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울린 조선족 소녀들의 '아버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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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07-30 10:26|본문
지난 26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영등포아트홀 무대에서 파란색 중국 전통의상을 곱게 입은 조선족 소녀 37명이 연변지역 가곡인 '아버지 산 어머니 강'을 합창했다. "장백산에 가면 아버지가 보입니다. 두만강에 가면은 어머니가 생각납니다"라는 구절에서 소녀들은 하나둘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음정 박자가 맞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서 환호성과 함께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휘자 엄광열(52) 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관객을 향해 돌아섰다.
"아이들이 부모와 친지가 있는 곳에서 노래 부를 생각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부를 때마다 음색이 다르고 감정이 달랐습니다. 얼마나 가족을 그리워했으면 노래하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겠습니까."엄 교사가 울먹이자 학생들이 참던 눈물을 쏟아냈다. 객석의 가족들은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연방 눈물을 닦아냈다.무대에 선 학생들은 할빈조선족 제1중학교 1·2학년 학생들로 구성된 중국유나이티드 소녀방송합창단이다. 민간구호단체인 월드비전이 주관하는 '2010 세계어린이합창제'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22일 입국했다.
합창단과 동행한 할빈시 교육국 이성일 민족교육처장은 "한 기업의 문화 변혁에 대한 확신이 재중 동포사회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며 "재중 동포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학생들은 이날 공연 후 수년간 떨어져 지낸 부모·친지들을 만나 얼싸 안았다. 대부분 돈을 벌러 한국에 건너와 식당이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가족들이 휴가를 내고 아들·딸과 조카·손자·손녀를 보러 공연장을 찾았다.
1학년생 최광애(13)양은 '고향의 봄'을 부른 뒤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 흐르는 눈물을 계속 닦아냈다. 객석에서 3년 만에 딸의 노래를 듣던 아버지 최력(39)씨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였다. 울산의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최씨는 외동딸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에 10일짜리 휴가를 내고 상경했다. "딸자식 보고 싶어 한달음에 왔어요. 한국 과자를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한 바구니 사왔습니다."
최씨는 4년 전 울산에 정착한 사촌들을 따라 한국에 건너왔다. 이혼 후 엄마와 살고 있는 딸이 눈에 밟혔지만, 농사철 3개월만 지나면 일거리가 없는 하얼빈에만 머물러 있을 순 없었다. "살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고향에선 여기 오면 돈 많이 버는 줄 알지만, 그만큼 물가도 비싸 생활하기 힘들더군요. 아버지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해 항상 딸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입국 1년 만에 그리움을 못 이겨 고향에 다녀왔지만, 그 후론 생활에 쫓겨 중국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최씨는 어느덧 한국 드라마 속 남자 연예인에 열광하는 사춘기 여중생이 된 딸의 모습에 당황했다. 최씨는 "5년 전 찍어둔 휴대전화 속 사진을 들고 공항에서 기다렸는데 광애를 찾느라 힘들었다"며 "여드름도 생기고 더 성숙해진 것 같은데, (오랜만에 만난) 딸아이가 어색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 공연 전에 대기실 앞에서는 2학년생 김소정(15)양이 엄마 김매화(35)씨의 목을 끌어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2008년 3월 김씨가 심장병으로 투병 중인 남편과 소정양을 중국땅에 두고 한국에 온 지 2년 만의 만남이다. 김씨는 "소정이가 부끄럼을 많이 타서 내 앞에서도 노래를 부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대견스럽다는 듯 딸의 볼을 계속 어루만졌다. 월급 160만원을 받으며 서울 송파구의 한 고깃집에서 일하는 김씨는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있지만 딸과 남편을 생각하며 2년을 버텼다"고 했다.
공연 후 합창단원 37명 중 절반가량은 한국에서 일하는 부모와 상봉해 1박2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최씨 가족은 27일 서울 남산타워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본 뒤, 광애양이 가보고 싶다는 명동을 거닐며 쇼핑을 했다. 다른 학생들은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친인척을 만나 오랜만에 정을 나눴다. 소녀방송합창단 학생들은 다른 일정을 위해 28일 오전 가족·친인척들과 헤어졌다. 잠시 헤어진 이들 가족은 오는 31일 다시 만났다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재회'를 약속하며 또다시 이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