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되려 낯선 기분, 여기가 편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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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2-06-10 17:43|본문
12년차 중국 생활, 200여명 직원 중 쎈터장 한명만 한국인
“여기에 남을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직원들도 마음 놓더군요.”
연길시 개발구에 위치한 과학기술공업원 남쪽 건물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NAVER’라고 쓰인 회사 출입문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연길시 개발구에 위치한 과학기술공업원. 이 공업원 남쪽 건물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NAVER’라고 쓰인 회사 출입문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이곳은 200여명 직원을 보유한 북경세련호동네트워크유한회사연변분공사(北京世联互动网络有限公司延边分公司, NAVER연길분공사)이다. 일전 기자는 ‘재중한국인 행복스토리’에 초대된 네이버연길분공사의 책임자 권성진 쎈터장을 만났다.
■ 부임 후 12년째, 최장기 리더로 우뚝
중국 생활 12년차,‘재중한국인 행복스토리’에 초대된 네이버연길분공사의 책임자 권성진 쎈터장을 만나 그의 재중 분투기를 들어보았다.
“처음 파견이 결정났을 때는 이렇게 오래 머물 줄 몰랐죠. 3년 정도 예상하고 왔던 것 같습니다.”
2004년, 한국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중국법인을 처음 설립하였고 본사를 북경에 두었다. 네이버연길분공사는 2006년 5월에 연길에서 설립, 권쎈터장이 2010년 12월에 부임하였으니 그는 지금까지 12년을 네이버연길분공사와 함께 했다. 초기의 한국 본사 파견근무 형식에서 지금은 연길지역 법인으로 신분을 전환했으니 이곳에 뿌리를 내린 셈이다.
“해외 파견 근무에 대한 동경, 더 늦기전에 새로운 걸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게 되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 취지는 도전이였으나 막상 현지에 와서 지내보니 언어 장벽이 큰 것도 아니였고 문화나 음식적인 부분도 너무 잘 맞아 인츰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는 권쎈터장. 그럼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냐 물었더니 대뜸 “제가요, 어제도 마라썅궈를 먹었어요.”라며 엄지를 들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가 인츰 완성되면서 타지 적응에 한몫을 했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주위 참 많은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래서 적응이 더 빨랐을지도요. 개발구관리위원회와 소속 단지 관리회사에서 많은 도움을 주셔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사업을 잘 할 수 있었지요.”
참 좋은 사람들과 기분 좋게 일하면서 점차 좀 더 있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다. 한국 본사 직원신분을 과감히 ‘버리’고 중국법인으로 소속을 옮겨버렸다고. “언젠가 돌아갈 사람이였는데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되였다”며 우스개소리 삼아 말한다.
■ “쇼핑과 관련해서는 대체불가 조직으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하는 일이 여러 갈래가 있지만 주로 한국 네이버 사이트에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주업무는 쇼핑 운영이라고 볼 수 있죠.”
권쎈터장의 소개에 따르면, 네이버 중국법인 본사가 북경에 있고 중국내 3곳에 분공사가 있다. 그 중 성도분공사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대련분공사는 게임 등 테스트를, 연길분공사는 쇼핑 운영을 책임지는 형식으로 세밀하게 분공이 되여 있다고 설명했다.
평균나이 27세인 200여명 직원들을 리드하며 때론 엄격한 리더 역할을 자처한다.“네이버연길의 주업무는 쇼핑 운영이라고 볼 수 있죠.”
“연길분공사는 소프트웨어나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진 않지만 다양한 아이디어나 제안을 올렸고 그것이 반영되면서 더 많은 범위와 령역의 업무를 맡게 되였지요.”
권쎈터장은 “자동화”, “시스템 고도화” 도입에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하면서 훨씬 효률적이고도 최적화된 인력 구조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 그는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쇼핑 관련 업무가 본사에도 자회사에도 많이 있지만 저희가 지금 하고 있는 업무를 다른 조직이 대체불가하게 만들고 싶은 게 목표이자 꿈인 거죠. 어찌보면 지금도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가요.”
■ 해외 파견근무 사흘안에 선뜻 결정, 뒤받침이 된 ‘내조의 힘’
대체불가의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사업에 온갖 열정를 쏟아부을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의 절대적인 응원과 지지에서 나온다.
“모든 것이 빨리빨리, 회사 조직문화가 그랬어요. 금요일에 해외 파견근무 제안을 받았는데 월요일에 답복을 주어야 하는. 퇴근해서 집에다 얘기를 꺼냈고 안해가 되려 아직 젊은데 도전해보라며 적극 지지해주더라구요.”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를 업고 권쎈터장은 기대반, 걱정반으로 중국에 파견왔다. 5개월 뒤 쯤엔 내조를 선언한 안해도 서울에서의 직장생활과 일상을 정리하고 남편을 따라 연길에 이사를 왔다.
교통방식이 다원화되여 출행이 더욱 편리해졌다. 얘기를 나누면서 권쎈터장은 가족과 함께 중국 여러 지역을 려행한 경험도 들려주었다.
해외거주 경험이 없던 권성진 쎈터장이 첫 해외 도전을 시작한 나이가 38세였다. 남편의 사업을 응원해 본래의 일상을 접고 인생 2막을 시작한 안해 정혜영씨는 그해 35세였다. 권성진 쎈터장의 말처럼 “아이들이야 뭐, 그때 어렸으니 부모가 가자고 하니 따라나섰겠지요.(웃음)” 8세 큰아들과 한살 터울인 작은아들도 아빠, 엄마를 따라 나서면서 한가족은 연길이라는 도시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안해는 결혼 전에 중국에서 2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엄청 빨리 적응을 마쳤고 또 까다로운 성격도 아니여서 대체적으로 주위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무작정 시작했던 이 가족의 타지 생활, 큰아들이 8살 되던 해 처음 연길이라는 곳에 와서 국제학교의 소학교에 진학했는데 벌써 올해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단다. “어느덧 입시생 부모가 되였다”며 권쎈터장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소중함을 내비치면서 “두 아들 모두 요즘은 사춘기가 왔는지 기분이 엄청 업돼있다”며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가화만사흥’이란 말이 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권쎈터장은 인터뷰 내내 안해의 든든한 내조와 가족의 지지를 언급하며 미소를 보였다.
■ “연길은 제2고향, 이젠 여기가 편해요.”
네이버연길분공사는 개발구 우수기업, 회사 우수분공사로 여러차례 선정되였는가 하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연길이라는 도시가 10여년 동안 너무 크게 변화하고 발전했어요. 그 변천사를 저는 직접 지켜본 셈이잖아요. 발전도 빠르고 살기 좋은 곳으로 거듭나고 있어요.”
12년 동안 연길에서 생활하고 사업하면서 권성진 쎈터장이 이끌고 있는 네이버연길분공사는 개발구 우수기업, 회사 우수분공사로 여러차례 선정되였는가 하면 지역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 30명으로 구성된 회사내 봉사동아리 ‘손과손동아리’는 고아원, 양로원 봉사를 주기적으로 조직하기도 하고 매달 5, 6명의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권성진 쎈터장은 덧붙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권성진 쎈터장은 연길을 제2고향이라고 불렀다.
“38살에 온 연길. 어찌보면 가장 열심히, 또 정말 최선을 다 해서 일 해야 될 시기를 여기서 보낸 거잖아요. 그러니 연길은 제2고향, 그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서울에서 나고 자란 권성진 쎈터장이 정의한 연길생활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냐?”는 말도 있다싶이 연길에 와서 먹고 사는 데 별 거리낌이 없었다보니 적응기도 빨랐던 편.
“그 사이 한국에 며칠씩 출장을 다녀오거나 개인일정으로 일년에 서너번 정도 다녀왔었는데 하도 연길에서 오래 생할한 탓인지 한국 가면 되려 조금 낯선 기분이 드는 거 있죠.”라고 말하며 그는 웃었다. “제2고향 연길이 편해졌어요.”
본인을 외유내강형 리더라고 표현했다. 회사에서 그는 평균나이 27세인 200여명 직원들을 리드하며 때론 쓴말을 해야 하는 엄격한 리더가 되기도 했다가, 때론 세대차이를 느끼는 아빠 혹은 삼촌같은 푸근한 존재처럼 젊은 직원들과 격의없이 어울린다.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그는 자신의 30대와 40대의 열혈 분투기를 이곳에 바치고 바야흐로 50대를 찍는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나아가 조직을 이끌어 실적을 거둬야 하는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강조하며 미래를 말했다.
“제2고향에 정착해야죠. 이젠 여기가 편해요. 여기가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2010년 초반 회사가 현지화를 완성하면서 현재 200여명 직원 중 쎈터장 한명만 한국인이다.
“언젠가는 돌아갈 사람”에서 정착을 결심하고 여기에 남을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직원들도 떠나지 않을 진정한 우리의 리더라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는 권성진 쎈터장. 10여년을 동고동락하면서 직원들 집안사정도 두루 알고 있다. 직원 가족들의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되였다.
2010년 초반 회사가 현지화를 완성하면서 현재 200여명 직원 중 쎈터장 한명만 한국인, 그러나 이젠 고향사람들 같고 그렇단다.
/길림신문 김가혜 정현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