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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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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19-04-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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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의 시는 솔직하고 대담하다. 원시적 야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관능으로 들끓는 용암 같다. 그런데도 쉽고 재밌게 읽힌다. 메시지는 투명하다. 시인은 여성의 결핍된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어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의 언어에 저항한다. 반역과 위반의 상상력으로 억눌린 여성성의 원형을 회복하려 한다. 시집 『남자를 위하여』 시작노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언어는 지고지순한 처녀이거나 잘난 지식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나의 언어는 포르노나 음흉한 악녀를 꿈꾸며 낯설고 버르장머리 없는 무법자가 되어 언제나 불새처럼 날고 싶다." 

 

본능적 원시 세계를 갈망하는 시인의 이런 기질이 광기의 힘, 짐승과 불의 이미지를 낳는다. 짐승은 육체의 원초적 야성과 사랑의 갈망, 불은 딱딱하게 굳은 도덕적 관습과 남성 지배담론에 대한 분노를 대리하는 이미지다. 그녀가 여성의 몸과 관련된 시어들을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은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 사랑에 대한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시는 시대의 폭압과 남성적 인습을 청산하는 주술이자 매장된 여성성을 되살려내는 곡비(哭婢)의 노래일 수 있다. 

 

초기부터 줄곧 문정희의 시에서 여성은 소외되고 억눌린 존재, 죽음과 절망의 존재로 그려지곤 했다. 중요한 건 이런 비극적 여성인식이 자폐심리나 나르시시즘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남성 세계의 권력과 성적 위악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이다. 그만큼 남근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하고 재단한 여성의 세계는 비극의 역사였던 것이다. 따라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시인의 테제는 곧 '진정한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사회적 질문으로 확장되며, 사마천 같은 인물은 시인이 지향하는 가장 바람직한 남성성의 현현일 것이다. 

 

사마천(司馬遷 BC 145~BC 86)은 한나라 무제 때의 역사가다. 흉노족을 정벌하려다 패하여 흉노족에 투항한 장수 이릉(李陵)을 변호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이 언도된다. 당시 사형을 면하는 길은 두 가지, 금전 50만전을 내거나 궁형(宮刑)을 받는 것이다. 궁형은 거세를 뜻한다. 가난했던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 대를 이어 역사서를 집필해달라는 간곡한 유언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굴욕적인 궁형을 택한다. 그렇게 궁형을 당한 후에 감옥에서 사마천은 총 130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역사서 《사기(史記)》를 집필해낸다. 시인은 이런 결기와 힘, 불굴의 삶을 보여준 사마천이라는 사내에게 매료된다. 남근이라는 물욕의 기둥을 자르고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진짜 사내가 된 사내, 굴욕과 고통을 이겨내고 천년의 시간을 얻은 대담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는 진정한 남성성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인간의 자존에 관한 문제 제기다. 이런 비판적 전언을 통해 시인은 여성과 남성의 세계를 대립과 투쟁이 아닌 화해와 포용의 관계, 여성의 몸을 생명을 낳고 신을 낳는 포괄적 우주로 보려 한다.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문정희(文貞姬 1947~ )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 더 튼튼하고

 좀 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속의 눈 

 천년의 역사에다 댕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 투옥당한 패장(敗將)을 양심과 정의에 따라 변호하다가 남근을 잘리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고도 방대한 역사책 『사기(史記)』를 써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사나이를 위한 노래이다  

시인 함기석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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