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사업가의 꿈으로 세상을 주름잡고 있는 김정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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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4-08-04 10:07|본문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 해외무역위원회(삼하) 김정순 회장
하북성 삼하지역에는 글로벌 무역 경제인 양성 그리고 리더십으로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활력을 부여하는 여성사업가 김정순녀사가 있다.
처녀시절 무역인의 꿈, 도전끝에 사업가의 꿈을 이루다
고향이 두만강변 길림성 룡정시 백금향 출신인 김정순녀사(68세)는 1955년생으로서 1974년 룡정현 용신고중을 졸업하고, 처녀시절 진로를 고민하던중 중조량국을 친척방문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하나의 바램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시기에는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무역인'의 꿈이였다.
“그때는 문화대혁명 말기였지만 개혁개방 4년전으로서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심리가 생겨날 때였어요. 바로 그 시기 친척방문으로 조선으로 출입하는 주위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보자기에 싸온 물건이 매우 신기했고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 세계 각 지역의 물건을 마음대로 교역해 잘살수 있는 그런 생활을 동경하기 시작했어요.”
당시는 무역인, 사업가라는 명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를수 없는 때였지만 18세 처녀의 가슴에는 이미 ‘사업가의 꿈’이 모락모락 피여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꿈을 품은 처녀로 성장하는 딸을 마주한 부모님의 기대는 안정적인 직장생활로 시골을 벗어나 ‘출세’하는 것이 최대 바램이였고 그 시기 환경은 문화대혁명 영향으로 국제무역 자체를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설성이였다.
1974년 고중을 졸업하고 룡정사범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1976년에 유아전업을 졸업하고 부모님의 기대대로 당시 누구나 부러워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라 할수 있는 룡정시기관유치원에 배치 받았다.
유치원 교양원사업에 몸담은 김정순 여사는 승부욕이 강하고 사업열정이 높아 해마다 선진사업일군의 영예를 지니기도 했다.
개혁개방의 훈풍은 김정순 여사에게 무역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주위에서 조선나들이를 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생활이 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김정순녀사의 처녀시절 꿈은 더 간절하게 소용돌이쳤다.
1983년 27살의 김정순 여사는 더 잘 살아보려는 일념으로 큰 마음을 먹고 짬짬이 시간을 리용해 조선장사에 나섰다.
중조변경 도시 룡정에 거주하는 우월한 지리적 조건과 편리한 교통을 활용해 토요일 오후에 중국의 물건을 보따리에 지고 조선으로 출국하고 일요일 오후에 조선의 물건을 등에 짊어지고 귀국하면서 1989년까지 6년간 보따리장사로부터 시작해 후에 소규모 물물교역으로 무역경험을 쌓으며 그 시기 상상할수 없는 많은 돈을 벌었다.
“힘들었지만 꿈이 있었기에 모든 곤난을 극복한거죠. 그때는 만원호가 최고로 잘 사는 사람으로 치부되였지만 저는 그 보다 15배가 더 되는 돈을 벌었어요. 그 돈은 후에 제가 국제무역을 하는데 종자돈으로 엄청난 도움이 된거죠.”
자부심으로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당년의 성과로 하여 지금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김정순 여사이다.
뿐만아니라 그녀는 사업도 잘해 그 시기 유치원 원장직까지 맡으면서 룡정시기관유치원을 일략 지역에서 가장 최고라 할수 있는 유치원으로 탈바꿈하게 했다.
그 시기 혼신의 노력을 다해 사업과 재부 두개의 날개를 단셈이였다.
그후 김정순 여사에게는 좋은 일이 련이어 이어졌다. 1989년 당시 중쏘관계(현재 중러관계)가 해빙되여 두 나라는 외교관계를 회복하고 량국간 무역에 청신호가 켜졌다.
1990년 10월, 35세의 김정순 여사는 러시아 우쓰리스크원동대학으로 3년간 류학을 떠나게 되였다.
류학생활기간 그녀는 미래의 사업을 위해 끈질긴 노력으로 러시아어와 영어를 배웠고 중러무역회사의 통역도 하면서 체계적으로 국제무역 경험을 쌓았다.
1993년 러시아류학을 마친 그녀는 중러무역이 한창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기 러시아우수리쓰크K&R 무역회사의 대표로 규모화한 중러국제무역에 나섰다.
김정순 여사는 천성적인 사업가의 기질을 갖춘 무역인이였다. 모든 일에 면밀함과 짜임새를 갖춘 일본새, 대범하고 호방한 품성과 시장을 아우르는 리더십은 일사천리로 광야를 내달리는 백마처럼 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무역을 하면서 저는 우선 신용을 목숨처럼 간주했어요. 언제나 돈이 먼저가 아니라 고객의 리익을 우선으로 간주하고 고객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약속을 철같이 지키면서 일을 추진했어요.”
어느 한번 러시아 무역상이 다른 무역회사의 퇴짜를 맞고 김정순 여사를 찾아왔다. 중국의 기계부품을 요구했는데 계산해보니 성본이 맞지 않았고 오히려 밑지는 일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러시아무역상의 애로를 리해하고 흔쾌히 대답했고 약속한 시간내에 국내에서 물건을 구입해 넘겨주었다.
감동을 받은 러시아무역상은 그후부터 오다를 무더기로 김정순 여사에게 주었다.
이러한 일은 한두번이 아니였고 그녀는 언제나 믿음으로 고객을 대했다. 그후 그녀는 중러무역을 전전하면서 경험을 축적하고 국내 1000여개 무역회사의 대리회사를 맡으며 부를 쌓았고 러시아 원동지구에서 이름난 사업가로 널리 알려졌다.
2000년 러시아에서 무역에 종사하면서 김정순녀사는 조선족지명인사 김철시인의 소개로 글로벌 경제단체 월드옥타 북경지회 리사로 가입했다.
그 시기 김철시인은 “조선족은 당의 우월한 민족정책의 배려하에 중국에서 나라의 떳떳한 주인으로 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혁개방의 선두에서 달려 하루빨리 경제적인 부를 이뤄서 국가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하면서 글로벌 사업가로 성장하고 있는 김정순녀사를 격려해주었다.
그녀는 중국옥타 초창기 맴버의 한사람으로 한국에서 개최된 세계경제인대회에 참가해 세계 각국 경제인들과 인맥을 쌓음으로서 향후 글로벌 다국무역의 기초를 한층 다지게 되였다.
2005년 고향 연변에 돌아온 김정순 여사는 현지에서 러시아, 한국 등 국가에 연변특산품을 수출하였고 2007년 북경에 진출한후에는 한국동연수산과 합작해 강소성 련운항시 정부와 계약하고 중국총판 자격으로 8000호 양식농가에서 양식하는 미꾸라지(泥鳅)를 매달 40콘터나씩 한국에 수출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경험을 쌓으며 열심히 노력한다면 어디에서든지 사업이 보이고 돈이 보이니까요.” 지난 날을 추억하고 사업에 대한 확신으로 환한 미소를 짓는 김정순녀사이다.
새로운 출발로 지역사회 발전과 무역인 양성에 심혈을 쏟아부어
2015년 김정순 여사는 그동안 사업으로 쌓인 과로로 북경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를 돌아보고 지난날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20여년간 무역인으로 일하면서 지난 세월동안 오직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뛰였죠. 앞으로 새로운 출발로 제가 무역으로 그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주위에 공유하고 싶었고 꿈을 가진 젊은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생각이 크게 마음을 자극하게 되였죠.”
무슨 일이나 마음먹으면 바로 실천에 옮기는 김 여사는 월드옥타 북경지회 리사로부터 2016년 월드옥타 삼하지회를 설립하고 초대회장이라는 중임을 맡았다.
하북삼하지역은 수도 북경시와 린접한 우월한 지리적위치와 편리한 교통, 넓은 지역으로 당시 국내에서 7만여명의 조선족들이 몰려와 거주하면서 명실공히 국내 중요한 조선족집거지로 자리잡게 되였다.
인구가 불시에 급속도로 불어나면서 당시 삼하지역은 취업압력 등 부작용이 속출했고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김정순 여사는 오직 글로벌 무역만이 이들에게 활로를 제공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현지에서 꿈을 소유한 50여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이들을 하루빨리 무역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월드옥타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 각지에서 개최한 세계경제인행사에 참가하고 해내외 경제인들과의 교류와 합작을 추진하면서 단체를 활성화했다.
2017년 김정순 여사는 한국 충청북도 테크코파크(원장 김진태)와 업무협정을 체결하고 회원들과 함께 한국상품을 국내에 판매하고 중국의 특산품과 상품을 해내외에 판매하면서 단체 운영경비를 마련했고 년말에는 리윤전부를 회원 개개인의 판매실적에 따라 분배해줌으로서 회원들의 적극성을 높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삼하옥타 사무국장 황범수씨는 자동차부품을 수입해 판매한 실적으로 대박이 났을뿐만 아니라 어떤 회원들은 한국회사의 중국총판 대리상으로 한국의 물건을 중국에 팔고 중국의 물건을 한국에 추천하면서 빠른 시간내에 명실상부한 글로벌 무역인이 되였다.
2019년 김정순녀사는 자신이 3년간 심혈을 넣어 닦아 놓은 월드옥타 삼하지회를 후배경제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묵묵히 뒷받침을 해주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민족사회 절반하늘로서의 녀성의 역할과 작용을 한층 높이기 위해 경동애심여성협회를 설립하고 회장단을 구성하고 자신은 명예회장직을 맡고 회원들을 단합해 사회공익과 녀성발전을 촉진하는 활동을 조직했다.
한편 회장단을 이끌고 전국애심녀성네트워크 등 국내 녀성단체와의 녀성발전행사에 적극 참가하면서 조화로운 녀성발전에 기여했다.
올해 김정순 여사는 자신이 설립한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해외무역위원회(삼하) 및 월드옥타 삼하지회 회원들의 간절한 요구와 단체 활성화를 위해 단체 설립 8년만에 또다시 제4대 회장직을 짊어지고 새로운 인생도전과 단체도약을 위한 사업에 뛰여들게 되였다.
김정순 여사는 우선 삼아지회 회장단을 새롭게 구성하고 삼하에 150여평방미터가 되는 널직한 사무실을 마련하고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 상표국에 삼하옥타 상표를 등록했다. 그녀는 현재 회장단과 함께 사무실건물내에 회원들의 상품과 국내 각 지역의 특산품과 제품을 전시하고 온오프라인으로 해내외에 판매할 수 있는 전시장을 준비하면서 국제무역을 활성화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2월 김정순 여사는 회장단을 이끌고 중국외교부 산하 1급 사단법인 아주경제발전협회를 방문하고 권순기회장의 접견을 받고 좌담회를 통해 삼하지역 경제인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조언을 전수받았다.
지난 3월초 김정순 여사는 지회가 한국제품을 중국시장에 판매하기 위한 노력으로 한국 전북테크노파크(원장 김규택)를 방문해 리해와 신뢰를 바탕으로하는 업무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협정은 아주경제발전협회해외무역위원회(해구) 정해섭회장과 함께 공동으로 맺음으로서 향후 양 단체가 두 지역에 각각 전시장을 마련하고 전북테크노파크 제품을 온오프라인으로 중국시장에 공동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정해섭회장은 삼하옥타 이사장직을 8년간 수행한 경력으로 다년간 김정순 여사의 배려와 양성으로 글로벌 경제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는 해남도 부동산판매시장에 진출해 법인회사를 설립하고 지난해 아주경제발전협회해외무역위원회(해구)및 월드옥타 해구(海口)지회를 설립하고 현재 회장직을 맡고 활약하고 있다.
정해섭씨는 “김정순회장은 밝은 등대처럼 자신을 정확히 이끌어 오늘날 성장과 발전을 이룰수 있게 큰 동력이 되여주었다”며 “앞으로 김회장의 기대를 잊지 않고 단체와 지역사회발전에 힘을 아끼지 않을것이다”고 표했다.
김정순 여사는 한국방문기간 또한 완주산단을 방문하고 완주산단 한국 5개 자동차부품회사의 제품을 향후 삼하지회를 통해 중국시장에 수출하는 방안을 협상해 자동차부품판매사업에 몸담은 회원들에게 대리상을 맡게 할 예정이다.
상술한 노력은 삼하지회가 국제무역과 비즈니스합작을 증진하게 될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월드옥타 중국회장단 리광석의장은 얼마전에 “김정순 회장은 평생의 혼신을 다해 국제무역에 몸담고 열심히 사업해왔을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사업가 에너지를 주위에 전하면서 우리 모두의 본보기로 되고 있다”고 전했고 중국아주경제발전협회 남기학 부회장은 “김정순회장은 자신의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수하는 노력으로 단체를 이끌면서 민족사회에 무궁한 재부를 남겨주고 있다”고 높이 치하했다.
무역인이라는 사업가를 꿈꾸던 처녀로부터 기회를 잡고 평생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면서 글로벌 무역인으로 성장하고 반백을 넘은 후에는 후배 경제인 양성과 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심혈을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는 김정순회장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꿈은 새로운 도전으로 한그루의 과일나무처럼 바야흐로 다가오는 새봄과 더불어 활짝 꽃피고 주렁주렁 탐스러운 열매를 기약하며 듬뿍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흑룡강조선어뉴스 /강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