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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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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2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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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머리말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은 한 핏줄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두 사이는 갈등의 골이 깊기만 하다. 90년대 초기 한국의 장사꾼과 브로커들이 중국에 다니면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조선족의 친인척 방문과 약장사?이어진 불법체류자 행렬들이 오늘날의 잘못된 조선족관을 한국인들에게 심어주었다. 이제는 서로를 어느정도 경험했으니 누구나 단편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대처하고 서로의 참된 모습을 이해하도록 힘써야할 것이다. 서로에게는 더는 상처주는 일이 없어으면 한다. 서로 이해하도록 힘써야할 것이다. 서로에게 더는 상처주는 일이 없어으면 한다. 부질없이 누가 잘못인가 하는 것을 따질 것이 아니라 서로 자아반성을 해야한다. 그러자면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중국 조선족은 누구인가? 그들의 과거, 현재, 장래 그리고 모국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II. 중국 조선족의 형성
 
1. 형성경위
 
중국의 조선족은 역사상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한인들이  중국 땅에 정착하면서 중국의 한 개 소수민족으로 된 것이다.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모국을 갖고있는 민족이다. 조선족의 이주사는 크게 몇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 조선인은 중국의 원, 명(明)조시기부터 중국으로 이주하기 시작, 청조초기(淸朝初期)이전에 이주한 조선인은 한족, 만주족 등 여러 민족 속에 융합되었다. 80년대 하북성 청룡현 얼도하자향과 료녕성 개현 진툰향의 약 2000명이 조선족으로 존속을 바꾸어 중국 조선족의 일부로 되었다. 이 부분은 현재 중국 조선족의 0.1%를 차지한다.
 
② 청조 말기부터 1910년 이전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약 26만명
 
③ 1910년 한일합방 이후 40년대까지 이 시기 동북지역은 세 번의 조선인 자유이민 고조가 있었다.
 
◎ 1910~1915년 6년동안 22만 2718명이 이주
 
◎ 1917~1922년 6년동안 19만 666명이 이주
 
◎ 1925~1928년 4년 동안 6만 5704명이 이주
 
이들은 일제와 싸우기 위해 간도에 건너간 항일투사들이였다.
 
◎ 1931~1945년에 중국으로 전입한 조선인은 근 100만명 정도, 자유유동외에 대부분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EK른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강박이민 이였다. 약 100여년의 기간동안 총 216만명이 중국으로 건너갔고 특히 동북3성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광복 후 근 100만명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2. 중국 국적취득 경위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중국으로 전입한 조선인은 중국에서 생존해온 과정에 생계나 혹은 중국당국의 정책 때문에 점차적으로 일부분 사람들은 중국국적에 가입하고 중국국민이 되었다. 1929년에 중국 동북3성 조선인의 약 10%(11만여명), 1945년 8.15전까지 양 25만명~35만명(20%)이 중국국적에 가입한 것으로 추산.
 
중국국적에 가입하지 않은 조선인일지라도 중국공산당 지도하에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 참가하였으며 특히 광복 후 중국공산당의 민족평등 정책에 의하여 조선인들도 한족, 만주족들과 똑같이 토지를 분배받고 민주정권을 세울 수 있었다. 즉 중국국민이 수행하여야 할 의무를 훌륭히 완성하였다.
 
1945년 8월부터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될 때까지 대부분 조선인이 실제적으로 중국국적에 가입하였으며 중국 공민의 권리와 의무를 누렸다.
 
남북이 분단되고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들은 국적선택의 여지가 없어 자동적으로 중국거주민이 되었다.
 
3. 조선족이 중국에서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두가지 조건
 
첫째조건: 중국사회 발전 중 조선족의 역할과 공헌이 나라의 주인이 되도록 당당한 위치를 가지게 했다.
 
1 중국에 이주한 조선족들은 10세기 중반부터 중국 동북지역 개척 개발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동북은 원래 벼를 재배하지 않았다. 조선족이 이주하면서 벼생산, 그리고 세계에서 50도 이북지방에 벼 심기에 성공, 하나의 기적을 창조해냈다. 광복전 동북지구 총인구의 3.3%를 차지하는 조선족의 벼 생산이 동북 총 벼 생산량의 90.1%를 차지했다.
 
2 조선족은 동북지역 자원개발과 철도건설에서도 큰 기여를 하였다. 특히 연변지역의 탄광, 금광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상당수가 조선족이였다.(3000여명 중 80%가 조선족) 그리고 중동철도, 연변철도건설에서 일제의 강압하에 조선족들은 많은 피와 땀을 흘렸다.
 
3 반일 혁명투쟁과 공산당을 도와 신중국 수립에 막대한 기여를 했다.
 
- 14년간의 피어린 항일투쟁에서 3000여명의 조선족 투사들이 귀중한 생명을 바쳤다.
 
- 국, 공전쟁시기 조선족은 중국공산당의 동북근거기 건립에 주역이였고 조사통계에 따르면 희생된 조선족열사는 도합 3,555 명, 그중 연변은 5세대중 1명의 열사가 생겨 전국 여러 민족 가운데서 그 비율이 가장 높다.
 
- 조선족은 중국에서 자기의 피와 땀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또 목숨으로 그 터전을 지켰으므로 당당하게 주인이 될 자격이 있었다.
 
둘째조건: 조선족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정책과 법률이 오늘날까지 조선족의 공동체를 담보해주었다. 청정부로부터 민국정부, 위만주국은 민족압박, 민족차별, 민족동화정책을 실시했지만 공상당은 민족평등, 민족단결, 민족공동번영의 총 원칙에서 4대 민족정책을 제정, 실시했다.
 
1 민족평등과 만족단결 정책
 
2 민족 구역자치 정책 - 중화인민공화국의 중요한 정치 제도이며 중국이 실시하는 3대 민주제도중의 하나이다. 간부양성
 
3 소수민족경제, 문화벌전 정책-재력, 물력, 인력지원
 
4 소수민족의 언어문자, 풍속습관, 종교신앙을 존중하는 정책. 헌법에 "각 민족은 모두 자기의 언어문자를 사용하고 발전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자기의 풍속과 습관을 유지하고 개혁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공민은 종교신앙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명확히 규정하였다.
 
교육 한가지 예만 하여도 비록 200만밖에 안되는 백의동포라 하지만 1308개소의 소학교에 223개소의 중학교와 연변대학까지 꾸려나가고 있는 조선족은 1952년도에 소학교 교육을 보급했고 1958년에는 초급중학교 교육을 기본상 보급했으며 중소학교 입학율은 98%에 달했고 1만명당 대학공부를 하는 학생이 50명에 달해 중국 56개 민족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다. 지구촌이 탈냉전시대에 들어선 지금 각종 분쟁의 불씨는 모두 민족과 종교간의 갈등과 투쟁에서 비롯된다. 구 소련의 붕괴, 중동전쟁, 인도네시아... ... 중국은 소수민족이 총인구의 9%를 차지하지만 소수민족이 차지한 면적은 6분지5이다. 만약 너그러운 민족정책을 실시하지 하지않았다면 벌써 4분5렬 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너그러운 민족정책은 중국의 조선족들로 하여금 "중국을 자기 삶의 고장으로 여기며 자기민족의 운명과 중국의 운명을 함께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III. 모국과 중국조선족의 관계
 
중국조선족은 550만 해외동포 중 모국(남북한)과 가장 긴말한 관계를 갖고 있다. 중국조선족은 비록 중국국적을 가졌으나 항상 모국을 잊지 않았고 이중문화, 이중심리를 가진 중국소수민족의 하나로 전변 하였다.
 
첫째, 중국조선족들은 지리적으로 모국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 가장 가까이 살고 있으며 한반도 14도 사람들이 거의 다 있으며 고향사람들끼리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왔다. 그들은 중국내 주소와 모국의 고향을 지금까지 갈라 보고 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경북 어느어느군" "평남 어디어디" 하고 대답한다. 이처럼 모국과의 관계가 끈끈하다.
 
둘째, 비록 체제와 이념이 달라도 모국에 대한 중국 조선족의 왕래는 끊어지지 않았다. 조선족들은 때로는 모국을 생계유지와 경제 발전의 의존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 예로 60년대 중국의 대기근년대 20만 조선족이 북한으로의 대이동과 90년대 20만에 달하는 조선족의 한국 나들이를 들 수있다.
 
셋째, 정치상에서 중국조선족은 모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모국이 "감기"에 걸리면 조선족은 "재체기"를 하게된다. 세계에서 이민이 많은 나라들을 보면 가장 꺼리는 것은 외국에서 온 이민들이 원래 속해있던 자기 모국과 내통하여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이는 마치 시집에서 자기가문에 들어온 며느리가 계속 친정에만 마음을 두는 것을 꺼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선족을 보는 중국의 시각 역시 다를바가 없다. 한때 중국과 조선의 관계가 좋았을 시절 적지 않은 중국조선족은 "조선을 자기조국"이라 하고 "본의 아니게 중국국적"을 갖게된데 대한 불만으로 하여 중국정부의 불신을 받기도 했으며 조선과 관계가 나빴던 문화혁명시기에는 적지 않은 조선족들이 "조선특무"로 몰리워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남한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그러다가 한,중산에 빙설이 풀리고 아시아의 "사소룡"중 첫 번째인 한국이 88올림픽 후 세계에 알려지고 중국이 한국으로부터 외자 유치를 하면서 우리 조선족들은 다시 기를 펴게되었고 모국이 있으므로 하여 어깨가 으슥해졌다.
 
중국의 조선족과 모국은 이처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혈연적 관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관계를 좀처럼 잘 승인하려 하지 않았고 조선족을 곱게 보지도 않고 있다. 그 예가 바로 "재외동포법"과 조선족에 대한 출입국 관리정책이다. "모국인 대한민국이 재외동포에 대하여...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는 상징" (박상천 전법무장관)이 라고 표방한 "재외동포법"이 중국동포들을 다시 한번 내팽개치므로써 200만 중국동포의 가슴에 뼈저린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과거 조국이 버리다싶이 했던 또는 역사적 상황 때문에 돌볼 수 없었던 중국동포들을 또 한번 울리였다. 이제는 모국으로부터 마음의 위안조차도 받을 수 없다는 느낌에서 한국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조선족들은 "모국이 우리의 운명을 걱정할 수 없다."는 결론은 얻게 되었고 "조선족은 중국사람이다. 우리는 중국의 조선족이다. 우리는 중국서람이라는 운명을 선택하였다. 우리의 미래와 희망은 중국에 의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생각을 굳게 만들어 주었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조선족 지식인과 민족간부들은 수년전 한국정부가 재외동포들에게 이중국적을 부여할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럴 경우 중국 정부가 반대할 것은 물론, 이제까지 중국에서 잘 살아온 조선족들은 큰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근심도 했다.
 
그리고 일반 조선족들은 스스로 자신을 교포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조선족을 교포로 보지 않는다. 한국에서 조선족은 당연히 2등인이다.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그 처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마치 한국인이 미국의 영주권을 취득했다고 하여 미국사람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특히 재외동포법에 중국조선족이 적용대상이 된다고 하여도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과 같은 너그러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간다. 하기에 "재외동포법"이 발효된지 1년이 지났지만 중국동포들은 별로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중국동포를 재외동포의 범주에 넣고 자유롭게 모국을 나들 수 있도록 특혜정책을 제정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조선족에 대한 한국정부의 출입국관리 정책은 불신과 오해만을 초래하고 있는 제한성 정책이였다. 사기피해와 불법체류, 밀입국, 위장결혼 등 온갖 범법 행위를 초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중국에 대한 관광이 전면 허용되었으나 조선족만은 10만원(인민폐) 보증금을 내야한다.
 
물론 조선족이 바라는 것은 이중국적의 취득이 아니다. 중국을 떠나 한국에 와서 살겠다는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조선족의 바램은 한국방문 및 노무수출의 문호가 개방되어 좀 더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해, 사기당할 위험이나 불법체류의 고통이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수립을 적극 검토헤 추진해 주기 바랄뿐이다.
 
한국정부가 조선족에게 적당한 수준에서 문호를 개방할 경우 이 점에 대해서 중국정부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정부는 자국 국민이 해외의 연고를 이용, 수입을 올린다거나, 경제활동은 하는 것은 적극 장려하고 있는 까닭이다.
 
IV 조선족사회의 발전변화 추세와 직면하고 있는 문제
 
지금 적지 않은 한국분들은 중국의 변화와 조선족의 발전추세를 잘 모르고 있다.
 
개혁, 개방이래 중국조선족사회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의 추세는 긍정적이다. 그 변화를 한마디로 개괄하면 "수백년동안 땅을 기본으로 하고 논농사만 지을뿐 장사할 줄 모르던 민족이 개혁, 개방의 풍랑속에서 집문을 떠나서 남북을 드나들며 상품경제의 활무대에서 풍랑속에서 집문을 떨쳐나섰다."고 말할 수 있다.
 
개혁, 개방초기(80년대) 아직 국문이 채 열리지 않았을 때 조선족은 랭면, 개고기, 찰떡, 김치 장사의 장끼를 발휘해 중국의 대도시로 진출, 그 인구가 30만명에 달했다. 이는 조선족 총 인구의 6분의1을 차지한다.
 
다음은 90년대부터 시작된 해외나들이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일본, 러시아, 미국, 카나다, 호주, 유럽등 세계 어디에서나 중국 조선족을 찾아 볼 수있다. 그 인구 또한 근 30만명으로 조선족 총 인구의 6분의1을 차지한다.
 
6분의2나 되는 조선족인구의 대이동은 원래 잠잠하던 조선족사회를 마치 8급지진처럼 흔들어 놓았다. 물론 이에따르는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말해서 조선족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설이다. 즉 조선족사회의 붕괴위기, 교육위기, 도덕성위기, 한족과의 동화위기등 각종 위기를 초래시켰다는 부정적 시각이다.
 
하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중국조선족들이 개혁 개방의 추진하에 역사적 변화를 겪으며 큰 걸음으로 "농경민족"에서 "도시민족"으로 매진하고 있는 발전 추세인 것이다.
 
원래 조선족이 살고 있던 시골 농촌의 삭막한 모습을 보고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도시로 집중된 조선족들이 새로운 공동체 마음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아야 한다.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해림시 신합아파트 단지, 료녕성 심양시 만융촌... ..., 북경, 청도 등 대도시에도 새로운 조선족 마을이 형성되고 학교까지 생겼다.
 
이보다도 더 기꺼운 사실은 조선족들 속에서 관목할만한 기업가들이 많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개혁, 개방의 환경속에서 특히는 국외와 비기고 겨루고 시야를 넓히는 과정에서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당초의 마음을 고쳐먹고 자체의 힘에 의하여 세계로 진입하려는 영기를 갖게 되었다.
 
개방초기 조선족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 지역적, 인문적 우월감에 도취되군 했다. 그때는 외국에 가 외화를 벌어들이거나 국외의 자금을 끌어들이거나 외자기업을 세루는 것을 대외개방의 중심고리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개인 저금액이 불어나자 조선족들은 개인 기업이나 회사를 꾸리고 규모를 부단히 확대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집체, 국유 기업을 겸병하거나 임대하여 기업그룹을 설립해 막강한 기업과 맞서 한판 겨루고 있다.
 
조선족들은 외국에가 로무자로 일하거나 장사하면서 주로 수입을 늘이고 시야를 넓이고 치부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 과거 국외에서 어깨가 떨어지던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중국사람으로서의 의식이 더 한층 증강되었다. 지금은 80년대 비해 사상해방면에서 이성적으로 더 높이 승화되었다. 개방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자신의 힘으로 개방을 촉진하고 일떠서자는 조선족들의 욕망은 그 어느때도 오늘날처럼 이렇게 강렬하고 견정하지 않았다. 이는 조선족이 사상을 해방한 <제2차비약>이다.
 
V 중국동포는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자기 반성을 할 줄 알아야한다.
 
지금 한국에 나와있는 중국조선족 수는 15만~20만으로 추산된다. 96년전만해도 절대다수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와 먹고, 잘 수 있는 회사나 식당 같은데서 열심히 일했지만 지금은 구로지역이나 안산 등지에 동포촌이 형성되어 한국의 한 거주민 행세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족의 이미지도 흐리여지고 있다.
 
필자는 한국 친구로부터 "왜 조선족은 한국의 좋은 모습을 보려하지 않고 오직 조선족의 피해부각과 추한 한국보기에 열중하는가, 이제는 한국 때리기는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고 하는 짜증섞인 말을 들었다. 매우 지당한 말이다.
 
1. 이제 조선족은 자신을 비판하고 반성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한국의 법을 위반하고 한국돈을 벌면서도 한국을 욕하는 점이라고 꼬집고 싶다. 사실 중국조선족은 한국의 혜택을 많이 받았고 돈맛을 알게되었다. 연변 한곳만 예 들어도 1997년 연변자치주 도시, 농촌, 주민예금여액은 128억 8000원, 인구당 예금여액은 5898원으로 길림성 평균 예금여액중 조선족의 예금여액이 70%를 점한다. 물론 중국내에서 치부한 것도 있지만 한국에 나와 돈벌지 않았다면 한족들보다 이처럼 현저한 차이가 결코 생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신고를 당해 붙잡혀 중국에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면 한국을 욕하면서 한국쪽으로는 오줌도 안싸겠다고 한다. 그러다 벌어간 돈을 다 쓰고 나면 또 많은 돈을 들여 한국에 나오려한다. 심지어 밀입국까지도 스스럼 없이 감행한다.
 
2. 다음으로 선량한 다수 한국인과 극소수 악덕 한국인을 분간해 보아야한다. 최근 몇 년간 적지않은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와 가혹한 노동조건아래 혹사당하고 멸시와 모욕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을 몽뚱그려 욕하며 반한감정을 조장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한 밝은 면이 어두운 면 보다 더 많은 것인데도 그들은 보려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그 옛날 자기들이 미국으로, 중동으로 나가서 피땀을 흘리며 낯선 이역땅에서 구박받던 일, 야속했던 일들을 잊지 않고 가난한 중국동포들에게 수없는 동정과 사랑을 베풀고 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 것이 조선족들의 보편적인 반영이다. 
 
특히 조선족들은 한국이 돈 때문에 목소리가 커지는 자본주의 라는걸 모르고 헛된 인격존중만을 고집하기에 스스로 갈등을 만들고 있다.
 
3. 그리고 과경민족, 이민 민족인 조선족의 단기행위와 경박성이다. 무슨 일을 함에 있어서 장원한 타산이 없으며 눈앞의 이익에 열중하고 경박하고, 소홀하며, 항심이 없고, 조급하며,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하루에도 열두가지 생각을 하며 정서적으로 드높고 강렬한 맹동성, 충동성으로 보내고 있다. 하기에 남을 배려 할 줄 모른다. 악연도 인연인데 어느 한곳이나 진득이 못 있고 돈 한푼이라도 더 준다면 이튼날 말도 없이 떠난다. 자기가 주인한테 끼친 손해는 생각하지 않고 월급을 잘 안준다고 타박만 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도 조선족들이 불신을 당하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렁 단기성과 경박성은 조선족으로 하여금 엄중한 "한국병"에 걸리게 했다. 원래 법 없이도 살 민족으로 존중받았던 조선족이 "한국바람"이 불면서 그것이 깨여지게 되었다. "한국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법규를 도외시하는 사람이 무더기로 나타났다. 중약장사, 산업연수, 위장결혼, 밀입국, 불법체류… … 조선족사회는 총각이 장가를 가지 못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고있다. 유흥업소에서 조선족'아가씨'들이 득실거리고 처녀들이 한국인 현지처로 호강을 누린다. 숱한 가정이 파탄, 이혼율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미풍양속은 다 거덜이 났다. 교육에 대한 영향은 심각하다. 교원들은 돈벌이를 위해 교직을 이탈하고 해마다 30~50% 정도의 학부모가 아이들을 내팽겨치고 한국으로 나갔다. 돈 때문에 후대를 잃고 있다. 전통적 가치체계는 '한국바람'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지금 중국 조선족 농촌을 가보면 자기의 근면과 지혜로 치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출국 꿈에 의해 부유해지고 남의 혜택으로 잘 살아보려 하고 오뉴월에 소불알이 떨어지면 구워 먹는 궁리만 한다는 우리 속담과 마찬가지로 행운만 바란다.
 
4. 끝으로 한가지 더 집고 넘어갈 것은 중국조선족들 특히 지성인들의 좋은 자아감각이다. 자아감각이 내내 좋기에 자아성찰 의식이 결핍하여 부끄러움이 미학이 없으며 참회의식이 부족하다. 한국의 많은 학자들은 한반도 통일문제 상에서 중국조선족의 가교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점에서 조선족들은 마치 "우리의 도움이 없으면 통일이 어려운"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일정한 역사시기에는 일정한 역할을 한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빗대고 한국에 나와서도 뻔뻔스럽게 자랑하고 있으며 한핏줄이요, "통일의 전도사"요 라고 하며 이런것, 저런것을 해결해 달라고 한다. … …
 
이제 조선족은 알아야 한다. 돈만이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한국에서 몇년 고생하면 중국에서 잘 산다는 생각보다는 한국에서 배운다는 생각이 더 좋을것 같다. 우리 "한중교류협회" "한중동포신문"이 설립된 취지 역시 동포들의 권익보호의 일면도 있지만 동포들을 계도, 계몽하기 위한데도 있다.
 
맺는 말
 
현재 의학계의 학자들은 한개 민족이 이역에 50년이상 거주하게되면 그 나라의 정치, 교육, 문화 등 제반 요소에 의해 유전인자까지 변이한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 설이 성립되면 중국의 조선족은 분명히 한족들에게 상당한 면에서 동화되고 있다는 것을 동화하고 싶다. 조선족은 확실히 한족의 "만만디"성격, 중국의 음식문화나 체세술에 물젖어 있기에 한국인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있다.
 
오늘날 한국인과 조선족사이에 갈등이 생기게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지나온 역사배경, 교육, 문화, 체제의 차이, 경제 가치관의 차이로 말미암아 오늘날 특정된 시기에서 부동한 심리자질의 <상호 충격>과 부동한 이익간의 치렬한 충돌로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이런 갈등을 해소하려면 제반 조선족 사회에서 공동히 풀어나가야 할 중대한 과제로 되고있다.
 
조선족은 한국과 직접관계를 맺은지 10년, 이제 나름대로 중국과 한국사이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중국의 조선족으로서 고국과 정당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을 원하고 있다.
 
요컨대 중국이 한족 아닌 여러 민족에 대해서 폐쇄적이고 그릇된 정책을 밀고 나가지 않는한, 그리고 연변 조선족의 민족정신의 강화로 잡음을 일으키지 않는한, 중국내의 소수민족의 앞날에 대해서 강제적이고 비합리적인 수단에 의한 통합이나 학대, 추방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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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에 대해 인기글 l. 머리말 중국 조선족과 한국인은 한 핏줄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두 사이는 갈등의 골이 깊기만 하다. 90년대 초기 한국의 장사꾼과 브로커들이 중국에 다니면서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2009-03-25 11:11:28)
조선족촌에 《호적없는 토지》 많다… 인기글 ◆ 국가의 농업보조금 등 농업우대정책 향수 못받아 ◆ 정책을 모르고 믿지 않은데서 등록의 기회 놓쳐 ◆ 해당 부문의 조사확인으로 정확한 등록 요청 대부분 조선족촌들에 정도부동하게 존재 농업을 지속…(2009-03-02 16:16:48)
<서울속의 다문화 거리>… 인기글 &lt;서울속의 다문화 거리&gt;① 가리봉동 연변거리 2002년부터 '조선족 거리'로 본격 부상..주민 절반이 조선족돈 번 조선족들, 최근 주거환경 좋은 곳으로 이주 …(2010-11-15 10:55:14)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염을 친… 인기글 세계경제가 악화일로를 달리고있는 가운데 할빈 조선족 민박들의 경영 상황이 과연 어떠할가. 할빈은 소규모 민박이 대부분인데 현재 영업하는 민박은 5개, 5개 민박의 객실을 다합쳐도 30…(2009-03-02 16:16:29)
한국 KBS항일유적탐방팀 밀산 방… 인기글 —한흥동,십리와 등 한국 최초의 해외독립운동기지로 재확인  한국 독립운동 애국지사들의 영령을 추모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한민족과 후손들에게 정확한 력사와 문화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2월…(2013-02-28 07:47:31)
한국 취업비자 종류 알아보기 인기글 H-2-B(친척인 국민의 초청) 한국 국적을 취득한 친인척의 초청으로 발급 되는 비자이다. H-2-C(유학생 부모 및 배우자) 이 비자는 한국에 유학가 있는 배우자 및 자녀가 있는 경우 …(2010-04-16 10:41:21)
김미아 한국인터넷서 인기폭발...… 인기글 시나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중국"성광대도(星光大道)" 챔피언 김미아가 최근 한국인터넷에서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한국 최대 검색엔진에서 "김미아"의 검색량은 한국의 7위권에 진입하여 한국 여러 매체의 큰 주목을 …(2009-04-20 09:37:22)
실무한국어시험 불합격자 근절반 인기글 지난 4월에 치른 제15회 한국어능력시험 성적이 3일 발표되였다. 조사통계에 따르면 조선족들만 치른 실무한국어시험의 합격률이 60%좌우에 그쳐 40%좌우인 2만 3200명좌우가 불합격한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2009-06-08 09:36:42)
조선족의 최대 비극은 지식의 빈곤… 인기글 조선족의 최대 비극은 지식의 빈곤에 있다. 15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조선족은 한 때 세상에서 가장 스케일이 크고 사이즈가 넓다고 할 수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문화가 제일이고, 위생이 제일…(2009-03-25 10:48:59)
조선족유학생,귀화자 방문취업 초청… 인기글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국내 유학 중인 조선족 학생이 취업을 희망하는 부모를 한국으로 초청할 때 적용하는 방문취업 (H2) 초청 자격 요건이 일부 완화된다.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는 조선…(2013-02-26 15:42:19)
서비스업(음식업)의 방문취업제 안… 인기글 ○외국인채용절차 1.내국인 구인신청 (7일간 구인노력) ◦신청장소 : 고용지원센터 취업지원팀 (문의 2004-7030 ) ◦신청방법 : 방문,…(2009-03-26 14:54:41)
출국 자문 (09.06.02) 인기글 강제출국후 재입국 기간에 대하여 문: 형부가 2004년 5월에 한국에서 강제출국 당했는데 재입국할수 있는지? 다시 재입국하려면 기간이 얼마나 지나야 되는지요? 알려면 어디다 알아보면 돼요? 답: …(2009-06-03 09:55:25)
3000만명 중국인 관광시대를 맞… 인기글 3000만명 중국인 관광시대를 맞이하자; 한국 창스홀딩스 김성천 회장 2…(2019-09-17 18:25:41)
고용제 로무비용 구체적으로 얼마? 인기글 고용허가제 로무비용이 총 5000원 든다고 국가상무부에서 공고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비용들이 드는가? 중한 쌍방의 협의에 따라 고용허가제 수금종목은 한국어능력시험, 신체검사, 려권, 사증, 출국전교육, 자료…(2009-03-26 15:38:28)
자진귀국자 방문취업사증 신청안내 인기글 예약 기간 단축해준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것 문: 자진귀국자 방문취업사증(H2D)은 어떤 사증인가? 답: 한국에서 자진하여 출국한 자에게 발급하는, 만 25세이상의 중국조선족에게 발급하는 사증으로서 5년…(2009-06-16 09:3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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