의 노동자상을 부각하는 데 비해 ‘노동자’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노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고용주 입장에서야 근로자가 백번 바람직한 말이겠지만, 그것은 결코 중립적인 용어가 아니지요. 그런데도 오히려 정확한 표현인 ‘노동자’라고 하지 못하고, (노동자는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근로자’라는 말을 아직도 교과서에 사용하는 것은 재벌 중심 개발시대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탓이 아닌가 합니다.

단어 한두 개를 이리 쓰고 저리 쓴들 뭐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나아가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사람 하나하나의 생각이 모여 세상을 이룹니다. 그러니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겠지요.


김효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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