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이건희 회장도 산삼 즐겨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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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19-02-19 03:44|본문
“정주영·이건희 회장도 산삼 즐겨 먹었죠”
글 | 신준범 월간산 기자 사진 | 양수열 기자
과거와 비교하면 산삼 가격 턱없이 저렴해져
“1990년대 톱스타 K씨와 가수 L씨가 오랜 단골이었지요. 기업에서도 많이 샀죠.”
한국심마니협회 원현덕 가평지회장은 연예인 단골이 많다.
본인이 직접 먹는 경우도 있지만 가수와 탤런트로 인기를 끌었던 K씨의 경우 아픈 모친을 위해 7,500만 원 상당의 산삼을 구입했다고 한다. 기업에서도 산삼을 숱하게 구입했는데, 보통 대기업이나 고위인사에 대한 선물용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산삼은 은밀하게 거래되어 왔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만 굳이 소문내고 밝힐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고객 정보 보호 등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산삼 거래에 대해 심마니들은 시원하게 얘기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
작고한 현대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산삼을 즐겨 먹기로 유명했다. 심마니들 사이에 정주영 회장에 대한 일화는 여러 가지가 떠도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정 회장은 직접 심마니의 집을 찾아와 산삼을 보여 달라고 하고, 일단 먹은 다음 돈을 주었다고 한다.
1980년대에 수백만 원의 돈을 선뜻 주었으니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최고가로는 650년 묵은 산삼을 먹고 7,000만 원을 주었다고 한다.
1980년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2,000만 원대였으니 엄청난 돈이었다. 물론 검증된 사실이 아닌 심마니들 사이에 전하는 전설적인 소문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산삼을 즐겨, 아예 산삼 구입을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다고 한다. 강원도 인제 같은 곳에 사무실을 두고 어느 심마니가 산삼을 캤다고 하면, 직원이 직접 심마니를 만나 산삼을 구입해 갔다고 한다.
실제로 이건희 회장의 어록 중에 ‘산삼밭에 가야 산삼을 캘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제 산삼을 캐는 방법이 아닌 경제적 이득을 얻는 방법을 빗댄 것이지만, 평소 산삼에 관심이 많았음을 방증한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도 정주영 회장에게 1999년과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산삼을 선물했으며, 마찬가지로 이건희 회장에게도 선물했다. 옛날 당나라 황제에게 진상하던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삼은 VIP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로 이용되고 있다.
이것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퍼지게 된 건, 산양삼 때문이라고 말한다. 산에서 키운 삼을 ‘산양산삼’이란 말로 판매하면서 산삼에 대한 인식이 대중화되어 산삼 가격이 낮아졌다고 심마니들은 말한다.
심마니들은 산삼 가격이 예전의 10분의 1로 폭락했다고 한다. 산양삼 등으로 전체 시장은 커졌지만 신비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 상황이 침체인 것도 있지만 김영란 법 시행으로 기업의 구매가 줄어든 것도 한몫한다.
주5일 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주말이면 산삼과 약초를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또 약초 동호회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동호인들이 버스를 타고 단체로 와서 산을 황폐화시킨다고 얘기한다. 새끼 산삼은 살려주고 산삼 씨도 뿌려야 하는데, 무조건 캐기만 한다고 성토한다.
1 오행 가지가 4개 달린 사구 산삼. 가을이라 잎이 노랗게 변색되고 열매인 달이 떨어진 상태다. 2 각구 산삼. 잎이 5개인 5행 가지가 2개인 것을 각구라고 부른다. 뇌두가 잘록하니 길쭉한 것이 전형적인 산삼의 특징이다.
큰 상인이 대기업과 유력 인사 연결
산삼 가격은 뿌리로 결정된다. 뿌리의 생김새와 뇌두의 모양을 통해서 연생과 값어치가 결정된다. 과거에는 중간 상인들이 폭리를 취했다. 산삼을 캐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삼을 팔 수 있는 고객을 보유한 상인이 더 큰 몫을 가져가는 것이다.
시골 약초꾼인 심마니가 대기업 회장에게 곧장 줄을 대기 어려운 현실임을 감안하면, 그 생리를 이해할 수 있다. 박만구 협회장은 과거에는 대상大商, 중상中商, 약재상 등으로 큰 고객을 아는 상인과 중간급 고객을 아는 상인, 대중적인 판매상인 약재상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심마니들 사이에 유명했던 대상들이 주로 대기업 총수나 사장과 유력인사들을 단골로 확보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상들이 나이가 들어 죽거나 후임 없이 은퇴하는 바람에 지금은 대상이라 부를 만한 큰 장사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심마니들은 여럿이 팀을 이뤄 다닐 경우 산삼을 발견하면 판매가를 똑같이 나눈다.
물론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어 함께 다니더라도 처음 산삼을 발견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규칙을 세운 무리도 간혹 있다. 혼자 다니면 그만큼 산삼 발견 시 자기 몫이 크지만, 큰 산에서 몇 날 며칠을 혼자서 다니기란 쉽지 않다.
원현덕 심마니는 오랫동안 혼자 다녔다.
한때 가평지부에 회원이 17명이 있을 정도로 제자를 많이 키우기도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중한 산삼 자리를 제자에게 알려주기도 했는데, 몰래 와서 캐어간 이들도 여럿 있었다. 보통은 스승에게 산삼을 캐도 되는지 여쭤보고 혼자 가거나 함께 가서 캐야 한다.
그는 “돈이 급하면 마음도 급해서 빨리 가느라 산삼이 보이지 않는다”며 “마음이 편안해야 산삼이 잘 보인다”고 한다.
산에서 혼자 다닐 때 가장 무서운 것으로 ‘사람’을 꼽는다. 멧돼지나 뱀은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괜찮지만, “가만있는 데도 해코지를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고 말한다.
심할 경우 1년 동안 산삼을 한 뿌리도 못 캘 때도 있다고 한다.
다른 약초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으나, 형편이 바닥을 친다고 원 심마니는 말한다.
값을 깎으려 드는 손님은 극약처방으로 산에 데려 가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힘들고 위험하게 다니면서 산삼을 캔다는 걸 알려 주기 위해서”라며, 이후엔 제값을 지불한단다.
매장을 운영하는 배용수 심마니는 “이 장사는 속이면 오래 못 간다”고 얘기한다. 약효를 통해 재구매가 이뤄지기에 값에 맞는 산삼을 내어주는 것이 원칙이란 것이다. 오히려 싸게 줄 때가 많다고 한다. 이윤이 적게 남더라도 손님 형편에 맞춰서 준다고 한다.
산삼 유통은 불투명한 면이 많다. 법적으로 정해진 가격 기준도 없고, 인터넷을 통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믿고 구입해서 믿고 먹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로 이뤄지는 거래다. 최첨단 시대인 요즘, 옛날 방식 그대로 유통되는 것이 산삼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믿음만으로 거래할 수 없으므로, 객관적인 가격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부 차원의 투자 있어야 산삼시장 투명해질 것”
“산삼은 먹어 본 사람이 먹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산삼 약성을 아는 사람이 다시 찾지요. 산삼의 약효를 모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코 먹지 않는 게 산삼이에요.”
박만구(60) 회장은 1999년 한국심마니협회를 창립해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그는 “사라져가는 심마니 고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산삼에 대한 정보 교류와 판매를 서로 돕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최대 500명까지 회원이 늘었던 적도 있으나 지금은 200명 수준이다.
산삼과 관련된 협회의 사기 사건이 간간이 뉴스에 오르내린 적도 있었지만, 그는 “우리 협회는 사기에 휘말린 적이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비영리 단체로 정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순수 심마니 단체라고 설명한다. 특히 전국 각지에서 “내가 한국심마니협회 회장”이라 사칭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수 십 억 원대의 사기를 벌인 사건이 있었으며, 최근에도 박만구 회장을 사칭하는 이들이 버젓이 활동하며 사기를 벌이고 있으니 “주의해 달라”며 “더 이상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실체 없는 단체들이 ‘엄청난 산삼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간혹 보도되는데, 대부분 산삼의 가치가 상당히 부풀려진 경우가 많단다.
그는 어인마니학교를 세워 신입 회원과 기존 회원들을 교육하고 있다. ‘어인마니’란 우두머리 심마니를 지칭하는 고유어다. 산삼박물관 건립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심마니 놀이마당과 문화, 심마니만의 고유어를 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사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이야기한다.
서울에서 일하던 그는 도시 생활이 맞아 않아 1995년 사명산 자락에 정착했다. 포천이 고향인 그는 약초를 공부하기 위해 산에 직접 통나무집을 지었다.
이렇게 약초와 산삼을 공부하는 그에게 주변 심마니들이 “협회가 필요하니 만들어보라”고 권유해 창립했다고 한다.
그는 “심마니들의 권익을 위해 산삼도 정부적인 차원에서 해외수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 “산림청이 산을 등산과 여가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산삼을 비롯한 산약초 재배의 가능성에 주목해 정부적인 차원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이 선행될 때 “불투명한 산삼업계의 유통도 투명해질 것”이라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