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주녀성 피살 사건 전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11-08 14:40|본문
한국에서 베트남 녀성이 남편한테 비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사회의 경종을 울린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류사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중국인 녀성이 한국인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최씨(40)는 의처증 증상이 심했던 남편 민씨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하다 급기야 10월 23일 목 졸려 살해된 상태로 자택 침대 밑에서 발견됐다.
남편 민씨는 안해를 살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씨가 자발적으로 도주한 것처럼 지인들을 속인 후, 은닉할 장소를 찾아다녔던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 녀성 피살 사건과 닮은꼴인 이 사건의 전모를 사건 담당 형사, 린근에 살던 최씨의 친척동생 등의 전언을 통해 재구성해 봤다.
최씨와 민씨는 소개소를 통해 중국에서 처음 만났다. 최씨는 민씨가 본인 명의의 집도 있는 데다 직업이 자영업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만났다. 민씨는 최씨에게 금융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며 자신의 명함을 보여줬다.
남편과 사별한 후 열 살되는 딸과 살고 있던 최씨에게 한국에서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있다는 민씨의 능력이 근사해보였다. 또 한국에서 집을 가지고있다는 민씨의 말 역시 결혼을 결심하게 한 동기가 됐다.
민씨의 말만 믿고 한국에 온 최씨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거짓말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보여준 명함은 가짜였고, 최씨는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집안의 '애물단지'였다. 시어머니는 최 씨에게 "아이를 낳아서 민씨가 정착하게 해야 한다"며 독촉하곤 했다. 한국에 있다는 집 역시 시어머니의 집이였다. 최씨는 임신을 강요하는 시어머니와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는 민씨에게 지쳤다. 또 중국에 남은 딸을 한국에 데려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아 상당한 좌절감을 느꼈다. 결국 최씨는 결혼 8개월 만에 리혼신청서를 제출한 후 중국으로 도피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민씨와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민씨는 최씨의 중국 휴대폰 번호를 알아낸 후 협박전화를 일삼았다. 협박의 주된 내용은 '당장 돌아오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녀성 친척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였다. 실제로 민씨는 최씨가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녀성의 가게로 찾아가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자신의 도피 때문에 지인들이 피해를 입는게 아닐까 전전긍긍했던 최씨에게 어느날 시어머니가 중국으로 찾아왔다. 시어머니는 잘못을 인정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와 아들과 살아만 달라고 간청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만 온다면 최씨 명의로 집을 하나 구해 주고, 딸을 민씨의 호적에 올려 친손녀처럼 돌보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최씨는 딸과 함께 안산시 단원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고저 했던 '코리안 드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씨 이름으로 구해놨다는 집은 26.4㎡(8평)짜리 원룸이었다. 집을 산것이 아닌 최 씨 명의로 월세방을 계약한 것이였다. 시어머니는 최씨의 딸을 호적에 올린 뒤에는 련락조차 받지 않았다. 지켜진 약속이라곤 최씨의 딸이 민씨의 친딸이 된 채 호적에 오른 것뿐이였다. 때문에 최씨는 이전처럼 중국으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최씨는 딸 때문에라도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하기로 하고 돈벌이에 나섰다.
그러나 혼자 하는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남편 민씨는 최씨의 그늘 밑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생활을 했다. 대출을 받아 고급 승용차를 결제하기도 했다. 이 대출금은 고스란히 최씨의 부담이 됐다. 민씨의 랑비로 생활이 빠듯해지자 낮에는 용역회사 경리로, 밤에는 려행사에 나가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밤 10시가 돼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취기가 잔뜩 오른 남편 민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민씨는 "어디서 바람을 피다가 이제 돌아온 것이냐"며 욕했다. 의처증 증상이 있었던 민씨는 최씨의 설명도 믿지 않고 폭행했다. 9월 11일에는 급기야 스타킹으로 목을 졸랐다. 최씨는 사망 직전까지 갔다 딸아이가 계속 몸을 흔들어 깨워 겨우 의식을 차렸다. 곧장 단원경찰서로 간 최씨는 남편을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경찰은 살인미수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인 스타킹은 끝내 찾지 못했다. 남편 민씨는 경찰 조사에서 목을 조른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결국 민씨는 상해죄로 벌금형에만 처해진 채 귀가조치됐다.
안해가 살인미수로 자신을 고소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민씨는 최씨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서 나를 교도소에 집어넣으려 했다"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결국 10월 22일 민 씨는 또다시 최씨의 목을 조르고 말았다. 최씨가 사망하자 사체를 침대 밑에 숨겼다.
사건 당일 최씨의 딸은 친척동생 조씨(32)의 집에서 자고 있었다. 최씨의 딸은 날이 밝자 집으로 돌아갔지만 밤이 늦도록 엄마, 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조씨에게 전화를 했다. 조씨는 민씨에게 전화를 걸어 최씨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는 태연하게 "새벽에 싸우다가 잠깐 술을 사러 밖에 나간 사이 도망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민씨의 폭행을 알고 있던 조씨는 불안한 마음에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후 민씨가 집을 비운 사이 원룸을 방문했다. 집 안에는 방향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고, 평소 최씨가 입던 외투가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신발도 그대로였다. 오직 최씨의 가방만이 없어진 채였다. 평소 최씨는 가방 안에 적금통장과 보험계약서, 도장 등 중요한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다.
단순한 실종이 아니라고 생각한 조씨는 경찰에 상황을 신고했지만 경찰 측은 민씨가 성실히 경찰수사에 협조하는 데다 혐의사실에 대한 단서가 전혀 없어 자택을 수색할 수 없다는 립장을 보였다. 결국 조씨는 원룸으로 몰래 들어가 민씨의 잠옷 주머니에서 최씨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한 움큼을 발견해 다시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민씨의 집에서 수사를 시작한 경찰에 의해 침대 밑에 있던 최씨의 사체가 드러났다. 실종신고 후 이틀 만의 일이었다.
한편 최씨가 들어 놓은 적금통장과 보험증은 본인이 아닌 남편 민씨 앞으로 계약이 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0월 28일 기자와 만난 친척동생 조씨는 "최씨는 남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남들한테 손 내밀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생활비를 아껴 저축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가방은 끝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민씨는 가방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