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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최고의 혁신적 기업가 ‘문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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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19-03-18 12:11 조회 :24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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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최고의 혁신적 기업가 ‘문익점’

“일편단심 정몽주, 목화씨는 문익점~”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가사 중 일부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문익점 선생은 ‘목화씨’ 한 단어로 소개된다. 

물론 한정된 노랫말에 모든 업적을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문익점은 중국에서 목화씨를 몰래 가져와 보급한 관료로만 알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익점은 우리 역사 최초의 기업가이자 의류 혁명을 이뤄낸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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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은 목화씨를 이 땅에 들여옴으로써 혁신과 창조의 기틀을 닦았다. 또한 씨를 유력 가문에 나눠줘 전국에 퍼지게 했다. 이후에도 재배 기술을 축적하고 종자 개량, 물레 개발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목화 산업의 성장 여건을 마련한 인물이다. 혁신과 창조, 동반 성장, 지속 경영 등은 이 시대의 기업가들에 요구되는 면모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의 기업가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 속 문익점이 ‘경영인’으로 조명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뿌리 깊은 사농공상의 관념 때문에 상인을 좋지 않게 본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산업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기업가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땅에서 기업가로 살고 있는 필자는 세 가지 관점에서 혁신을 추구한 ‘선배’ 기업가이자 창업가로 문익점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첫째, 그는 애민정신을 기반으로 기회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기업가에게 기회를 포착하는 일은 기본 중의 기본이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키워드다. 

문익점은 일찍이 목면이 고려 백성들에게 귀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1300년대 후반 즈음에는 동사(凍死)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을 날 비싼 비단옷을 입을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익점 이전 수많은 관료와 지식인이 중국을 오갔지만 그 누구도 이를 가져와 재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은 비단옷을 입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익점은 백성들을 위해 기회를 포착했고 목화씨 10알을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목화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종자는 약 20% 정도의 유지분을 포함하고 있어 씨를 짜 식용유를 만들기도 한다. 

또 목면을 따고 난 고목은 연료로 매우 소중하게 사용돼 농사짓는 백성들에게 요긴한 작물이었다.

 게다가 극심한 추위를 견디는 데 유용하다. 재화의 가치가 큰 목면을 양산하게 된 데는 전적으로 문익점의 공이다. 그의 안목이 없었다면 백성들의 생활수준 발전은 한참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기회를 잡아라’ 사업의 기본 중 기본

 

둘째, 마치 스타트업 기업가처럼 목면을 배포하기 위한 실천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웠다는 점이다. 고려 공민왕의 사신으로 원나라로 향할 때 이미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원나라에서 이런 ‘사업적 계획’에 집중하는 행보를 보였다. 

 

기록에 따르면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덕흥군(德興君) 편에 잠시 섰었다고 전해진다. 

덕흥군은 고려의 공민왕을 배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문익점은 이런 이유 때문에 정치적인 위기를 겪었고 후대 사람들은 그에게 변절자의 오명을 씌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목면 배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국에 더 오래 머무를 명분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면의 재배 기술과 종자 개량, 나아가 양산을 위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리스크(위험)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오랜 준비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목화씨를 들여오는 데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셋째, 의심의 여지없이 새로운 산업을 일군 기업가라는 점이다. 그는 목화 씨앗을 재배하고 직조하고 이를 위해 기계를 발명하고 더 효과적으로 이를 배포하는 방법까지 고안해 내는 데 성공한 기업가였다. 

 

실제로 목화가 조선 경제 핵심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불과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여말선초 ‘의류 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목면으로 만든 솜으로 이불과 요를 만들어 백성들의 의식주 개량에 큰 도움을 줬다. 바느질용 실과 빨랫줄·노끈·멜빵·돗자리·천막 등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든 것은 물론 갑옷이나 방탄복으로 쓰이기도 하고 지혈 등 외과 치료용으로도 널리 사용됐다. 게다가 상품성과 화폐 교환성이 높아 단번에 상거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베틀 산업용 기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한반도를 ‘이노베이션’한 문익점

 

문익점의 공로는 그야말로 한반도 전체를 ‘이노베이션’ 했다는 것에 있다. 이는 현대의 기업적 관점에서 보면 종자 산업 분야에서의 획기적인 성공이었고 문인이자 학자였던 그가 이룩한 놀라운 기업적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문익점은 정확하게 기회를 포착하고 분명한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실천 전략을 세웠고 결국 하나의 거대 산업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오랫동안 기업 경영에 몸담아 온 필자는 문익점의 인생을 접하고 나서 그의 행보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업가 정신’을 제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그의 업적은 오늘날 기업인들이 갖춰야 될 근본과 기본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간혹 그를 산업 스파이로 치부하는 관점은 결코 옳지 않다. 그는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백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기업가이자 이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적 기업가’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약력 :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은 한국 화장품과 제약 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윤 회장은 농협중앙회를 거쳐 1974년 대웅제약에 입사해 부사장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창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90년 한국콜마를 설립하고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시스템을 도입해 매출 1조원의 기업으로 키워 냈다. 

2017년엔 이순신 리더십을 전파하는 사단법인 서울여해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경비즈니스 제 12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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