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래 이런 적은 없었다”...한류, 그리고 ‘한민족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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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5-08-27 12:59|본문
한류열풍, 얼마나 갈 것인가.
유사 이래 우리 문화가 이처럼 전세계를 휩쓴 적이 없었다는데 모두가 인식을 같이 할 정도로, K컬처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인을 매료시키고 있다. 덕분에 K뷰티, K푸드 등 한국상품들까지 인기를 끌면서 K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전 경희대 교수(한국문학관협회 회장, 황순원문학촌 촌장)는 현 한류 신드롬을 두고 “한류가 이처럼 엄청난 물결을 형성한 적은 단군 이래 없었다”면서 “물들어 왔을 때 노저어라는 말이 있다. 정말 좋은 시기다”라는 말로 매우 전향적으로 한류를 활용하고 추구해나갈 것, 무엇보다 때를 놓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 8월19일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에서 열린 지구촌한글학교미래포럼(공동대표 박인기·김봉섭) 제12회 발표회에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선 자리와 갈 길’이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을 하기 앞서, 한류열풍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김 전 교수는 한국문학을 포함한 한류열풍에 대해 언급하며 “전세계에 이름있는 대학마다 한국어과를 두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선 한류학 연구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몇 년전만 해도 우리가 꿈도 못꾸던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일들은 파급효과와 전염성이 있다”면서 “초동단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잘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대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교수는 “지난해 12월10일 한강이 노벨상을 수상하던 날, 김주혜라는 작가가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는데, 노벨상에 묻혀 부각되지 않았으나 러시아가 어떤 나라더냐, 문화예술에 있어 엄청난 나라 아니냐”고 짚었다.
“음악에 있어서도 BTS나 최근 유명해진 로제, 또 국산 뮤지컬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하는 등 이런 문화 예술적 현상들이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라며 한류가 빚어내는 놀라운 현상들을 열거해 나갔다.
김 전 교수의 이날 강연 내용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간도 체험을 소설로 형상화한, 대하소설 '북간도'의 작가 안수길.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범주, 어디까지
한국전쟁 정전 72년, 이 시기를 통틀어 분단시대라고 부른다. 김 교수는 “남과 북 또한 디아스포라이고 중국, 중앙아시아, 일본, 미국 등지로 분화 확산된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는 시대”라고 정의했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분단’ 또는 ‘이산’의 의미한다. 김 전 교수는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발생한 말로 헤어져 살고있는, 즉 이산된 상황 또는 그들의 집단 거주지를 원래는 디아스포라라고 불렀다”면서, 한민족과 유대인의 역사는 같고도 다른 부분들이 여럿 있다고 해석했다. 어쨋거나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글로벌시대에 디아스포라라고 하는 민족적 상황에 주목할 때 가장 피부에 와닿도록 감각할 수 있는 것이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김 전 교수에 따르면, 우리 민족이 중국으로 이주를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한일합방 이후 일제 수탈을 피해 만주로 넘어갔고, 이들이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이 되어 문학활동을 전개한 것은 20세기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는 살아남기 바빠 문학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1930년대 조선족은 중국 공산당과 더불어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고, ‘북향해’라는 문인단체를 만들어 동명의 문예지를 발간했다. 그 중심에 대하소설 ‘북간도’를 쓴 안수길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 김창근, 리욱 같은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고 자라 거기서 생을 마감한 토종작가였다.
그리고 한반도서 중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한 강경애, 국내로 돌아와 거기서의 체험을 작품으로 남긴 최서혜, 이어 ‘격정시대’ 저자 김학철로 연결된다. 모두가 조선족 디아스포라의 중요 인물들이라고 김 전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1988년에 통일부 지원으로 중국을 갔는데, 연변 연길시 서점엘 가니 한글로 된 책들이 쫙 꽂혀있어 놀란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 때 책을 사서 가방 2개에 담아 돌아와 연변 조선족 작가들의 단편소설을 추려 ‘볼우물 조선 처녀’라는 책으로 발간했다. 그것이 조선족 문학을 한국에 소개한 첫 번째 책이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김 전 교수는 “우리 민족이 구소련으로 이주해간 시기와 상황도 중국과 유사하다. 하지만 모두가 잊어가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면서 1937년 스탈린시대 연해주에 살던 한민족이 중앙아시아로 6600km에 걸쳐 강제이주됐던, 고려인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가는 도중에 태반이 죽고, 도착해서 겨울에 또 태반이 죽었다. 그 유적이 카자흐스탄 우스토베에 남아있고, 알마티를 중심으로 그 후손들이 대략 50만명 살고 있다”면서 “1990년대 초반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갔을 때 한글을 쓰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이후 두 번째 갔을 때 다 돌아가시고 없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고려인 집단의 지도자인 조명희는 일제강점기 프로문학의 대표작인 소설 ‘낙동강’의 저자로 지금도 고려인 마을에 가면 그를 기념하는 소박한 기념물이 있다”고 김 전 교수는 전했다.
이어 고려인 예술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인물로 두 사람을 꼽았다. ‘정상진’과 ‘정추’인데, 정상진은 정률 또는 정석이라는 필명을 사용했으며 문학평론가이자 문필가로 북한에서 문화선전성 제1부상(차관급)을 지냈다.
정추는 북한에서 천재작곡가로 불리며 평양음대 교수를 역임했고, 모스크바 유학 중에 소련으로 망명했다. 이후 여러차례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나 카자흐스탄에서 90세 가까이 살다 세상을 떠났다. 이와 더불어 고려일보 주필을 지낸 양원식이라는 인물은 어느날 본인의 집앞에서 의문의 피살을 당했다.
그 외 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은 바 있는 러시아 국적의 아나톨리 김, 지금은 한국인으로 살고있는 화가 겸 작가 박미하일 등이 고려인 예술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재미작가 김주혜, 그의 장편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 러시아어판 표지.
바다 건너, 조선인 문학과 한인 문학의 형성
김 전 교수는 바다를 통해 이주한 일본과 미국의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해 강연을 이어갔다. 일본의 경우 제주 4.3사건을 다룬 소설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에 이어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회성, 이양지 등이 등장한다. 이후 재일동포로는 처음으로 나오키문학상을 받은 가네시로 가즈키 등 2, 3세대 문인들이 뒤를 잇는다.
실제로 일본에선 조총련 산하 문학예술동맹(문예동) 소속 작가들이 우리말로 많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김 전 교수는 전했다.
미국의 경우 어렸을 때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이주한 1.5세대 이후 재미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거의가 ‘부모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며 원형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 ‘꽃신’ 의 1세대 작가 김용익에 이어 ‘순교자’를 쓴 1.5세대 소설가 차학경, 소설 ‘종군위안부’의 노라 옥자 켈러, 프린스턴 대학 교수인 이창래, 수잔 최, 그리고 최근엔 김주혜, 이민진, 폴윤, 이수정 등의 재미작가들이 한인 문학의 바통을 잇고 있다.
김 전 교수는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간혹 북한을 제외하고 생각하는데, 그 속에 남북한이 같이 들어간다”면서 “남북한 문학을 포함해 미주의 한인문학, 중국의 조선족 문학, 일본의 조선인 문학,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학을 디아스포라 문학의 범주에서 한묶음으로 생각해 볼 수 없겠는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의 잣대를 논하는데 있어 어느나라 언어로 어디서 출간했는지만 따지지 말고, 문학 속에 한국적 요소, 한민족적 요소가 얼마나 포함돼 있는가, 즉 가부의 판단이 아니라 정도의 측정을 통해 한국문학의 범위를 바라봤으면 한다”고 그는 제언했다.
“우즈벡이나 카자흐 등지 고려인 사회에서 한글사용이 점점 줄고 있으나 거기서 논의되는 글들은 한민족의 문화적 성숙과 연관돼 있다. 한국문학의 범주를 논하는데 있어 인식의 지표를 바꾸어보기를 제안한다.”
김 전 교수가 이날 강연을 통합해 마지막에 던진 의미있는 질문이다.
출처 : 재외동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