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질려潼蒺藜와 백질려白蒺藜의 차이에 따른 구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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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1-07 09:46|본문
★ 동질려潼蒺藜와 백질려白蒺藜의 차이에 따른 구분법
1. 동질려潼蒺藜(사원자沙苑子) -- 편경황기.자운영의 종자 (=하황초) ; 콩과 ---> 영락공주 고사 (보신자음)
【성미귀경性味歸經】감甘,온溫。귀간신경歸肝、腎經。
【용도用途】用於腎虛陽痿,遺精早泄,尿頻,或白帶過多,腰膝酸軟,腰痛;肝腎不足,目昏目暗,視力減退。
2. 백질려白蒺藜 - 남가새(남과새과) ---> 유수고사 (소간해울)
【성미귀경性味歸經】고신호苦辛乎,입간경入肝經。
【용도用途】平肝解鬱,祛風明目。用於肝陽眩暈頭痛,肝鬱脅痛,風熱頭痛,目赤腫痛,皮膚瘙癢等症。
서한말(西漢末) 간당(奸黨) 왕망(王莽) 등이 정권을 찬탈한 후 서한의 종실(宗室)들은 왕망의 찬위를 통탄하였다. 한실(漢室) 후예 유수(劉秀)는 말을 타고 장안을 떠나 피신했으며 한실강산(漢室江山)을 부흥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왕망은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유수를 추격하였다. 유수(劉秀)는 초조한 심정이었다. 유수(劉秀)가 왕망의 추격을 피하여 도망가는 도중에 먹을 식량도 부족하고 마실 물도 부족했다. 그리하여 유수(劉秀)는 간화상항(肝火上亢)이 생겨 두눈이 빨개지고 두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머리도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해 졌다. 유수(劉秀)가 위씨현(尉氏縣)에 있는 백록산(白鹿山) 등성이에 도달했을때 쓰러져 버렸다. 이와같이 긴급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백록 한 마리가 백질려 줄기 하나를 입에 물고 나타나서 백질려의 줄기와 잎을 씹어 질려즙을 만들어 유수(劉秀)의 입속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이윽고 유수(劉秀)는 혼절한 상태에서 깨어나 다시 계속하여 남양(南陽)까지 무사히 도망칠 수 있어 왕망의 추격을 잘 피할 수 있었다.
백질려는 1 년생 혹은 다년생 초목식물 자질려의 과실이다. 미(味)는 신고(辛苦)이며 성(性)은 미온(微溫)이고 간경과 폐경으로 들어간다. 거풍소간(祛風疏肝)작용이 있으므로 유수의 질병을 치료한 것이다. 고금의안안(古今醫案按)에 보면 백질려는 진양(眞陽)을 통해주고 심경화욱(心經火郁)을 풀어줌으로써 심정욱결(心情郁結)로 인한 양위(陽萎)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도(印度)의 민간방 중에 백질려(白蒺藜)는 이뇨제로써 사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백질려(白蒺藜) 속에 칼리암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임상실험결과 백질려(白蒺藜)는 복수(腹水)와 수종환자의 치료에도 일정한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당현종(唐玄宗)의 딸 영락공주(永樂公主)는 태어날때 부터 질병이 많아 신체가 매우 허약하였다. 영락공주가 열 세살때 뼈와 가죽만 남아 앙상하고 볼품없는 젖비린내 나는 계집아이였다. 서기 755 년 영락공주가 열 다섯살 때 안록산(安祿山)의 난리가 발발하였다. 영락공주의 어머니는 영락공주와 함께 황궁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였다. 사원(沙苑) 일대를 떠돌아 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영락공주의 어머니는 당지 소산 질려를 뜯어다가 차를 만들어 영락공주에게 계속 마시게 하였다.
2 ,3 년 후 뜻밖에도 영락공주의 질병은 모두 깨끗하게 치유되었다. 영락공주의 피부는 매끈매끈하고 윤기가 났으며 매우 아름다워졌다. 안사지란(安史之亂)이 평정된 후 영락공주는 황궁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락공주는 오라버니 숙종(肅宗 : 유형(劉亨))에게 질려를 보내어 복용하도록했다. 숙종이 1 개월 동안 질려를 복용하고나니 눈과 귀가 밝아졌다.
그러므로 숙종은 사원일대에 질려를 파종하여 보다 많은 수확을 올리라고 백성들에게 명령하였다. 농민들은 어명에 따라 질려를 열심히 재배하여 매년 가을 최상품의 질려를 골라 황실에 진공(進貢)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원자(沙苑子)는 온 천하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유수(劉秀)가 복용한 것은 백질려(白蒺藜)에 대한 고사이며 백질려(白蒺藜)는 자질려(刺蒺藜)라고도 부른다. 영락공주가 복용한 것은 동질려(潼蒺藜)에 대한 고사이다. 동질려(潼蒺藜)는 낙양(洛陽)과 장안(長安) 사이에 있는 동관(潼關)지역에서 생산되는 질려로써 미(味)는 감(甘)이며 성(性)은 온(溫)인데 보신자음(補腎滋陰) 해준다.
동질려(潼蒺藜)는 사원자(沙苑子) 혹은 사원질려(沙苑蒺藜)라고도 칭한다. 시경(詩經)에 보면 질려를 자(茨)라고 칭했다. 자(茨)는 자(刺)이며 질(蒺)은 질(疾)과 통하고 려(藜)는 리(利)와 통한다. 그러므로 고인들은 "기자상인(其刺傷人), 심질이리야(甚疾而利也), 고명자질려(故名刺蒺藜)"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질려의 가시는 사람을 상하지만 질병에는 매우 이롭다. 그러므로 이름을 자질려라고 했다." 는 뜻이다. 유수(劉秀)는 후에 동한(東漢)을 건립하고 초대왕 광무제(光武帝 : 서기 25 년 - 서기 57 년)가 되었다.