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발전을 위한 재외동포 사회의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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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5-09-25 19:51|본문
우리 문화발전을 위한 재외동포 사회의 공헌
조재철 전 주콩고민주공화국대사(소설가)
우리 문화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 우리 문화적 토대의 중심에 우리말과 글이 있고 세계 최고급의 언어학자로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있다. 세종의 업적은 경제, 국방, 과학을 포함한 사실상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세계사에 이런 정도의 군주를 찾기 힘들 것이다. 문화면에서 보면 세종은 우리 문화발전의 방향을 모두 미리 예견하고 준비한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세종은 사회 전반에 필요한 전문서적 출간을 주도했다. 아악을 정리하고 향악을 육성했으며 악기도 정비하게 했다. 사람들과 더불어 즐긴다는 뜻의 여민락과 먼저 세상을 떠난 소헌 왕후를 기리는 월인천강지곡을 만든 작곡가였다. 우리나라 문화를 이끄는 최고의 기획사 대표요 예술가였던 셈이다. 세종이야말로 K팝을 포함한 K문화의 원조였다.
K팝, 드라마, 영화 등이 해외에 진출하는데 우리 해외 동포들의 공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해외 동포들은 주재국에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 다리 역할을 해왔다. 나아가 직접 창작에 나서 세계속에 우리나라를 알리고 있다. 지금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한 우리 동포들이 대표적인 한 사례이다.
우리 동포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익숙한 말과 글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작년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같은 날 전해진 다른 경사는 재미동포 김주혜 작가가 톨스토이 해외문학상을 받은 소식이었다. 영어로 작품을 쓰는‘한국계 미국작가’로 한국을 배경으로 작품을 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한국작가라고 강조하는 김 작가의 모습에서 세계문화 속에서 우리 문학이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많은 우리 해외동포 작가들이 세계문학계에서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스웨덴에 근무하던 2012년 중국 모옌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후 원로 작가들께 위로 전화를 드린 적이 있다.
그 중 한 분으로부터(노벨상의 지역별 배정 분위기 등을 감안) 이제 한국작가가 상을 받으려면 최소 10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 작가가 다시 상을 받으려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의 경우 모옌 작가가 수상 전에 (망명한) 가오싱젠이 프랑스 국적으로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은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수상한 후 26년만인 1994년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했고, 2017년 영국국적 일본계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다. 우리 해외동포사회에서도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하게 된다.
우리 해외동포 작가들은 세계에 진출하는데 있어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우리 문학이 그동안 가져온 번역이라는 난제와 관련 유리한 입장이다.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일랜드인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등 작품들을 불어로 저술한 후 영어로 옮겨서 자국에 소개했다. 우리말과 외국어를 넘나드는 해외동포 작가들은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인도하고 우리 국문학사와 체재하는 나라의 문학사를 동시에 풍요롭게 할 것이다.
급속한 국가 발전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잊거나 잃어버린 한국적인 정서를 우리 해외동포들이 더 잘 간직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서로 돕고 나누는 따뜻한 전통 미풍양속을 잘 기억하는 해외동포들의 사연을 듣거나 글을 보고 위안을 얻기도 한다.
앞을 향해 급속히 달려가는 첨단기계 문명 속에서 현대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 속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까지 허물어져가는 시대가 되고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적응과 정체성의 문제는 피부색과 종교, 대륙과 국적을 떠나 공감하는 주제이다. 해외생활은 다른 역사와 문화의 접점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에 저장된 한국문화라는 뿌리는 큰 자산으로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다. 괴테를 비롯한 수많은 문호들이 여행이나 외국체험을 통해서 영감을 얻었다. 동포들의 기억은 치열한 삶이 준 것이기에 진솔해서 더욱 큰 공감을 얻을 것이다. 떠나온 한국 경험이 해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잊고 극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더 개발해야 할 귀중한 자산이 된다. 고국은 더 많이, 더 깊게 기억하고 새롭게 공부해야 할 대상이 될 것이다.
동포분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문학모임들이 결성되어 있다. 문학회를 포함한 문화관련 모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재국에 우리 동포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지사회 문화 관련 단체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 동포사회의 외연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동포들의 창작 활동이 정체성의 혼란을 해결해 가는 것은 물론 우리 문화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세종은 사람들 간의 소통을 증진하기 위해 글과 음악을 만들고 장려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어울리고 하나 되는 세상, 서로간의 이해와 인정을 나누는 더 따뜻한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 세종의 거룩한 뜻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해외동포들의 문학계와 문화계가 더욱 활성화되고 국내 문화계와의 교류와 협력이 더욱 증진되길 기원한다. 우리말과 글, 문화가 동포들의 활약으로 더욱 풍요로워질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