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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 순결했던 간디와 시인 청마는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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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19-04-10 04:39 조회 :26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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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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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마가 사랑했던 고향 '통영' 

 

간디와 영국 해군 제독 딸의 사랑 

 

세속의 욕망을 모두 초월한 것처럼 보였던 '위대한 영혼' 간디에게도 애타게 그리운 연인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몇 해 전 인도독립의 아버지인 마하트마 간디(1869~1948)와 한 여인의 정신적 사랑을 다룬 전기소설이 출간되어 파문이 인 적이 있다. 인도의 정신분석학자인 수디르 카카르는 간디 탄생 135년을 기해 펴낸 전기 소설에서 간디가 비밀리에 그의 제자이자 영국 해군 제독의 딸인 미라(본명: 매덜린 슬레이트)와 애틋한 정신적 사랑을 나누었던 사실을 공개했다. 이 책은 네루 메모리얼 뮤지엄 도서관에 소장된 1925~1930년, 1940~1942년 사이 간디가 미라에게 쓴 350통의 편지를 토대로 한 실화 소설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6년 <물레를 돌려보지만 잊을 수 없습니다 - 간디의 숨겨진 사랑>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 

 

로맹 롤랑이 쓴 간디의 전기를 읽고 간디의 철학에 매료된 33세의 처녀 매덜린 슬레이트는 1925년, 영국을 떠나 간디(당시 56세)가 수행 중이던 사마르마티의 공동체를 찾아가 그의 문하생이 된다. 간디는 그녀에게 '미라'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미라는 공동체의 일을 도우면서 인도의 독립 운동에도 참여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간디가 1948년 힌두 과격분자의 총탄에 숨을 거두기까지 계속된다. 미라는 1958년 인도를 떠나 오스트리아의 빈의 교외에서 여생을 보냈지만, 누구에게도 간디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레를 돌려보지만 잊을 수 없습니다 

 

한 편지에서 간디는 미라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이렇게 토로한다.

"당신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문득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물레를 돌려보지만 잊을 수는 없습니다." 

 

미라 또한 간디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이렇게 애타게 표현한다.

"나의 소중한 바푸. 그래요. 나는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다시, 그리고 또다시. 그래요. 나는 뜨거운 눈물로 당신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그 눈물은 당신과 함께 있기에 행복해서 흘린 눈물이었으며, 또한 당신이 나를 또다시 보낼 것을 알기에 흘린 고뇌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래요. 나는 당신의 다리를 내 가슴에 꼭 끌어안고 내 얼굴을 비볐습니다. 오! 나의 사랑하는 의사 선생님이시여! 당신은 내 질병을 진단하셨지만 얼마나 큰 오류를 범하셨는지요! 나의 질병은 당신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나를 아프게 합니다. 나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의 존재입니다. 먼 곳으로 떠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시는 겁니다. 나의 의사는 내 질병의 원인이자, 또한 치료제이자, 유일한 의사입니다. ―당신의 미라로부터" 

 

간디는 31세부터 아내와의 육체적 관계를 끊었고, 37세에는 영원한 순결을 서약해 일생 '순결'을 지켰다고 그의 자서전에 썼다. 수디르 카카르는 이 전기 소설이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왜곡했다는 일부 간디 제자들의 항의에 대해, '두 사람 간에 육체적 관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간디는 또 그의 자서전에 37세 때 했던 순결의 서약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나는 간디가 육체적 '순결'을 지켰는지 말았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나 또한 간디를 존경하지만, 간디가 사람이고 한 남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간디가 그의 제자와 어떠한 관계를 맺었든 간디에 대한 나의 존경심이 변할 까닭은 없다. 다만 간디 같은 사람들이 육체적 관계는 죄악시하고 정신적 관계만 지고 지선인 것처럼 주장하는 태도가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뿐이다. 어째서 간디는 미라를 그토록 갈구하고 영혼까지 사로잡혔으면서도 육체적 관계는 거부했던 것일까. 영혼을 빼앗겼으면서 순결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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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청마문학관

 

몸은 만질 수 있는 영혼 

 

곰곰이 생각해 보라. 영혼을 빼앗기고 '육체적 순결'만을 지킨 것이 진실로 '순결'을 지킨 것인가. 그것은 육체를 타락 속에 내던지고 '영혼의 순결'은 지켰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허황하다. 어째서 몸은 사악하고 정신만이 선한가. 어째서 육체적 관계는 더럽고 정신적 관계만이 신성한가. 정신이나 영혼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정신, 영혼만큼이나 몸, 육체 또한 소중하다는 말이다. 영혼의 교감 없이 육체만을 탐하는 사랑이 건조하듯이 몸 부대낌 없이 정신적 교감만을 나누는 사랑 또한 공허하다. 영육이 분리된 어떠한 사랑도 불완전하다. 영혼만큼이나 몸도 소중하다. 몸과 영혼 모두가 온전히 결합할 때 비로소 사랑은 완성된다. 그것은 몸이 곧 영혼이기 때문이다. '몸은 만질 수 있는 영혼'이다.

 

육체는, 몸은 결코 영혼과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특수 물질이 아니다. 몸이 생기면 영혼이 생기고 몸이 자라면서 영혼도 자란다. 마침내 몸이 죽으면 영혼도 소멸한다. 불멸은 없다. 한 번 받은 몸이 소중하고 재생될 수 없는 영혼이 눈물겹게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영혼뿐이겠는가. 어떠한 존재도 불멸은 없다. 모든 존재는, 몸은, 영혼은 유한하다. 유한하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데 어째서 간디는 영혼의 유일한 실체인 육체를 불결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때문일까.

 

어째서 정신적 사랑은 순결한가? 

 

통영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불쑥 간디 이야기를 꺼낸 것은 통영 출신 청마 유치환(1908~1967) 시인과 정운 이영도 시인의 사랑이 육체적 관계가 배제된 정신적 사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칭송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이문당 서점 부근에는 청마 거리가 있다. 한국의 도시들 중 문화예술인의 이름을 딴 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 통영이지 싶다. 청마거리 중심부에 청마의 편지 때문에 유명한 그 중앙동 우체국이 있다. 중앙동 우체국 앞 공원에는 청마의 흉상과 시비가 함께 서 있다. 2008년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또 남망산 아래 정량동에는 청마문학관이 있다. 문학관에는 청마의 생가도 복원되어 있는데, 본래의 생가가 그곳은 아니다. 본래 생가는 도로 확장 공사로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지금 통영 누비 가게가 들어서 있다. 청마 문학관에 있는 생가는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문학관에는 청마가 이영도 시인과 주고받은 연서도 전시되어 있다. 한동안 청마의 출생지가 통영이냐 거제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었다. 결국, 거제는 청마가 태어나 두 살까지 살았던 곳이고 통영은 성장했던 고향으로 결정이 났다. 그래서 거제에도 청마기념관이 있고 청마의 생가 있다. 묘소 또한 거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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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시장 뒷길을 누비 집 앞 청마의 생가 표지석. 

 

중앙동 우체국은 청마가 사랑하던 여인 정운 이영도 시인에게 매일 편지를 부치던 곳이다. 우체국 뒤에는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가 경영하던 유치원이 있었고 그 유치원 마당에 청마의 창작 공간인 이층집 영산장이 있었다. 부인이 마련해준 그 작업실에서 청마는 연인 이영도에게 매일 같이 애달픈 편지를 썼고 중앙동 우체국에 와서 부쳤다. 그 편지가 무려 5000통이다. 

 

해방 후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한 청마는 그곳에서 수예와 가사를 가르치던 시조시인 이영도를 만났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청마는 부인이 있었고 이영도는 상처해 혼자 몸이었다. 청마는 서른여덟, 이영도는 스물아홉. 이미 가정이 있었으나 청마는 이영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영도는 경북 청도 출신의 시조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이다. 이영도가 통영으로 온 것은 남편의 지병인 폐결핵 때문이었다. 결핵 치료차 언니 이남도가 살던 통영으로 이주했으나 남편은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이영도는 교사생활과 동시에 중앙동 우체국 부근 언니의 가게 안에서 부업으로 수예점도 운영했다.

 

통영여중에서의 만남 뒤 청마와 이영도는 점차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지만, 현실은 둘 사이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건널 수 없는 강을 사이에 놓고 두 연인은 편지로 다리를 놓았다. 그 다리는 마침내 완공되었을까. 편지라는 오천 장의 공사일지를 앞에 두고도 우리는 결코 다리의 완공 여부를 알 수가 없다. 그 다리는 어쩌면 건너기 위한 다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건널 수 없는 강만 있는 게 아니다. 건널 수 없는 다리도 있는 법이다. 청마는 부인이 마련해준 집필실 영산장에서 연애편지를 쓴 뒤 걸어 나와 수예점에 있는 이영도를 한동안 우두커니 바라보다 바로 옆, 중앙우체국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주위의 이목이 있으니 바로 옆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고 편지만 보내야 했던 청마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그 편지를 받아든 이영도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편지는 1946년 첫 만남 후 1967년 청마가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숨지기 전까지 계속됐다. 청마 사후 이영도는 청마로부터 받은 연서를 모아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1967) 라는 서간집을 펴냈고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2만5000부가 순식간에 팔렸다. 청마가 작고한 지 한 달 만에 이영도 시인이 책을 낸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청마를 이용해 책을 팔아먹는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이영도는 "자신이 먼저 서간집을 내지 않으면 다른 여자들이 낼지 모르기 때문에 서둘러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영도에게 중요한 것은 이익이 아니라 청마의 가장 소중한 사랑은 자신이었다는 것을 세상으로부터 확인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의 인세는 후일 정운 문학상의 기금으로 적립되었다.

 

물론 이 부분은 죽을 때까지 간디와의 사랑을 발설하지 않았던 간디의 연인 미라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 그른지 따질 일은 아닐 것이다. 이영도는 청마가 자신에게만 마음을 준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랬던 것은 혹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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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 청마문학관에 전시 중인 유품들. 

 

청마의 또 다른 정신적 사랑 반희정 

 

이영도의 우려처럼 실제로 청마와 그녀 사이의 서간집이 나온 직후 또 다른 여인이 청마와 주고받은 연서를 묶어 <청마와 사색의 그림자들>(1970) 이란 서간집을 펴냈다. 그 여인은 한국전쟁으로 상처한 교사 겸 전도사 반희정이었다. 이영도와 연서를 주고받으면서 동시에 청마는 반희정과도 연서를 주고받았던 것이다. 그 기간 또한 5년(1958년~1963년)이나 됐으니 결코 짧지 않다. 이영도와 20년이 아니었다면 반희정과의 5년 또한 세상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청마는 이영도와 마찬가지로 반희정과도 결코 육체적 관계는 갖지 않고 정신적 사랑만을 했다고 한다. 간디가 그랬듯이 청마 또한 육체적 사랑을 부정하다고 생각하고 정신적 사랑만을 추구했던 것일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육체적 결합을 이룰 수 없으니 더더욱 정신적 사랑에 몰두했을 수도 있다. 그것은 청마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나그네는 여기서 또 한 의문에 직면한다. 당시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청마와 여인들이 정신적 관계가 아니라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면 엄청난 비난에 직면하고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말았을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육체가 배제된 정신적 사랑만을 했다는 이유로 이들의 사랑이 지고지순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미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는 육체적 순결만큼이나 정신적 순결이 소중하다고 떠받들어지는 시대가 아닌가. 청마 부인으로서는 결코 청마가 정신의 순결을 지킨 것이 아니다. 이영도의 입장에서도 반희정과 청마가 맺었던 관계를 생각하면 결코 순결이 지켜진 것이 아니다.

 

정신적 사랑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정신적 순결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정신적 사랑은 무조건 고결하다고 칭송하면서 육체적 사랑은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는 이 사회의 이중적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육체적 순결만 지키면 수백, 수천 명과 정신적 사랑을 해도 순결한 사랑인가? 

 

사람은 때로 정신적 사랑만 추구할 수도 있고 육체적 사랑만을 탐닉할 수도 있다. 또 정신과 육체가 온전히 하나 되는 사랑을 이룰 수도 있다. 어떤 판관이 있어 어느 사랑은 옳고 어느 사랑은 그르다고 재단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서로 다른 사랑이 있을 뿐인 것을. 나그네는 어떤 사랑도 절대적이라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다만 육체적 사랑보다 정신적 사랑이 순결하다는 편견이 깨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청마는 그의 시 <행복>에서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네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육체적 욕망을 버리고 정신의 고결함을 추구했던 간디나 정신적 사랑만을 했다는 청마는 정말 행복했을까. 그렇다면 순결 서약까지 한 간디가 왜 350통이나 되는 편지를 보내며 미라에게 열렬한 구애를 보냈던 것일까. 청마는 어째서 이영도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며 5000통이나 되는 연서를 쓰는 동안 반희정과도 5년이나 또 다른 연서를 주고받았던 것일까?    

 

 ​강제윤 인문학습원 <섬학교><통영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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